일본 식민시대의 그림자가 여전해... 호칭의 정의부터 출발해야 2018.08

2022. 12. 6. 09:25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The shadow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still exist... We should start with the defining of an appellation

 

하이야트 호텔 재단에서 후원하는 프리츠커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건축계에 국제적 권위가 있는 상이다. 이웃 일본은 벌써 6명이나 수상을 했고, 중국도 2012년 왕수(王澍)가 수상했다. 이들 중 몇몇 건축사들은 해외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 순 수 국내파들인 경우도 많다. 영어를 못하는 건축사들이다. 그 밖 에도 유럽이나 남아메리카 출신 건축사들도 다수가 수상했다.

이런 성과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국제화가 필요 조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건축계는 이상하게 자존감이 낮 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에 대한 인정이 매우 박 하다. 국제적 시각이나 시야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이 절대적이진 않다. 중국 수상자인 왕수의 예만 들면 철저한 중 국내 작업을 성과로 만들어 내고 인정받은 셈이다.

굳이 프리츠커상에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지만, 건축계가 아 닌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건축계에 대한 인정이 될 수도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건축계와 한국 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건축계가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일반인들은 여전히 건축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건축=건설’의 이미지로 생 각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야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지만, 대중들은 설계가 건설이 같은 분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집을 지으려 생각하면 여전히 건설사를 먼저 찾아간다. 이런 인식의 고 착은 어디서 시작할까? 더구나 설계를 하는 직업명칭인 건축사 라는 용어조차 대중의 인식에 명확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아, 건 축가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아무리 법적으로 정의되어 있어 도, 각종 언론이며 매체는 여전히 혼용된 용어를 사용한다.

사실 이런 용어의 뿌리는 일본 식민시대에서 연유한다. 일본 식 민지 시절, 한국인은 건축사가 될 수 없었다. 건축사 업무인 설 계는 건설 이전으로 일의 시작에 해당하는 업무다. 따라서 이런 시작을 식민지 국민에게 부여할 수 없었다. 이상이라는 일본 식민지 시절, 천재적 인물이 최고 성적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 영선과에 근무해서 보일러를 고치는 직업이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더구나 일본은 귀족 자제들의 건축 설계 참여로 인 해 건축가라는 호칭으로 대체해서 일을 했다. 귀족이라는 계급 적 발상으로 특권을 얻으면서 면허 없이 건축가라는 타이틀 활 동을 한 것이다. 전후 일본은 이런 뿌리로 인해 건축사와 건축 가 논쟁이 수년간 치열하게 전개되다가 지금은 암묵적 묵인 상 태다. 다만 법적으로는 상당히 위축되어서 건축사가 점차 중심 이 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영향을 우리도 동일하게 받아서 여 전히 호칭 논쟁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영어권은 아주 단순 명쾌하다. 영어 Architect는 영국이나 미국 모두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면 사용 불가이며, 법적 제재 상황이 다. 호칭이 왜 중요할까? 이는 건축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논문을 쓸 때나 책을 저술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용어의 정리다. 바로 이 용어의 정리가 미 흡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상 사용되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건 축가’라는 호칭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와서 건축사 자격 시험을 통과한 자격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다. 호칭 하 나에도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재와 부조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생각을 창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남과 다른 것이 어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발언할 때 우리 건 축이 타인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 건축이 건설과 다른 영역임 을 확인받아야 하는 중요함도 호칭에서 출발한다. 지식산업의 근 간은 창조임에도 불구하고, 육체노동의 정량적 평가를 기준 하는 어색함도 출발이 이상해서 그렇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용어를 정리해가면서 우리 스스로 가치 기준을 세울 필요가 절실하다. 8월의 광복절은 우리 건축계에 이런 작지만 큰 이야기를 상기 시켜 준다.

 

 

 

 

글. 홍성용 •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