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상 수상의 계절, 건축사들은 사회를 향해 더 발언해야 한다 2018.10

2022. 12. 8. 10:02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During the season of Architectural Awards, the architects should comment more towards society.

 

과연 건축계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개인 적인 연구와 글을 쓰거나, 작품활동을 하다가 건축업계의 주 류영역에 들어와 편집국장을 겸한지 6개월이 되어 간다. 외 부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개인시간 을 투입해서 희생하는 것이 보였다. 이분들이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노력하고, 희생할까? 요즘같이 자기 개인의 이익에 몰입하는 시대에 대한건축사협회 활동하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이런 개인들의 노력이 외부로부터 인정받는 경우보 다는 끝없는 힐난과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다. 어느 사회나 뒷담화가 많지만, 건축계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사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외부의 경계선에서 건축을 바라보았던 입장에서 본다면 본협 회원 들의 노력들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지향점을 향해 가는 것에 한 표 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당장의 생계가 급 한 입장에서는 하나 하나 미세한 사안들에 아우성을 치지만, 큰 틀의 구조가 바뀌어 버리면 이런 미시적 사안들이 모두 쓸모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건축사 협회원들의 자각과 노력, 그리고 단결된 힘이 필요하다.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비전과 계 획이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선배 건축사들이 2018년 건축 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그것은 국가 최 고 통치자가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졌다는 점이고, 한동 안 밀려났던 건축계가 본질에 다가서는 분들로 국가 건축 의 사 결정을 구성하는 구성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 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국가 건축 의사 결정 구 조에 건축사들이 주인공이었던 적이 드물다.

덕분에 대통령을 만나서 건축계 상황과 비전을 언급하는 경 우가 거의 없었다.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서울 구산동 마을 도서관에서 회의 주재는 매우 드문 하나의 사건에 가깝다. 건축계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점에 건축의 목 소리를 더 내어야 한다. 건축계 목소리를 내어야 할 분야가 어 디 한 둘인가? 부동산 문제부터 공공적 분야까지 건축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건축계가 이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 하는 분야에 대해 소홀했던 점은 고백하고 뒤돌아봐야 한다. 70년대 쇼처럼 어깨띠 두르고 빗자루 들고 하는 류의 이벤트 는 21세기인 지금 전혀 도움이 안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성과 가 없다. 어깨띠 두르고 하는 이벤트에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보다 진지하고, 거시적 안목으로 건축계가 참여 해야 한다.

서울 수도권지역에서 불붙은 부동산 해법과 대책에 대해서 건축계가 보다 근본적인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지난 수십년 현대사에서 부동산 문제는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만 건축계 가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안을 제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 다. 70년대 강남개발, 80년대 목동과 노원구 개발, 90년대 5 대 신도시, 2000년대 판교 신도시... 서울이 이럴진데, 주요 광역시나 전국 각 지역은 어떨까?

행정가나 정치가들이 만들고 제안한 프레임안에서 수주를 위해 뛰어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떤가? 그들이 정한 방향을 수습하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뀜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건축사들이 적극 나서서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우리 사회 문제 곳곳에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건축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 브레인의 역할을 해 야 한다. 당장 지역 건축사 조직들은 지역의 싱크탱크 건축사 조직으로 공공건축사들을 제안해서 지역과 함께 활동해야 한 다.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을 왜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가? 건축사들이여 이젠 사회적 공공 담론을 선점하시라!

 

 

 

 

 

 

 

글. 홍성용 •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