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1. 10: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Low House with Soft Edge
무심한 건축
별다른 정보 없이 찾아간 카페 ‘인더스하버’의 첫인상은 흔히 SNS에서 보던 유려한 형태와 번쩍이는 재료, 형태가 수려한 카페들과는 사뭇 달랐다. 2차선 도로 건너편에 펼쳐진, 지세포항 수변공원 앞에 낮게 깔린 건축은 마치 오래전 그곳에 있던 작은 미술관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건너편 도로에 서서 카페를 한참 살폈다. 바닷가 앞 카페들은 으레 한 뼘이라도 더 바다 쪽으로 나가거나 개성 있는 외관, 개방감 있는 창을 낸다. 애매하게 펼쳐진 풍경으로 열 것인가, 아니면 내밀하고 특별한 자연을 만들어 다른 태도로 시작할 것인가를 두고 여러 대안을 검토했을 건축사의 고민이 그려졌다.
도로에 길게 면하게 하는 상업건축의 일반적인 해법을 따르지 않고 단부(폭 6m)를 도로에 면하게 하여 대지 내부 깊숙이 배치한 것은, 건축을 오브제나 아이콘으로 보지 않고 배경과 장소를 조직해 방문자의 연속적 경험을 중요시한 것으로 보인다. 몸체에서 적절히 분리된 수직 처마는 거제도의 거친 비바람과 강한 일조에 대응하는 건축적 장치이자 방문객을 반기는 떠 있는 벽이다. 방문자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면 하늘에 열린 근사한 프레임이 된다. 떠 있는 검고 거친 STO는 외부에서 낮게 깔린 ‘인더스하버’의 첫인상이고, 내부로 들어서면 노출 콘크리트가 속살처럼 드러난다. 건축을 땅에 더 밀착되게 만드는 중의적인 수단이다.
단으로 구성된 공간
대지가 태초에 가졌던 지형을 그대로 건축적 판으로 만들었다. 시퀀스는 도로 혹은 주차장에서 입구, 내부-중간 단-하부 단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숨겨진 정원과 대면하게 된다. 크지 않은 볼륨(6m×30m)의 내부는 구획이 최소화된 열린 평면이며 하부 판들의 영역으로만 구분되어 있어, 긴 평면이 가진 장점을 잘 드러낸다.
내부 공간과 외부공간의 단들은 1:1로 대응되어 방문객에게 자연과의 관계 맺기를 권유한다. 최상단 레벨에서 최하단 레벨까지 도달하여 정원 쪽에서 외부로 나가 다시 순환하는 구조가 명쾌하게 만들어진다. 외부의 적절한 경사는 외부공간의 성격을 나누어주기도 하며 내부의 계단과는 다른 경험을 하는 산책로가 된다. 쉬운 순환 동선으로 방문객은 내·외부공간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천정은 평평한 슬라브 아래 합판을 구부려 라운드 된 천정이 거친 내부 마감들을 감싸고, 비교적 어두운 톤들로 정리된 내부는 재료를 솔직하게 드러내어 거제의 산업을 은유한다.
수평의 지붕
두툼한 가로 30미터 길이, 높이 2미터 남짓한 수직벽은 처마이자 지붕을 은유하는 긴 띠로 보인다. 두터운 지붕 아래 카페 공간은 그래서 더 투명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연속적인 수평의 입면 아래는 투명한 카페 공간이, 위로는 자유로운 옥상 프로그램이 배치되어 총 세 가지의 위계 없는 판들이 완성된다. 지붕 위의 평평한 판, 내부 공간의 판, 그리고 정원의 판은 자유로운 동선들로 엮여 방문객 저마다의 경험을 유도한다.
지역성을 위한 고군분투
건축주의 요구 조건을 담아 디자인된 내부 공간은 카페 이름인 ‘인더스하버’에 걸맞게 거친 마감재를 그대로 노출하여 산업 유산과 유사하게 연출된 내부 공간과 미세하게 식재된 자연이 대비를 이룬다. 지역에서 찾은 잡철 제작소에서 철물을 접거나 절단, 용접하여 만든 계단, 핸드레일과 군데군데 보이는 2차 가공되지 않은 핸즈온(hands-on) 디테일들은 극도로 정교하지는 않지만 충분하다. 굳이 지역적 건축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전체를 구성하는 건축사의 태도는 가급적 물성을 노출하며 치장하거나 부언하지 않는다.
다소 아쉬운 지점은 좌측면의 천변과 카페의 관계인데, 적극적인 관계 맺음을 위해 루프로 올라가는 외부 계단을 설치했으나, 거제의 강한 비바람 탓에 준공 후 날림으로 덧대어진 계단실 창호 부분이다. 계단을 오르는 맛이 영 나질 않는다.
태도가 만든 건축
일관된 태도는 공간의 일관된 분위기로 이어지며 부분은 전체가 된다. 라운드 진 천정이나 쪽진 합판 거푸집으로 만든 외부 담장은 지역 건설사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건축사의 작은 승리, 혹은 꾸준한 감리와 건축주와의 소통의 결과로도 읽힌다. 일상성과 공간의 경험을 재료 삼아 지은 작은 집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거칠지만 섬세하고 간결하다. 도로변에서 걸어 좁은 정면을 지나 깊이 들어오면 넓지 않지만 위요된 내·외부가 펼쳐진다. 바다가 오히려 흔한 곳이다. 카페 최하단이나, 처마 아래 앉아 정원과 햇볕을 즐기다 해변으로 걸어 나가면 그만이다.
글. 최정우 Choi, Jungwoo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최정우 교수 ·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울산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기오헌건축에서 실무를 수련하고 2010년부터 2022년까지 건축사사무소 unitsUA에서 대표 건축사로 활동했다. 대표작으로는 스페이스살림, 한국예술종합학교 리노베이션, 홍릉 콘텐츠시연장 등이 있다. 현재는 모교인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전임교수로 건축설계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리노베이션, 공공건축에 대한 연구와 실무를 진행하고 있다.
jungwoochoi@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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