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담론] 도시설계와 건축사 2024.1

2024. 1. 31. 11:0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Urban Design & Architect

 

 

 

도시설계의 영역
도시설계 용역에서 건축사는 주로 도시계획 엔지니어링사가 주관하는 설계사 컨소시엄에 구성원으로 참여해 건축 예시안을 작성하거나 규모검토 기반의 토지이용계획 작업에 대한 협업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설계는 도시계획과 건축설계의 두 영역에 각각 교집합을 갖는 중간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는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 정비계획)과 도시개발사업의 사업계획·단지설계·마스터플랜·도시건축통합설계 등 개발사업을 위한 도시설계 영역에서의 건축사의 참여 방안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다양한 규모·성격의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과거에 경험했고 현재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시설계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여정 중에 있다는 필자 스스로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읽기 바란다.



도시설계가의 역할
도시설계가는 건축설계의 대상인 대지를 넘어서서 지역 단위를 공간적 범위로 하고 도시설계 결과물이 주변 지역의 토지이용과 어떻게 연계되는지와 어떻게 지역자원의 가치를 발굴하고 드러낼지 그리고 시민들의 삶과 경제활동에는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 등 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한다. 경제활동과 사회문제에 대해 통찰하고 도출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도시와 장소가 가지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교통과 환경·재해 등 분야별로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도 결과물에 담는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과 개발사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막대한 공공 또는 민간 재원이 적절하게 배분되는지와 그 과정이 공정한 지에 대해 도시설계 업무를 수행하는 그룹을 대표해서 시민들 또는 그 용역의 발주자에게 설명하는 역할이 부여된다.


<한 프로젝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설계를 동시에 수행한 사례>
▶ 경기도 광주 태전7지구 연립주택용지 내에 건립한 도시형생활주택(라시에라)이다. 도시설계{PM 송현수 이사(도시계획기사)}와 건축설계{PM 이동근 이사(건축사)} 업무를 동시에 수행했다. 건축설계 작업에는 이도건축{이재호 소장(건축사)}도 참여했다. 광주시의 지역성을 단지계획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공공조경과 공공보행통로·근린생활시설로 단지 주변 맥락에 적극 대응한다. 단지 내 곳곳에 여백과 같은 공간들이 있어 커뮤니티활동의 장소가 된다. 입주민들에게 집에 대한 장소성과 정체성 그리고 우리 마을이라는 공감대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① 지구단위계획 상 판상형 연립주택용지(4F)계획
② 지구단위계획 변경(연립주택용지 ---> 아파트 용지) 반려(실패)
③ 사업성 확보 불가로 장기간 공사용 야적장으로 사용
④ 대한도시건축 참여, 지구단위계획 변경 전제 수직복층형 주택과 연도형 근린생활시설 제안
⑤ 건축심의 접수 전 지구단위계획 1차 변경(건축물의 배치계획 변경)
⑥ 주택건설 사업승인 완료 및 지구단위계획 2차 변경(계획 세대 변경) - 용적률 83.31% / 건폐율 41.93% / 전용84㎡ 76세대
⑦ 준공 전 지구단위계획 3차 변경(차량진출입 허용 구간 완화, 확정 측량 반영)
도시설계를 수행할 때 행정가와 시민들에게 참여를 제안하고 상호 간의 입장차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⑧ 아파트 단지와 다른 커뮤니티의 형성

 

건축사는 도시설계가가 될 수 있을까
건축사는 학부 과정에서 도시설계 관련 기초지식의 일부분을 학습하고 있다. 건축설계 과정에서는 대지와 장소, 그리고 인문지리와 역사문화·지역사회에 대해 기초 조사를 진행한다. 지역성과 맥락을 고려한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도시설계가의 작업과 매우 유사하다. 지구단위계획 등 도시관리계획이 기수립된 대지를 대상으로 건축설계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도시설계 결과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개발의 명분을 제시하기 위해 공공에서 요구하는 도시기능을 담아 입체적인 시설계획을 도출한 경험들을 건축사들은 공유하고 있다. 건축 설계를 통해 계획 대지에 다양한 도시 기능이 녹아들게 함으로써 사업주 또는 시민·공공의 이해를 종합적으로 실현하는 도시설계가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수행 중이다.

건축사는 대중과의 소통을 본연의 업무로 인식하고 있다. 민간과 공공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토론과 제안·설득의 작업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측면에 있어서도 도시설계가의 작업과 매우 유사하다. 그 과정에서 행정가 또는 정치인들의 메시지를 대중과 소통하기 쉬운 이미지로 전달하기도 한다. 현시대 주요 이슈인 주택건설사업과 정비사업의 타당성 검토 업무와 사업 절차에 대해서도 건축사들은 학습이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건축사는 개발사업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도시설계가가 갖춰야 할 역량을 일부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건축사가 룰에 따라 작업하는 위치에서 룰을 새로 만들어가는 위치로 옮겨 가는 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간접 경험은 도시설계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건축사가 도시설계 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도시설계가로 성장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① 역사와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
도시설계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구 도시계획과 도시설계의 발생 과정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도시·산업·사회의 변화에 대해 학습해야 한다. 그 학습이 현재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과 문제점 분석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역문화와 특정 사건 또는 장소에 대한 고찰과 가치를 성과품에 담아내는 용기가 불합리한 자원의 배분으로 비칠 수 있으나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삶이 지속되고 존중받을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도시설계의 결과물이 지역의 정체성을 담아내는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지를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충분한 성찰 후에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② 도시계획학과 전공 분야 학습
도시설계분야에서 활동하기 위해 학습해야 할 도시계획 영역의 지식은 너무나도 방대하다. 이 분야에서 사용하는 어휘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을까. 건축학과 정규교육과정에서 학습하는 지식과 실무를 통해 쌓은 건축설계 경험만으로는 도시설계 전문가가 될 수 없다. 토지이용계획론 등 기본적으로 학습해야 할 커리큘럼을 도시설계와 관련한 대학이나 협회의 교육과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그러한 교육과정 중에 도시설계 분야에서 긴 시간 동안 활동해온 파트너를 만나기 바란다. 필자 역시 도시계획을 전공한 파트너와 개업 전 회사에서 동료로 만나 지금까지 함께 도시설계 용역을 수행 중이다.


③ 도시설계와 관련한 건축설계 실무의 수행
국내 다수의 건축사사무소들이 도시계획·설계 관련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조직에서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는 방법이 건축사들이 도시설계 전문가로 도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마스터플랜 등 기획업무에 국한하지 않고 도시계획 행정업무와 개발사업 도시설계 업무와 함께 지자체·지방공사 등 공공기관으로부터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회를 가져보길 바란다. 간접적으로 도시설계를 접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동주택 단지설계에 참여해 보자. 단지설계를 수행한다면 건축설계에서 멈추지 말고 대지와 그 주변부의 관계와 연계에 대한 고민 등 계획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과 기록 그리고 확장한 영역의 지역현안에 대한 계획적 대응까지 고민해 보자. 공동주택 단지설계 경험은 도시설계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물론 공동주택설계 외에도 도심 복합개발과 산업단지 개발에 따른 건축설계에서도 단지설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여러 대학 도시공학과에서 학부 커리큘럼에 공동주택 단지설계과목을 개설해 놓고 있다.

 



④ 분야별 전문가와의 협력과 포용력
도시설계 현장에서는 토목·교통·환경·재해분야 전문가와 함께 경제·인문·사회분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이끌어내고 결과물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 분야의 기초지식을 직간접적으로 습득하고 있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포용력이다. 시민운동이나 각종 위원회 등 사회활동은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사회활동을 통해 도시·주택 관련 정책과 법제도가 시민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인식할 수 있다. 계획 방향과 지표의 설정이 개발이익과 공공성의 균형에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와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지도 깨달을 수 있다. 도시설계가는 본인과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만이 아닌 미래세대의 관점도 고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에 머무르는 식견에서 비롯된 성급한 결론은 비워야 할 곳을 채울 수 있고 남겨야 할 것을 지울 수 있다.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어야 할 자원을 우리 세대가 소진하면서 세대 간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도시설계가로 평가될 수 있다.

⑤ 전달력
도시설계 과정과 결과는 시민들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사가 건축주에게 설계 의도를 설명할 때 드물게 보이는 모습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지 않는 어휘나 외래용어의 조합으로 계획을 포장하는 것이다. 도시설계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활동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주체들마다 다른 해석을 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할 도시설계가가 전달력의 부재로 인해 갈등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도시설계 결과물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공공 또는 도시설계가가 제시하는 결과물이 제아무리 합리적일지라도 시민의 참여를 제한하고 소통이 부재한 경우에는 그 자체로서 새로운 갈등을 유발한다. 도시설계가는 행정가와 시민들에게 참여를 제안하고 상호 간의 입장 차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도시설계 현장에서 결과물이 아닌 그 과정 중에 갈등을 해소하고 있다. 과정 속의 전달력이 행정가와 시민들이 도시설계가에게 기대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일 수 있다.

 


도시설계와 건축설계
도시설계 분야에는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많은 전문가들이 왕성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대형·중형·소형 엔지니어링사에 소속되어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1인 기업가로 활동하는 도시계획·설계 전문가들도 많다. 민간발주 용역의 경우 라이선스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공공과 민간 두 영역 모두가 가치에 비해 너무 낮은 예산(비용)으로 도시설계 용역을 발주한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건축사에게 도시설계는 건축설계를 대체하는 마켓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각각 별도로 진행하는 때와 다르게 동일 프로젝트에서 도시설계와 건축설계 두 영역을 동시에 수행하는 경우 몇 가지 시너지효과가 발생한다. 건축 기획&계획 설계 단계만이 아닌 인허가 단계와 준공 단계에도 도시설계 업무의 실시간 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우선 장소만들기와 공간의 조형에 대한 접근법이 다양해진다. 프로젝트 전체 절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로 인해 사업 일정관리에 능숙해진다. 대부분의 개발사업은 불확실성에 노출되어 있다. 대관업무 중 발생하는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 적극적이고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다. 발주처의 다양한 요구사항에 대한 대응도 가능해진다. 도시설계의 가치가 드러나게 된다. 건축 설계의 가치와 건축사의 위상도 높아진다.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설계의 변화와 건축사의 역할
사회 변화에 따라 도시설계의 대상과 계획 항목도 변화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인구·노동력의 감소 그리고 이주민 증가 등 인구구조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와 스마트모빌리티의 등장으로 교통체계가 변화하고 점진적인 스마트팩토리의 보급과 AI의 등장으로 산업구조가 변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은 심화하고 지방도시는 축소되고 있다. 부동산 가치 과잉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토지정책은 상세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국토균형 발전과 소득의 재분배 등 공정이라는 가치 역시 도시계획에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 너머에 있을 문제점을 예측하고 지역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을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 행정가와 도시계획가에게 제시·전달하고 다시 시민에게 답하는 것이 도시설계가 그리고 건축사의 역할이다.

 

 

 

 

 

글. 김정기 Kim, Jeongki (주)대한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김정기  건축사 · (주)대한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김정기는 부산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실무를 병행하면서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 도시계획학과를 졸업했다. 자미원·수·해안건축에서 근무했다. 2018년 대한도시건축을 설립했다. 서울시 갈등조정관에 이어 서울시 정비사업코디네이터와 경기도 소재 2개 지자체의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eya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