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담론] 건축사가 만드는 내일의 도시 2024.1

2024. 1. 31. 10:5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ities of Tomorrow created by architects

 

 

 

 

우리는 지금 성문 안에 닫혔던 ‘고체중세’를 거쳐 철도와 자동차로 이동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액체근대1)를 지나, 개인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렴하고 발산하는 ‘기체현대’를 만나고 있다. 물이 기화되어 공기 중에 개별입자로 떠돌듯, 개인은 소속된 집단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손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SNS 공간에서 정보를 수렴하고 발산하며 자신의 생각들이 마치 기체입자 마냥 떠돌아다니게 한다.

이렇게 기화된 생각들의 대부분은 뚜렷한 응결점을 찾지 못한 채 떠다니다 소멸되고 말지만, 하나 둘에서 시작된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는 생각에는 상상치 못하는 응집력이 생기며 수백만이 모여들어 거대한 구름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네트워크에서 존재하던 거대한 구름은 계시적 사건(촉매)이 있을 때 액화되어 우리 몸이 생존하고 있는 도시공간(리얼스페이스)에 표출된다.

이같이 작금의 시대는 사람의 생각들이 시간을 초월하여 다시금 공간화되는 시대다. 강력한 집단의 이미지를 만드는 종합적인 미디어로 작동하는 광장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장소는 경쟁력 있는 도시공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4시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편리하고 개성 있는 공간,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은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공간, 처음 만난 사람들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도심에서 만날 수 있을 때 도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기체의 응결은 밀도가 핵심이다. 저성장 고령화로 인해 저밀도의 다핵화 또는 파편화된 공간들이 나타나겠지만, 동시에 도심의 고밀 집중 경향은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사람들의 만남의 이유가 응결의 주제에 따라 다양해질 것이고, 예측할 수 없이 확산되어 갈 주제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단일의 목적 공간보다는 연극 무대처럼 유연한 다목적 공간들이 요청될 것이다. 그런데 도심의 지가는 높다. 미래 도시의 도심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별도의 독립된 공간들을 쉽게 가질 수 없다면 유일한 방법은 땅을 중첩적으로 입체적으로 또한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고밀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잘 짜이고 맞추어져 완성된 퍼즐처럼 정교함이 필수 사안이다. 그 정교함은 ‘절대 규칙’으로 설명된다.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수요를 조율하고 융합하여 탄생된 절대 규칙은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며 일상에서의 공기처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고도화된 도시공간을 효율적이고 매력적으로 운영하고 또 사고 없이 관리하기 위한 필수품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체도시에 대한 생각과 도시공간의 입체적 고민을 3기 신도시 중 인천계양지구의 도시설계 MP를 2020년에 맡게 되면서 구체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혁신적 시도와 고도화된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건축사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입체도시(입체적 도시건축공간계획)’란 도시기획단계에서부터 구조물, 건축물, 시설물 등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시계획·도시설계·건축계획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3기 신도시 개발 콘셉트인 역세권의 입체적 연계체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도시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보행친화도시를 구체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입체적 도시건축공간계획의 개념은 도로, 건물, 공원 등의 평면적 배치와 형태만을 고려했던 기존의 2차원적 공간계획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도시들에서 자동차 중심의 접근으로 인한 도시의 공간 단절과 분리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단절과 분리로 인해 보행자의 안전, 편의, 쾌적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보행자의 이동성과 접근성이 제한되며,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행위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장소 정체성이 강한 도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입체적 도시건축공간계획은 보행자 중심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건축스케일의 인지심리학이나 경관계획 등과 관련성이 깊다. 공간의 입체적 특성과 보행자의 시각·체험적 경험까지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시의 통합성과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으로 볼 수 있다. 입체적 도시건축공간계획은 초기 마련되는 토지이용계획과 함께 연동되어 미래 도시에 요구되는 다양한 기능과 용도의 복합을 유도하며, 토지이용계획의 용도별 면적규모와 입지 여건을 바탕으로 한 공간의 입체적 배치와 형태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또한 함께 수립되는 지구단위계획은 토지이용계획과 건축물계획이 서로 환류 되도록 함으로써 (평면적)토지이용계획과 (입체적)시설계획의 상호 조화를 위한 지침으로 운용된다. 따라서, 입체적 도시건축공간계획은 단순히 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위한 기술적 수단이기보다는, 도시의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구축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공간 조성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내일의 미래 도시는 기화된 개인이 깨어있는 자들이 함께 만나는 도시가 될 것이다. 세상을 발전시킬 더 나은 주제(응결점)들을 중심으로, 창조적인 지식정보의 수렴 가능성이 높고 또 새로운 시도와 실험이 실현되는 도시와 매력적인 건축물에 사람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가령, 복합환승센터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환승시스템과 사회적 다양성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화예술공간과 삼삼오오 대화를 이어나가는 다양한 크기의 오픈스페이스, 그리고 특별한 시간에 만들어지는 이벤트와 휴식, 배움이 공존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때, 이러한 다양한 조건들을 꿈꾸고, 만드는 사람들도 건축사일 확률이 높다.

 

 

 

 

글. 한영숙 Han, Youngsuk (주)싸이트플래닝 건축사사무소

 

 

한영숙  건축사·(주)싸이트플래닝 건축사사무소

 

한영숙은 도시를 멋지게 가꾸고 싶은 건축사로 경관계획, 도시설계, 지역컨설팅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싸이트플래닝 건축사사사무소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에코델타시티 특별계획구역 설계, 인천계양 신도시 입체적 공간계획, 부산시 15분 도시 기본계획 등을 수립하였고,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정답에 가까운 의지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믿고 일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 중앙건축위원, 해양수산부 중앙항만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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