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1. 11:0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s’ role for urban change and livable cities
도시설계의 정의
“도시는 하나의 큰 집이고, 집은 하나의 작은 도시이다”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인간이 모여 살기를 시작한 이래로 궁극의 시스템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이른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면 이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라기보다는 작은 단위의 모여 살기 방식인 개별적인 ‘건축’의 집합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에는 이 ‘건축’들 간의 상호 관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도시’인 점을 감안했을 때, 도시설계와 건축설계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애초에 몹시 모호하고 애매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건축설계와 도시설계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가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의 관계를 가지는 협력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까멜로 지떼는 ‘건축의 외부공간은 도시와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며 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미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도시계획을 주장한 바 있으며, 모더니즘 시대의 기능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역사적 도시 맥락의 파괴가 활력 있고 통일된 도시성의 결여를 초래하였고, 결과적으로 건축과 주변환경과의 단절, 외부공간의 장소성의 결여, 그리고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도시건축의 산재 등 비인간적이고 반역사적인 도시 구성을 초래하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대의 도시설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소위 탈근대주의 도시이론가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도시와 건축을 총체적인 것으로 보려 하며 분리된 관점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도시개발과 도시설계 행태 및 문제점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우리나라에서의 도시설계는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일까? 사실 도시설계의 개념과 필요성이 인식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전에는 도시설계는 토목설계와 같은 업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공공기관이나 공무원들은 도시계획 관련 업무를 토목직들이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결국 그동안은 공급 논리에 밀려 도로를 개설하고 하천을 정비하며, 경사지를 절개하고, 성토해서 부지를 조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도시계획의 일부라고 일컬어 온 것일 뿐이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척박한 상황과 인식에 기인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속도와 공급에 모든 국토정책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물며 하나의 건물을 설계하는 데에도 깊은 고민을 통해 이용자의 삶과 주변과의 조화, 쾌적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할 진대, 최소 수만에서 수백만 명이 살아가야 하는 도시를 계획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은 건축설계에 비견할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계획은 평면적이고 2차원적으로 진행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단순하고 기계적인 토지이용계획과 개발편의 주의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로 구현되는 삭막하고 획일화된 도시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고, 건축설계는 도시설계의 하위개념화되어 도시공간과 일체화되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하고 건축물 따로 도시공간 따로의 이질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것은 각 지역별, 도시별 특색과 아이덴티티를 형성하지 못하게 했고, 인간소외의 가로환경과 위압감을 주거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건축물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금부터라도 주변과 어우러지는 경관 창출, 광장이나 공원 등의 도시 시설, 주변의 자연환경과 일체화되고 입체적인 이용이 가능한 창의적이고 다양한 토지이용계획, 용도복합화와 기능의 재분배 등을 통해 얻어지는 활력 있는 도시의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설계에서의 건축사 역할과 의의
대부분의 건축사들에게 ‘도시설계’라는 업역은 그저 전문 엔지니어링사와 도시계획기술사들의 전유물이며, 건축사는 도시설계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구성해 놓은 땅을 넘겨받아 개별 필지에 건물을 앉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국내의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시계획에서도 마스터플랜, 지구단위계획이나 경관계획 등이 엄연히 건축사의 업무영역이며, 특히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입체공간계획은 건축사만의 고유한 역량이 발휘되어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 건축사는, 우선 삶에 관한 이해와 고찰을 바탕으로 하는 계획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습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변의 맥락과 자연환경의 존중과 배려를 통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도시계획에 건축사가 참여함으로써 얻어지는 장점은, 무엇보다도 그 도시의 모습을 특색 있고 구체적이며 면밀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자행되던 평면적이고 단순한 토지이용계획과 용도계획은 이미 다변화하는 사회요구에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건축사의 참여를 통해서 구체적인 이용자들의 행태와 공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물과 도시의 구성을 미리 예상하고 가능성과 문제점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단순한 용도로 구성되는 단일 필지의 단일 용도의 건물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2차원적 사고로 구현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토지이용과 건축물의 구상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시계획과 건축계획은 다른 분야의 이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상호 보완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기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참여사례
앞서 기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참여한 몇몇 프로젝트들의 간단한 특성을 소개한다. 안양매곡지구는 특이하게 ‘공동체시티’를 구현하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된 마스터플랜 설계공모였다. 대상지가 111,000제곱미터 정도로 비교적 작은 범위이지만, 부지 대부분이 산림으로 이루어져 실제 가용지 구성에 제약이 컸고 각각의 블록을 연결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우리는 지형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는 블록에 구역 내의 경사지 특정 레벨을 활용한 산책로를 조성해 하나의 관계를 가지는 커뮤니티 공동체로서의 마을이 될 수 있는 구상을 제안했다. 동측의 저층 주거지에 대응하는 블록은 연도형의 부대시설과 지역활성화 시설을 배치하고 녹지와 기존 도시를 가로막지 않는 건물 배치를 함으로써 주변에 개방되고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며 활력 있는 가로를 만들 수 있도록 계획했다.
북측의 공공분양 단지는 그린벨트의 특성을 고려해 층수를 최대한 낮추어 지형과 순응하는 경관을 만들 수 있도록 계획했으며, 인근의 재개발 단지와 인접한 부지는 고층건물에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제안했다. 기존에 이용도가 떨어지고 있는 예절교육관 부지에는 청년주택과 지역 필요 시설의 복합개발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시설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아산탕정2지구는 남북으로 좁고 긴 형태의 구역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탕정시가지와 삼성 디스플레이 단지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하천이 흐르고 있다. 가뜩이나 동서로 폭이 좁은데 하천이 흐르고 있어 토지이용에 제약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하천을 통해 고유한 특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하천 중심의 생활을 그려보려 노력했다. 가능한 생활권에서 균등하게 하천을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하천 중심의 문화 활동과 중심 상업 및 업무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했다. 특히 학교시설의 경우 효율적이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스쿨파크 개념을 도입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육시설이 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울산선바위지구는, 북측으로 태화강이 휘감아 흐르고 있으며 북동쪽에 선바위라는 관광요소가 특징적인 곳이다. 남측에 보존녹지들이 간선도로에 길게 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남측의 녹지를 구역 전체로 끌어들이고 곡선으로 연결하는 녹지·공공시설 공간을 제안함으로써, 보다 간결하게 공간을 인식하고 편리하게 공공시설 및 학교를 이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하천으로 낮아지는 건물의 배치를 통해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특징적인 경관을 가지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도시계획 업무 발주 시 건축분야와 입체공간 분야 역할 인지하고
과업수행 주체 누가 돼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
업무비율 고려 합리적 판단 바탕으로 하는 지침 만들어져야”
건축사 참여의 한계와 문제점
몇몇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의 참여를 통해 그동안 벌어지던 관행적 도시계획의 작법을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건축사로서 그 영향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발주되는 업무상 입체공간계획 분야의 업무 범위는 지극히 일부분에 그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엔지니어링사들과의 관계에서 종속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우리가 제안한 아이디어들은 삭제, 조절당하거나 왜곡되어 반영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가기 일쑤라, 기존의 관행을 깨기 위한 노력을 통해 그 개념을 유지, 반영하려는 고됨이 뒤따르고 있다. 반면에 요구되는 작업량과 검토량은 업무 범위와 정해진 지분에 적합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과다하게 느껴지고는 한다.
따라서 도시계획 업무 발주 시, 건축분야와 입체공간 분야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과업수행의 주체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으며, 업무 비율의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하는 지침이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건축사들의 통찰력 있는 주장과 아이디어들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될 수 있는 토양이 조속히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 우지성 Woo, Jiseong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우지성 건축사 ·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건국대학교와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아키플랜을 거쳐 2003년부터 정림건축에 몸담고 있으며, 현재 도시건축본부장을 맡고 있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한 사회와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의 궤적과 삶을 읽어내고 미래의 시대적 모습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 주변 사람들의 모여 사는 방식, 관계 맺는 모습 등에 보다 의미를 두고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jiseong.woo@jungl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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