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5. 09:06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세종시가 가야할 길…건축에서 답을 찾다
The Road to go through of Sejong-si, Found The Solution In Architecture
1990년대 ‘4·3그룹’은 한국 건축을 주도해온 소장파 그룹이다. 개발 열풍에 ‘건축’에 대한 국민 적 인식과 토양이 빈약한 시대, 이들은 ‘메시지가 있는 건축’을 내세우며 건축계 담론을 주도했 다. 4·3그룹에서 김인철 건축사는 전통에 바탕을 둔 공간철학인 ‘없음’을 화두로 작업해왔다. 이는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말을 ‘형태는 공간을 따른다’로 바꾸어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는 건축평론가들 사이에서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고, 집요하며 진정성이 있다는 평을 듣는다. 머물러있지 않고 지속적인 실험·탐구로 변화하며, 건축을 다루는 손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올 4월 행복도시의 건축을 집행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총괄건축가에 선임 됐다. 최근 그의 사무소로 찾아가 근황과 총괄건축가로서 원칙,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 어봤다.
<대담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Q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열정적으로 해오신 것에 존경의 말씀을 전합니다. 기억으로는 지 금 허물어진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건물이 초기 대표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꽤 오 래전 기억이겠지만, 당시의 건축풍토나 작업 시 기억에 남는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돌이켜보면 삼성동 한국전력본사는 내 청춘을 바친 프로젝트다. 그 외에 잊을 수 없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세종문화회관, 을지로 호텔 롯데를 들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은 스 텝으로 참여했지만 을지로 호텔 롯데는 스물일곱에 시작해 서른 즈음에 끝냈는데, 연면적 108,900제곱미터(3만 3천평)에 객실이 천개가 되는 호텔의 설계총책을 맡은 흔치 않은 기 회였다. 프로젝트를 끝낸 후 어떤 일이 와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호텔프로 젝트 진행 중에 잠시 팀을 만들어 한전본사 공모전을 준비했는데 당선되었다. 처음엔 규모 가 39,600제곱미터(1만2000평)이었지만 나중에 79,200제곱미터(2만4000평)까지 늘어났 다. 그 과정에 한전 CEO가 네 번이나 바뀌었고 그 때 마다 설계가 변경됐다. 78년 설계경기로 시작된 한전은 83년에야 설계(86년 준공)가 끝났다. 당시 나는 사무소에서 먹고 자며 거 의 살다시피 했다. 한전의 요구는 매우 까다롭고 디테일했다. 이를 신경 쓰다 급성간염까지 걸려 몇 달 치료받고 겨우 살아났다. 젊은 시절 모든 것을 쏟았던 프로젝트라 잊지 못한다. 건축적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헐리는 것을 보는 마음이 정말 씁쓸했다.
Q 저 역시 작업하는 건축사로서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들수록 건축주들이 불편해 함을 느 낍니다. 해외는 7,80대 노장 건축사들이 여전히 많은 활동과 실험을 하고 있는데, 국내에는 거의 그런 분들이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드물게 선생님께서는 청년처럼 매번 새로움을 도전하고 있는데,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현역이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신기하게 보는 것 같다.(웃음) 나는 건물주와 나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이야기하는 쪽이다. 그러다보면 상대 방도 나이에 대해 인식을 하지 않는다. 어른에게 대들 듯이 요구하는 사람,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이렇게 해주면 안돼요?”라고 부탁하는 사람,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자기 색깔 이 있어 좋다.”는 사람 등 다양한 유형의 건물주와 만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건축을 전공 하게 된 것이 숙명 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 어쩌다 건축을 하게 된 우연이었 지만 다행히도 건축이 재미있으니 지금도 나이를 잊고 현역으로 있을 수 있나보다. 아이들 이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하듯 재미있으니까 열심히 했고, 열심히 하니까 당연히 그렇지 않 은 사람들보다 잘하게 되었고, 잘 한다 입소문이 나니 의뢰가 들어온다. 얼마 전 용강동 골 목길 삼각형 66제곱미터(20평) 땅에 설계를 부탁하러 온 30대 후반 부부가 있었다. 어떻 게 왔느냐 물었더니 대학 다닐 때 김옥길 기념관에서 차를 마시면서 “언젠가 집을 짓게 되 면 이 건물을 지은 이에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찾아왔다고 했다. 간혹 설계한 것 이 신문, 방송, 잡지에 나가면 그것이 또 연결고리가 되기도 한다.
Q 4·3그룹시절부터 건축 작업뿐만 아니라 건축 직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사회에 발언 하셨습니다. 당시 젊은 3,40이셨고 지금은 원로가 되셨습니다. 그동안 열정의 토로를 하시 던 건축 환경과 오늘날 어떤 변화가 있다고 보시는지? 혹시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4·3그룹은 1992년 4월 3일에 처음 모였고 멤버 모두가 30대와 40대였다. 당시의 선배들 은 건축을 전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행세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작업의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다. 그때 나는 “건축에 형태는 없다”며 “없음”을 꺼냈다.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없 다는 것은 형태를 의도해서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형태인 껍질은 공간에 따라오는 결과 물이니 겉이 아닌 속을 갖고 따지자했다. 내 건축, 나아가 우리 건축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 던 것이 그 때였다면 지금은 백가쟁명의 시대다. 화려한 경력의 후배들이 활동하고 있고 다 양한 작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그것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함은 아직 소수의 특별한 것이어서 다수의 일반성에 함몰되거나 특수한 경우가 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비관하지 않는다. 미미하더라도 사회의 곳곳에서 건축을 다르게 인식하려는 기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Q 저는 1991년 처음 작은 건축사사무소에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잘 모르던 초년병 시 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현장을 가면 시공사들이 경청하던 분위기였습니다. 오히려 요 즘은 시공사들이 건축사들의 이야기를 종종 무시하는 태도들을 보이고, 갈등이 상당히 일 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설계와 시공이 갈등관계가 아니라 문제를 같이 풀어가는 협력자여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시공사들이 어떻게 해결 하는 태도를 보였을지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 경험하신 시공자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중앙대에서 학생들과 프레젠테이션 수업을 주로 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만들어서 그 것을 실제로 구현시키려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마다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 키려면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생각을 조리 있게 잘 설명해야 상대방이 잘하려 는 마음을 갖는다”고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이른바 스피치 훈련이다. 설득의 중요성을 깨달 은 것은 한전 프로젝트 때부터다. CEO가 바뀔 때마다 설계내용을 반복해 설명했고 또 별스 런 요구조건들을 조정하는 과정을 수 없이 거듭했다. 건축의 실무는 건물주, 공무원, 시공사 대표, 현장소장, 각 공종별 담당업체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그 일은 대화의 톤을 최소 다 섯 가지 정도 구사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건물주와 이야기할 때는 그쪽의 수준에 맞는 이야 기를 해야 하고, 공무원이면 공무원, 목수면 목수의 용어로 이야기해야 소통이 된다. 다시 말해 상대의 언어로 상대의 코드에 맞추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로서 권위와 위상에 맞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설계의 의도대로 완 성시키면 상대방도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반하이브의 현장소 장은 도면을 보고 처음에는 난감해하며 거부감을 보였다. 아마 자신을 힘들게 하는 설계라 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이 점점 모습이 드러내어 세간에서 관심을 갖게 되고 잡지 와 신문에 소개되면서 부터는 90도로 인사하게 되었다. 존경받지 못할 짓을 하면서 존경받 으려하는 것은 그야말로 갑질에 해당한다. 특히 기술자들은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데 그들 을 무시하기보다 그 자존심에 호소하면 대부분 호응하게 된다.
Q 이번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 총괄 건축가로 활동하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2009년 저술한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에서 건축사들의 지역 코디네이터나 지역 건 축사 컨트롤 시스템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지역별 총괄 건축가 제도에 대 해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이왕이면 행복청 처음 건설 단계부터 총괄 건축가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제도가 생긴 것에 대해 환영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 는 총괄건축가의 역할과 의미를 부탁드립니다.
행복청은 공공건축가 50명 정도를 운영한다. 나는 총괄건축가로 위촉돼 공공건축의 기 획에서부터 집행까지 총괄하게 되었다. 행복청에서 총괄건축가를 필요로 하게 된 원인은 10년 동안 만들어진 결과가 다른 신도시들과 비교해 새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방법론이 문제였다. 새로운 도시를 표방 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생산하는 총체적 시스템이 구태의연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관 행적인 기획과 발주의 제도가 비판 없이 운영되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시도보다 합리와 안 정을 우선하는 시행이 빚은 결과이다.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발주 측의 경직성이 만든 진입 장벽으로 창의성은 경원의 대상이 되었고 언젠가부터 대형사무소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었 던 것이다. 우리의 현대건축은 이제 60년의 연륜을 그리고 있다. 경제규모도 세계 10위 이 내에 든다. 건설기술 역시 세계의 초고층을 우리가 다 짓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왜 명 품건축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공공건축은 국민 세금으로 만든다. 그 일에 복무하는 담 당자들은 건축과 도시의 어디를 보고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왜 반복하고 있는 지 살펴보려고 한다. 총괄건축가로서 처음 한 일은 설계경기지침서를 다시 검토하는 것이었다. 설계경기는 프 로젝트에 적합한 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실시와 기본설계 이전 단계인 계획설계이므로 구 조, 설비, 전기, 토목 등 필요치 않은 항목을 지우기로 했다. 창의성을 요구하면서도 시시콜 콜 적시하는 설계지침도 모두 걷어냈다. 어떤 의도인지 밝히는 설계 설명서와 도판이면 충 분할 것이다. 응모자의 시간과 비용의 부담을 줄여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다양하고 창의 적인 제안이 가능하도록 유도하려고 한다. 심사자의 구성 역시 프로젝트의 성격에 부합되 도록 선정하고 사전공개로 지향점을 상호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사의 방법도 개선해 가능한 한 설계자의 설명을 직접 듣고 질의응답을 통해 판단하려고 한다. 그리되면 응모자는 사전접촉 등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주와 응모자와 심사자 사이의 상호 신뢰이다. 공정성으로 투명성을 가릴 것이 아니라 불신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 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있다. 살펴야 할 것이 많겠지만 우선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Q 세종시를 보면 동탄 신도시나 광교 신도시처럼 초고층 아파트로 도시 경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속도와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택지개발 방식으로 이렇게 높은 건물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깝고 비판적입니다만, 앞으로도 이런 고층 아파트들로 도시를 구성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건축법에 건폐율과 용적률이 있다. 주거지역과 상업지역별로 평면적인 밀도와 입체적인 밀도, 즉 도시의 밀도를 조정하는데 필요한 제한이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의 경우 용적률 하나만 적용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건폐율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아파트의 다양성을 만들 수 있다. 저층형이든 테라스형이든 여러 가지 안이 나올 것이다. 건폐율 조 항 때문에 불가능한 인공대지-데크는 특히 평지가 아닌 경사지의 경우에 굉장한 효용을 갖 는다. 일조와 조망 그리고 인동거리도 모두 설계에 맡겨야 한다. 팔리지 않을 아파트를 설 계하거나 시행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최소의 규정이다. 지금의 계몽주의 적인 규제로는 현재의 문제를 풀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의 민도는 건축을 부동산 으로만 본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의 원리에 맡겨도 되는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분 양제도도 후분양으로 바꿔야 하고, 국민들의 건축에 관한 질과 양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층 공동주택의 건축사적 출발점은 사회적 주택 개념이었 습니다. 이런 개념이 우리나라 와서 자본적 기업의 잉여산출물로 상품이 되었습니다. 아무 래도 기업들의 시각에서 보면 반복적 패턴을 통한 수익성 극대화가 우선 될 수 밖에 없습 니다. 획일화된 도시 경관, 저는 이를 유니폼 건축이라고 합니다만 이를 어떻게 보는지 궁 금합니다.
아파트가 획일적인 모양으로 탑이거나 판이거나 반복되는 것은 대안이 만들어지지 못하 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진다. 공동체의 형식만 있고 내용이 부재 한 현상은 주거문제에 관한 국가의 정책에서부터 민간의 기대수요에 까지 걸쳐있는 거대한 스펙트럼이 만든 결과이다. 그것의 산출에 한 몫을 하고 있는 우리도 책임을 넘길 수 없다.답답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매듭 끊기와 같은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LH도 당연히 총괄건축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의 원로들이 맡아야할 역할이라 생각한다.
Q 특히 공공부분의 건축물, 도서관이나 관공서 뿐만 아니라 공원내 화장실이나 지하도 출입구 등 수많은 공공시설들이 있습니다. 이런 공공부분의 건축물들은 민간 영역에 비해 서 조금 더 자유롭고 이상적인 실현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행복청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디자인 도시로 유명한 미국의 컬럼버스 시처럼 세종시도 이 시대를 대표하 는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가 되기를 희망하는데요. 향후 세종시 공공건축가들의 범위를 어 떻게 설정하시는지?
세종시는 2030년 완공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60∼70개 프로젝트가 더 진행될 예정이라 고 한다. 설계경기를 공모할 때 프로젝트 기획업무에 공무원과 함께 공공건축가를 투입할 계획이다. 또 설계경기의 심사만 하고 이후는 책임지지 않는 일회성 심사위원회가 아니라 설계경기 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시설계의 과정에 관여하고 가능하면 감리와 사용승인까지 따라가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진행이 보장되고 결과에 대해 책임감 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지 않고도 건축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런 단계까지 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Q 아직 세종시는 태동기 도시로 정부는 이제라도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나 중소 규모 건축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부분이 특히 공공건축가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 다. 민간 영역에서도 어느 정도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향후 세종시 공공건축 또는 중소규모 건축의 방향을 어떻게 지도할지 궁금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공이 해야 하는 일은 민간에게 좋은 건축의 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공건축은 민간에서도 그렇게 지어보려는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공공이 좋은 건축을 세우면 주변 건물들에게 진화의 촉매작용을 하게 된다. 건축을 생산하는 사회적 시 스템에서 행정, 기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가 하나의 트랙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각자의 역할, 분야에서 순기능을 할 수 있게끔 해야 된다. 건축이 당연히 인문학이어야 되는 이유는 의사, 변호사, 작가, 정치가 등 건물주를 상대 할 때 인문학적 지식이 없으면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건축은 설계만 열심 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모색하는 작업이다. 당연히 학교부터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또 일반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 초, 중, 고 교과서에 건축이 문화라는 것을 강조해 교육해야 한다. 건축문화는 혼자 만들거 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Q 장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많은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 다. 저 역시 선생님 연배까지 작업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해주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설계사무소 개업하는 후배들이 인사 오면 “오천만원 받아야 하는 설계비를 삼천만원만 받게 되었을 때 삼천만원 어치만 설계하면 안 된다. 그럼 망한다.”라고 충고한다. 완벽한 설계가 나가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것이고 결국 하자의 책임을 따지게 되었을 때 “설계비가 적어서 그랬다”라고 변명하면 끝이다. 어떻게 계약을 했건 얼마의 설계비를 받았건 일단 맡았으면 이 일이 다음 일을 만든다 생각하고 3년만 고생하라고 한다. 또 50대에 들기 까지 자신의 브랜드를 하나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는다. 설계는 남의 부탁을 받아 해결해주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
김인철 건축사 신간 ‘오래된 모더니즘-열림’ 출판 기념 전시회
“건축은 자연과 도시, 더 큰 공간 향해 열려야 완성된다”
김인철 건축사의 신간 ‘오래된 모더니즘–열림’ 출판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6월 5일부터 25일 까지 서울 마포구 이건하우스에서 열렸다. 전시 첫날에는 김인철 건축사의 건축관과 건축 인생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는 특별강의도 마련됐다. 이날 김인철 건축사는 “글은 설계 과 정에서 빠질 수 없다. 설계 틈틈이 들었던 생각들을 적어 놓았더니 책이 되더라”며 “책을 통 해 이 땅의 전통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했다. ‘오래된 모더니즘-열림’이란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은 모더니즘이 우리 전통이 갖는 패러다임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됐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모더니즘-열림’은 ‘틀’, ‘풍토’, ‘열림’, ‘오래된 모더니즘’이라는 4개 테 마에서 김인철 건축사의 작품을 담고 있다. 김 건축사는 저서에서 “우리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가치를 현재의 것으로 가져와야 하며, 이를 위해 건축 사상과 이론 으로 벌이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하는 가치 그 자체로 건축 작업이 시작되어 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래된 모더니즘’이라 생각하는 우리 고전의 ‘열림’을 제시하며 “건축 은 자연과 도시라는 더 큰 공간을 향해 열려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글·사진 김혜민>
김인철 건축사의 작품과 通하기
바우지움 _ bauzium
땅과 공간을 주제로 하는 작업은 여러 장르가 있지만 그 중에서 건축은 더욱 땅에 밀착된 결과를 만든다. 캄보디아의 경험이 그랬고 네팔의 과정이 다르지 않았다. 풍토의 조건이 그 땅의 건축을 결 정한다는 평범한 사실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다. 반도의 척추를 이루는 태백산맥 너머는 동과서 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울산바위를 넘어온 높새바람과 동해를 건너온 해풍은 울창한 송림을 사 방으로 헤집는다.
채소를 경작하던 1,500여 평의 밭에 미술관을 일구는 작업은 우선 바람으로 시작된다. 히말라야 의 바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곳 역시 바람은 일상을 지배한다. 각 50평씩 세 동으로 구성된 건 물을 담으로 이은 것은 나뉜 150평의 공간을 하나로 묶는 장치이고 또 그 사이에 바람을 잠시 멈추 게 하는 것이다. 바람은 맞서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편한 자연의 하나다.
바우지움’은 조각가인 주인의 컬렉션이 상설 전시되는 ‘근현대조각관’과 자신의 작품전시와 작업 실을 겸하는 ‘김명숙조형관’ 그리고 특별전시와 큐레이터의 공간이 마련된 ‘별관’으로 이어진다. 10%의 건축으로 땅을 채우기 위해 펼친 공간은 모두 울산바위를 향한다. 비록 서향이지만 공간의 질서를 결정하는 항목에서 그것을 능가하는 조건은 따로 없다.
땅을 셋으로 나누고 물과 돌과 풀로 마당을 만들어 10년 넘게 가꾸어온 주인의 거주공간과 이어지 게 한다. 결국 넷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울타리-담은 공간을 일으키는 주제가 된다. 길이와 높이가 다른 담을 여럿 세우고 겹치고 꺾이는 곳에 지붕을 얹어 집을 꾸민다. 담의 어딘가에 지붕이 있을 뿐 건물의 형태는 따로 없다. 조형을 담을 공간에서 건축은 나서지 않는다.
매끈한 담이 아니라 허름한 담을 만든다. 거푸집에 돌을 깨어 넣고 콘크리트를 부으면 서로 얽혀 굳는다. 계획된 의도보다 물성과 경우의 수가 빚어낸 우연의 결과는 결국 필연으로 간다. 조각으로 나타나는 조형이 다듬어진 필연의 결과라면 건축은 그 반대의 과정을 시도한다. 내용에 봉사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그런 명분이 아니어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허름한 담 안에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기 위해 쇠로 만든 틀을 걸친다. 담은 그저 담이지 벽이 아니다. 다만 겹쳐 보일 뿐이다. 방수와 단열을 갖춘 지붕과 벽은 자립해 벽에 기대고 있거나 떨어져 있다. 걸어야하는 그림과 달리 조각은 바닥에 노이는 것이니 벽은 자유다. 사이를 두어 빛을 들이 고 창이 되어 안과 밖을 잇는 풍경을 만든다. 창에 비치는 수면에는 소나무와 울산바위가 바람과 함께 내려와 담긴다.
땅이름 원암리元巖里는 말 그대로 바위를 깔고 앉아있다. 울산바위가 솟아오를 때 굴러 내렸을 누 런 돌들이 야외 전시장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대관령 터널 공사장에서 걷어온 쇄석과 원암리의 돌덩이가 어울려 ‘돌의 정원’을 만들고 그래서 바위로 지은 미술관의 이름 ‘바우 지움’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바람이 담의 돌 틈에 흙을 싣고 풀씨를 심어 초록을 피울 것이다. 그렇 게 건축이 되려고 한다.
바우지움 위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미술관) 대지면적 4,452.00㎡ 건축면적 553.40㎡ 연면적 498.92㎡ 건폐율 12.43% / 용적률 11.21% 규모 지상1층 구조 경량철골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조면콘크리트, T24 투명로이복층유리, T0.7 ZM징크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지정색 유성무광페인트 설계기간 2013. 09 ~ 2014. 03 시공기간 2014. 04 ~ 2015. 06 |
자투리움 _ Jaturium
자투리움 대지위치 서울시 마포구 용강동 493-3 용도 단독주택 및 문화및집회시설(전시장) 대지면적 73㎡(가각전제 적용 후 67.88㎡) 건축면적 40.67㎡ 연면적 116.63㎡ 건폐율 59.91% 용적률 171.82% 규모 지상 4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ZINC패널, T24 low-e 복층유리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석고보드 위 도장 설계기간 2014. 10 ~ 2015. 06 시공기간 2015. 06 ~ 2015. 10 사진작가 전명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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