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선과 볼륨 그리고 대칭 등 ‘질서’ 추구, ‘그레이 청담’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밖을 내다보다 2024.9

2024. 9. 30. 10:35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Pursuing ‘order’ such as lines, volumes, and symmetry, ‘Gray Chungdam’ looking out between light and shadow

 

 

 

 

월간 <건축사> 9월호 표지를 장식한 ‘그레이 청담’은 서울 강남구 학동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작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2023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김영수 건축사(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강남구에서 작업한 다른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은 건축주와 함께 시작됐다. 격자 선과 곡선의 면으로 구성된 이 건축물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표면의 질감을 드러내며, 내부에서는 밝은 공간과 어두운 공용 공간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김영수 건축사를 직접 만나 ‘그레이 청담’의 작업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향후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일전 프로젝트를 접한 클라이언트로부터의 의뢰

박정연_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영수_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경에 건축을 시작해 약 15년간 업무를 이어오고 있는 김영수 건축사입니다. 해안건축에서 약 1년 6개월, 그리고 원오원아키텍츠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습니다. 2018년에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해 현재 만 5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중간에 좋은 기회로 도미니크 페로 사무소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작은 주택부터 근린생활시설, 민간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공 프로젝트에도 많이 참여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정연_ ‘그레이 청담’ 작품은 어떻게 작업하시게 됐나요?

김영수_이 프로젝트는 이전에 작업한 강남구 근린생활시설 ‘도산 알로하’와 연계된 같은 지역의 프로젝트입니다. 클라이언트는 도산 알로하 프로젝트를 인상 깊게 보셨고, 설계자를 찾다가 저에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후 강남의 한 카페에서 미팅을 진행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설계를 맡게 되어 시작부터 감사한 마음으로 임한 프로젝트입니다.



# 높낮이와 볼륨, 대칭적 측면 등 고려한 형태 
   ‘질서’의 결과물로서 이해되는 아름다움 추구 

박정연_그만큼 프로젝트마다 혼신의 노력을 쏟아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레이 청담’은 공간의 높낮이와 볼륨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하면서, 공간과 수직 동선인 계단을 구분해 각각 다르게 느껴지도록 설계했습니다. 이처럼 층층이 나뉘는 분리된 선들이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요소를 동시에 구현해내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질서를 고려하며 작품을 완성해내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그레이 청담’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김영수_어떻게 보면 단순할 수 있는 그 ‘질서’를 계속 추구해나가고 싶습니다. 저희 사무소에서는 건축을 예술의 창의적인 형태로만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건축을 순수 창작물로서의 예술적 미학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우리가 부여한 질서로서 이해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인위적인 형태로 외관을 드러내기보다는, 질서가 겉으로 드러날 수 있는, 여러 번 분절된 선들이나 기하학적 요소들로 이해되는 미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질서가 두드러져서 그것이 이해되는 자체로 아름다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드나 격자 같은 형태를 많이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또, 코어를 분리하려는 성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저희 작업에서는 실 공간과 코어나 서번트 공간 등이 명확히 분리돼, 사용되는 실 공간과 설비, 서브 공간들이 평면적으로 어떻게 배치되고 구분되는지가 잘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질서 속에서 또 하나의 선들의 질서를 만들어내며 하나는 오목하게, 또 다른 것은 양각과 음각으로 표현하는 등, 그런 질서 요소들을 잘라 또 다른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정연_질서 속에서도 익숙함과 낯섦, 그리고 건축의 포인트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입면 패턴에서 기둥 자리 하나만 빼고 남겨둔 부분이라든지, 일관된 질서 속에서 의도적으로 끊기는 부분 등이 오히려 능숙한 표현으로 느껴져 감탄을 자아냅니다.

김영수_공간을 구성할 때 대칭적인 요소를 많이 고려합니다. 말씀하신 부분에서 한쪽은 모듈에서 튀어나와 만들어진 실내 공간의 영역으로, 반대쪽에서는 기능이 다르지만 입면상의 표현이 동일하게 연장돼 흐르도록 전체 구도를 맞췄습니다. 또한 대칭 속에서도 메인 기둥열이 있는 부분은 약간의 비대칭성을 띠도록 배치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이러한 질서 속에 여러 요소들이 잘 맞물리도록 고려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계단의 난간이 얼마나 적절한 높이를 가져야 하는지도 함께 계산돼야 하는 부분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하게 보일지라도, 여러 단계의 반복된 테스트를 통해 질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 건축사의 추구 방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건축물
   다양한 방식의 접근 필요 

김영수_결국 이러한 작업에서 건축사가 추구하는 생각과 방향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과는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이와 같은 영역에서도 건축사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고유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각자의 다양한 방식이 존중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정연_드러나지 않은 많은 노력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각각의 요소마다 길이나 두께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곡선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보일지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민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쪽에 일반적인 네모난 창을 둔 것과는 달리, 각 요소마다 다양한 고민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김영수_말씀하신 대로, 저는 거푸집을 뜯을 때 상상하고 검토했던 수많은 요소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일치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런 부분에 상당한 무게감을 느끼면서, 설계한 부분이 어느 정도의 두께와 그리드로 표현될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습니다.

박정연_설계 과정에서 난관은 없으셨나요?

김영수_난관이라기보다는, 요즘 의뢰인이나 건축주들이 공부를 많이 하시고, 교육도 많이 받으셔서 공간 구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대지는 처음에 두 개의 필지를 합필한 것이었고, 청담이라는 지역 특성상 땅값과 임대료가 비쌌기 때문에 저희는 내부 공간을 너무 크지 않게 분할할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부동산의 개입으로 인해 통합된 구조 형태로 계획안을 변경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임대가 잘 되어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초반에 저희가 제안했던 통합도 가능하고 온전히 분리될 수 있는 성격이 조금 남아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또 현장에서 시공을 진행하면서 늘 겪는 일이지만, 전체 예산 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공사비를 증감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 창과 창 사이 빛과 그림자로 구분된 내부 공간 선호
   매끈한 선과 거친 면의 대비로 표면 물성 차이 드러내

 

 

박정연_완공 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인가요?

김영수_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은 건물의 중앙 내부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전면의 격자창을 통해 바깥 광경을 바라볼 때 특히 좋습니다. 콘크리트 격자 프레임이 바깥으로 돌출돼 빛이 공간 안에 바로 떨어지기보다는 약간 맺혀서 떨어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내부 공간의 중앙에서 어둠을 거쳐 저 끝단에 밝은 부분이 보이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뒤쪽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번트 공간(Servant Space), 즉 화장실이나 설비 공간은 창이 없고, 앞뒤의 공간 영역을 명확히 구분지어 놓았습니다. 앞에는 격자창이 있고 뒤에도 창이 있어, 내부 공간 속에서 빛에 의해 앞의 밝은 부분과 가운데 어두운 부분의 대비가 만들어지는 독특한 공간을 형성합니다. 저는 이런 느낌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외관 디자인에서도 저층부를 최대한 가로변으로 돌출시켜 활용도를 높이려 했습니다. 상부층은 일조사선에 걸리지 않고 건축물을 반듯하게 세우기 위해 셋백(set-back) 처리를 했습니다. 단단한 덩어리를 만들기 위한 전체적인 과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가벼운 느낌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박정연_빛과 그림자를 통한 표면 질감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입면을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영수_선적인 부분은 매끈하게, 면적인 부분은 거칠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선과 면의 질감 차이를 통해 매스의 물성을 느끼게 하고 싶어서 모든 면을 치핑 처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압 살수로 씻어낸 질감보다 사람이 손으로 직접 작업한 질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비용을 고려했을 때도 치핑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돼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박정연_격자모양 유지를 위해 창문 형태를 어떻게 쓰셨는지요.

김영수_기능에 따라 창의 크기는 달라지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프레임 틀 안에서 동일한 유형(격자)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프레임 안에서 끝까지 확장하는 형태를 시도해보기도 했습니다.



# 공간의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중점
   다양한 공공프로젝트 도전하며 건축적 생각 펼칠 것
   ‘좋은 건축’을 향한 변화의 가능성에 희망 느껴

박정연_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건물은 철근콘크리트(RC) 구조로,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구조를 우선하다 보니 기둥에 벽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내부를 살펴보면 기둥, 보, 슬라브 각각의 요소를 어떻게 표현하고 끝선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건축적으로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영수_각각의 건축적 요소나 재료의 물성 등, 그 자체가 가진 가능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공간과 별개로, 재료와 재료가 만날 때 그것들이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모든 프로젝트에서 항상 하고 있습니다. 재료와 재료가 만날 때 불편함이 생길 수 있기에, 재료를 단일화하거나 각각의 재료가 어떤 형식으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저희가 의도한 공간이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단순히 건축적 요소를 잘 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어떻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목표입니다. 의도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각 재료의 물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많은 훌륭한 건축사분들이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정연_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응원합니다. 이외의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김영수_일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요즘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만큼, 저희도 최근 설계 공모에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공 프로젝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고 있고요. 민간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싶지만, 민간 프로젝트는 규모나 용도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어,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저희의 건축적 아이디어를 여러 방식으로 시도 중입니다. 요즘의 공공 프로젝트 결과물을 보면, 정말 좋은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결과물이 매우 훌륭합니다. 평가 측면에서는 건축적 관점에서 볼 것인지, 사용자 입장이나 지역성 등 종합적 관점에서 볼 것인지에 따라 판단 기준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당선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려 합니다.

박정연_마지막으로, <건축사>지를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김영수_건축계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어, 모두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각 사무소마다 조금씩 상황이 다르겠지만, 다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를 함께 버티며 계속해서 좋은 건축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들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변화를 느낍니다.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약 50%는 저와 동년배이거나 더 어린 의뢰인들로, 이들 중 많은 분이 ‘좋은 건축’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과거에는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고 공사비를 절감하려는 목적의 의뢰가 많았던 반면, 이제는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그런 건축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겁니다. 이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대중과 그에 부응하기 위한 건축사들의 노력이 있다면, 건축 문화가 점점 더 나아지고 우리가 고민하는 건축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건축계의 변화에는 건축사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대중이 추구하는 건축적 가치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더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건축사 김영수 Kim, Youngsoo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사진 박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