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30. 11:05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An age of unlimited competition
나는 100미터 달리기 육상 선수다. 수년간 열심히 훈련한 내 근육들이 단 10초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해주길 기대하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수백 번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그 경기장이지만,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꼭 우승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스트레칭과 준비 운동을 하며 하나둘씩 들어오는 다른 선수들을 바라본다. 9명 정도가 뛸 수 있는 트랙에 200명 가까운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심판을 찾아보려는 순간, “Ready!” 하는 소리가 들리고, 선수들이 일제히 달릴 준비를 하며 출발 신호가 울린다.
그동안의 훈련 덕분에 신호총 소리를 들으면 무조건반사처럼 달리게 되었다.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곁눈질로 살펴보니 무슨 일인지 100여 명은 출발선에서 달리지 않는다. ‘경주에 참여를 안 할 것이라면 왜 경기장까지 왔지?’라는 생각과 함께 경쟁자가 줄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하긴 나도 뭔가 말도 안 되는 경기 같았는데 일단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승선쯤이 가까워지니 완주하는 선수가 50여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누가 먼저 들어왔는지 모르게 결승선을 우르르 통과한다. 이건 누가 앞서서 달렸는지 유능한 심판도 판단하기 어렵고 첨단 기록 장치들로도 확인이 안 될 듯했다.
심판들은 한 선수를 1등이라고 했다. 왜 그 선수가 1등인지 결승선의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선수가 몇 발짝 앞에서 출발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어떤 선수는 출발신호 이전에 먼저 달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누구는 복용 금지된 약물을 먹었다느니, 누구는 심판이 뒤에서 밀어줬다느니 하는 이야기까지 들려서 도대체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을 하던 참에 알람이 울리고 잠에서 깬다. 꿈이었구나. ‘하긴 내가 육상 선수일 리가 없지’, 하면서도 우승을 다짐했던 꿈속 경기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설계공모에 응모신청을 했다. 접수 번호는 200번이다. 접수 번호가 없는 다른 설계공모 건에 대한 공지 이메일이 왔는데, 수신자가 200명이나 된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일단 접수를 한 것 같다. 많은 응모자들이 시작도 안 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겠지만, 그래도 약 50개의 작품이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도 나의 돈을 들여 응모신청 서류를 발급받고, 나의 돈을 들여 현장을 답사하며, 나의 돈을 들여 제출물을 작성하고 인쇄해서 제출한다. 가끔 상금을 받으면 사용한 돈의 일부를 회수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의 시간과 돈을 들여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한 비교 대안을 제공하는 셈이다. 적정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몰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만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까? 잠깐, 이게 꿈인가?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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