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광명전통무형유산전수관존재와 시간의 건축 2025.1

2025. 1. 31. 10:4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Gwangmyeong Tradi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Center The Architecture of Being and Time

 

 

 

<광명전통무형유산전수관> © 이한울 _ 나르실리온

시간성은 과거에 있었던 과정 속에서 현재를 만들어내는 미래로서 시간화된다.
Temporality temporalizes as a future which makes present in the process of having been.
-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존재와 시간(Being and Time)』 


전통, 존재와 시간의 가치
광명전통무형유산전수관은 광명농악, 서도소리 등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공간으로,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 세대 간 전수를 통해 문화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명칭에 명시된 ‘무형(無形)’ 유산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전통이란 본질적으로 고정되고 정체된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의미와 가치, 상징을 유지하면서 현재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적응하고 살아 숨 쉬는 존재여야 한다. 따라서 이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전수관 건축 역시, 박제화 된 과거를 추억하거나 단순히 물리적, 기능적 요구에 응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가치를 투영해 새로움을 창출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Dasein)’와 ‘시간성(Zeitlichkeit)’의 개념은 원래 인간 존재의 본질과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어서, 여기서 사용하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추상적이고 범용적인 개념을 넘어, 시공간 속에 던져진 ‘피투성(Geworfenheit)’ 상태를 인식하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에서 이 전수관 건축이 직면한 문제들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장소, 자연 속 문화의 장
전수관은 광명시 소하동에 소재한 기형도 문화공원 내 문학관에 인접한 좁고 긴 삼각형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쇼핑몰, KTX 광명역, 종합터미널과 가깝고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외부 방문객이나 지역주민 모두 방문하기 좋은 입지이다. 배후에 교통량이 많은 제2경인고속도로가 접해 있지만, 수직 단차를 두고 주변이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문화 체험에 몰입할 수 있는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건축물의 전면과 주출입구는 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로인 기형도 시(時)길에 면해 있어, 사람들의 동선 흐름을 유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외부 공간은 주변의 숲과 어우러져 일상의 생활환경과 자연, 현대문학과 전통문화가 만나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적 장소가 된다. 



공간, 프로그램의 분배와 조화
전수관의 공간 프로그램은 크게 공연을 위한 공연장과 대기실, 이를 지원하는 연습 및 교육공간과 사무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전면 도로에서 진입하는 주차장으로부터 문화공원 내부로 이어지는 지형의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서측의 넓고 낮은 부지에는 규모가 큰 공연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중앙홀을 중심으로 바닥 레벨의 단차를 형성하면서 동측에는 사무실, 연습실, 교육실 등이 들어서 있다. 
높은 층고가 요구되는 공연장은 처마선 위로 솟은 원통형 볼륨을 통해 수평적 흐름 속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안으로는 반원형의 아담한 무대와 의자 없이 아치형 단들로 구성된 150석 규모의 객석을 품고 있다. 가(歌), 무(舞), 악(樂)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넓게 펼쳐진 평무대와, 연희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무대를 감싼 3~4단의 객석 구성은, 서구의 돌출형(Thrust) 극장 배치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전통 연희를 위한 열린마당인 일종의 ‘판’으로 읽힌다.  
중앙홀은 서로 다른 프로그램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매개하는 역할을 하며, 긴 처마로 통합된 전체 건축물에서 벽돌 마감의 서측 원통형 공연장 매스와 목재 사이딩 마감의 동측 매스를 분절하는 요소가 된다. 홀의 중앙에는 원형 천창을 두어 내부 깊은 곳으로 빛을 끌어들이면서 공용공간을 통합하는 중심성을 부여하고 있다. 공간의 크기는 넓지 않지만 원형 천창 덕분에 시각적 숨통이 틔워져 답답해 보이지 않으며, 이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시선의 교차가 일어난다.
사무실, 연습실 등 기능적인 프로그램들로 구성된 동측의 낮은 볼륨은 처마 아래에서 잔잔하게 물결치듯이 흘러간다. 땅의 형상에 따라 좁아지는 긴 매스의 지루함은 곡면의 리듬에 의해 완화되며, 산책로의 흐름과 호응하는 처마 선과 대조를 이루면서 새로운 역동성과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표현, 은유와 환유의 언어
전통문화의 보존과 계승을 목표로 하는 전수관의 설계는, 전통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단순히 과거의 양식을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서, 시대적 의미와 맥락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접근 방향을 세우고, 이를 자신의 건축 언어로 풀어내어 공간에 내재화시키는 과정은 매우 다층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이다.
먼저, 기능적 프로그램의 배치와 공간 구성에서 비움과 채움의 균형과 유기적인 공간의 흐름을 고려한 설계 의도가 드러난다. 그 결과, 비워져 앞뒤로 열려 있는 중앙홀은 마치 대청마루처럼 내·외부 공간 간의 소통을 유도하면서 전체적인 공간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는 처마는 비움과 채움의 리듬과 형태를 통합해 질서를 부여하고, 공간 전체에 일관된 조화를 형성한다. 
전통의 소리와 몸짓을 은유와 환유를 통해 공간과 형태에 녹여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음악적 운율과 가락, 그리고 몸짓은 물결처럼 흐르는 곡면의 외벽과 그 위로 드리워진 처마 그림자의 역동적 변화를 통해 추상화되며, 이를 통해 프로그램에 내재된 전통적 요소들이 건축의 공간적 리듬과 형태에 깊이를 부여한다.
한편, 전통 건축의 재료와 기법을 새롭게 재해석한 은유적 요소들은 전통의 미학과 가치를 환기시키고 있다. 치장벽돌과 탄화목 사이딩, 스프러스 집성목 등의 건축자재와 공법은 과거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물성과 질감이 자연스럽게 전통 건축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처마와 처마도리를 연상시키는 집성목 부재의 표현은 전통적 미감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되살린다. 외관에서 느껴지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성을 미래로 확장시키려는 의도도 읽혀진다. 탄화목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윽한 회백색으로 변하며, 등나무 줄기는 공연장의 둥근 벽돌 벽면을 점진적으로 덮어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의도와 요소들을 통해 건축은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문화를 아우르며, 시간의 흐름을 수용하고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동적인 존재가 된다.

 

 

 

 

글. 이성재  Yi, Sung-Ze 건축사(KIRA·AIA)·홍익대학교 교수

 

 

이성재 건축사·홍익대 건축공학부 교수

 

홍익대학교, 미시간 대학교(University of Michigan),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학부 졸업 후 4년간(iloom)에서 ‘작은 건축’으로 불리는 가구를 디자인했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친 후 글로벌 건축설계회사 겐슬러(Gensler)에서 12년간 근무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로, 20년 이상 가구·인테리어·건축·도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국제적 환경에서 경험을 쌓았다.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실무를 병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도시 환경의 변화, 사회문화적 맥락과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건축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sungze@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