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한국 건축 어디에 서 있는가 - 제도, 인식, 미래를 말하다 2025.6

2025. 6. 30. 16:45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Where does Korean architecture stand now? - Talking about systems, perception, and the future

 

 

지난 5월 12일, 대한건축사협회 대강당에서 (사)서울건축포럼(SAF)이 주최한 특별 포럼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한국 건축이 답하다’가 열렸다.

해외 건축사 초빙 논란 속 한국 건축 위상·과제 되짚어
제도·정책·문화의 균형 속 건축사 역할과 책임 재조명

국제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21세기, 국내 건축사와 도시계획가, 교수, 건축비평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대한민국 건축과 건축 정책의 방향과 미래 비전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서울건축포럼(SAF)이 주최·주관한 특별포럼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한국건축이 답하다’는 5월 12일 대한건축사협회 대강당에서 열려 건축 전문가와 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한국 건축계의 현주소를 짚고,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한국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를 뒷받침할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 왜 해외 건축사에 더욱 집중할까?
한국은 그간의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이제는 우수한 건축물과 도시를 조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청담동의 한 건축 프로젝트에서 해외 유명 건축사를 초청해 설계했음에도 최종 결과물이 원안과 다르고 품질 또한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21세기 서울이라는 도시에 걸맞은 건축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윤승현 교수 _ 중앙대학교


윤승현(교수)_ 민간 건축을 차치하고 공공 영역만 보더라도, 건축은 공공의 자산이며 오랜 시간 남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정치적 실적을 드러내기 쉬운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건축이 정치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건축 본연의 가치에 기반한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고, 제도와 규정에 얽매인 방식으로 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 그 원인을 다시 짚고 사회와의 교감을 통해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박정현(건축비평가)_ 해방 이후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건축물의 집중적이고 급속한 생산 시스템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 1990년대에 지방자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공공건축물의 품질을 크게 끌어올리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경제적 욕구가 커지고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미술품을 수집하듯 해외 건축사를 초청하는 현상은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보입니다.

김용미 건축사 _ (주)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


김선아(건축사·도시계획가)_ 우리나라에서는 도시를 형성해 나가는 방향과 방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합니다. 서울의 도시 경쟁력과 국가의 GDP는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건축의 역사는 여전히 짧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자생적인 건축사를 형성하지 못했고, 해방 이후 복원의 과정을 지나 1970∼80년대에는 건축의 양적 공급에 치중해 왔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민선정부의 출범 이후 그 경향은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도시 형성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으로 여겨지면서, 해외 건축사를 초청하는 일이 빠르고 손쉬운 성과 과시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결과, 도시는 건축사나 도시계획가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인의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시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한 지금, 우리가 지나온 20세기를 성찰하고, 방향을 잃은 도시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나아가, 한국 사회가 건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볼 때입니다.

김상길(건축사)_ 현 상황에서 해외 건축사의 참여를 거부해야 할 이유도 없고, 이를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다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초청하고, 그 결과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건축물이 실현되지 않는 상황이 문제입니다. 공사비와 행정 시스템 등 제반 조건이 갖춰진 환경에서야 비로소 그들의 역량이 반영된 최상의 작품이 지어질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해외 건축사뿐 아니라 한국 건축사 또한 이에 못지않은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함께 인식해주었으면 합니다.

김용미 건축사 _ (주)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


이선영(교수)_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 건축에 대한 시각은 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습니다. IMF 이전 많은 해외 건축사들이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국내 건축사는 협업이라는 명목 아래 계약 등 법적 책임을 떠맡았지만, 그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해외의 재료와 시스템을 그대로 들여와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은, 우리가 R&D 등 자체적인 개발을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입니다. 우리 기술과 철학이 담긴 건축이 곧 문화가 되기에, 앞선 사례에서 반드시 학습해야 합니다. 현재는 국내 건축사가 해외 건축사의 보조 역할에 머무는 가운데, 공공 재원은 계속 지출되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 한국 건축사의 잘못인가, 외부 요인인가?
해외 건축사를 초청한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국내 건축사들이 충분히 학습하지 못했고, 더 나아갈 기회를 박탈당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이러한 흐름이 국내 건축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조남호(건축사)_ 일본은 일찍 개항하면서 높은 수준의 건축을 시작했지만, 서울대학교에서 건축 교육이 시작된 1954년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국내 학교에서는 전문학교 수준의 건축 교육만 이뤄졌습니다. 건축이 사회의 높은 영역에서 다뤄지는 것은 서구적 시각이며, 우리나라는 이러한 관점과는 다른, 취약한 기반 위에서 건축이 이뤄져 왔습니다. 많은 국내 건축사들은 여전히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리켄, 존 홍 교수, 다니엘 바예 등의 발언에 따르면, 한국의 건축사는 해외 건축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가 적고 통제를 많이 받습니다. 공공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건축사들 또한 그러한 방식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방향을 설정하고, 타개책을 찾아야 합니다.

김용미(건축사)_ 지난 3월, 서울시가 주최한 총괄건축가 파트너스 포럼에서도 해외 초청자는 건축사였던 반면, 국내 초청자는 본업이 건축사가 아닌 교수들이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자리에 교수를 우선해 부르는 현실입니다. 좋은 건축물을 다룬 기사에서도 건축사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으며, 건축 관련 방송에서도 PPL을 이유로 건축사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협회 등 건축사 단체가 나서서 개선해야 합니다. 건축사가 더 자주 노출되고 알려진다면,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건축사 한두 명의 이름쯤은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어야 건축사가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길(건축사)_ 저는 중간 건축, 보편적인 건축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소위 ‘집장사 집’이라 불리는 건축에 대해 그동안 우리 건축사들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더 잘할 수 있었음에도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여건과 현실적인 제약 속에 건축적 품위를 갖추기 어려운 환경에서 지어진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법적·제도적·문화적으로 조금만 더 고민하고 힘을 보탰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중간 건축 역시 건축의 본질적인 힘을 키우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충분히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김상길 건축사 _ (주)에이텍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 정책(제도)과 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점
사회적 태도나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 정책과 시스템은 건축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그간 건축계의 노력은 지속되어 왔고, 개선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서는 보다 큰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패널들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데 공감하며, 정책적·제도적 측면에서 국내 건축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선영(교수)_ 국내 건축의 질이 답보 상태에 머무는 가장 큰 원인은 일관성의 부재입니다. 발주처의 장이 바뀌거나, 심의위원들의 발언, 인증 절차, 별도의 실시설계자나 심의자의 개입 등 다양한 이유로 초기 설계 의도가 공중분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 이후 자리 잡은 ‘빨리빨리’ 관행도 큰 문제입니다. 수십 년간 유지될 건축물이 공공의 경관이나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설계공모는 몇 주 만에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 진행됩니다. 건축을 부동산의 한 측면으로 바라보는 민간 분야에서도 스케줄 문제는 여전히 발생합니다. 공공 부문에서도 건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촉박한 일정 속에 허술한 결과물이 남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괄적인 탑다운 규제 역시 문제입니다. 건축사에게 맡겨야 할 일이 규제로 인해 건축선 개념조차 모르는 엔지니어에게 넘어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선영 교수 _ 서울시립대학교


김용미(건축사)_ 공사비는 증액되지만 설계비는 증액되지 않는 사례는 여전히 흔합니다. 건축사협회는 민간 대가기준의 현실화를 위해 노력해 왔으며, “민간(건축)도 설계비는 공공 수준에 준한다”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공공에 준하는 설계비를 받기 어려운 현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설계비 증액을 위한 지속적인 운동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저는 건축사협회 공정 공공 공모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전접촉 금지 캠페인, 설계공모 운영지침 개정, 설계공모 표준 지침서 제작 등의 활동을 통한 제도 개선을 위해 힘써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가 먼저 움직이면 국토교통부와 조달청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동력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에너지를 모아 지속 추진한다면, 국토교통부와 조달청의 시스템 역시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전이서(건축사)_ 기획 등 초기 단계에서 건축설계비는 업무 비중에 비해 낮은 비율로 사업비에 책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담당 주무관에게 의문을 제기하면, 그 또한 불합리함을 인정합니다. 법령이 정비되면 따르겠다는 입장을 보일 뿐, 의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건축계가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김선아(건축사·도시계획가)_ 2012년, 건축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취지로 도입된 공공건축가 제도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이 있게 뿌리내리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공공건축가의 역할은 축소되고 있으며, 관련 기획업무 예산과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의 활동도 축소된 상황입니다. 다만 총괄건축가의 활동은 오히려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는 공공 영역에서 건축 전문가의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지만,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방향이 뚜렷하게 설정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특히 총괄건축가 자문단의 절반 이상이 해외 건축사로 구성되어 있는 현실은, 외국 건축사 초청을 선호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건축계가 짧은 역사 속에서 힘을 갖기 위해, 이제는 더 멀리 내다보고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시점입니다.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면, 과감히 자리를 내려놓고 후배들이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용미(건축사)_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으로 유튜브를 통한 공개 심사가 시행되며 공정성을 높이고, 기획 과제가 생기면서 제도적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심사위원을 어떻게 발굴하고 운영할지 등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때입니다.

김상길(건축사)_ 준공식 단상에 건축사는 제외되고 건설사 대표가 오르는 등, 우리 사회는 여전히 건축물을 건설회사의 저작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축물을 계획하고 설계한 건축사가 아니라 발주자가 중심이 되면서, 건축사가 현장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공공건축의 구조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권 문제 이전에, 건축물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일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핵심 과제라고 봅니다.

 

박정현(건축비평가)_ 현재는 10여 년 전과 비교해 법과 제도 면에서 많은 변화와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문화적으로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꾸준히 건축 전시가 열렸고,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같은 대중적 플랫폼이 등장했으며, 건축학 5년제도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건축계 전체가 여전히 서구 건축사들에 대한 인정 투쟁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프리츠커상을 둘러싼 과도한 관심 속에서 사대주의적 성향이나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은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와 문제 해결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반면, 프리츠커상은 제한된 소수에게 주어지는 상일 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일부 스타 아키텍트를 중심으로 수상자가 결정되었던 경향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현 건축비평가 _ 건축잡지 미로


# 국제적 흐름에 반응해 한국 건축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외국 건축사 초빙 문제에서 비롯된 이슈를 출발점으로, 한국 건축계가 처한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짚어봤다. K-컬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의 미래를 모색한 최종 패널 토론 내용을 정리했다.

윤승현(교수)_ 대한민국은 정교하고 고도화된 사회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줄 알며, 완성도 높은 결과에 대한 기대와 갈증이 큽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아모레퍼시픽 등 일부 민간 기업은 영국 건축사를 초청해 큰 설계비를 투자하며 수준 높은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했지만, 공공은 아직 그러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입니다. 현재의 행정 시스템은 건축의 생산 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공공의 기준만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국내 건축사의 작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결국 한국 공공건축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시스템으로 우수한 결과를 만들기 어렵다면, 시범사업 등을 통해 기존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실험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대안을 찾고 제도를 점진적으로 바로잡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또한, 해외 건축사가 아닌, 대상지의 맥락과 조건을 깊이 이해하는 국내 건축사의 역할이 어느 영역에서 필요한지도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도시는 공급 중심의 양산 체계에 매몰되어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도시적 성찰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도시 자체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 보니, 정치인들도 건축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지자체장 등이 도시와 공간에 대한 자기 철학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관심과 압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김선아(건축사·도시계획가)_ 지자체장들이 건축뿐 아니라 도시 전반에까지 손을 대는 현상은 우려스럽습니다. 도시는 본래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축적되고 중첩되며 형성되는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쟁 이후의 복구 시대와 경제 개발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연속성과 축적이 끊겼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본격적인 건축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한국 건축사들에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지켜야 할 전통적 뿌리가 적다는 점에서, 20세기 근대 도시의 건축을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래를 향해 무엇인가를 쌓고 남겨야 할 시점입니다. 단절의 역사 속에서 벗어나 축적과 계승이 가능한 건축과 도시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외부의 일시적인 압력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세우는 출발점이 2025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선아 건축사 _ (주)스페이싱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조남호(건축사)_ 노원구의 로봇박물관과 사진박물관은 해외 건축사들이 설계를 맡은 사례입니다. 로봇박물관은 당초 예산 대비 1.5배가 증액된 것으로 알려졌고, 사진미술관은 외관 구현에 예산을 집중한 뒤, 추후 운영자의 참여를 통해 추가 예산을 확보하며 내부의 질적 수준을 높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해외 건축사가 참여한 사업에서는 통상적인 절차를 넘어서는 유연한 방식이 종종 모색되지만, 국내 건축사들은 여전히 제약된 구조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동일한 수준의 기회와 조건이 국내 건축사에게도 주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이후 도래한 ‘뉴노멀’ 시대에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태도와 접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이 약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미래의 삶과 환경 문제까지 고려할 때, 건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체 차원의 참여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논의된 정책적 개선 과제들이 함께 결합된다면, 건축이 본래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상길(건축사)_ 우리 건축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그 맥락 속에서 현실의 흔적이 스며들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건축에서 주목하는 지점도 건축 안에 담긴 삶의 모습이나 사회적 현상들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다름 아닌 ‘중간 건축’입니다. 하지만 도시 정책의 방향은 오히려 이러한 공간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중간 건축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인식하고 다루느냐에 따라 좋은 환경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큽니다. 소위 ‘B급 건축’이라 불리는 공간들도 잘 보존하고 관리한다면, 그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밀도와 흔적을 간직한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건축계의 목소리 전달
2부 자율 토론에서는 인허가권의 주도권 확보 필요성, 문화적 맥락에서 아티스트나 작가 등이 건축 전문가로 불리는 용어 사용의 문제, 건축계 내부의 절실함 부족, 불합리한 인증 제도의 규제, 창의성을 북돋는 시스템의 부재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서울건축포럼 홍성용 의장은 “어려운 외부 환경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고, 개선할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건축계 내부의 절실함 부족 역시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국회와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고 요구해야 하기에, 지금 논의된 이야기가 외부로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자리를 통해 논의의 함의를 정리하고, 외부와의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며 서울건축포럼 차원에서도 앞으로 계속 이런 논의의 장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주최·주관 / 후원
사단법인 서울건축포럼(SAF) /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일시
2025년 5월 12일(월), 19:00~22:00
장소
대한건축사협회 대강당
발제 및 사회
전이서 건축사 _ (주)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참석 패널
김용미 건축사 _ (주)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조남호 건축사 _ (주)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상길 건축사 _ (주)에이텍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선아 건축사 _ (주)스페이싱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대표, 도시계획가
이선영 교수 _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윤승현 교수 _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박정현 건축비평가 _ 건축잡지 미로 편집장

 

 

글 육혜민 기자

사진 박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