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31. 12:10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I hope for a society where many custom-made clothes and custom-made furniture are made
건축사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선들은 점점 구체화되고 정확한 치수가 정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구조체와 마감재를 계획하고 설비에 대한 계획을 거쳐 대지 위에 현실화될 준비를 한다. 손으로 스케치하는 경우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가상의 선들이 점점 구체화되어 도면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은 유사하다. 이 과정은 적게는 몇 주에서 몇 개월이 걸리는데 수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가 필요하고, 많은 건축사보와 분야별 전문가의 협력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중 건축주의 판단이나 여러 요인에 의해 설계를 변경하게 된다면 많은 도면을 변경하는 과정을 다시 거친다. 이 과정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때문에 설계를 시작할 때 설계업무에 대한 용역비가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을 건축주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으며, 건축사마다 최종 제출되는 도서의 양과 수준을 달리 설정하고 있을 수 있기에 왜 건축사마다 제시하는 업무대가가 다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는 옷과 신발은 기성품이다. 가구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거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직급이 되는 등 의미 있는 시점에 정장을 한 벌 맞추기도 한다. 신체 치수를 재고 나의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들어 입어보면 기성품보다는 훨씬 높은 가격을 주고 옷을 만들어 입는 이유를 알게 된다고 한다. 내 집에 딱 맞는 가구,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열리고 수납하는 가구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딱 맞는 가구를 제작할 수 있는데 재료와 색상, 형태 등을 세밀하게 선택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원하는 것에 딱 맞는 제품을 만들어보는 경험은 나의 건축, 나의 건물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험이 나의 집, 나의 사옥을 만들고 싶도록 할 것이다. 몸에 딱 맞는 옷, 내가 원하는 정확한 치수의 가구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나에게 맞는 건축이 왜 필요한지 알고, 그 설계 과정이 중요한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공업화가 가속되다 보면 수공예 운동이 부각되는 경향이 있었고, 또다시 실용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중요시되는 반복적인 성향이 있었다. 이것이 서양문화의 사조(-ism)가 변화해온 사이클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비교적 소수일 수 있지만, 나만의 것을 제작하여 소유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분들이 더 늘어나고 그런 방식의 장점을 경험해야 다른 사람이 대량생산해낸 건축이 아닌 내가 원하는 건축, 내가 원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 필요한 노력과 가치를 이해하고 옷을 만들고 가구를 만들며, 건축을 설계하는 전문가를 존중하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인 경향이 되고 문화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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