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가 그려낸 선의 가치 2025.9

2025. 9. 30. 15:07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The Value of Goodness Drawn by Architects

 

 

 

많은 분들이 이미 들어보셨을 수 있지만, 디자인 업계에 몇 가지 일화들이 있다. 유명 패션 브랜드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100만 달러를 청구하고 받았다는 이야기와, 은행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회의 중에 5분 만에 그려낸 디자인으로 15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5분이 아닌 30초 만에 그려낸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30초를 강조하는 이유는, 보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가치를 만들어냈음을 강조하는 것인 동시에 “30초에 완성하기 위해 30년을 준비한 것이다”라는 인상 깊은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함인 것 같다. 유명한 예술가의 회화작품이 전시되는 경우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커다란 화폭에 점 몇 개, 혹은 선 몇 개만 그려져 있거나, 혹은 단색의 면으로 전체가 채워져 있는 그림들에 대해서 이러한 반응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그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화폭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고민을 거쳐 붓을 움직이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훈련이 필요하기에 창조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예술과 디자인의 영역에 건축을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건축은 단순히 작가의 의도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건을 토대로 기능적이고 공학적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조건에 더해진 건축사의 판단과 결정들은 건축주가 그 공간을 사용하며 삶을 즐기거나 영리를 추구함에 있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판단은 꼭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건축사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얼마만큼 존중받고 있는가. 직업으로서의 사회적 존중은커녕, 창작물과 저작물로서의 권리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설계업무에 대한 대가 또한 더 좋은 작품을 위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계획안이 만들어졌다는 뜻이겠지만 “설계 잘 뽑았다.”는 표현을 듣는 경우, 건축사의 업무를 프린터에서 출력물이 나오듯 쉽게 생각하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디자이너의 이야기에 더해지는 말들이 있다. 디자인 비용이 1만 달러라면 “선을 긋는 비용은 1달러,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아는데 9,999달러이다.” “돈은 들인 시간이 아니라, 쌓아온 가치에 지불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의해 건축사의 업무대가를 인건비 산정방식으로 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사비에 따라 결정되어 버리곤 하며, 민간사업의 경우 지역마다 다르지만 처참하게 하향 평준화되어 버려서 제대로 대가를 받고 제대로 일하고 싶은 건축사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이다.

9월호에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건축사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담았다. 저마다 우리가 그려낸 선들의 가치를 설명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설계업무에 사용된 시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중요한 아이디어가 순간적인 발상에 의해 포착된 것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오랜 시간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경험한 다양한 것들과 건축사보로서 진행한 실무경험 등이 더해져 건축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되었을 것이다. 건축사의 업무는 지금의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이 더 알려지고 사회적 인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 건축사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