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31. 10: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Ironic Graphics
in the Smartphone Era

포스터는 2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미디어로 활약해 왔다. 마음을 끄는 그림, 그리고 재치 있고 상징적 글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것은 때로는 길고 논리적인 연설보다 힘을 지녔다. 포스터가 탄생한 19세기에는 여전히 문맹이 많았다. 인터넷은 물론 TV나 라디오도 없던 시절, 극장식 식당 같은 상업공간과 상품을 알리고자 할 때 포스터 말고는 선택할 미디어가 없었다. 신문이나 잡지는 메시지의 밀도가 너무 높아 그것을 수용하는 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포스터는 단번에 사람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미디어다. 더구나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포스터는 TV가 대중화된 뒤에도 여전히 설득력 강한 미디어로 존재했다. 특히 TV나 라디오 같은 매체를 이용할 힘이 없는 민중에게 유일한 대안 미디어는 포스터였다. 그런 면에서 포스터는 정부의 캠페인보다는 권력에 대항하는 힘없는 자들의 희망이었다. 왜냐하면 정부나 기업은 포스터 말고도 다른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한 장 짜리 인쇄술이 갖는 힘을 처음으로 입증한 사례는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때는 아직 포스터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다. 진정한 포스터는 19세기 채색석판화가 발명된 뒤에 등장했다. 하지만 채색석판화 이전에도 목판화는 있었다. 목판화로 만든 한 장 짜리 인쇄물을 ‘브로드사이드(broadside)’라고 불렀는데, 이는 대량으로 인쇄 가능한 포스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이 한참 전개되던 시절, 마틴 루터가 글을 쓰고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가 목판화로 만든 <로마의 교황 당나귀 Der Bapstesel zu Rom>는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다수의 사람들을 설득한 최초의 인쇄물이라는 점에서 포스터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 1> 여기에서 교황은 괴물로 묘사되어 있다. 머리는 당나귀이고, 몸은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고, 엉덩이에는 악마의 머리가 튀어나와 있다. 이는 교황의 어리석음과 성직자들의 음탕, 그리고 교황청의 타락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이 인쇄물이 특별한 이유는 문맹자들도 아주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16세기 초에 글은 대부분 라틴어로 쓰였다. 당시 독일 지역에 살았던 민중, 특히 대다수의 농부들은 라틴어는 물론 독일어도 읽을 줄 몰랐다. 하지만 목판화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글은 물론 이미지 역시도 교회가 통제하고 있었다. 이미지는 문해력이 없는 절대다수의 민중을 가르치는 데 효과적이었다. 마틴 루터는 그 점을 알고 민중에게 교회의 교리를 전파하고 그들을 교회에 예속시키는 데 이용했던 그 이미지를 역으로 교회를 비판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이미지 제작 기술은 언제나 권력자의 소유물이었지만, 처음으로 권력을 겨냥한 무기가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브로드사이드는 저항 포스터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등장한 포스터는 주로 상업적인 용도였다. 연극과 공연, 전시회, 술집, 상품을 홍보했다. 채색석판화 역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국가의 절박한 심정을 포스터에 담아 전달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자국의 승리를 위해 포스터는 군인을 모집하고, 적국을 악마화하고, 전쟁기금을 모으는 데 몰입했다. 하지만 1960년대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록음악에 심취했고, 권위적인 아버지 세대에 맞섰으며, 사랑과 평화를 외쳤다. 그들에게 베트남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으로 보였다. 이 시기에는 전쟁을 이기려는 애국주의 포스터보다 전쟁에 반대하는 포스터가 더 주목을 끌었다.
시무어 크와스트가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8년에 발표한 <구취를 끝내자>가 대표적이다.<사진 2> 미국을 상징하는 정신적 존재인 엉클 샘을 멍청하면서도 폭력적으로 그렸다. 그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데, 입 안에는 전폭기들이 가정집을 폭격하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미군이 베트남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적국과 벌이는 전쟁을 정의로움이 아니라 역겨움으로 해석한 자국민이 있을까? 게다가 그 역겨움의 대상이 엉클 샘이라는 점이 더욱 역설적이다. 엉클 샘은 1차 세계대전 당시 <I Want You>라는 모병 포스터로 유명하다.<사진 3> 언제나 애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엉클 샘이 제국주의자로 묘사된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을 지지하는 포스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 반전 포스터가 우위에 있었다. 무엇보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까지는 저항문화가 지배적이어서 그 시대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여전히 반전 메시지는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형식이다. 예를 들어 코드핑크(Codepink)의 <이란 전쟁 안돼 No war on Iran>, 앤서 코얼리션(Answer Coalition)의 <이란 전쟁을 멈춰라 Stop the war on Iran!>, 앤아이에이씨 액션(NIAC Action)의 <이란에서 손 떼 Hands off Iran> 등이 최근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이란 전쟁 반대 포스터다.<사진 4, 5> 이 포스터의 특징은 타이포그래피 중심이라는 점이다. 대비의 색상을 쓰고 있다. 검은색 바탕에 핑크색 글씨, 검은색과 노란색 글씨의 조화,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들은 멀리서 봐도 눈에 띈다. 과거 풍자적이고 회화적인 포스터와는 전혀 다르다. 왜 이런 그래픽이 지배적일까?


그것은 포스터 또는 그래픽이 유통되는 미디어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벽이나 기둥에 붙이는 것이었다. 영어 post는 ‘붙인다’, ‘게시한다’는 뜻이다. 사람들 많이 모이는 거리의 벽이나 기둥에 붙이는 것이다. 벽은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의 미디어였다. 신문, 잡지, TV, 라디오 같은 미디어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더 저렴한 미디어가 생겼다. 바로 SNS다. SNS는 벽보다 더 빠르고 접근 가능성 역시 더 폭넓다. 누구나 자신의 스마트폰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때문이다. 코드핑크, 앤서 코얼리션 같은 운동 단체들은 자신의 계정으로 반전 메시지를 담은 그래픽을 게시하고, 그 메시지가 팔로워들에 의해 무한 전파되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 이 그래픽을 개인들이 각자 집에서 다운로드하고 프린트하여 시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미디어 환경이 벽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SNS로 바뀌고, 또 그것을 시위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점에서 대비가 큰 글자 중심의 그래픽으로 바뀐 것이다. 우선 SNS 피드(feed)에서 다른 포스팅보다 경쟁우위를 가져 눈에 확 띄어야 한다. 다음은 개인의 프린트가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위 현장이 TV 화면에 잡혔을 때 군중 속에서 메시지가 분명하게 포착되면 더 좋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정교한 회화적 표현은 오히려 불리하다. 이에 따라 색상대비가 크고, 커다란 글자 위주의 그래픽으로 귀결된 것이다. 벽에 붙이는 포스터와 형식이 달라졌으므로 최근에는 이것을 ‘액티비스트 그래픽(ActivGraphics)’이라는 새로운 용어로 정의하기도 한다. SNS에서 게시, 즉 포스팅(posting)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포스터의 본질과 똑같다. 단지 과거와 같은 회화적 예술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고마워 디자인』,『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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