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1. 10: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Is a Sofa
a Chair or a Bed?
아버지는 늘 소파에 누워계셨다. 일요일 오후에는 소파에 누워 야구중계를 보셨는데, 늘 주무셨다. 잠이 드신 거 같아 TV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끄려고 하면 바로 잠에서 깨어나 원상태로 돌리라고 명을 내리셨다. 그리곤 조금 있다가 또 주무셨다. 아버지는 야구 중계를 보시는 건가? 아니면 주무시는 건가? 차라리 방에 들어가서 편안히 주무시지 왜 굳이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결국 주무실까? 이를 학술적인 말로 표현하면 ‘이완된 TV시청’이라고 해야 할까? TV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닌 상태. 아버지는 두 가지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하나는 소파의 점령, 또 하나는 TV 채널권이다. 방에 들어가면 소파를 잃는다. 소파에 누운 채 잠에 푹 들면 TV 채널권이 무용지물이 된다. 옛날에는 집안의 최고 권력자가 TV 채널권을 가졌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반수면 상태를 유지한 채 TV의 야구중계 소리를 자장가 삼아 몸은 쾌락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욕심꾸러기 아버지.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있었던 모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는 소파의 점령으로 늘 권력의 작동을 확인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버지를 회상하며 그런 궁금증이 든다. 소파는 의자인가? 아니면 침대인가? 나는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파가 사실은 의자의 일종이 아니라 침대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소파는 앉기보다 눕는 행동을 유도한다. 의자는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도록 좌판이 좁다. 좁은 좌판은 한 사람만 앉도록 행동을 유도한다. 소파는 옆으로 길기 때문에 이런 형태는 대체로 눕는 행동을 유도한다. 특히 소파가 놓인 거실에 혼자 있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있어도 내가 그들보다 지위가 높거나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 자연스럽게 눕게 된다. ‘눕기’라는 행위의 본질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눕는다는 것은 두 가지 용도를 가진다. 하나는 쉬거나 잠을 자는 것이다. 둘 다 몸을 최대한 이완한 상태다. 앉아서도 쉴 수 있지만, 앉는 것은 허리에 부담을 준다. 그래서 쉬는 용도로 특화된 라운지체어와 셰즈 롱그(chaise longue), 리클라이너(recliner)는 모두 허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기울이도록 디자인되었다.<사진 1, 2, 3> 일단 앉으면 다리가 편안해진다. 앉은 상태에서 등을 기울이면 허리도 편안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등을 180도로 완전히 눕히면 허리의 부담이 최소화된다. 이렇게 다리와 허리에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한 눕기의 첫 번째 용도는 쉬는 것이다. 쉬려고 누울 때는 대체로 잠을 자지 않는다. 눕기의 두 번째 용도는 잠을 자는 것이다. 잠을 잘 때는 대개 고립된 방에서 혼자 자거나 아내 또는 남편과 잔다. 물론 여러 형제들과 자는 경우도 있고, 동료들과 자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집에서 잔다고 할 때에는 대개는 사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자는 것이다. 쉬려고 누울 때는 침대가 아니라 소파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퇴근을 한 뒤, 또는 주말에 편안하게 쉬려고 누울 때는 잠을 자기보다 소파 맞은편에 있는 TV를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파는 잠을 자지 않은 채 누워서 쉬는 행위를 돕는 가구라고 할 수 있다.

누워서 왜 잠을 자지 않을까? TV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정의 엔터테인먼트는 TV가 대중화된 1950년대 이후에 나타난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를 실현시켜 주는 소파는 고립된 방이 아니라 개방된 거실에 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사용하기 마련이다.<사진 4> 이때 눕기는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권력을 상징하게 된다. 권력을 가진 아버지만이 누울 수 있고 나머지는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게 되면, 자식들은 소파 구석이나 거실 바닥에 앉아서 시청을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아버지들이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 늘 소파에 누워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소파에 자식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 눕는다면 그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버지라는 점이다. 즉 집안의 가장이자 최고 권력자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소파에 누울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있는 가운데 눕기란 언제나 권력의 표시로서 기능해 왔다. 마치 모두가 서 있을 때 앉는 사람이 권력자인 것처럼 모두가 앉아 있을 때는 눕는 사람이 권력자인 것이다. 여럿이 한 공간에 동시에 있을 때 몸을 최대한 이완할 수 있는 자격은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이렇게 눕기의 배타적인 성격을 구체화한 고대의 가구가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다. 라틴어 triclinium은 그리스어 triklínion에서 유래했다. tri는 3이라는 뜻이고, klínion은 비스듬히 기대어 눕는 의자(현대 용어로 말하면 카우치couch)를 뜻한다. 그러니까 트리클리니움은 카우치 3개를 ㄷ자 모양으로 연결한 것이다.<사진 5> 트리클리니움은 단순히 쉴 때 사용하는 의자가 아니다. 이것은 잔치용 가구다. ㄷ자 모양을 한 트리클리니움 중앙에는 식탁이 놓인다. 비스듬히 누운 사람은 식탁 위의 음식을 집어 먹으며 잔치를 즐기는 것이다.<사진 6>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왜 누워서 식사를 했을까? 그들이 권력자라는 것을 극명하게 시각화하는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수고롭게 몸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특히 누워 있으므로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노예들이 만들고 날라다 주는 음식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발을 땅에 딛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천한 사람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급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여 몸을 써서 생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여왔다. 움직이기 불편한 옷을 입고, 손톱을 기르고, 거추장스러운 가발을 쓰고,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고, 이동할 때도 다리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가마 위에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니 행동이 최소화되는 눕는 행위야말로 권력의 표상인 셈이다. 누워서 식사를 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현대인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계급의식이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높았던 고대인들은 편안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수치스러운 것이고, 불편함은 오히려 명예로운 것이다. 그리고 누워서 먹는 행위도 그렇게 버릇이 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대인들도 소파에 누워서 과자나 간단한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으며 잘 소화시킨다.

고대 로마 황제의 연회를 묘사한 영화나 회화를 보면 황제와 귀족들이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하는 동안 공연을 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네로 황제와 귀족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 옆에 비스듬히 누운 채 무희들이 춤을 감상하는 장면이 있다. 구스타프 블랑제가 그린 19세기 회화에서는 귀족들이 트리클리니움에 엎드린 채 악사들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를 감상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사진 7> 이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악사와 무희들은 대부분 노예였다. 귀족 가문들은 노예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연회 때 그들의 공연을 즐겼다. 즉 고대 로마에서 음악인들은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검투사처럼 노예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기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예술인들을 키워낸 귀족들은 잔치 때 모든 감각의 쾌락을 누렸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악사와 무희의 공연, 혀를 즐겁게 하는 음식, 그리고 극도로 편안한 자세가 그것이다. 이런 쾌락은 극소수의 귀족들만이 배타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트리클리니움은 그런 귀족의 독점적인 권력과 쾌락을 상징하는 가구였다.
나는 현대의 소파가 이 트리클리니움의 민주화된 가구라고 생각한다. 현대인은 고대 로마인들처럼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서 TV로 눈과 귀의 쾌락을 맛본다. 소파 앞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놓여 있다, 이제 이런 종류의 쾌락은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굳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보편화되었다. 반대로 노예의 신분이었던 악사와 무희는 오늘날 당당하게 예술인으로 대접받으며, 기량과 용모가 출중하면 고대 로마의 귀족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지위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되자 소파는 예전과 달리 아버지의 권위를 상징하는 구실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가족이 거실에 모두 모여 TV를 관람하는 문화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미디어, 즉 컴퓨터나 패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얻는 시대가 도래하자 거실은 이제 무주공산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소파가 가진 상징성도 소멸되었다. 채널권의 개념도 무의미해졌다.
다시 최초의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소파를 침대의 일종이라고 봐야 할까? 의자의 일종이라고 봐야 할까? 거실에 놓여 사람이 누운 채로 휴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도록 고안된 소파는 침대에 가깝다. 의자란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데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일과 연구(오피스 체어), 식사와 미팅(다이닝 체어), 관람(극장, 야외 공연장, 경기장 좌석), 이동(승용차, 버스, 지하철, 비행기 좌석) 등 다양한데, 이런 의자들의 특징은 대체로 그 디자인이 허리를 세우고 앉도록 유도하며 언제든지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휴식용 의자들인 라운지체어와 셰즈 롱그, 리클라이너는 몸을 기울이도록 유도하며 의자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좌판이 비스듬해서 엉덩이가 안쪽 깊숙이 들어가 다리 힘만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이들 휴식용 의자들은 침대로 가는 과도기형이라고 볼 수 있다.

거실용 소파가 의자보다 침대에 가까운 이유는 사무실이나 공적인 라운지 공간의 소파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디자인 때문이다. 사무실과 공적 라운지에도 소파가 있다. 이들 소파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소파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좌판은 푹신하기보다 약간 딱딱한 편이다. 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피스 소파에 앉는 사람들은 주로 손님인데 그들은 장시간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소파의 끝이 팔걸이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사진 8> 눕기를 배려한 소파의 끝은 팔걸이가 아니라 대개 쿠션이 놓인다. 쿠션이 있어야 베개 역할을 할 수 있다. 거실용 소파는 오피스 소파보다 더 푹신하고 깊이도 더 깊다. 누운 사람이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런 디자인은 소파에 사람이 누울 것이라는 전제에서 비롯한다. 앉기보다 눕기에 더 특화되었다면 거실용 소파는 의자라기보다 침대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거실 소파에 누워 쉬거나 TV를 보다가 아침까지 잠들기도 한다. 가구 페어에서 발견한, 덴마크 소파 전문 브랜드의 홍보 문구가 나에게 확신을 더해주었다. “소파는 사실 침대입니다."

이렇게 보면 소파만큼 다양한 기능성을 포용하고 있는 가구도 많지 않을 거 같다. 의자, 라운지체어, 셰즈 롱그, 침대 이 네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다. 요즘에는 리클라이너 기능까지 더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모호한 가구이기도 하다. 의자인 것 같기도 하고 카우치인 것 같기도 하고, 침대인 것 같기도 하며, 동시에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이런 소파의 모호함을 잘 표현한 가구가 있다. 안드레아 브란치의 센추리 소파가 그것이다.<사진 9> 이 소파는 부분적으로 등받이도 있고, 셰즈 롱그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끝부분에서 좌석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그 반대쪽에는 의자의 팔걸이도 있다. 이동하기 쉽도록 바퀴까지 달려 있다. 이 가구가 실용적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소파가 가진 모호함, 또는 소파가 가진 기능적 풍성함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고마워 디자인』,『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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