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7. 09:2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편집국장 주
5월호부터 시작한 건축 담론은 너무 무겁지 않게,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건축계가 고민하고 있는, 또는 고민할 만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이미 설계도 거대 기업형태의 외주관리와 용역 등 으로 분화되고, 생산성과 수익성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쉽게도 국내 건축사사무소의 상당수는 생존에 떠밀려, 대규모 기업은 수주에 떠밀려 건축 철학에서 한발 물러나 있습니다. 문제는 본질에서 출발하지 않 는 숫자와 수익성 중심이라, 건축 디자인의 주도권을 해외에 넘겨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점에 주목해서 저희 건축사지는 짧게라도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요청하시는 담론주제가 있다면 망 설이지 마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의 연락도 좋습니다. 저희 지면의 한계 상 더 많은 토론을 하지 못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이 기회를 통해 확산시키고, 깊이를 다듬어 가시길 바랍니다.
593 주제는 ‘건축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젠더’입니다.
건축이 어린이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린이 대상 건축은 수도 없이 많습니 다. 학교, 어린이 대상 각종 시설, 각종 부속 공간들이 있습니다. 뻔한 원색과 단순 기하형태가 우리나라 어 린이 대상 건축에는 빠지지 않는데, 이는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어린이의 특성을 이해하고 건축한 사례들은 무궁무진합니다. 어린이에게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더불 어 여성 또는 젠더와 건축을 다루려 합니다. 당연한 것 같지만, 건축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남성을 중심으 로 진행됩니다. 당장 공연장의 경우 화장실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길게 줄선 여성들과 대비되는 남자 화장실. 집에 있던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 여기 저기 마찰이 늘어납니다. 당연한 일이죠. 더구나 최근에는 제3의 성이 등장해서, 서구 유럽은 중성 화장실도 등장합니다. 기능뿐만 아니라 도시 공간의 게 토도 형성됩니다. 이런 흐름에 이번호에는 어린이와 여성·젠더에 대한 건축적 시각을 찾아보았습니다.
01 건축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젠더
Architecture for all, for children, and for women
불통에서 대~통으로
바닥에서 들어 올려진 기단, 육중하고 무게감 있게 솟아오르는 기둥, 그 위에 하늘과 맞닿은 유려하 게 감싸 안은 지붕과 마루. 건축의 아름다움에서는 솟아오른 힘과 내리누르는 절제와의 팽팽한 균 형감이 전달된다. 건축이 가지는 소용이나, 구조나, 아름다움은 이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힘이 전달 되는 수직의 지극히 권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표출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우직하며 자잘한 변명을 하지 않는 기둥과 그늘처럼 깊숙하고 침묵하는 형태와 공간을 빚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과 형 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위계와 권력, 억압과 복종, 나아가 차이와 차별을 드러내곤 한다. 그리 고 이제 뼈대에서 힘의 전달이 드러나던 형태의 파사드는 구조에서 벗어나 스킨이라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며 감성을 가지고 이미지를 드러낸다. 건축이 가지는 본질이 어느 정도 해체되어 가고 있 으며 스킨에서 시작하여 가로와의 관계에서 도시로 나아가 개방되고 열려지고 관계를 맺는 대~통 하는 건축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시행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을 위한 법률을 통해 접근권을 충족하는 시설들이 설치되고 있다. 턱을 낮추고 경사로를 설치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고 있다. 올라서 넘어 갈 수 없는 높이를 누구나 용이 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건축은 이제 권위와 위계가 아닌 희망과 상생의 공간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고 있다.
강자에서 약자 편으로
건축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늘 불편하고 쓸쓸하여 아쉬움을 느끼다가 이내 생각을 이어가지 못하 고 놓아버리곤 한다. 도시를 군림하려는 상업지역의 하늘로 치솟은 사무소 건축물에서부터 주거지역의 큰 성벽을 둘러친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간의 삶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개발사 업과 정비사업 등을 목도하면서 건축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되물어 보곤 한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 이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고 하듯 살아남은 강자는 합리적이고 우월하며 아름다움을 지닌 것 으로 인식된다. 악화(惡化)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듯이 가볍고 싸고 무미건조한 싸늘함이 자리를 차 지하고 이전의 질량감 있고 소중하고 정감 있고 마음 따듯한 풍경은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제야 재개발의 광풍이 지나가고 재생사업을 통해 그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다. 몸에 맞지 않은 세련된 고급의 특대형 사이즈 옷을 입고 어쩔 줄 몰라 해왔던 우리들이 비 로소 조금 해지고 찢어진 곳을 고쳐 맞춤형 사이즈 옷을 입고 온화한 미소를 짓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제껏 많은 것을 갖춘 강자의 편에서 건축을 풀어 왔다면, 이제는 가진 것은 적고 소박한 약자의 편 에서 건축을 풀어나가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약자의 건축은 대부분 공공건축에서 담 당하며 취약성의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국가에서 제공하고 사회적 편익을 우선하는 공공임대주택 의 경우 수적으로나 품질에 있어서 비중이 낮고 열악하다. 주거의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할 보편적 가치임에도 사익을 추구하는 주택시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에 공공건축이라는 취약한 프레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이는 대상의 확대와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단계적으 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삶의 질에 있어 필수적인 주거 등에 대한 양질의 공공건축 서비스를 확대 하고 민간과 협력체계를 통해 단계적으로 모색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지자체별로 공공건축 가를 통해 도시재생을 모색하고 있으며, 내 주변에서도 건축사들이 참여하여 도시환경의 향상에 기 여하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또 안정적으로 질 높은 공공건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역 건축사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 지역에서의 문제를 풀어 나가되 지역구성원의 동의 와 참여를 전제로 하는 자발적이고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공공건축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실질적인 어린이친화 건축으로
어린이는 생애 초기 5년 이내에 많은 것이 결정된다는 연구결과를 통해 나라마다 보육에 대한 지원 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또한 어린이를 국가경쟁력의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어린이 관련 시설의 면 적 기준을 보면 대략 성인의 2/3를 표준으로 하고 있다. 어린이집의 보육실 면적은 어린이 1인당 최 소면적 2.64제곱미터, 적정면적 3.9제곱미터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보육실 공간에서는 표준보육 과정의 기본생활, 신체운동, 사회관계, 의사소통, 자연탐구, 예술경험 등 6개 보육영역 관련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보육실 공간을 일상생활영역과 놀이활동영역으로 구성하고 영아의 경 우 일상생활영역에서는 수납, 휴식, 수유, 식사, 기저귀갈이 및 배변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놀이활 동영역에서는 신체, 언어, 감각탐색, 역할 및 쌓기, 미술, 음률 등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유아의 경우에는 놀이활동영역이 쌓기놀이, 언어, 역할놀이, 수조작, 과학, 음률, 미술 등으로 구성되므 로, 보육실 내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교구 및 교재를 위한 공간을 배치하고 나면 어린이 들은 공간 한쪽에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보육실 면적 기준에서는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펼 칠 빈 공간이나 집단놀이 공간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린이집에서 오전에 이루어지는 자유놀이시간 이나 자유선택활동에서는 어린이 스스로 기다리고 탐색하고 여유를 부릴 여백의 공간이 확보되어 야 한다. 그리고 신체활동은 주로 운동을 통해 이루어지며 발육시기에 맞추어 소근육활동과 대근 육활동 등으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운동은 단순히 신체활동뿐만 아니라 또래와의 사회관계, 또래와 의 의사소통, 실외에서의 자연탐구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나타난다. 따라 서 신체활동을 위해서는 실외놀이터의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요즘 같은 미세먼지 환경에 서 실내놀이터가 더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잔디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뒹굴고 나 무와 그늘집 아래에서 개미와 나뭇잎을 찾아보고 텃밭에서 키운 오이와 토마토를 따서 만지고 냄새 맡고 식자재로 사용하여 먹고 감사하는 활동들은 어린이 시기에 경험해야 할 활동들이다. 그러나 영유아보육법에서 정원 50인 이상에서 실외놀이터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49인 이하의 정원 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이 많이 있다. 규정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겠지만 실외놀이터 없는 어린이집 에서 보육이 이루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 시설환경을 살펴보면 직장어린이집의 여건이 그나마 양호하여 그 수를 늘려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직장어린이집은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작업장에 설치를 의무화하고 설치하 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면서 설치하는 작업장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용주 입장에서는 시설설치비와 함께 운영에 따른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 녹록치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고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가진 고용주들이 많아 지고 있어 다행이다.
어린이에게 지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어린이들이 커나가면서 찾게 되는 소아청소년과나 어린이병원의 경우 소아환자의 몸집이 작다고 해서 병실의 면적기준을 줄이고 있다. 그러나 환자가 어리기 때문에 부모와 조부모를 포함한 보호 자가 반드시 필요하며, 검사하고 진료하고 치료하는데 들이는 인력과 시간도 성인 이상으로 필요할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 측면에서 권역별 국립대학병원 내에 어린이병원을 설치하여 의 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만성 적자 상황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기부금과 다른 진료과의 수익으로 메워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어린이 관련시설을 안정적으로 또 지속 적으로 운영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착한 적자를 메울 자원의 조달과 배분이 필수적으로 뒤따라 야 할 것이다.
최근 어린이에 대한 기준을 성인과 달리하여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신체치수를 고려한 내용뿐만 아니라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내용을 고려하여 현실적인 기준과 지침을 제공하고 어 린이에게 친화적인, 나아가 놀이 친화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건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다름에 대해
공대로 진학하는 여자가 희소했던 시절엔 ‘나, 공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의 차이 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이러한 말의 이면에는 공대는 도구이고 여자로서 남자처럼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여성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즉 여자는 도구를 다룰 줄 모른다는 통념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에 대한 외침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육천만년의 시간을 통해 남자들은 봄이 되면 사냥을 하러 먼 길을 떠나 사냥감과 마주쳐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 사냥감을 챙겨 가을에 돌아오고 겨울에는 도구 를 만들며 봄이 되면 다시 길을 떠나는 DNA형질을 갖추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결과적 으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공간지각, 날씨, 지리 등에 우월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한 가지 에 집중하는 능력이 우세해졌다고 말해지고 있다. 반면 여자들은 봄이 되면 남자들을 사냥터로 떠 나보낸 후 한 곳에 모여 아이들을 키우고 농사지으며 생활을 꾸려 나가는 DNA형질이 형성되어 멀 티태스킹이 잘되고 교육이나 인간관계형성에 우월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아이를 키 우면서 들은 이야기를 덧붙이면,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남학생들을 불러 얘기할 때는 간단하고 명료하게 “잘못했지. 내일까지 반성문 써와”라고 말하고 남학생이 큰소리로 “네”하면 끝나지만, 여 학생들과 얘기할 때는 전후를 다 포함해서 자세하고 소상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네”라는 대 답을 듣기 쉽지 않다고 한다. 또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누어 세세하게 챙겨주지 않으면 여학 생들은 여러 번 다시 물으러 온다고 한다. 이처럼 남자와 여자는 형질 자체가 다르고, 지도하는 방법 에서도 차이가 나듯 남자와 여자는 외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관심사도 접근방법도 다른 것이 분명 해 보인다.
성별구분에서 여성친화 건축으로
여성에 대한 독립된 시선은 지난 2001년부터 여성부와 여성가족부 등을 통해 선언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2012년 성별영향분석평가에서 정책의 수립 및 시행 시 남녀의 특성과 요구·형평성 등 을 고려하여 양성평등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평가한 이후부터는 성인지예산을 반영하고 있다. 시설개선에서의 예를 들면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해 유아를 동반한 부부가 자녀와의 야 외 활동을 용이하게 하고, 여자들의 화장실 사용시간이 남자보다 긴 것을 고려하여 여자 화장실 면 적을 남자보다 더 확보하여 여성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 다양한 전문분야의 의사결정이 이루 어지는 여러 유형의 위원회를 구성할 때 양성이 평등해지도록 여성 위원의 비율을 높임으로써 여성 전문가들의 참여와 기회가 높아지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전체 여성 중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50%에 가깝고 정부에서도 이를 70%까지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학의 건축관련 학과의 경우 여 학생의 비율이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가진 시선이나 능력은 사회에서 활용되지 못 하고 묻히고 만다. 건축설계를 위한 사무환경부터 남성위주이며, 건물도 여전히 현장에서 시공하는 건설업자의 남성적인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그 결과, 대개의 경우, 기능과 경제성만을 고려하여 획 일적이고 무미건조한 형태와 공간으로 구분하고 단순함과 엄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친화시설 인증기준 및 지표를 만드는 한편, 여성친화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인 식하여 안전과 편의, 돌봄과 나눔, 자율과 감성 등이 고려된 공간조성을 통해 여성의 요구가 반영된 지역공동체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히 남녀 성별을 구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다름을 인식하고 여성의 특성과 편의를 고려하여 만족감을 주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이를 통해 사 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물론 인간존중까지 의미를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별, 연령별, 계층별, 신체특성별 다양성을 존중하는 여성친화 건축으로의 첫걸음에 섬세하고 부드러우 며 유연한 디자인까지 덧붙여져 감성적이고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약자기반 건축이 습관이 되어 선진화로 나아가길
인간이 환경을 만들지만 그 환경이 다시 인간을 만든다는 유명한 말은 도시환경을 만드는 건축사, 도시계획기술사, 조경건축가들에게 그들의 책무에 대하는 자세를 일깨우는 말이다. 건축현장에서 는 장애인·임산부·노인을 위한 편의시설, 공공임대주택, 어린이친화 건축, 여성친화 건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약자기반 건축이 시작되어 진행 중에 있다. 아직은 양도 적고 품질도 만족스럽지 못한 채 취약성 및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약자기반 건축이 지속적으로 진행되 어 자리를 잡아가면서 우리의 습관이 되어야 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환경에서 약자와 함 께 생활하면서 우리의 약자에 대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습관이 되고 자율과 참여, 배분과 지원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선진화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건 축사의 참여는 필수라고 하겠으며, 건축환경을 업그레이드하여 약자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중요하고도 큰 역할 또는 책무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다.
글. 김영애 Kim, Youngae ┃ 건양대학교 의료공간디자인학과 교수·건축사
02 엔지니어관점의 건축물 전기안전과 젠더혁신
Architecture electrical safety and gender innov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an engineer
국내에서 젠더라는 이슈를 갖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2015년 아태 젠더써밋 국제행사를 국내 에서 갖게 되었는데, 전 세계 과학기술계의 여성들이 모여 각자의 전공분야별 젠더혁신에 대한 연 구사례를 발표하였다. 그때 필자도 ‘젠더관점에서의 전기안전’이란 주제로 참여한 적이 있다. 이 행 사는 젠더라는 용어조차 생소할 때 여성과학자들에게 젠더연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본인 의 전공분야에서 비로소 젠더관점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건축계에도 두 분의 여 성 교수님들이 건축분야의 젠더혁신에 대한 연구사례를 발표하면서 건축계획에 있어 공간계획이 남성의 인체비율로 규격화되었다는 사실에 큰 공감과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성(性)과 젠더(Gender)는 구별되는 용어다. 성(性)은 생물학적 특징을 말하며 젠더는 사회문화적 특징을 뜻한다. 그러므로 젠더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이 사용하는 언어, 행동, 습관으로 이루어진 태도와 행동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젠더는 연구 분야뿐 아니라 디자인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건축의 공간설계와 엔지니어링의 시스템계획은 젠더관점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를 충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과 더 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1997년부터 2000년 사이 미국에서 의약품 10종이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에 회수된 사례가 있었는 데 회수된 의약품 10종 중 8종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U.S. GAO, 2001).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젠더에 대한 편견을 발견하게 되고 이 편견이 과학기술 분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기초과학분야, 보건의료분야, 공 학분야, 도시환경분야에서 연구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젠더혁신은 처음 대학의 연구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산업전반에 걸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구실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에서 접하는 생활 속의 젠더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공학분야인 건축분야는 사람을 담는 공 간연출 작업이란 면에서 더욱 시급하게 젠더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물은 건축설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기설비와 기계설비의 엔지니어링분야로 건물을 완 성한다. 필자는 건축을 전공하였지만 전기엔지니어로 지낸 시간이 훨씬 길다.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젠더혁신을 생각한다. 전기는 ‘+’와 ‘-’로 이루어진 그 자체가 젠더 라고 할 수 있다. 플러그와 아울렛(콘센트)의 결합으로 전기기기를 사용하는 전기분야의 젠더혁신 이란 “매일 일상에서 접하는 전기콘센트는 남녀노소, 건강한 사람, 장애우에게 모두 안전한가?” 의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표준이라는 개념 때문에 모두를 충족시킬 안전한 시스템을 구현할 수 없었다. 그간의 개념을 넘어 젠더의 관점으로 한걸음 다가가 보자.
매년 한국전기안전연구원에서는 전기사고에 관련한 통계자료를 발표한다. 감전에 의한 사망과 부 상자에 대한 통계이다. 몇 년 전 까지는 통계 안에 젠더비율이 적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자료에는 남 성과 여성의 사상자의 비율을 통계하기 시작하였다. 감전사고는 사고형태, 전압의 종류, 장소, 설 비, 젠더별로 다양하게 발생한다. 발표된 사고 자료를 통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할 키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며 몇 개의 통계자료를 나열해 보겠다.
감전의 유형은 충전부 직접접촉, 누전, 정전유도, 플래쉬오버, 아크, 낙뢰 등 다양한 유형으로 일어 난다. 표 1. 은 감전사고 발생형태에 따른 통계인데 충전부 직접접촉에 의한 사고가 전체의 59.3%로 가장 많은 비율로 나타났다. 즉, 감전사고 발생형태 중 작업자나 사용자의 직접적인 신체나 손의 터 치에 의한 감전사고율이 높다는 것이다.
표 2.는 전압별 감전사고의 통계인데 사망과 부상자의 수는 220V에서 총 사상자 225명중 남성이 168명, 여성이 57명으로 나타났다. 국내의 표준전압 중 수용가에서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전압은 교류(AC)220V이다. 사고는 사용자의 접근이 빈번이 일어나는 장소에서 발생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감전사고는 어떤 장소에서 많이 일어날까? 표 3.은 장소별 감전사고의 통계인데 공장이나 작업장과 같이 실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그 다음 사고가 많은 장 소는 가전기기가 많은 주거시설로 나타났다. 주거시설에서의 감전사고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각 63%, 37%로 여성의 사고율이 공장에 비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통계만으로도 주거시설 의 전기안전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표 4.는 전기설비별 감전사고의 통계이다. 사람이 직접 닿을 수 있는 장소 저압설비의 전로와 콘센 트부분에서 감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콘센트의 사고는 젖은 손으로 코드를 만지 거나 젖은 몸 상태로 접촉이 있을 때, 특히 6세 이하 유아의 행동패턴은 전기 코드를 씹는 행위, 금속 물체를 콘센트에 찔러 넣거나 입에 넣는 행위로 사고가 일어난다. 또 벽면콘센트 사고율 15%에 비 해 멀티탭과 같은 연결용 콘센트에서 사고율은 63%로 확률이 높다고 발표 된 적이 있다. 주택의 콘 센트 디자인과 설치기준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표 5.에서 감전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의 수가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그러나 이 통계자료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위험에 노출된 작업을 남성이 많이 하기 때문에 사고율은 남성이 높다. 남성에 비해 적지만 여성의 사고율을 관과 할 수는 없다. 서두에 말했던 것처 럼 더 많은 대상이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젠더혁신이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자료를 통해 여성이 가장 감전되기 쉬운 장소는 어디일까? 충전부에 직접접촉이 쉬우면서 220V를 사용하 는 주거공간인 것을 알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감전전류에 대하여 살펴보자. 표 6.에서 통전에 의한 인체반응을 나타낸 것이다. 사 람마다 신체조건이나 건강생태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이 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감전에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각국의 전기 시스템의 안전전류 기준이 되고 있다. 표는 어느 정도의 전류가 인체에 흐르면 감전될 것인가를 정리한 것으로 호흡이 곤란한 정도의 고통이 격렬 한 쇼크전류는 남성은 23mA, 여성은 15mA이다. 고통이 있는 이탈한계전류는 남성은 16mA, 여성은 10.5mA이다. 즉,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전류에 감전된다는 것이다. 국내의 주택용 누전차단기 감도 전류는 일반장소는 30mA, 젖은장소는 15mA로 정해져있다. 일반장소는 30mA이상, 습기가 많은 장 소는 15mA이상 누전이 될 때 누전차단기가 동작하여 전류를 차단한다. 필자는 이 수치를 젠더관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어딘가에서 누전이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차단기가 동작하지 않는 누설 전류에 접촉 시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도기준을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산업규격(KSA 3011)에 조도기준이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G등급 의 300-400-600[lx]기준을 대부분 최소-평균-최고조도로 알고 설계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 안에는 젠더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동일한 침실공간이라도 연령에 따라 노인이 많이 상주하는 공 간과 어린이가 머무는 공간의 조도기준은 다르다. 노인 공간은 일반 공간 보다 조도를 높여야하고 어 린이 공간은 낮춰도 된다. 조도 뿐 아니라 휘도의 개념도 나이들 수록 눈부심이 심해지기 때문에 휘도 계수를 조정하여 반영할 필요가 있다. 눈부심을 민감하게 느끼는 연령대는 조명방식을 직접조명보단 간접조명방식을 적용하여 골고루 밝기가 유지되도록 균제도를 높이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과 건축에 서는 외장재의 선택에도 반사율이 낮은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조명을 설계함에 있어 서도 데이터의 공유뿐 아니라 건축사와 엔지니어의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얼마 전 취약주거 환경개선을 위해 독거노인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분은 무릎이 아파 앉고 일 어나는 일이 매우 힘든 노인이셨는데 잠자리에 들기 전 조명을 소등하기 위해서 힘들게 일어나 끄 고 자리에 눕는다고 하였다. 이 문제를 젠더관점으로 살펴보자. 전 세계노령인구는 2050년까지 급 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공간을 설계할 때 이 노인에게 필요한 요구조건은 무엇일까? 몸이 불 편한 독거노인의 행동반경과 동선, 행동패턴과 생활습관에 맞는 공간을 구성하여야 한다. 이 분께 는 일반적인 표준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재실자의 행동패턴과 생활습관에 의해 결정 되어야 한다. 실내보행에 지장 없도록 문턱을 없애는 것, 누워서도 소등할 수 있는 리모콘 조명기구를 설치하는 것, 앉아서도 손이 닿을 수 있는 위치로 스위치 설치높이를 낮추는 것, 눈부심이 없도록 조명방식을 간접조명으로 변경하는 것, 조도를 일반기준 보다 높이는 것, 이것이 이 환경에서의 젠 더혁신이다.
생활안전을 위해 남녀 모두에게 안전한 감도전류를 적용한 누전차단기와 안전한 콘센트 디자인에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전차단기 감도전류는 젠더혁신의 차원에서 다양한 전기설비 환경을 고 려하여 국내에 적합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벽부형 콘센트는 별도의 스위치를 부착하여 코 드를 수시로 뽑는 행위를 막을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디자인된 제 품이 실제 현장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가건설기준의 설계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을 위한 콘센트디자인을 그림과 같이 제안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시대에 건축분야 젠더혁신은 과연 무엇을 반영하여야 하는가? 향후 공학 분야의 모든 데이터는 남성과 여성 뿐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건강한 사람과 장애우에 관한 조금 더 상세한 젠더분석이 필요하다. 분석된 데이터는 젠더혁신에 맞게 반드시 적제적소에 적용되어야 한 다. 안전수칙을 지켜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안 전하게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획단계부터 젠더를 고려하고 분야 간 데이터를 공유하고 협 업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 결국 건축물과 건물 안에 있는 대상을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일, 이 것이 전문가들인 우리가 젠더혁신의 길로 한걸음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글. 기유경 Ki, Yookyung ┃ (주)진전기엔지니어링 부사장 / CM본부장 · 건축전기설비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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