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1. 10: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DOCUMENTUM
대부분의 건축전문 잡지는 건축물의 도면에 더해서 그것이 실제 건물로 구현된 것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구현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고민과 문제를 속속들이 소개하기에는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부분도 있고, 계획되었다가 변경된 내용을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이 중요한 경우도 있기에 과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미디어에 소개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다큐멘텀 DOCUMENTUM이다. 2013년 창간 준비호를 시작으로 2014년 정식 창간되어 1~6호까지 발행 후 중단된 책인데, 이 책을 다시 펼쳐보며 의미를 되짚어본다.

처음 다큐멘텀의 창간 준비호를 접했을 때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STATUS라는 챕터에 한 페이지씩 계획 중이거나 시공단계인 프로젝트를 소개하여 12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약간의 텍스트와 함께 다이어그램이나 스케치, 사진, 혹은 도면 등으로 작품의 주요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데, 완성된 작품 사진보다 이 챕터가 더 흥미로웠다. 건축사의 머릿속에서 매만져진 아이디어들이 발효 중인 빵의 반죽처럼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면서 빵틀에 채워져 가고 있는 단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건축적인 생각들이 완공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될까 보일 듯 말 듯 해서, 그 생각들을 더 이해하고 싶은 생각과 함께 빨리 완성된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건축사의 생각이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실제로 몇 달 혹은 1~2년쯤 지나서 이 프로젝트들의 완성된 모습을 다른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었을 때 각각의 건축사가 보여줬던 초창기의 생각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며 멋지게 완성된 결과를 접할 수 있었다.
이렇듯 다큐멘텀은 기록, 증거, 교훈이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가저온 이름으로 건축을 기록하고자 했다. 기존의 잡지와 달리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건축을 결과물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 과정에 담긴 다양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좋은 기억만 쏙쏙 골라서 기록하는 것도 아니고, 발주부터 의사결정과정의 갈등과 수정, 시공과정의 아쉬움 등을 가감 없이 모두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한 듯 했다.
이러한 시도는 건축사진가 김용관이 발행하고, 공간지 출신 김상호 기자가 편집장을 맡아 진행되었으며, 사진가와 기자가 중심이 된 잡지라는 점은 기존 건축 잡지와의 차별점이었다.


6호를 제외하고는 STATUS, WORK, DOCUMENTARY, CLOSING 이라는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STATUS는 앞서 이야기했든 과정을 짤막하게 보여주는 챕처로 8개 내지 12개 정도의 프로젝트들을 다뤘다. WORK은 페이지 비중은 가장 높고 완공작들을 다른 잡지와 비슷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챕터였다. 하지만 다큐멘텀의 중심은 그 다음챕터인 DOCUMENTARY였다.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 형식의 기록은 건축의 시작부터 완공이후까지를 매우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한 프로젝트를 최소 3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다루고 있는데, 건축주와의 만남과 대화, 주고받은 자료부터, 대지에 대한 조사, 설계안의 제시와 변경, 그리고 시공과정, 이후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겼다.
아래 창간 준비호에 실린 DOCUMENTARY는 양수인 건축사의 소솔집이 계획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건축주와 소통하며 작성한 메모와 모눈종이에 그린 평면도부터, 시공과정의 단계별로 촬영된 사진과 이야기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다큐멘텀을 소개하면서 창간준비호 0호에서부터 6호까지 발간되고 끝난 잡지라고 소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의 한명의 팬으로서 언젠가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놓고 싶지 않아서이다. 현실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처음 시작보다 어려울 수 있음을 알지만, 옛 친구를 추억하는 마음처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나는 다큐멘텀을 ‘건축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보려 했던 유일한 국내 건축잡지’로 기억하고 싶다. 이제는 많은 건축사들이 SNS를 통해 설계와 시공과정을 직접 기록하고 공유한다. 시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지만, 다큐멘텀이 오래전 던졌던 ‘건축의 과정을 기록하자’는 문제의식의 씨앗이 다른 방법을 통해 싹트고 자라나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도와 문제의식을 던졌기에 다큐멘텀은 한국 건축출판사에서 충분히 기억될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창간 준비호에서 발행인의 글은 0호가 시작되고 나면 멈출 수 없는 경주가 시작되고, 마감이라는 괴물이 회초리를 휘두르며 쫓아올 것이라고 적었다. 결국 그 경주는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출발선에 서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지친 주자를 대신해 바통을 이어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다큐멘텀은 끝난 잡지가 아니라 잠시 멈췄던 잡지가 될 것이다. 한 명의 옛 독자로서 그 날을 조용히 기다려본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박정연 건축사·그리드에이(Grid-A) 건축사사무소
건축사 박정연은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실무를 쌓은 후 그리드에이(Grid-A)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건축의 역할과 이를 만드는 건축사들이 놓여진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laqui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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