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티 주차, 이대로 좋은가? ‘개별필지 중심의 주차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2026.8

2026. 8. 31. 10:4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Piloti Parking: Is It Acceptable as It Is?
‘Rethinking an Individual Plot Parking Policy’

 

작은 필지로 이루어진 골목을 걷다 보면 소규모 주택이나 건물의 지상층에 마련된 필로티 주차장을 흔히 만나게 된다. 필로티 주차장이 연속해 골목의 풍경을 이루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미 오래되고 익숙하다. 그러나 건축사라면 누구나 이러한 풍경에 문제를 느꼈을 것이다. 다만 주차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여겨왔을 뿐이다.


일본이나 유럽 도시의 주택가에서는 필로티 주차장이 연속하는 풍경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자동차가 적거나 주차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다. 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적 단위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차 문제의 책임을 개별 건축물과 필지에 부과해 왔다. 반면 일본은 자동차 소유자가 인근에 보관 장소를 확보하도록 하고, 유럽의 많은 도시는 노상주차와 공동주차장, 대중교통 정책을 통해 주차 수요를 지구 단위로 관리한다. 우리나라의 건축주는 법이 요구하는 주차장을 자신의 대지 안에 성실하게 마련했다. 그러나 개별 필지에서 이루어진 성실한 대응이 골목 전체에서는 필로티와 차량 출입구가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으로 나타났다.

 

필로티 주차장이 연출하는 골목의 풍경 © 다음지도

 

그 결과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골목을 점령한 차량의 행렬과 소방차의 진입마저 가로막는 무질서한 불법 주정차,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면도로의 교통사고 위험, 포항 지진을 통해 드러난 일부 필로티 구조의 취약성, 필로티 주차장에서 발생한 차량 화재가 건물 전체로 확산될 위험 등이 그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높은 1층 공간도 대부분 주차장으로 소모된다. 무엇보다 필로티 주차장의 반복은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골목 상권의 형성을 가로막으며, 걷기 불편한 도시를 만든다.

 

주차장이 사라진 골목 풍경 예시 - AI 생성이미지
공동주차제 도입의 장점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일본식 차고증명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동차 제조업계와 소비자의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 실정에 맞는 다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필지 내 주차장 설치 의무를 완화하는 대신, 건축주가 인근 공영주차장이나 민간주차장, 노상주차장 등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주차시설의 주차면을 분양받거나 장기 사용권을 확보하면 대지 내에 주차장을 설치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안이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주차시설을 편의상 ‘공동주차장’이라 부르고자 한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령」에도 부설주차장을 해당 시설물의 부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있다. 그러나 공동주차장 주차면의 장기 사용권이나 이용권을 확보한 경우 이를 부설주차장으로 인정하는 구체적인 제도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관련 법령을 정비해 공동주차장을 보다 쉽게 조성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제도가 도입되면 공공과 민간의 공동주차장 사업자는 주차면 분양대금과 운영수입을 통해 건설비를 보전할 수 있다. 공동주차장의 사업성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공급 확대도 촉진될 것이다. 또한 주차시설을 낮에는 방문객이, 밤에는 지역 주민이 이용하도록 운영하면 시간대별 이용 효율도 높일 수 있다. 한정된 주차 공간을 특정 건축물에 고정하지 않고 수요가 발생하는 시간대에 따라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다.


기존 또는 새로 조성되는 공동주차장의 주차면을 인근 소규모 건축물의 부설주차장으로 분양하거나 장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공동주차장에 대체 주차면을 확보한 경우에는 기존 필로티 주차장을 상점이나 주민공동시설 등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제도적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축 건축물이나 단지에 설치하는 부설주차장 가운데 법정 주차대수를 초과하는 일부를 인근 소규모 건축물의 부설주차장으로 인정하거나 분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대규모 개발과 소규모 필지 사이에 주차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고, 공동주차장의 사업성과 공급을 함께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별 건축물에 종속된 부설주차장의 일부를 지역이 함께 활용하는 도시적 공유 자원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소규모 필지의 건축주에게도 이익이 있다. 필지 내 1층 공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건축물의 활용도와 수익성이 높아진다. 1층 면적을 충분히 확보하면 필요한 연면적을 얻기 위한 층수를 줄일 수 있고, 일조권 규제의 영향도 상대적으로 줄어 경제성이 개선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조권 규제나 법정 주차대수로 인해 확보하지 못했던 연면적을 추가로 확보할 수도 있다. 


공동주차장의 주차면을 확보하는 비용보다 1층 공간을 활용해 얻는 편익이 크다면 주차장 사업자와 건축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공동주차장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조성할 수 있으므로 소규모 건축물마다 주차장을 따로 설치하는 것보다 비용과 공간 활용 측면에서 효율적일 가능성이 크다. 기계식 주차설비나 최근 기술 발전으로 등장한 지능형 주차시스템을 도입하면 공간 효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는 작은 개별 필지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구조가 정착되면 공동주차장의 공급이 늘어나고, 소규모 건축물도 필요한 주차면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앞서 지적한 골목의 여러 문제도 함께 풀어갈 수 있다.


개별 건물마다 차량이 드나들 필요가 줄어들면 도시는 한결 걷기 좋고 쾌적해질 것이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저층 공동주택 1층의 카페테라스에서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동네 빵집과 슈퍼마켓이 집 가까이에 들어서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 매번 자동차를 타고 멀리 이동할 필요도 줄어들 것이다. 주차 정책의 변화가 골목 상권과 생활권을 되살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새로 조성하는 택지개발지구나 신도시에서는 계획 단계부터 공동주차장 부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새로 만들어지는 주택가와 상가주택 지역의 불법 주정차를 예방하고, 나아가 자동차가 점령하지 않는 골목을 실현할 수도 있다.


주차는 단순히 자동차를 세워두는 문제가 아니다. 건축물의 형태를 결정하고 골목의 표정을 바꾸며, 도시의 안전과 보행환경은 물론 지역 상권과 주민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도시정책의 문제다.


소중한 골목 공간을 계속 자동차에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되찾아 올 것인가.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 민범기 Min Bumkee
(주)테라도시건축사사무소

 

 

민범기 건축사·(주)테라도시건축사사무소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테라도시건축을 설립, 건축과 도시, 사람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공존 환경 구현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위원,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경관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협성대 도시공학과 겸임교수, 경기도 도시계획위원, 인천광역시 경관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알기 쉬운 도시이야기’와 ‘도시계획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공저, 대표작으로 더스타일 빌딩, 크란츠 빌딩, 보리호텔, 낙동강전망대 등이 있다.


mintool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