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하남 에이덴 신사옥 및 주차타워 은밀한 격자와 적층된 대지 2026.8

2026. 8. 31. 11:4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Hanam EIDEN Headquarters & Parking Tower
The Enigmatic grid and the layered Plane

 

하남의 신생 블록을 따라 들어선 지식산업센터들은 마치 한 시기에 일제히 세워진 영화 세트장 같다. 비슷한 나이의 건물들은 동일한 경제성의 논리에서 태어났지만, 저마다 외장 패턴을 달리하며 어떻게든 자신만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아직 빈 필지가 남아 있는 가로에는 사람과 시간의 흔적이 축적된 도시의 익숙함보다 개발 직후의 날것 같은 긴장감이 먼저 감돈다.

가로의 양편으로 늘어선 건물들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거대한 유리 외피다. 그러나 이 투명성은 도시를 개방하기보다 오히려 보행자의 시선을 분산시킨다. 유리는 내부가 아닌 주변부를 끊임없이 반사하며 그 본래 의도를 배신한다. 마치 자크 타티의 영화 ‘플레이타임(1967)’에서 모더니즘 도시의 유리면이 사람의 방향감각을 흐트러뜨리듯, 이 신도시의 풍경 또한 시선을 계속해서 미끄러뜨린다.
북남 방향의 가로를 따라 두세 개의 블록을 지나면, 그 끝에서 하나의 건축물이 시선을 붙든다. 주변 건물들이 외피를 통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는 사이, 이 건물은 장식을 거의 지운 채 오직 반복되는 백색 격자만을 내세운다. 지나칠 만큼 무표정하고 정직한 그 격자는 오히려 강한 존재감을 획득한다. 화려한 얼굴들 사이에서 무표정이 하나의 표정이 되는 순간이다.
건축사는 이 중성적인 격자의 존재감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두께 740밀리미터에 이르는 구조체를 날카롭게 드러내기 위해 역설적으로 얇은 백색 세라믹을 입혔다. 그 결과 빛을 머금은 두터운 격자의 몸체가 먼저 읽히고, 그 사이로 그림자를 품은 음각의 개구부가 드러난다. 박판 세라믹의 얇음은 격자의 두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재료의 가벼움은 구조의 무게감을 오히려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격자의 의미는 조형적 효과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보편성에서 비롯되는 역설에 있다. 격자는 구조를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건물의 핵심 프로그램을 감춘다. 연면적의 70퍼센트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옥외 주차장이다. 건축사는 프로젝트를 경제적으로 가능하게 한 이 조건을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격자의 질서 속으로 흡수함으로써 건축이 보여주는 얼굴과 내부 프로그램 사이에 의도적인 간극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격자는 구조인 동시에 가면이다.
수수께끼를 던지는 듯한 건축사의 태도는 중성적인 틀 안에서 사람과 자동차의 공간을 다르게 조직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외부와 맞닿는 면에서 사람의 공간은 유리면으로 보호하고, 자동차의 공간은 개방한다. 그 결과 7층과 8층은 격자 사이로 시선을 반사하는 반면, 2층부터 6층은 어두운 깊이감으로 시선을 끌어들인다. 여기에 옥상 테라스까지 이어지는 격자와, 무게에 눌린 풍선처럼 격자 밖으로 부풀어 나온 1층 근린생활시설의 유리면이 더해지면서 시선의 흡수와 반사를 조율하는 리듬이 완성된다.
이 상황에 금속 루버의 커튼이 개입한다. 건축사는 주차 공간을 완전히 노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역설적인 장치로 치환했다. 주차층 격자 사이를 따라 내려오는 백색 수직 루버는 바닥에서 살짝 떠 있어 가벼운 커튼을 연상시킨다. 개구부의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닫히거나 반쯤 열리며 실제 커튼 같은 표정을 만들고, 가새 구조를 가리기 위해 6층 상부에 덧댄 짧은 루버는 바란스 커튼처럼 그 재현성을 강화한다. 한순간 움직임을 멈춘 듯한 커튼들의 장면은 그 너머에 누군가의 생활이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안은 사람이 아닌 차량을 위한 공간이다. 역설적으로 사람이 머무는 층에는 커튼 대신 날것의 유리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격자 틀의 내부에는 판들이 적층된다. 작은 스케일의 단면에서는 동일한 두께의 수평선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두께가 존재한다. 350밀리미터와 480밀리미터. 실외 주차층의 바닥판은 데크플레이트와 무근콘크리트를 합한 350밀리미터이고, 실내와 실외의 경계층은 여기에 단열 뿜칠이 더해져 480밀리미터가 된다. 옥상 역시 뿜칠 대신 압출법 보온판과 석재 페데스탈이 더해져 별도의 두께를 형성하지만, 판들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130밀리미터의 차이다. 이 미세한 두께 차이가 사람과 자동차, 내부와 외부, 인공 환경과 자연 기후를 가르는 경계가 된다.
건축사에게 건축은 소통을 위한 매개다. 단면 전체를 지배하는 중성적인 격자 구조는 내부와 외부를 구성하는 판들에 동등한 위계를 부여한다. 그 안에서 130밀리미터의 수평선은 단순한 시공 디테일을 넘어, 그 층위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의 건축을 조직하는 자율적인 기준선으로 작동한다. 에이덴 신사옥은 외부 판이 단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도록 함으로써 실내와 실외의 위계를 낯설게 만들고, 이를 통해 경험자를 은밀한 대화로 초대한다. 특히 사람의 공간보다 오히려 생활감이 짙게 드러나는 주차층의 입면은 단순한 조형미나 위트를 넘어, 수직적으로 적층된 야외층의 가능성에 관해 묻는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하남 에이덴 신사옥 및 주차타워> 우측면 부분컷 © 장미

 

다음을 상상하시오: ‘N층으로 적층된 X를 위한 야외층’


이 질문은 바닥판을 단순한 구조체가 아니라 하나의 대지로 바라보는 사고를 전제한다. 1909년 ‘라이프’지에 실린 A. B. 워커의 삽화는 초고층 철골 구조 위에 전원주택을 삽입함으로써, 판 자체를 새로운 대지로 상상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는 또한 르 코르뷔지에의 돔이노 시스템을 발췌된 구조 원리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수용하는 적층된 지반으로 다시 읽는 시도이기도 하다.
에이덴 신사옥은 예상되는 신도시의 밀도를 수용하기 위해 ‘5층으로 적층된 자동차를 위한 야외층’을 실현했다. 그렇다면 오픈스페이스가 부족한 고밀도 저층 주거지에서는 어떤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까. 기존 건물의 바닥판과 구조를 남기고 새로운 외피로 전체를 다시 내부화하는 오늘날 공공건축의 리모델링 방식도, 일부 바닥판을 외부에 열어 둔 ‘적층된 야외층’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질문할 수 있지 않을까.
N은 대지의 조건으로 한정된다. 그러나 X에 대한 상상은 무한히 열려 있다. 식물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고, 광장, 공원, 놀이터, 물놀이장일 수도 있으며, 미술품과 음악이 공존하는 풍경일 수도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2001년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에서 열린 전시 ‘매개된 움직임 (The Mediated Motion)’에서 층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을 조성하며 사람과 교감하는 적층된 풍경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2016년 벨기에의 드 빌더 빈크 타이유는 버려진 병원 건물의 구조체를 완전히 외부화하여, 적층된 커뮤니티 공원이라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실험했다.
에이덴 신사옥의 은밀한 격자와 부유하는 판들은 건축사의 상상을 통해 또 다른 상상을 유도한다. 경험자는 격자 사이의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격자를 바라보게 된다. 건축은 그렇게 하나의 형태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다른 가능성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소통의 매개가 된다.



 

글. 강현석 Kang Hyun Seok

(주)SGHS설계회사 건축사사무소

 

 

강현석 건축사·(주)SGHS설계회사 건축사사무소


내러티브와 텍토닉에 주목하는 (주)SGHS설계회사 건축사사무소의 공동대표다. 대한민국 건축사이자 스위스건축가협회(SIA) 회원으로, 주요 작업에 서울시 통합 수장고, 진실과 화해의 숲, 서울 대청, 카페 루티니아 등이 있다. 저서로는 『투발루 프로젝트』, 공동 저서로 『제로의 책』, 『포스터 시리즈 시스템 1: 2000년 이후 뮤지엄 아이덴티티로서 포스터 시리즈에 대하여』, 『미로 3: OMA』가 있다. 영화와 건축 사이의 개념적 접점을 탐색하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강사로 설계 수업을 맡고 있다.


sacrolag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