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차장도 도시의 얼굴이 될 수 있다” 사람과 자동차가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뉴먼트를 제안하다 2026.8

2026. 8. 31. 11:40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Parking Lots Can Also Be the Face of the City”
Proposing a New Urban Monument
Where People and Cars Coexist

 

이달 만나볼 작품 ‘하남 EIDEN 사옥 및 주차타워’ 부지는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 신도시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연면적의 70% 이상을 주차장으로 계획해야 하는 철저한 사업성과 효율성을 요구 받는 대지이다. 특히 단순한 주차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사 신 사옥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진 탓에 ‘새로운 도시의 모뉴먼트’를 제 안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입면은 신도시의 단정한 조직을 닮은 격 자형 패턴으로 구성했다. 그럼에도 획일적인 도시 경관과 대비되는 긴장감을 형성하는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고, 업무공간과 주차공 간은 분리되어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뒤섞인 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월간 <건축사> 8월호 표지를 장식한 ‘하남 에이덴 신사옥 및 주차타워’의 설계자 허재한 건축사(좌)와 임진수 프랑스 건축사(우) _ (주)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 도심 주차문제를 해결하며,
사람을 위한 창의적 공간도 제시


박정연_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허재한·임진수_(주)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는 민간건축과 공공건축을 넘나들며 장소성과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새로운 건축적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유형을 답습하기보다 각 프로젝트가 가진 조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 다른 공간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정연_‘에이덴’은 창조와 창의를 바탕으로 커피 공유공간 설립을 통한 상호 연결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허재한·임진수_네. 말씀대로 에이덴은 커피 머신을 수입·판매·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입니다. 이탈리아 커피머신 총판을 맡고 있는데요. 업력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커피 머신 총판 중 최대 매출과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에이덴의 대표는 커피머신이 지닌 기계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커피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라는 성격을 가진 점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존 사옥은 이러한 기업 철학을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었고, 단순한 업무시설이 아니라 전시와 체험, 소통이 가능한 복합 커피문화공간을 만들고자 새로운 사옥을 계획하며 아크로마키를 찾아주셨습니다.


박정연_ 그럼 에이덴 신사옥&주차타워를 설계함에 있어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허재한·임진수_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건축주가 설계자를 신뢰했다는 점입니다. 특별한 디자인 조건을 제시하기보다 건축사의 제안을 충분히 듣고 함께 고민했습니다.
프로젝트 특성상 주차장과 업무공간을 동시에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재료와 공법, 공간구성 방식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건축주는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어 갔고, 임직원들에게도 설계안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며 적극적으로 소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설계자도 커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고, 결국 기업의 철학과 건축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 ‘색이 없는 건축’,
어떤 공간에도 스며드는 건축이 되다


박정연_ 사명인 아크로마키는 색이 없음을 뜻하는 아크로마와 아키텍처의 합성어로 알고 있는데요. 잘 이해한 것인가요? 사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설계자가 먼저 뚜렷한 스타일을 규정하기보다, 사용자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소통 중심의 결과물을 중시한다고 여겨집니다.


허재한·임진수_맞습니다. 정확하게 이해하신 듯합니다. 아크로마키는 색이 없음을 뜻하는 ‘achroma’라는 그리스 어원에서 유래했습니다. 여기에 ‘architecture’의 어원인 ‘arch’에 착안해 ‘archromaky’라는 사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즉, 색이 없는 건축이라는 의역으로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색이 없다는 뜻이 무채색의 건축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며, 말씀하신 대로 건축주를 만나면서, 사이트를 접하면서, 주변 도시맥락으로 다양하게 대응하고 변화할 수 있는 스타일을 가지겠다는 의미입니다. 건축은 설계자의 개성만을 드러내는 작업이 아니라 사회와 도시의 다양한 조건에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크로마키는 그런 태도를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 ‘도시 속 작은 모뉴먼트’를
만들어 내다


박정연_ 에이덴 신사옥&주차타워를 보고 설명을 듣다 보니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에이덴 사옥처럼 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난 작품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허재한·임진수_단독주택과 공공건축에서 다수 시도되었습니다. 단독주택은 실제로 건축주와 직접적인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공간이란 점에서 특색 있는 제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주요 작업으로 함양의 <요산거>, 부산 전포동 <방들의 집>, 후암동 <Je sais jamais>를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공공건축의 경우도 프로그램과 대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제안이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실제 아크로마키는 “가장 공공적인 것은 사회의 변화를 함께 따라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공공건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태도로서 흐트러진 배치를 통해 또 다른 위요공간을 형성하는 인천대공원의 <산림치유센터>, 신도시 내의 남겨진 도시의 파편인 땅이 갖는 상징성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이었던 <운정2동 행정복지센터>, 작은 스케일들로도 하나의 공공건축물로 의미를 부여해 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한 <용산 시니어클럽>과 <청담동 재너머 경로당>도 그런 노력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획일적인 도시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축을 만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도시의 작은 모뉴먼트가 될 수 있는 건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모든 건축은
시각적 공공재


박정연_에이덴 신사옥은 미래형 스마트 리테일 체험공간입니다. 건축 전문가이자 후학 양성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비즈니스와 공공성의 조화를 어떻게 타협하고 결합하는 것이 이상적일지 궁금합니다.


허재한·임진수_에이덴 신사옥을 계획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 점이 바로 공공성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건축물은 ‘시각적 공공재’라 생각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사적인 건축물이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덴 신사옥도 마찬가지입니다. 민간에게 불하된 택지지구의 주차장 전용부지는 분명 공용주차장이 70%의 면적을 차지하도록 규정하지만, 개인의 소유가 됩니다. 건축주가 회사라면 개별 회사의 건축물인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공공의 영역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회사의 정체성입니다. 에이덴은 커피를 중심으로 사회적인 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신사옥을 계획했습니다. 이러한 건축주의 니즈는 필연적으로 민간 건축물이 공공성을 담보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온라인 소통이 중심이 되는 시대일수록 오프라인 개별 건축물들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공적 역할, 즉 공공성에 대한 대답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정연_오피스 공간과 주차장이라는 서로 다른 객체, 전시장과 업무시설 등 용도의 다양성은 건축적 프로그래밍 과정에서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고, 신도시라는 특성 역시 표현과 기교에 제약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허재한·임진수_가장 먼저 검토한 것은 지구단위계획과 건축법이었습니다. 주차장 부지라는 규제는 분명한 한계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건축을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법적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전시장과 업무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야 했고, 동시에 기업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옥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입면은 중층의 주차장과 상층의 업무시설을 하나의 패턴으로 읽히도록 계획했습니다. 격자 패턴은 신도시의 직교형 도시조직에서 추출한 것으로, 내부 프로그램과 관계없이 하나의 건축으로 인식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모서리 대지라는 특성을 적극 활용해 1층을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습니다. 상부의 규칙적인 패턴과 대비되는 개방적인 저층부를 통해 누구나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결국 이 건축은 단순히 주차장을 수용하는 건물이 아니라, 도시와 시민을 연결하는 새로운 공공적 장소를 제안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를테면 도시 경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모뉴먼트의 성격을 갖는 동시에 주차장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않는 방식인 것입니다.


# 건축주·시공사와의 완벽한 하모니가
프로젝트 성공으로 귀결


박정연_이번 작업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허재한·임진수_아크로마키는 아틀리에 규모의 건축사사무소인 만큼 대형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이덴 신사옥은 사무소가 한 단계 성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 프로젝트였습니다.
무엇보다 건축주의 전폭적인 신뢰와 시공사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긴 공사 기간 동안 상주감리를 수행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신속하게 대응했고, 설계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디테일 도면을 작성하며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최근 건설 현장은 안전과 품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공정 중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설계와 시공, 감리가 긴밀하게 협력해야 좋은 건축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은 설계부터 준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외부 변수와 마주하게 됩니다. 에이덴 신사옥은 이러한 위험 요소를 사전에 인지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건축의 완성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배우게 한 뜻깊은 프로젝트였습니다.

 

후암동 단독주택 ❘ La Masion, Je Sais Jamais © 장미

 

# ‘변하는 공간과 변하지 않는 상징성’,
이것이 에이덴 신사옥의 가장 큰 매력


박정연_계획 당시와 비교해 완공 후 건축사님이 꼽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어디인가요?


허재한·임진수_특정한 공간 하나를 꼽기보다는 건축물 전체가 보여주는 상징성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공간은 직교하는 격자 패턴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내부는 프로그램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할 수 있는 가변성을 갖도록 계획했지만, 이러한 변화는 외부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이 기둥 없는 전시장입니다. 무주(無柱) 공간으로 계획해 전시와 행사, 다양한 프로그램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내부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외부에서는 건축의 조형적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결국 내부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지만, 외부는 하나의 단일한 건축적 이미지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에이덴 신사옥은 도시 속에서 일관된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작은 모뉴먼트로 기능하도록 의도했습니다.

 

전포동 단독주택 ❘ House of Rooms © (주)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박정연_끝으로 독자들을 향한 한 마디와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허재한·임진수_지금 건축업계는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민간은 물론 공공 분야까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건축사들에게 쉽지 않은 환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건축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결국 건축을 좋아하고, 건축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희망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지금의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어렵고 부담이 따르지만, 누군가 먼저 길을 열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더 넓은 무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펼칠 수 있습니다. 건축 역시 이러한 도전의 축적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아크로마키는 공공건축 분야의 비중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기존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공공건축에서 새로운 공간 유형과 건축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목표로, 사회와 도시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축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박관희 기자

사진 안상진 기자

 

허재한 건축사 HEO Jaehan
(주)아크로마키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