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1. 11:55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Unleashing Architectural Creativity in London,
Where There Are No Specific Regulations on Heights or Sizes”
건축사에 ‘경영자·리더’ 자질 요구하는 영국
관습·선례 중시 영미법적 특성, 건축에도 적용

월간 건축사는 해외 실무경험이 있는 건축사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 제도나 정책의 한계점, 개선 방향 등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영국 건축사시험에는 ‘경영 능력’에 관한 과목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건축사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데 있어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영자이자 리더’의 자질을 갖춰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급을 떠나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위해 주니어 직원도 회사 대표와도 치열하게 논쟁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사이 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건축주도 기본적으로 건축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습니다. 당연히 전문가인 건축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도 확고합니다. 그렇기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건축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건축사는 초기 건축 허가단계부터 구조, 설비, 친환경, 일조권 등 전문 협력업체와 협업해 기술적인 완성도와 공공성을 초기부터 확보합니다. 건축주는 이에 대한 초기 용역비용 지불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영국 런던에서 건축설계 작업을 진행 중인 손원일 영국 왕립 건축사(JAIA Architects)는 도시 맥락 속에서 건물과 사람들이 호흡해 온 영국의 사례를 소개했다.

Q1. 어떤 나라에서 실무를 진행했고, 당시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학사를, 영국에서 석사를 졸업한 뒤 런던에 위치한 두 곳의 건축사사무소에서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입사 초기엔 프로젝트 초기 단계 콘셉트 디자인부터 건축허가(Planning Permission)를 받는 일을 했습니다. 영국은 모든 프로젝트마다 지역 이해관계자에게 설계안과 건물 용도를 전시·설명하는 공청회를 개최했습니다. 당시 저에게는 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청회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건축 설계안을 수정했습니다.
대부분의 대형 프로젝트는 건축 전문가가 아닌 지방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건축심의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습니다. 정책과 건축법에 맞게 설계됐어도, 허가는 건축 비전문가인 정치인의 거수투표로 결정됩니다. 이때 정치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워털루(Waterloo)지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미 허가를 받은 건물의 높이를 높이는 안이었고. 담당 공무원은 허가를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공청회에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심의위원회 의원들이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결국 안을 부결시켰습니다. 건축이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대상지 주변의 이해 당사자까지 고려하는 건축을 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Q2.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설계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이 있었다면 어떤 점이었나요?
직급을 떠나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위해 회사 대표와도 치열하게 논쟁(Debate)하는 영국의 문화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니어 직원도 언제든 대표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격 없는 토론을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이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회사 대표도 주니어 직원의 다양한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주니어 직원일 때부터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력하는 사람이 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건축주는 건축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좋은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머리를 쥐어짜서 나오는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꾸준히 발전시키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또한, 초기 건축 허가 단계부터 구조, 설비, 친환경, 일조권 등 전문 협력업체가 함께 합니다. 건축주는 이에 대한 초기 용역비용 지불을 당연하게 생각하기에, 기술적인 완성도와 공공성을 초기부터 확보할 수 있습니다.
Q3.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제도나 정책 중 현장에서 불편하거나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영국은 건축허가를 받는 방식이 타 국가와 다릅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축 비전문가인 지역의원으로 이루어진 건축심의위원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이 건축 프로젝트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여겨집니다. 더욱이 이 건축허가가 건축 설계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콘셉트부터 실시 설계에 이르기까지의 총 건축 설계비 중 건축허가에 관한 설계비용이 다른 과정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건축 허가를 받을 시 성공보수가 주어지는 경우도 다수 있습니다.
영국의 건축 제도는 크게 ▲건축법규(Building Regulations), ▲계획정책(Planning Policy)으로 나뉩니다. 건축법규는 기술적 안전성을 다룹니다. 계획정책은 건축 허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하면, 영국의 중앙정부는 큰 방향성만 제시하고, 지방자치정부에서 각자 지역에 맞는 정책을 세밀하게 세우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중앙정부의 법률적 토지 이용을 기반으로, 지방자치정부의 정책이 세워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건축법규를 준수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설계를 해야 하는 한국에 비해, 영국은 정책 해석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세인트폴 대성당 및 국회의사당 조망축(Viewing Corridor)을 제외하면, 런던 내 건물 높이 및 크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가 없습니다. 규제가 없기 때문에 건축사마다 각자의 시선에서 이를 해석·적용하면, 다양한 건물 매스와 건축면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건축사는 건축 설계안을 발전시키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또한, 건축법규에 정해진 틀이 있지만, 대지의 주어진 상황과 정당성에 따라 대안적 접근이나 예외적용을 허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국의 문화적 특성인 관습과 선례를 중시하는 영미법적 특성이 건축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건축법도 조금 더 다양한 대안을 추구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Q4. 건축사의 역할이나 사회적 위상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영국과 한국이 확실히 다릅니다. 먼저 제도적으로, 영국건축사협회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사(Architect)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불법으로 처벌됩니다. 하지만 건축사(Architect) 자격증이 없더라도 아무런 제재 없이 건축설계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사’라는 명칭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건축허가를 받는 일이라든지 건축 관련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로 인해 건축설계 업무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분야가 생겨나면서 현업 과정에서 건축사의 위치와 역할이 위협받기도 합니다.
건축사 시험의 지향점도 다릅니다. 한국의 건축사자격시험이 기술적 능력, 설계 능력, 작도 능력을 중점적으로 봅니다. 반면, 영국의 건축사 시험(Part 3)에는 ‘기술적 능력’은 전혀 평가하지 않고, ‘경영 능력’을 평가하는 과목이 있습니다.
건축사의 직업윤리, 사명, 회사를 운영하고 이끌어 나가는 방법, 건축주와의 관계 및 계약 이행, 법적 분쟁 해결 능력 등을 평가합니다. 영국에서 건축사란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을 짓는 데 있어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영자이자 리더’의 자질을 갖춰야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주의 범위와 사회적 인식도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건축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전문가에 대한 신뢰입니다. 대부분의 영국인은 신축 아파트보다 100년 이상 된 집이라도, 개성 있는 주택을 선호해 증·개축을 원하는 개인 건축주가 많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건축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에 “건축은 당연히 전문가인 건축사에게 맡겨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합니다.

Q5. 해외에서의 경험이 건축사로서의 생각이나 방향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설계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영국에서 건축사로 일한 경험보다, 영국에서의 생활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건축은 건물을 넘어,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 문화, 사람이 사는 방식, 그리고 행동 양식까지 모든 것을 종합한 예술이자 인문학입니다.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느낀 점이 많습니다. 저는 서울과 영국의 도시구조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봅니다. 영국의 경우, 최근 10년 사이에 주차장이 없는 고층건물들이 빽빽하게 새로 자리를 잡았지만, 주거지역은 여전히 100년 이상 된 저층위주의 집이 주를 이룹니다. 반면, 한국은 개인 자동차가 없으면 불편한 도시 구조가 됐습니다. 저층 위주의 집은 고층 아파트로 신축돼, 주거지역이 고층 아파트 위주로 변했습니다. 도시의 변화와 문화적 차이를 보면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을 넘어 건물이 도시 맥락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를 더 깊게 고민하게 됐습니다.
글 조아라 기자
손원일 건축사 Son Won-il
JAIA Architects
건축사·영국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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