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크래커’, 낡은 벽돌 위에 새긴 신촌의 리듬 2026.9

2026. 9. 30. 11:35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Cracker’: The Rhythm of Sinchon Engraved on Old Bricks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때 대학가 문화와 음악의 중심지였던 이 거 리는 젠트리피케이션과 코로나19를 거치며 서서히 활기를 잃어갔 다. 1966년 사용승인을 받은 노후 건물 한 채가 대수선을 거쳐 ‘크 래커(Cracker)’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이 거리에 작은 변 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였다. 최민욱 건축사(주. 노말 건축사사무소)는 과자 ‘크래커’의 표면과 같은 타공 벽돌 파1970~1990년대 신촌의 음악적 전성기를 새겨 넣었다. 76제곱미터 남짓한 좁은 대지, 건축물대장상 철근콘크 리트조로 기록돼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적조였던 구조, 인접대지와 협의가 된 줄 알았던 대지 침범까지 예상치 못한 변수의 연속이었다. 설계에만 8~9개월, 완공까지 꼬박 2년이 걸린 이 프로젝트는 이제 신촌 거리에서 조용하지만 뚜렷한 존재감으로 자리 잡았다. ‘월간 건축사’ 9월호 표지를 장식한 ‘크래커’의 설계자 최민욱 건축사를 만나 프로젝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월간 <건축사> 9월호를 장식한 ‘크래커’의 설계자 최민욱 건축사(주. 노말 건축사사무소)

 

# 평범함을 조금 비틀어
새로운 건축 만들어


박정연_ 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무소명 등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최민욱_ 노말 건축사사무소의 최민욱 건축사입니다. 2020년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뒤 수도권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무소 이름인 ‘노말(NOMAL)’은 영어 ‘normal’에서 ‘r’을 빼고 발음만 차용한 것입니다. 일상 속 평범한 요소를 살짝 비틀어 새롭고 비범한 공간과 건축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같은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박정연_ 중국에서는 배나 관련 상징물을 사무실에 두면 사업이 순항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노말에 와보니 큰 말 조형물이 있어, 말처럼 열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자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니 동물 ‘말’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네요.


최민욱_ 조형물도 있지만 출입문에는 직원이 직접 말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습니다. 사실 올해가 말의 해이기도 해서 좋은 계기와 성과가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월간 건축사’에 작품을 소개하게 돼 기쁜 마음입니다.
말 조형물은 과거 광고에 활용됐던 소품인데, 마음에 들어 트럭을 보내 직접 가져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등 인연을 만들어줬으니, 그 쓰임은 충분히 해준 것 같습니다.

 

# ‘크래커’에 담은
신촌의 기억과 새로운 가능성


박정연_ 작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크래커’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최민욱_ 과자 ‘크래커’를 연상하시면 됩니다. 이를 비교적 직관적으로 입면 형태를 고려해 이름을 정했습니다. 신촌이라는 지역에 자리한 건축물이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기억할 수 있는 건축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대중적인 모습으로 다가가길 바란 것이죠. 실제 입면을 스터디하는 과정에서도 크래커 특유의 표면 질감과 이미지를 참고하기도 했습니다.


박정연_ 신촌이라는 지역의 문화적 쇠퇴와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켜본 건축주와는 처음 어떤 대화를 나누며 프로젝트의 방향을 설정하셨나요?


최민욱_ 건축주는 신촌에서 오랫동안 상업활동을 해오신 분입니다. 1980년대 문화적·사회적 거점으로서 새로운 사조와 예술적 감성이 교류하던 시대부터, 중국 관광객이 대거 유입되던 시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특색 없는 상업시설이 들어서고, 코로나19로 상권이 침체됐던 시기, 그리고 유흥시설 중심으로 변화한 오늘날까지 신촌의 흥망성쇠를 직접 목격하셨습니다.
그래서 과거 신촌이 지녔던 문화적 활기를 다시 되살리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설계 기간 내내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사무소 역시 이러한 생각에 공감했습니다.
무분별하게 또 하나의 일반 상업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촌의 풍경과 분위기에 작은 변화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건축물을 고민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 건물 하나가 도시재생을 이끌 수 있는 규모는 아니지만, 적어도 변화의 시작점이자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 신축 대신 대수선,
‘남겨야 할 것’을 고민하다


박정연_ 신축이 아닌 대수선을 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최민욱_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건축물 사용승인 시기가 1966년인데, 신축을 할 경우 건폐율 때문에 건축면적이 기존 건물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주차장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존 건물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대지 규모가 76제곱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보니 새로운 건축을 계획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건물의 노후화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습니다. 건축주 역시 새로운 변화를 강하게 원했고, 과거 이 지역의 정서를 담아내면서 신촌 문화의 복원을 위한 하나의 변곡점으로 기능하도록 대수선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업건물은 임대수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크래커’의 건축주는 임대수익보다 지역의 문화발전에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길 먼저 생각했습니다. 설계자에 대한 신뢰도 충분히 보여주셨기에 건축주의 의도에 맞춰 지역의 변화를 위한 작은 씨앗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concrete sandwich(논현동 사옥) _ 대수선> © (주)노말 건축사사무소
<적호재 _ 벽돌> © (주)노말 건축사사무소
<주막 _ 대수선, 도시재생> © (주)노말 건축사사무소

 

# 기존 구조는 살리고,
새로운 공간 경험은 더하고


박정연_ 구조적으로 취약했던 3·4층을 해체·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 건물의 어떤 요소를 남기고, 또 어떤 부분을 새롭게 만들기로 결정하셨나요?


최민욱_ 구조적으로 취약한 부분은 있었지만 기존 구조 프레임과 슬래브는 최대한 살려 재활용했습니다. 인접 대지와 맞닿아 있는 벽체 역시 가능한 한 유지했고, 층별 면적과 건축물의 전체적인 부피도 기존 건물을 최대한 따르려 했습니다.

반면 공간의 편리성과 특색 있는 경험을 위해 엘리베이터와 계단 부분인 코어는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외장 입면 역시 건물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인 만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했습니다. 대수선은 단순히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기존 건물의 어떤 부분을 남기고 어떤 부분을 새롭게 해석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판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음악의 파형을
벽돌에 새기다


박정연_ 1970~1990년대 신촌의 음악·문화적 기억을 건축적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민욱_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역시 입면입니다. 과거 신촌의 음악적 감성을 어떻게 시각적 요소로 옮길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결국 음악 비주얼라이저의 패턴을 모티브로 삼아 벽돌의 타공 패턴을 구성했습니다.
벽돌 영롱쌓기 방식을 활용해 도면에서 계획한 패턴을 실제로 한 장 한 장 구축했습니다. 공사 기간 내내 현장을 지키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상주감리처럼 공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부 프로그램과 운영 방식에도 음악적 요소를 연결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일부가 실현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대수선 프로젝트이다 보니 작업이 본격화되어야 알 수 있는 변수도 많았습니다.

 

건축물대장에는 철근콘크리트조로 기록돼 있던 3층이 실제로는 조적조여서 별도의 구조 보강이 필요했습니다. 지하 역시 철근콘크리트 기초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막상 굴착해 보니 큰 돌이 그대로 구조를 받치고 있어 기초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또 기존 건물의 일부가 인접 대지를 침범하고 있었는데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해당 부분을 잘라내야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계속 발생했지만 이것이 대수선의 어려움이고, 동시에 기존 건축물 또는 공간과 대화하며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조용하지만 뚜렷한 존재감,
신촌에 변화를 만들다


박정연_ 크래커가 완공된 이후 신촌 거리와 주변 공간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길 기대하셨나요? 현재 지역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최민욱_ 사실 크래커는 마찬가지로 대수선 했던 프로젝트였던 ‘콘크리트샌드위치’, 외장 벽돌쌓기를 다양하게 실험했던 ‘적호재’, 지역변화를 고려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였던 ‘주막’ 등 앞선 작업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입니다. 다양한 변수가 발생하는 현장에서 설계와 시공, 건축주와의 관계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법을 어느 정도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크래커 주변에는 신촌 현대백화점 주차장과 각종 간판이 빼곡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 풍경 속에서 크래커는 독특한 입면과 묵직한 형태를 통해 주변과는 다른, 조용하면서도 특이한 건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완공된 지 2년이 지난 지금은 건물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는걸로 압니다. 예전에는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였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도 사라졌습니다.
도시재생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규모의 변화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래커’가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도 ‘우리도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동기부여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시간이 쌓인 건축물을
새롭게 읽어내고 싶습니다”


박정연_ 계획 당시와 비교해 완공 후 건축사님이 꼽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어디인가요?


최민욱_ 코어 공간, 즉 반(半)외부 공용 계단공간을 꼽고 싶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방식도 독특하고 바람이 드나드는 방식도 다릅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공간의 풍경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공간 경험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롱쌓기 벽돌 패턴 역시 평범하지 않게 구성했기 때문에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모두 다릅니다. 입면상 부분적으로 곡면들이 있는데 통일성을 부여하고 품질이 나오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리모델링이라는 조건 속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쉽지 않아 결국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건축주와 시공 관계자, 설계자 모두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을 놓고 모두가 만족했기 때문에 지금은 힘들었던 과정 역시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정연_ 건축사님의 향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최민욱_ 간단합니다. 노말건축의 구성원들과 지금처럼 꾸준히 좋은 작업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서울에는 노후화된 건축물이 많습니다. 시대를 관통해 온 건축물도 있고, 그 안에 의미 있는 시간이 축적된 건축물도 있습니다. 앞으로 안전이나 미관 등의 이유로 다양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늘어날 텐데, 이런 사연을 지닌 건축물을 대수선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건축물이라도 그 자체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과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 유행했던 건축양식과 시공기법 역시 건축물에 녹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발굴하고 재해석해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을 읽어내고, 이를 새로운 건축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박정연_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민욱_ 모두 파이팅 해서 함께 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바람도 있습니다. 건축사가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회적 규범 가운데 하나가 건축법인데, 현재 건축법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 있어 아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 만큼 자의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사와 허가권자의 해석이 좀 더 일치하고 예측 가능해졌으면 합니다. 협회와 건축사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기준을 정리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사들이 디자인적·기술적·기능적인 부분에 더 집중해야지, 법 해석의 차이 때문에 불필요하게 지치거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제도와 행정이 건축사의 창의적인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박관희 기자

사진 주호민·최재권 기자

 

최민욱 건축사 Chai Minyuk
(주)노말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