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30. 11:50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Individual Contracts between Client and Expert Groups vs.
Architect-Led PM (Korean Model)
계약 없이 프로젝트 진행 안 해
소규모 초기 사업 타당성 계획도 비용 청구
계약서상 업무(Scope of Work)가 아닐 시,
실 투입인원에 따른 용역비 청구해

월간 건축사는 해외 실무경험이 있는 건축사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 제도나 정책의 한계점, 개선 방향 등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한국과 영국 모두 기본적인 건축사의 업무 방식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건축 산업전반의 환경에서 차이점을 느낍니다. 아시아, 중동 프로젝트의 경우 수직적인 위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비해, 영국이나 유럽 프로젝트의 경우 수평적인 위계의 소통이 이뤄집니다. 건축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창의성을 존중은 물론이고요.
제도적인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영국에는 인허가만큼 중요한 CDM 법규가 있습니다. CDM 법규는 영국 보건안전청이 주관하며, 프로젝트 시작 전인 설계 단계에서도 건축사는 CDM 컨설턴트 등과 함께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관리에 대한 계획을 제출해야 합니다. 위험 식별 및 제거 계획, 유지 관리 계획 및 화재 전략 등을 보건안전청에 고지해야 합니다."
정현승 영국왕립건축사(Leonard Design)는 안전관리 시스템 등과 관련한 영국의 건축 제도 등을 소개했다.
Q1. 어떤 나라에서 실무를 진행했고, 당시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실무를 했고, 영국에서는 현재 건축사사무소(Leonard Design)에서 친환경 건축 석사 공부를 병행하며, 9년 정도 건축 설계 실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셰필드(Sheffield) 도심 지역의 낙후된 중심 상업지구 마스터플랜 계획이었습니다. 기존 마스터플랜을 2013년 셰필드 시의회(Sheffield City Council)가 취소했는데, 건축물 대부분을 철거한 뒤 새로운 대형 상업시설을 배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2015년부터 마스터플랜을 재디자인했습니다. 기존 거리 패턴을 유지하면서, 개발 지역을 작은 블록으로 나눠 각기 다른 디벨로퍼(시행사)에 넘길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셰필드 시의회의 재정적 위험을 줄이면서도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었습니다. 마스터플랜 안의 11개 개발 블록의 초기 사업 타당성 계획(Feasibility Study)을 진행했습니다. 디벨로퍼와 시의회와의 좋은 파트너쉽을 통해 4개의 건물 블록을 저희 회사에서 설계해 2024년에 모두 완공했습니다. 마스터플랜에서 스케치로 시작된 2D(이차원)의 네모 블록들이 3D(3차원)의 건물로 디자인되는 과정의 흥미로운 프로젝트 사이클(Project Cycle)을 볼 수 있었습니다.

Q2.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설계 환경이나 일하는 방식이 있었다면 어떤 점이었나요?
디자인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나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방식 등 기본적인 업무 방식은 한국과 영국이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건축 산업전반의 환경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영국이나 유럽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 건축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창의성을 존중해주는 수평적인 위계의 소통이 이뤄집니다. 반면, 아시아, 중동 프로젝트의 경우 수직적인 위계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 대부분의 건축사사무소의 근무환경도 수평적인 관계로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직급(Title), 연차와 상관없이 토론과 비평을 통해 디자인이 진행됩니다. 인력관리도 프로젝트 진행 스케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합니다. 팀으로 고정하는 것보다 유연해 모든 직원들이 매년 28일의 법정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Q3.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제도나 정책 중 현장에서 불편하거나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영국에는 인허가만큼이나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CDM 2015(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 Regulations) 법규가 있습니다.
영국 보건안전청(HSE; Health and Safety Executive)이 주관하며, 모든 건축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관리에 대한 계획을 제출해야 합니다. CDM은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건설 프로젝트에 적용되며, 법적 책임과 연결돼 있습니다. 실제로 CDM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설계 단계에서도 건축사 또는 CDM 컨설턴트 등이 함께 리드해 위험 식별 및 제거 계획, 유지 관리 계획 및 화재 전략 등을 보건안전청에 고지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2017년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 참사 이후 강화된 건축물 안전규제 법안(Building Safety Act 2022)이 도입돼, 고위험 건물의 구조 및 화재 안전에 대한 프로젝트 관련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합니다. 그렌펠 타워 참사는 24층에 120가구가 거주하는 대형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입니다.
2025년 10월자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 재해 사망률을 영국과 한국은 13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한국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건축사 및 관련 전문가들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와 관련된 역할 및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안전관리 시스템 또는 제도 구축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Q4. 건축사의 역할이나 사회적 위상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영국이나 유럽 클라이언트 기반의 프로젝트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부터 인허가 전문가(Planning Consultant), 비용 컨설턴트(Cost Consultant), 엔지니어(Engineer) 그리고 건축사(Architect) 등이 모여 협업을 진행합니다프로젝트 팀 내부에서도 전문가로서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클라이언트 또한 수직적인 업무지시나 무리한 작업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클라이언트는 이와 같은 프로젝트 팀의 초기 고용 및 비용 지불을 계약서에 명시합니다. 계약을 맺는 방식에 있어서도 영국에서는 주로 클라이언트가 각 전문가 집단과 개별로 계약을 체결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아닌 건축사가 PM(Project Manager)역할까지 하면서 협력업체들과 계약을 하는 전통적인 계약 방식이 아직 유효한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Traditional Contract라고 부릅니다.)
영국에서는 계약의 중요성을 건축사 자격 취득과정(Part3)에서 집중적으로 배우며, 실무 진행에 있어서도 계약 없이는 프로젝트를 절대 진행하지 않습니다. 건축사도 소규모의 초기 사업 타당성 계획이라도 비용을 청구하며, 계약서상의 업무(Scope of Work)가 아닐 경우는 실 투입인원에 따른 용역비를 청구하게 됩니다.
건축 계획이나 실무 능력 위주로 검증하는 한국의 건축사 자격시험과 다르게, 영국의 건축사 자격시험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일어날 수 있는 계약 및 시공 관리(Contract Administration), 리스크 관리(Risk Control), 설계비 도출(Fee Calculation), 인허가 진행(Planning and Building Control), 조달 및 시공사 입찰(Procurement and Tendering) 등의 디자인 외의 전반적인 건축 프로젝트 진행 업무능력을 검증하고자 합니다.
Q5. 해외에서의 경험이 건축사로서의 생각이나 방향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설계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면?
영국에서 건축사로서 실무 경험을 이어가며, 건축사의 디자인 능력 외에도 다양한 역할과 윤리, 사회적 책임을 배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건축사사무소의 운영의 전반적인 이해가 늘어났으며, 향후 독립된 건축사로의 꿈을 꾸게 됐습니다.
영국의 건축 프로젝트는 정책 및 설계적으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자연스럽게 영국의 친환경 건축 트렌드인 탄소 중립 건물(Net Zero Carbon Building), 패시브 하우스(Passivhaus), 저탄소 목구조 자재(CLT), 건강웰빙 중심 설계(Health & Wellbeing)등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친환경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로 이어져 석사과정을 이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건물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기보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며,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건강을 위한 건축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글 조아라 기자
정현승 건축사 Jeong Hyeon-seung
Leonard Design
영국왕립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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