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8. 09:05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The rice is the answer!"
전국의 들판에서 벼 베기 소식이 들려 온다. 8월에 벌써 수확해 추석 명절에 출하된 조생종 벼 를 제외하면, 지금 많은 논의 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벼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은 통일신라 때 만 해도 귀족식품으로 인식되었고, 고려시대에는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이 될 정도로 귀중한 존재였다고 한다.
지금은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잡곡밥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귀리니 보리는 물론 렌틸콩, 퀴노아, 햄프시드 같은 희한한 이름의 곡식들을 쌀에 섞어 먹는다. 하지만 70년대만 해도 쌀이 부족해서 건강과 상관없는 이유로 혼식을 장려했다.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분식을 권장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면 담임선생님이 잡곡밥을 싸왔는지 검사하는 풍경도 흔했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흰 쌀밥만 들어 있으면 부랴부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보리나 콩을 한 두 알 얻어 내 흰밥을 잡곡밥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아이들이 자라 식구들 모두 밖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으니 집에서 밥을 하는 일이 드물게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벼 베기 소식을 들으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햅쌀밥 위에 알이 꽉 찬 간 장게장을 얹어 먹거나, 참기름 손으로 발라 구운 김에 싸서 먹고 싶어진다. 따끈한 밥에 빠다 - 어릴 때는 버터도 아닌 마가린을 빠다라고 불렀다 – 만 한 숟가락 넣고 간장에 비벼 먹고 싶 기도 하다. 거기에 달걀 프라이 한 알 더 넣어 비비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별미였는데… 주 변에 미슐랭 맛집이 늘어서고 방송에서 소개한 식당이 즐비해도 가끔은 단촐하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마침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쌀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흰 쌀밥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캠페인 을 만들어서 온에어 시키고 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5초 정도의 짧은 영상 다섯 개였다. 각각 갓 지은 흰 쌀밥 위에 간장게장, 김, 달걀 프라이, 명란젓, 낙지볶음 등 반찬이 얹혀지는 모습이 영상의 전부이다. 소리는 칼질하는 소리, 김 자르는 소리, 달걀 부치는 소리가 전부. 자막으로 ‘지금 이 순간 밥이 답이다’라는 카피가 한 줄 나타날 뿐이다.
맞는 말이다. 가끔 밥이 답이 될 때가 있다. 팔순 넘은 나의 노모는 아직도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 라며 딸을 볼 때마다 밥 먹어라 성화를 하신다. 심사가 사납거나 기운 빠지는 일이 있을 때도 밥 한 그릇 든든하게 먹고 나면 힘이 난다. 처음 만나 서먹한 사람과도 밥 한 끼 먹 고 나면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된다. 못 먹던 시절을 지나와서 그런지 밥 먹었냐는 물음을 일상 적인 인사로 쓰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 정성껏 지은 밥에 그 계절에 나는 반찬을 올려 밥상 위에 4계절을 차릴 줄 알았던 우리나라 사람들. 농림축산식품부의 또다른 캠페인은 계절에 따 라 달라지는 밥상을 보여 주며 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여1) 오~ 밥 좀 하는데?
여2 NA) 빵이나 파스타에는 없다.
오직 밥상에만 봄이 있고,
여름도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다.
여1) 밤 냄새 너무 좋다!
여2NA) 계절 음식과 함께하는 밥상은
365일 설렌다.
여2) 밥 나왔습니다!
여2NA) 밥에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다.
밥이 답이다.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계절밥상 편_2018_카피
물론 빵이나 파스타에도 계절을 담을 수 있다. 왜 그렇게 썼는지 짐작은 가지만 카피라이터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무신경이 좀 거슬리기는 한다. 하지만 쌀을 씻어 안치고 탁탁탁 야채 를 썰고 자글지글 튀기고 보글보글 끓여서 온 식구가 식탁에 달려드는 일은 빵이나 파스타보 다는 밥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장면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밥이 답이다’ 캠페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밥 먹으라는 얘기를 하려고 제 대로 작정을 했는지,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을 겨냥한 동영상도 제작되었다. 영상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남자는 ‘혼을 다해서 차린 밥’이 혼밥이라는 해석을 내세우며 근사한 밥상을 스스로 를 위해서 차린다. 인터넷으로 요리법을 찾아서 요리를 하고 예쁘게 담아 먹기 전에 사진을 찍 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남) 오케이 밥을 먼저 하고,
브로콜리, 아스파라거스…
남NA) 혼자 먹는 밥이라고
대충 먹긴 싫다. 혼밥,
혼을 다해서 차린 밥!
내게 혼밥이란 그런 것.
남) 하! 밥 냄새 진짜 좋다.
잘 먹겠습니다.
남NA) 밥에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다.
밥이 답이다.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혼밥 편_2018_카피
며칠 전 대장내시경을 받느라 꼬박 하루 반을 굶었다. 굶고 속을 비운 탓에 체중이 줄었고, 발 견된 용종을 제거하느라 두 번이나 시술 침대에 누워야 했다. 마취 기운이 남아 있어 살짝 비 틀거리며 일어나는데 더운 김이 뽀얗게 올라오는 흰 쌀밥 생각이 왈칵 들었다. 아무 반찬 없이 흰 밥 한 공기로 텅 빈 위와 장을 채우고 싶었다. 정말 배가 고플 땐 밥이 먼저 생각난다는 사 실을 몸으로 체험한 순간이었다.
“상여는 소박히 허고 음식은 넉넉히 하라. 장례는 5일간 치르되 문상객은 귀천에 상관 없이 받아라. 사는 동안, 도움 받지 않은 이가 없다.”
뜨거운 여름부터 9월 말까지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여자 주인공 고애신의 할아버지 고사홍이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이다. ‘미스터 선샤인’에는 적어두고 싶은 절 절한 그리움의 대사나 가슴 아픈 민초들의 대사, 오글거리는 사랑의 대사들이 유난히 많이 나 왔다. 그 속에서 음식을 넉넉히 장만해 신분에 차별 두지 말고 문상객을 대접하라는 꼿꼿한 양 반의 유언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다. 부고를 받으면 달려가 조문을 한 뒤 평상에 주저앉아 국 과 밥을 한 그릇 받아 먹는 요즈음의 장례식장 풍경이 겹쳐 떠오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장례식장에서는 빵이 먹히지는 않을 것 같다. 파스타가 어울릴 것 같지 도 않다. 망자의 명복을 빌며 눈물 섞인 육개장이나 무국에 흰 쌀밥을 말아 먹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때도 밥이 답이다. 생각은 제 멋대로 뻗어 나가서 나는 죽은 뒤 문상객들에게 국밥 을 대접하는 대신, 살아있을 때 밥 한 끼라도 사야겠다는 데까지 이른다.
아침 햇살과 파란 하늘에 날아갈 듯 상쾌한 마음이 들었다가, 바람 부는 저녁이면 쓸쓸해 지기 도 하는 시월, 그리운 이들을 불러 함께 밥을 먹자고 해야겠다. 빵으로는 달래지지 않는 허기 를, 술과 안주를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아쉬움을 마음 준 사람들과 나눠 먹는 밥으로 든든히 채워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LZiLM5a8s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간장게장 편_2018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ZPUS2cDpa28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간장달걀밥 편_2018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U1bB1vMA8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김 편_2018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sQIIGZgcuo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계절밥상 편_2018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mvrgfOrnyE
농림축산식품부_밥이 답이다 캠페인_혼밥 편_2018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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