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그리움이 깊어지는 계절 2018.11

2022. 12. 9. 09:06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Late autumn, a season of deepening nostalgia

 

가을이 깊다.

30년 된 아파트에서 살 때는 지천이 단풍 든 은행잎 천지였는데, 지은 지 겨우 5년차를 맞은 곳 으로 이사하고 보니 단풍은 지인들의 SNS 담벼락을 통해서나 구경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 도 몸은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을 부르는 계절을 느끼고 있다. 저녁 여섯 시면 벌써 어둑어둑해 지는 거리를 찬바람 맞으며 걸으면 옷깃을 저절로 여미게 된다. 아직 난방을 하지 않은 집 책 상 앞에 앉으면 약간 쌀쌀함이 느껴진다. 몸에 와 닿은 쌀쌀함은 마음 속으로 들어가 쓸쓸함이 된다. 왈칵, 갑자기, 덜컥, 뭉클하는 감정들이 아랫배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와 아우성친다. 하루가 지나고, 그 하루만큼 가을이 더 깊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창문을 두드린다. 비 맞은 은행잎은 우수수 떨어져 보도블록을 덮는다. 폭 신폭신한 젖은 은행잎은 밟히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늦은 가을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사뿐사뿐 대신 터덜터덜 혹은 타박타박이다. 지나온 한 해가 돌아보면 아득하고, 해놓은 일보 다 하지 못한 일들에 마음이 무겁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 그립다. 아무리 뒤돌아 봐도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안타깝다.

가을이면 유독 명치끝을 쿡 찌르는 그리움…

그리움도, 아니 그리움은 무엇보다 좋은 광고의 소재가 된다.

열 다섯에 물질을 시작해 한 평생 해녀로 살아온 할머니가 있다. 제주에 사는 양영순 할머니가 그 분이다. 그녀의 그리움은 바닷속을 향한다. 눈만 뜨면 달려가 내 집처럼 자유롭게 샅샅이 누비던 바닷속, 평생 양식이 되고 옷이 되고 땔감이 되었던 바닷속의 보물들. 그런데 나이 들 어 무릎이 아프고 숨이 가빠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할머니는 바닷속의 보물들이 보고 싶어서 틈만 나면 나와 멍하니 바다를 바라 본다. 아무리 바라다 봐도 바다는 제 속을 보여주 지 않고 철썩철썩 파도만 바람에 부서진다. 광고 영상의 도입부는 바다를 쳐다보는 양 할머니 의 주름진 얼굴, 거친 손을 보여주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SK텔레콤_TVCM_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_2017_스토리보드 ①

어쩌면 물 속에서 살았던 시간이 더 많은 양영순 해녀에게 바닷속은 고향이다. 그녀가 다시 고 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21세기의 첨단 기술은 그녀에게 꿈에서도 가보기 힘들던 바닷속을 선 물한다. 한 통신회사는 그녀가 늘 물질하던 제주도 신창 앞바다의 바닷속을 4K고화질 영상으 로 찍어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양영순 할머니는 특수 제작된 차에 앉아서 차 안을 꽉 채우는 바닷속 영상을 만난다. 비록 바닷물에 젖지는 않지만 자동차의 창 밖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젊은 해녀가 물질을 하고 해초가 살랑거린다. 양 할머니는 돌을 들춰서 문어라도 잡으려는 듯 벌떡 일어나 차 창으로 손을 뻗는다, 환성을 지른다, 화면을 만져보다 울컥 눈시울을 붉힌다.

 

SK텔레콤_TVCM_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_2017_스토리보드 ②

 

자막)           어느 해녀의 그리움

양영순)       15세부터 물질을 배웠지.

                   물속이 내 집이고 내 고향이고 보물이고

                   이제는 얼마나 가고 싶으고 뭐해도

                   가지를 못해서…

                   나이가 많아 숨이 차서 안되지.

 

NA)             한평생 해녀로 사셨지만 더 이상 물질을 못하게 된 양영순 할머니.

                   이제 할머니에게 바닷속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잃어버린 고향이 되었습니다.

                   SK텔레콤의 5G는 양영순 할머니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돌려드리려 합니다.

 

자막)            할머니가 물질하시던 신창 바닷속을

                   4K 고화질 영상으로 실시간 전송하는 SK텔레콤의 5G 기술

 

양영순)        생전에 여 이런 걸 봐저.

                   꿈 속에서도 못 볼 꺼.

                   이 바다가 내 집이고 내 고향이고!

 

NA)            고향을 떠난 적 없지만 고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던

                   양영순 해녀의 첫 5G는

                   [나의 살던 고향은]입니다.

 

자막)            당신의 첫 5G는 무엇이 될까요?

 

 

Welcome to 5G KOREA SK텔레콤_TVCM_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_2017_카피

 

5세대 이동통신(5G Networks)은 다운로드 속도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일반 LTE보다 280 배나 빨라서 1GB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어도 5G 인터 넷 세상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고를 보면 뭔가 따스하고 행복한 일을 만들어 줄 기술이라 는 생각이 든다.

 

SK텔레콤의 5G 광고가 물길 속에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한 광고라면, 까맣게 몰랐던 사람의 속을 소재로 만들어진 광고도 있다.

그는 아들이다. 대개의 아들들이 그러하듯 아버지와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거리를 유 지하는 사이다. 명절 때나 만나고 가끔 전화를 하지만 할 말은 별로 없다. 잘 지내지? 네. 별 일 없으시죠? 응. 짧은 통화가 대화의 전부였던 아버지와 아들.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었다. 할아 버지가 된 아버지는 눈도 채 뜨지 못하는 아들의 아기를 안고 눈물을 보인다. 자장가를 부른 다. 내 아버지가 자장가를 부를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된 아들은 처음 으로 아버지의 마음 속이 궁금하다. 역시 SK텔레콤이 만든 ‘사람_다시보기’라는 캠페인이다. 캠페인에는 머리 희끗한 남자의 뒷모습만 나온다.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늘어선 길 을 천천히 걷는 속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뒷모습, 손주를 안고 어르며 재우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의 뒷모습. 그 풍경 위로 아들의 나레이션이 잔잔하게 흐른다.

 

SK텔레콤_TVCM_ 사람 다시보기/아버지 편_2008_스토리보드

 

자막)           사람_다시보기Ⅰ 아들

 

O.V)            내가 아홉 살이 되던 해부터

                   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걸었다.

                   그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몰랐고

                   나는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 그가 내 아기를 처음 안는다.

                   눈물을 보이고 자장가를 부른다.

                   나는 과연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던 걸까?

 

자막)           더 늦기 전에 아버지의 가슴 속을 만나십시오.

                   MBC캠페인 이 캠페인은 SK텔레콤이 함께 합니다.

 

SK텔레콤_TVCM_ 사람 다시보기/아버지 편_2008_카

 

더 늦기 전에, 더 잊기 전에, 더 멀어지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11월은 더 늦기 전에 해야할 일들로 마음이 바쁘다. 때이른 송년회를 알리는 문자가 도착한다. 나는 아직 올해를 보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어서 떠나 보내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한 해를 보내는 ‘송년회’가 아니라 몽땅 잊어 버리자는 ‘망년회’가 범람하던 시절을 지나와서 그런지 가 는 해와 함께 잊고 싶은 일들도 줄지어 떠오른다.

종일 모니터 앞에서 크게 중요할 것도 없는 일을 분주하게 하다가 퇴근한 뒤, 낙엽 뒹구는 거 리를 걸으면 생각한다. 남은 두 달, 남은 내 시간에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지금의 나는 과연 과거의 내가 되고 싶던 그 사람인가? 그리운 것들은 모두 어 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세월이 흐르면 지금 이 순간도 그리운 것이 될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든 그리운 것들은 행 복했기 때문에, 풍요로웠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어서, 지나가 버려서 그리 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그리워하고 후회해도 다시 돌아가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10년쯤 지나면 그리워질 오늘의 나에게 미래의 내가 되어 귓속말을 한다. 실컷 그리워하라고 대신 어제에 대해서도 오늘에 대해서도 후회는 하지 말라고. 당신 지금 잘 살고 있으니까, 앞 으로도 잘 살 거니까… 가을이 깊다, 야위어 가는 가을 따라서 그리움도 깊다.

 

 

 

 

 

https://www.youtube.com/watch?v=GWc91KekX60

(SK텔레콤_TVCM_어느 해녀의 그리움 편_2017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JnfMaaCak60

(SK텔레콤_TVCM_ 사람 다시보기/아버지 편_2008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