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사랑해요 2018.12

2022. 12. 10. 09:10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I'm sorry, I love you

 

까만 화면에 ‘미안해’라는 자막이 생겨난다. 뒤를 이어 나타나는 자막이 예사롭지 않다. ‘아침 마다 울게 해서 미안해 숙제 같이 못 해줘서 미안해’ 세 줄 자막이 생겨난 뒤에 배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텅 빈 자동차 안이다. 아무도 앉지 않은 운전석과 조수석이 보인다. 그 위로 자막이 계속 흐른다. ‘맨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잠시 모든 자막이 사라졌다가 조금 더 큰 크 기의 자막 한 줄이 나타난다.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겨우 자막만 읽었을 뿐인데 눈가가 뜨 거워진다, 목구멍으로 왈칵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 2015년에 제작된 기아자동차의 카렌스 광고의 이야기다.

 

기아자동차_카렌스_TVCM_워킹맘을 위해_2015_스토리보드①

 

또각또각 여자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차 문이 열린다. 일과 육아, 살림이라는 짐을 잔뜩 짊어진 워킹맘이 차에 오른다. 차 안에서 그녀는 아이의 태권도 시범을 보고, 우는 아이 를 달랜다.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고, 집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사다 나르기도 한다. 그녀에게 는 남편도, 하소연 하는 부하 직원도 때로는 무거운 짐이다. 이미 어두워진 밤, 퇴근 후 차를 세 운 그녀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휴- 하고 한숨을 쉰다. 회사에서 퇴근한 뒤 가사와 육아가 기다 리는 ‘집이라는 또다른 일터’로 출근하기 전에 아주 잠깐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기아자동차_카렌스_TVCM_워킹맘을 위해_2015_스토리보드②

 

자막)         미안해

                 아침마다 울게 해서미안해

                 숙제 같이 못 해줘서 미안해

                 비올 때 우산 가지고 못 가서 미안해

                 맨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일하는 엄마라서, 미안해

 

Na)           당신은 워킹맘입니다.

                 당신은 아주 많은 짐을 가지고 있죠.

                 육아라는 짐 일이라는 짐

                 살림이라는 짐

                 남편이라는 짐

                 상사라는 짐

                 그리고, 미래라는 짐

 

                 그 모든 짐을

                 다 덜어드릴 순 없지만

                 카렌스가 함께 들어드릴게요.

                 당신의 어깨가 조금은 더

                 가벼울 수 있도록

                 당신은 워킹맘입니다.

                 당신은 맘입니다.

 

자막)        Designed for Mom

                 2016 CARENS

 

기아자동차_카렌스_TVCM_워킹맘을 위해_ 2015_카피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불과 몇 년 전, 나도 저랬다.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에게 나도 매일 미안한 엄마였다. 광고 속의 주인공보다 훨씬 더 미안한 일, 못되게 군 일이 많은 미숙한 엄마였다. 광고를 보며 새삼 어릴 때의 내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같은 해에 기아자동차는 워킹맘 편과 시리즈로 카렌스 남편 편과 부하 직원 편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온에어 했다. 보는 이에게 짠한 마음이 들게 했던 워킹맘 편과는 다르게 남편이 등장하 는 에피소드는 코믹한 분위기로 웃음을 자아낸다. 사소한 집안일은 늘 아내 몫으로 미루던 얄 미운 남편이 아주 중요한 기념일을 잊어버렸다. 아내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그래서 남편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선언하고 차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린다. 남편은 화가 난 아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게 웬걸? 콧노 래를 부르며 차의 좌석을 모두 접어 넓은 잠자리를 만들고, 침낭을 펴서 편안하게 눕는다. 혼 자 있는 남편이 신경 쓰여서 나와 본 아내는 천연스레 누워 있는 남편을 보고 기가 막혀 웃는 다. 그리고 둘은 나란히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미안하다고 고백하는 내용은 사소하지만 꼭 해야 하는 집안일이 다. 하기 싫어서 서로 미루다가 결국은 아내가 하게 되는 일들… 기념일을 잘 기억하는 남편보 다 살림을 분담하는 남편이 훨씬 더 좋은 남편이야, 광고를 보다가 울컥해서 혼잣말을 한다.

 

기아자동차_ 카렌스_TVCM_남편이라는 짐_2015_스토리보드

 

자막)        여보 미안해

                 음식물 쓰레기 안 버려서 미안해

                 세탁 끝났는데 자는 척 해서 미안해

                 변기 뚜껑 안 내려놔서 미안해

                 기념일 까먹어서 미안해

                 짐만 되는 남편이라서 미안해

아내)         정말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나가 들어오지 마!

 

자막)         2열, 3열 풀 폴딩

                 대용량 짐도 문제없는 카렌스의 공간성

                 카렌스, 관대한 공간으로

                 눈치 없는 남편까지 품어주다

 

아내)        좋아? 넓어?

 

자막)        Designed for Mom

                 2016 CARENS

 

기아자동차_ 카렌스_TVCM_남편이라는 짐_2015_카피

 

올해의 마지막 달, 달랑 한 장 남은 홀쭉한 달력이 쓸쓸해 보인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 지 아득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후로는 어디서든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그래서인지 머릿속 이 공백 상태인 경우가 거의 없고 시간의 흐름이나 계절의 변화를 천천히 느끼는 일도 드물다. 하려던 일을 잊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내릴 역을 지나치는 일도 다반사다. 같은 날 두 개의 약 속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말이면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도 되나’ 스스로 묻게 된다.

며칠 남지 않은 12월에는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멈춰 놓고, 나 자신과 가족, 친구에게 집중할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휴대폰의 비행기모드 기능을 소재로 광고를 만든 대한항공의 TVCM을 보고 떠올린 생각이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다짐이다.

 

광고의 주인공은 머핀이라는 반려견과 주인이다. 주인은 개를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도 핸드 폰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핸드폰에 빠진 주인을 시무룩하게 바라보는 반려견. 미안해진 주인 은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로 맞춰놓고 모래사장을 뛰며 개와 함께 놀아준다.

 

대한항공_기업PR_ TVCM_비행기모드/반려견 편_2016_스토리보드

 

남O.V)     머핀이에게 미안할 때

                나는 비행기를 탑니다.

                나 밖에 모르는 이녀석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Na)          이 작은 비행기로

                당신의 일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대한항공은 바랍니다.

                Excellence in Flight KOREAN AIR

 

대한항공_기업PR_ TVCM_비행기모드/반려견 편_2016_카피

 

광고 속 강아지를 보니 집에서 키우는 물고기 구피한테 미안해진다. 급하게 출근하느라 아침 에 먹이를 주지 않은 날이 꽤 많았다. 구피야 미안해. 올 한 해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내가 저 지른 미안한 일은 얼마나 많을까? 남에게 짐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게다. 나는 급한 마음 이 되어 ‘비행기모드’ 대신 ‘착한사람모드’로 세팅하고 특별히 미안했던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 로 사과를 보낸다.

우선 엄마 없이 잠들어야 했던 어린 날의 내 아이들에게 사과한다. 야근하느라 저녁 못 차려줘 서 미안해, 소풍 날 삼각김밥 먹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늦잠 자고 지각하게 해서 미안해, 학원 에서 길 잃었을 때 데리러 가지 못해서 미안해… 다음은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했던 사람 들 차례다. 괜찮다고 해도 괜찮지 않은 것 못 알아봐서 미안해, 약속 시간에 늦어서 미안해, 내 가 하고 싶은 말만 해서 미안해, 아플 때 못 챙겨서 미안해 늘 그대로 있을 거라고 믿어서 미안 해,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12월이니까,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으니까 내게 노여운 그대들 모두 용서하기를. 그 용서가 모 두 합쳐져 올해를 잘 마무리할 기운으로 내게 전해지기를! 무한한 우주에서 기적과 같은 인연 으로 같은 별, 같은 시간을 사는 내 곁의 당신들께 고백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AanZ0vh42s

기아자동차_카렌스_TVCM_워킹맘을 위해_2015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S71SexIxQM

기아자동차_ 카렌스_TVCM_남편이라는 짐_2015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tIp8c5MtEU

대한항공_기업PR_ TVCM_비행기모드/반려견 편_2016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 카피라이터 ┃ (주)프랜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