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_축적의 건물, 일관되고 모호한 경계 만들기

2022. 11. 4. 16:0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 building of accumulation, creating consistent and blurred boundaries

 

건물은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입는다. 처음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을 때처럼 맑고 깨끗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가지 세월이 흔적을 남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거친 도시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기능이 지속적으로 바뀌는 건물이라면 겉모습에 남는 시간의 흔적은 더욱 변화무쌍하기 마련이다. 최초의 건축사가 의도했던 일관성과 통일성은 깨지고 무질서가 증가하며 건물은 볼품없어진다. 일반적인 상가건물이라면, 통제하기 힘들므로 뭐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상징성을 가져야 할 패션기업의 사옥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남성 패션 브랜드 솔리드옴므의 사옥이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사옥은 리모델링을 거쳐 마치 새로 지은 듯한 외피를 갖게 되었다. 

건축주인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는 1988년 남성 패션 브랜드 ‘솔리드옴므’를 출시한 뒤 30여 년 동안 국내 남성복 디자인을 주도한 크리에이터다. 홍성용 건축사는 1998년 우영미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2011년까지 그녀의 패션 매장을 꾸준히 디자인해왔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마음을 잘 헤아렸고, 패션 디자이너의 구상은 만족스럽게 구체화되었다. 고객과 직접 만나는 장소인 매장의 경우는 매년 새로운 콘셉트로 트렌드에 맞게 디자인되었다. 반면에 2008년에 다른 건축사가 디자인한 구의동 사옥은 매장과는 다른 역사의 축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마치 포디엄 같은 2층 규모의 저층부는 본관 건물에서 앞으로 약간 튀어나와 인도에 접하고 있다. 한때 임대를 준 이곳의 파사드는 석재 마감이 무색하게 다양한 간판으로 늘 뒤덮여왔다. 저층부와 달리 본관 건물은 유리 커튼월이다. 본관 건물의 유리는 종종 번잡스러운 홍보물로 가려 건물 파사드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세월이 흐르면서 벽돌로 마감된 옆의 건물을 인수하여 솔리드옴므는 서로 다른 형태와 마감을 가진 복합적인 건물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관리동으로 활용되는 새 사옥은 유리 커튼월의 본관 건물과 통일성을 맞추려고 했는지 지속적으로 외관이 변화해왔다. 그러다 보니 본관 건물, 포디엄 같은 저층부, 그리고 새 건물은 조화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 자기의 옷을 입고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다른 옷은 다른 상징체계를 갖는다는 의미이므로, 통일성을 추구해야 하는 하나의 패션 브랜드 사옥이 분열된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홍성용 건축사는 10년 만에 우영미 디자이너를 다시 만났다. 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솔리드옴므의 사옥 역사를 인지하며, 각기 다른 옷을 입은 이 건물군을 “보자기로 싸듯이 덮어보고자” 했다. 형태와 마감이 서로 다른 여러 건물군을 균질하게 만드는 방법 중 각 건물의 마감재를 일관되게 바꿔주는 것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움도 많고, 세 개의 건물들이 갖는 서로 다른 볼륨감, 그리고 각자의 건물에 이미 부여된 창문의 배치까지 일관되게 만드는 건 더욱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자기’라는 아이디어는 매우 현실적이다. 홍성용 건축사에 따르면 “대지와 도로에 면한 형태들의 불규칙적 면들을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엮어내듯 유선형으로 덮는” 것이다. 

리처드 세라의 유기적인 곡면을 가진 거대한 철판 조각이 홍성용 건축사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다른 건축주가 만든 건물들은 배치와 볼륨이 조금씩 어긋나 있으므로 그것들을 통합하는 덮개는 오히려 곡면이 적절하다. 성격이 다른 여러 장면을 하나의 면에 구겨 넣은 뒤 그것들을 통합하려고 곡선의 테두리로 가두는 19세기 연극 포스터 기법이 떠오른다. 곡선은 포용성이 크다. 기하학의 엄격함보다는 곡면의 자유로움과 유연함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보자기 같은 덮개는 어떤 형태와 재료로 디자인해야 할까?

<우영미 사옥 리노베이션>   김용순

홍성용 건축사가 제안한 것은 수직의 루버다. 루버는 원래 실내에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는 기능성으로 선택되기는 하지만, 규칙적으로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외관이 갖는 미학적 효과 역시 중요한 선택 동기가 된다. 건물 전체를 수직의 붉은색 루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배치되었다. 루버의 길이는 다르게 적용되었다. 본관 건물의 경우 저층부는 완전히 가렸지만, 커튼월의 상층부는 드러났다. 반면에 관리동은 더 긴 루버로 완전히 감쌌다. 관리동을 완전히 감쌈으로써 일단 이 건물이 드러났을 때 갖는 시각적 분리 현상을 제거했다. 본관의 상층부는 유리로 마감돼 파란색 하늘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따라서 도로에서 봤을 때 이 건물은 간결하고 무엇보다 단일해졌다. 붉은색 루버 그리고 하늘과 연결된 유리, 이렇게 두 가지 표면만 남았다. 게다가 붉은색 루버가 강렬하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평범한 상가건물로 구성된 주변과 확실하게 차별화된, 패션 브랜드 사옥다운 표상을 이끌어냈다. 

루버의 또 다른 건축적 미학적 효과는 그것이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는 점이다. 루버는 감싸지만 가리지는 않는다. 수직 루버 사이의 빈틈이 내부를 언뜻 언뜻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실내에서 밖을 볼 수도 있게 하고, 밖에서는 안을 엿보게도 한다. 이러한 드러남과 감춰짐의 반복은 건물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감을 만든다. 붉은색 루버는 두 가지 점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차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루버 틈새가 표면의 시각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또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해의 위치 변화, 그리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루버의 색과 성격이 미묘하게 바뀐다. 이 또한 뚜렷한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요소다. 다시 말해, 표면은 일관되어 있지만 딱딱하지 않고 여유롭게 변화를 수용한다. 

외관의 통일성은 내부로 연장되었다. 외부인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로비 공간 역시 균질하다. 이곳은 미팅 공간과 안내 데스크, 그리고 아카이브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창가에 배치한 미팅 공간은 붉은색 커튼을 쳐서 외부의 붉은색 루버와 연장선에 있다. 1층 유리 밖은 타공된 붉은색 철판이 덮고 있다. 그리하여 규칙적인 원형의 빛 무리가 테이블과 벽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1층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경험은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의 아카이브 공간이다. 40여 년 동안 디자인한 수많은 옷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옷들은 간결한 구조의 옷장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이 옷장들이 마치 도서관의 책꽂이처럼 늘어선 모습은 이 장소의 권위와 디자이너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준다. 대기업조차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충실히 기록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려보라. 이 아카이브 공간이 주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도서관 같은 아카이브 공간 또한 어찌 보면 루버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개별화된 옷들, 게다가 개성 넘치는 옷들이 간결하고 일관된 옷장으로 통일성을 갖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조화롭지 못한 건물 무리를 통일하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통일된 테두리와 경계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 경계는 경직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며, 건축주가 기대하는 정체성을 이끌어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