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7. 10:13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tificial Intelligence and Virtual Humans
본 연재는 총 3회에 걸쳐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최신 컴퓨팅 및 뉴 미디어 기술과 건축 디자인 실험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특히, 이러한 기술이 새로운 형태와 공간을 정량적, 정성적으로 분석하는 체계적인 방법으로써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 예를 소개하고, 그 가치와 추후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회로 본 기고문에서는 인공지능과 가상의 인간, 설계응용범위를 다루고자 한다.
1. 건축 디자인 실험과 인간행동 분석의 한계
197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초기 인공지능발전에 기여한 허버트 사이먼(Hebert A. Simon)은 ‘디자인은 A라는 상태로 B라는 또 다른 상태로 바꾸는 행동’으로 정의하고, A와 B의 상황의 득과 실을 비교(trade-off)한 후, 득과 기대가치가 보다 큰 대안을 결정하는 행위로 간주했다(Simon, 1996). 이와 마찬가지로 건축설계 역시 기존환경을 바꾸기 이전과 이후, 즉 설계 전, 후를 비교하고 분석평가하는 과정이 일반적이다. 다만, 건축설계에서는 사용자의 심리적 만족과 행동, 아름다움의 인지, 사회문화적 영향력, 설계자의 철학 등의 정성적 가치와 경제적 이득, 공학적 성능 간의 득과 실의 분석과 판단이 단순하지 않다. 많은 경우에서 건축설계물의 창의성과 같은 정성적인 가치가 예측하지 못했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기도 한다.
건축설계에서는 설계 전, 후의 득실관계 분석과 함께 새로운 형태과 공간, 이에 따른 성능과 깨닫지 못했던 사회문화적 독자성을 발견하기 위한 탐구의 과정과 체계가 형성됐다. 이러한 탐구에서 설계안의 특징에 관여하는 변수와 그 변수로 구성된 대안(design configurations), 각 대안에서 나타나는 정성적·정량적 성능과 가치(performances), 상황과 조건(contexts) 간의 관계가 고려되며 이 관계의 탐구과정에서 창의적인 설계안의 발견과 제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Rittel, 1971). 이 과정은 건축전공학생이 형태의 곡률을 수치간격으로 변형할 경우, 이 변형마다 아름다움의 인지, 보행, 빛의 유입, 사회적 상호작용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분석하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 구성방법과 가치를 발견하는 예와 같다. 이러한 건축설계에서의 탐구과정은 변수간의 구성, 구성 결과물간의 가치와 성능비교 등의 체계적인 분석과 우연한 미지의 결과물의 발견 등의 특징을 가진다. 때문에 타분야의 과학적, 공학적 실험, 철학, 수학과 같은 사고실험과 마찬가지로 ‘실험’으로 간주할 수 있다.
건축 디자인 실험에서 실험목적과 방법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창안되거나, 우연히 창의적인 설계결과물이 발견될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창안하거나 발견한 설계결과물의 가치와 성능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분석과 평가 없이는 설계결과물이 실험목적에 어느 정도 접근했는가 혹은 발견한 결과물이 어느 정도 새로운가를 판단하기 어렵고 디자인 실험에 필요한 추가적인 단서 역시 얻기 어렵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의 영역 중 인간의 심리 및 행동기제는 건축 디자인 실험에서 주로 또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항목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와 행동분석은 구조, 설비와 같이 수치적인 성능분석이 명확한 영역에 속하지도 않으며, 설계결과물의 가치를 이론적 틀을 통해 해석하는 영역에 속해 있지도 않다. 특히, 고도의 디자인 실험일 경우는 예를 들어 결과물이 전례없이 새로운 형태를 가지거나 창의적일 경우, 인간행동기제의 분석과 사용에 관한 예측이나 이에 따른 실험결과물의 평가는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현재 실규모의 목업(full-scale mockup), 모델 하우스와 실물(full-scale actual)이 인간행동과 심리기제 측정에 사용되고는 있지만 시공규모와 비용면에서 한계가 있으며 거주 후 평가(post-occupancy evaluation)이 실증적 분석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유사한 건축선례가 드문 디자인 실험의 경우에는 기존 사례와 경험으로만 새로운 설계결과물의 성능을 추론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사용자와 인간행동의 분석과 예측의 많은 부분은 체계적인 분석과 평가보다는 막연한 추론과 기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분석 및 평가방법의 부재로 인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인간 사용자는 표현단계에서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장식처럼 취급되거나 산술적인 신체치수로만 고려되는 등 인간의 개성과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이 의사결정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경향을 야기하기도 한다(Imrie, 2003).
위와 같은 분석의 한계를 해결하고 건축 디자인 실험에서 인간행동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90년대 초부터 인공지능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기반으로 가상에서 인간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설계안을 분석하고자 하는 급진적인 시도가 제안됐다. 이 기술이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룰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이다.
2. 인공지능과 가상의 인간
가상의 인간과 이를 응용한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2000년 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비약적인 발전을 한 ‘뉴 미디어(new media)’의 특성 중 기존의 미디어와 가장 차별화되는 ‘상호작용(interactivity)’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행동 시뮬레이션(human behavior simulation)의 핵심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인간의 외형, 개성, 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설계안에 변수에 관해 특정한 행동반응을 보이는 가상의 인간(virtual humans, virtual users)의 존재다(Kalay, 2004; Hong et al., 2016). 가상의 인간은 현실의 인간과 유사하게 독립적인 판단력을 가지며, 건축물에 대한 반응 외에도 가상의 인간사이에서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복도의 폭이 좁을 경우, 가상의 인간에게 부여된 성격에 따라 다른 가상의 사람을 기다리며 순서를 양보하기도 하며 친분이 있는 다른 가상의 인간을 만났을 경우에는 길을 가던 목적을 바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가상의 인간의 상호적인 행동기제(individual, independent bottom-up interactions)에 따라 실험결과물의 성능이 분석되며, 이러한 가상의 인간의 속성과 행동반응 규칙을 실험목적에 맞춰 추출하고 설정하는 과정이 분석과 평가의 신뢰도를 결정한다.
가상의 인간은 신체적인 속성(예를 들어 키, 몸무게, 외형, 장애요소, 행동을 표현하기 위한 뼈대 등)을 가지며, 이 신체적인 속성은 3D 스캐닝, 모션캡쳐, 3차원 모델링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해 제작된다. 가상의 사용자의 개성과 사회적인 속성(선호도, 친밀도, 사회적인 지위 등)은 프로그래밍에 의해 설정된다(그림1). 가상의 인간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행동기제와 규칙을 설정하는 부분으로 행동규칙의 추출은 직접관찰을 통해 수행하거나 사회 심리학이나 환경 심리학에서 찿아낸 연구결과를 토대로 하기도 한다.
인간 사용자의 행동규칙을 토대로 가상의 인간의 행동기제를 프로그래핑하게 되는데, 최근 개발된 게임 플랫폼의 사용으로 기초적인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초기에는 지능이 단순히 물리적인 길 찾기를 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현재는 건축물과 다른 가상의 인간의 속성을 인지할 수 있는 센서를 설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가상의 인간이 특정한 상황을 인지했을 경우, 성격과 사회적 속성, 프로그래밍된 행동규칙을 복합적으로 연산해 발생 가능한 행동들이 보다 역동적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됐다(그림 2). 최근 가상 사용자의 다양한 행동결정과 더욱 복잡한 상황을 예측하기 위한 심화학습(deep-learning)과 같은 최신 인공지능 모델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다.
시뮬레이션은 원인이 되는 변수와 결과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실험방법 중 하나다.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물리적인 실험환경의 구축 없이도 대량의 사용자를 분포하고 건축환경과 사용자간의 복잡한 관계를 연산하여 분석과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건축 디자인 실험에서 물리적인 형태, 공간의 영역, 사용자의 특성 등이 주요 원인과 변수가 될 경우는 심리적인 만족감, 안전도, 사회적인 상호작용 등이 실측·관찰될 수 있다. 건축설계분야에서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2000년도 후반까지는 대부분 이론적인 가능성과 기술적인 구현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시뮬레이션 플랫폼의 보편화로 응용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음 장에서는 가상의 인간과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의 응용범위를 살펴보기로 한다.
3.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의 응용범위
본 기고문에서 다루는 인간행동 응용범위는 저자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서 예후다 칼레이 교수(Yehuda E. Kalay)의 연구진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와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에서 개설된 과목의 수업 결과물을 토대로 기술됐으며,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인하대학교 건축학과의 ‘디지털 디자인 응용’, ‘인간행동 시뮬레이션’ 과목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근거로 했다.
첫째,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사용자의 심리적, 사회적 만족도를 탐구하는 건축 디자인 실험에 응용됐다. 이러한 실험에서 가상의 사용자는 정량적인 보행거리와 시간, 동선, 병목현상(bottleneck), 분포밀도의 변화를 재현하고, 설계자는 이러한 행동을 직접 관찰하거나 분석결과를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안전성, 사회적 상호작용, 심리적 만족도와 같은 정성적인 성능을 해석하고 평가 후 설계안을 수정했다. 예를 들어, 가족공원 프로젝트에서 어린이들에게 놀이시설에 관한 기호도를 설정하고 대기시간, 동선, 공원 이용률 등을 분석했다. 이후 공원 시설물 배치에 관한 만족도를 평가해서 지형, 수변시설의 형태, 놀이시설의 위치 등을 수정했다(그림 3). 이외에도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상업시설에서 공원배치, 오피스에서의 사회적인 교류장소 배치 등을 실험하는데 사용됐다.
특히, 가상의 인간의 설정에서는 기호도, 친밀도, 사회문화적 규칙과 상황 등이 프로그래밍되므로 사회문화적 적합성까지 분석, 평가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두인(Bedouin) 커뮤니티 센터 설계 프로젝트에서 베두인 여성은 다른 남성과의 동선이 마주쳐서는 안 되는 문화적 규범이 있고, 현실적으로 육아와 농사를 전담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따라서, 설계자는 이를 사전에 가상의 인간에게 프로그래밍하고 남녀의 성별, 농지, 놀이터, 진입로 등을 감별하는 센서를 설치하고 보행거리, 시간, 동선 등을 측정해 베두인 여성의 문화적 규범을 만족함과 동시에 노동량을 최소화하는 설계안을 발견했다(그림 4). 또 다른 예로, 광장설계 프로젝트에서는 자동차의 가로주차와 주말마다 발생하는 집회상황이 보행자의 안전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둘째,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실험적인 형태의 잠재적 사용성을 가늠하고, 이를 근거로 형태를 변형하는 과정에 사용됐다. 최근 패턴, 패널, 형태를 수치제어를 통해 생성하는 이른바 ‘패러메트릭 디자인’을 비롯해 직관적인 ‘디지털 조소(digital sculpting)’까지 다양한 형태실험의 방법과 도구들이 건축교육 및 실무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형태실험 결과물의 대부분은 유사한 전례가 없어 사용성 자체를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를 보완하고 보다 사용가능한 형태를 찾기 위해 설계자들은 가상의 인간을 조형물에 분포하고 영역을 설정(zoning)한 후 발생 가능한 길 찾기, 동선, 보행거리 등을 관찰 및 분석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형태의 변수와 사용성 간의 관계를 직접 실험했다. 예를 들어, 기차역 프로젝트에서 설계자는 패러메트릭 디자인 기법을 통해 형태를 자유롭게 생성한 후 승강장, 공연장 등의 영역을 설정했다. 이후 공연의 기호도를 가진 승객들을 프로그래밍하고 기차 도착 시 발생하는 문제나 공연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형태를 수정했다(그림 5).
셋째,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은 고도의 기능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건축 디자인 실험에 응용이 가능하다. 보편적으로 이 시뮬레이션 기법이 설계안의 기능성과 안전성 분석에 가장 많이 응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예를 들어, 병원설계 프로젝트에서 간호사의 대기실과 병실사이의 위치와 거리, 가시거리에 따른 병원관리, 대기실과 간병자 공용공간의 배치 등이 분석됐다. 또한, 기존 병원 프로그램과 함께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서비스(예를 들어, 대형 카페 및 데이 룸 등)가 융합되어 분석이 난해할 경우에도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회진동선과 거리, 시간, 감염 위험성 등의 분석이 이뤄졌다(그림 6). 또한 수해, 화재 등 피난 시뮬레이션에서는 가상의 사용자에게 시각적 인지기능과 사회적 판단력을 적용하여, 기존의 물리적인 입자처럼 대피하는 시뮬레이션과 보다 신뢰도 높은 안전성 분석을 수행할 수 있었다.
본 기고문에서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가상의 인간과 인간행동 시뮬레이션을 소개했고 이 기술이 건축 디자인 실험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이 기술에 관한 보다 심도있는 고찰은 본 연재의 3회인 ‘다양성과 감정, 사회성의 연산, 그리고 디자인 프로세스의 진화’에서 다룰 예정이며 다음 회에서는 ‘가상현실과 장소’를 다룰 예정이다.
감사의 글
본 기고문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건축학과의 명예교수이자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건축대학의 학장이신 Yehuda E. Kalay 교수님과 함께 수행한 프로젝트들과, 2013~2014년 인간행동 시뮬레이션 과목에 참여한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건축학과 학생들의 작품들, 인하대학교 건축학과에서 2015년부터 현재까지 개설된 ‘디지털 디자인 응용’과 ‘인간행동 시뮬레이션’과목에 참여한 학생들의 프로젝트에 근거하고 있다. Kalay 교수님을 비롯한 모든 참여학생들과 과목조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기고문은 2016년도 정부(미래창조과학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기초연구사업(No. 2016R1C1B2011274)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1. Simon, H.A. (1996).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 MA: MIT Press.
2. Rittel, H. (1971). Some Principles for the Design of an Educational System for Design. Journal of Architectural Education, 25, 16-27.
3. Imrie, R. (2003). Architects’ conception of the human body. Environment and Planning D: Society and Space, 21, 47-65.
4. Kalay, Y.E. (2004). Architecture’s new media: Principles, theories, and methods of computer- aided design. Cambridge, MA: MIT Press.
5. Hong, S., Schaumann, D., Kalay, Y.E. (2016). Human behavior simulation in architectural design projects: An observational study in an academic course. Computers, Environment and Urban Systems, 60, 1-11.
글. 홍승완 Hong, Seungwan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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