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와 함께 하는 공동체 참여 건축디자인 2018.01

2022. 11. 7. 10:30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Community Participation Architectural design with Architects

 

“우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세계만 발견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 공동체 참여 설계 과정 속 참여 범위와 진행 단계

공동체 참여 설계과정은 건축사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가 일정한 역할과 범위로 건축 설계 또는 사업 과정에 참여 하는 것이다. 모든 사업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건축에 대한 비전문적 관점도 적절한 방법으로 반영돼야 하며 건축설계 과정뿐만 아니라 건물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참여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주민의 주도를 전제로 한 서울시의주거환경관리사업의 경우처럼 주민들의 조직과 공동체의 활동을 중시하는 경우는 자연스럽게공동체 참여설계’과정이 적용돼 사업이 진행된다. 그러나 그 밖의 공공시설과 관련된 사업에서는 공동체(사용자)의 참여 과정을 요구하는 경우에도 그 역할과 범위를 분명하게 한정짓지 않은 채 건축사의 책임 하에 워크숍과 같은참여설계과정진행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업 규모나 기간 등에 따라 구성원의 의견을 통한참여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다.

그림 1

이와 관련해 다양한 참여설계와 사례를 분석한 연구들 중박남용(2016)’은 공동체의 참여 범위를 4단계의 10가지 내용으로 정리·제시했다. 그의 연구에서 참여의 가장 낮은 단계는 교육과 인식을 내용으로 하는참여수용으로 설정됐다. 이후 평가, 협업, 결정하는결정권한단계까지 정해 일정한 단계별 공동체의 참여 수준을 제시하고 진행 단계와 범위를 구분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참여설계로 진행되는 사업에서 건축사가 진행할 일의 범위를 사전 협의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사업의 규모가 크고, 다양하며 대상 지역 공동체의 범위가 큰 경우에는 참여 단계에 관계없이 한 건축사가 설계와 함께 공동체참여과정 전부를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 경우 총괄계획가(M.P)나 총괄건축사(M.A)를 두고 사업의 조정과 진행을 담당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제도는 사업 진행과 일관성 유지에는 유리하지만 지역 공동체의 참여 수준이 총괄을 담당한 소수에 의해 결정되므로 오히려 제약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번 글에는 필자가 담당했던 사례를 통해 큰 규모의 사업에서 공동체참여과정 방법과 이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을 담당하는건축 퍼실리테이터의 역할 속에서 건축사의 참여과정을 제한적으로나마 설명한다.

 

 

2. 공공시설의 공동체 참여 설계 과정과 건축사의 참여 : 원주-강릉선 올림픽 철도역사참여설계사업 사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로 새로이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노선 건설이 추진되고 철도역사(驛舍) 신설을 위한 설계도 진행됐다. 이 중 평창, 진부, 강릉역은 특히 동계올림픽 기간 주요 행사가 이루어지는 구간으로 지역의 상징적인 철도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지역 발전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많았다.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보다 만족도 높고 품격 있는 역사 건설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 실행 방법으로 우리나라 철도역사설계상 처음으로철도역사 디자인 품질지표 개발과 이용자참여설계 방법을 적용하여강릉, 진부, 평창’ 3개 철도역사 기본설계에 적용했다.

 

1) 배경 : ‘디자인 과정에 이용자 참여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철도역사 설계 

우리나라 철도역사는 철도건설과 함께 일정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건물로 전문성을 중시하는 시설로 인식됐다. 또 철도역사 디자인은 한정된 예산과 공급자(발주처와 설계자, 운영자) 위주의 획일적인 건설로 인해 주민들의 요구나 지역을 대표하는 건물로서 다른 공공건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이에 한국철도기술공단에서는 사용자의 참여 방법과 더불어 향후 우리나라 철도관련시설의 디자인평가 기준이 될 수 있는 지표를 동시에 개발·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또한 원주~강릉 간 신설 철도역사 중 올림픽 구간인 평창, 진부, 강릉역사 기본 설계 단계에 이용자의 요구사항을 체계적으로 수렴 및 반영하기 위해 『이용자 참여 설계(User participation design)』방법을 적용하여 진행됐다. 이 사업의 경우 대상으로 하는 역사가 3개소로 각 지역의 주민들과 일반 이용자 등을 대상으로 각기 다른 참여설계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또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가늠하는 도구이자 나중에 철도역사 디자인 후 평가에 적용 가능한한국철도역사 디자인 품질지표(KoRSDI)’를 동시에 개발했다. 이는 전문가들 및 일반 이용자 대상으로 의견을 받아 건축사가 설계에 반영하도록 함께 진행했다. 이를 통해 의견 수렴과 더불어평가까지 이르는 과정으로 그림1)에서 설명한 참여설계 단계에서결정권한단계까지 포함된 사업의 사례이다.

 

2) 진행 : 지역 주민의 기대상 발견과 건축사의 참여와 설계 적용

이 사업의 경우 3개의 건축사가 참여하여 각기 한 역씩을 담당하여 설계를 진행했다. 이용자(공동체)참여 설계과정을 적용한 새로운 절차를 적용하기로 했지만 동시에 전문가자문회의의 심의와 자문을 거쳐야 하는 기존의 과정이 같이 진행되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에 진행하던 공청회 수준의 의견수렴 방법보다 강화된공동체참여설계의 참여 과정 등을 같이 수행해야 하는 건축사들의 어려움과 걱정은 매우 컸다. 필자는 퍼실리테이팅 진행계획을 수립하면서 이러한 형편을 감안하여 전체적인 진행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진행하되, 동시에 설계를 진행해야 하는 건축사의 참여과정과 일정 상 설계안의 동시진행을 고려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략을 적용했다.

이러한 생각과 진행 틀로 약 6개월에 걸쳐 주민 대상 워크숍 4(지역초등학생 대상 워크숍 총 4), 전문가 자문회의 및 평가워크숍 3회를 진행했다. 동시에 각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사들은 각 역의 기본 설계안들을 단계별로 발전시키고한국철도건축물설계평가지표(KoRSDI)’를 활용해 설계안에 대한 평가 및 의견을 수렴하며 최종안들을 도출해 나갔다.

 

진행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은 간략한 다음 표로 대신한다. 대신공동체 참여과정에서 건축사의 설계진행에 초점을 두고 건축사가 직접공동체 참여 설계과정을 이끌어 갈 수 없는 경우 주의할 점을 살펴본다. 공동체 참여자와 발주처의 의도에 따라 워크숍을 위탁한 경우에 워크숍 진행자는 건축사와 함께 진행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건축 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 참여자들은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자신의 전문성으로 정의하는 것이지 문제를 건축적으로 해결하는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므로건축 퍼실리테이터는 건축사가 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필자의 경험상 워크숍의 진행과정에서 건축사가 공동체에게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퍼실리테이팅 분석 보고서참여 건축사 진행회의를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는 다양한 의견을 지닌 참여자들의 활동 결과들을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의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울러 퍼실리테이터는 보고서를 통해 양적 해석과 더불어 질적인 해석을 하여 건축사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참여자들의 발언 속에 내재된 정서적 의견이나 감정을 분석하여 전달하고 이를 통계 결과들과 결부해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건축퍼실리테이터는 여러 가지 비전문적 용어들을 건축사들에게 필요한 건축적 어휘로 번역하여 전달해 주고, ‘참여건축사 진행회의에 참여해 건축사들과 협의하면서 참여자들의 의도가 설계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참여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기보다 또 다른 특수한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를 객관화하고 전체와 함께 논의하는 장에 얹어 놓으면 의외로 여러 가지 갈등이 참여자들의 견제와 논의를 통해 조정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헨리 사노프(2000)참여디자인의 과정에서 참여자의 만족도는 그들의 요구가 얼마나 채워졌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판단에 따른다.” 라는 말에서 참여디자인 과정의 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대개 참여자들은 물론 자문전문가들은 자신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여부에 따라 호불호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건축사들은 자신의 설계안에 참여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설명하고 만일 적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제시된 결과물 속에서 같이 설정한 목표와 기준의 제약 조건에서 건축사가 전문가로서 판단한 과정과 노력을 설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사실 이것이 건축사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것이고 일상적인 업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내가 다 알아서 정리했으므로...” 또는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는 식으로 자신의 안을 강요하는 하는 식의 발언으로 오히려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참여자의 의견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더 이상 교류가 중지되는 상황 또한 공동체 참여 설계과정에서 건축사가 조심해야 할 점이다. 공동체 안에서 참여자들을 설계과정의 파트너로 볼 필요가 있다. 건축 퍼실리테이터는 이 둘 사이에서 서로의 의사가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노력하며 동시에 바람직한 사업에 대한 판단을 가치화해서 공유시킬 수 있어야 한다.

 

3) 적용 : 반영과 결과 

앞서 썼듯이 이 사례는 참여설계과정으로 진행되면서 각 담당 참여건축사들은 역사의 기본설계를 진행해야만 했다.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하여 철도역사를 위해 만들어진 DQI로 평가 받아 실시설계로 이어져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각 지역참가자들의 상징과 중요한 고려 사항들이 초기 건축사들의 전제와 달라 일부 개념이 수정됐다. 이에 따른 기본설계안도 지역 참가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나온 의견들을 건축사들이 수용하면서 오히려 전문가들의 일부 자문이나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설계안에 대한 보호막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철도시설물의 특수한 조건과 동계올림픽 행사를 위한 공간적 요구 등이 전체적인 안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오히려 올림픽 이후의 활용과 이용이라는 면에서 지역 공동체 참여자들의 의견이 중요한 참조점이 되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는 주민들이 설정한 목표에 대한 구체화와 검토 끝에 조정되며, 여러 가지 목표들도 타당한 근거 속에서 조절됐다. 건축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다 든든한 디자인의 지원그룹을 얻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에게는 참여설계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이 사업의 결과물과 더불어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데 들어간다고도 볼 수 있겠다.

 

3. 아이들의 바람처럼 만들 수 있을까? 

‘원주-강릉선 올림픽 철도역사를 위한 공동체참여설계 과정을 시작하면서 각 지역의 4개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지역 초등학생들과우리 마을 철도역사 만들기를 진행했다. 공작 시간처럼 기차를 만들어 색칠하고 기차가 사는 집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철도역사는 지역의 어른들이 이 사업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랐다. 이 지역은 이전까지 기차가 다니지 않던 곳이었다. 아이들은 기차역이 예쁘고 재미있는 기차가 다니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철도역 워크숍에 앞서 참여자들과철도와 연관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나누면서 들은 내용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족과 처음 여행한 기차의 기억’, ‘몰래 탄 기차그리고통학과 친구’, ‘기차 속 먹거리창밖의 풍경등에서 참여자들의 감성적이거나 소박한 기억이 호출되었고 사실 이것이 우리가 철도역 건축에 바라는 가장 근본적인 기능과 기대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규모가 크고 넓은 공공시설에 대한공동체참여설계의 과정을 얼마 전 개통된 원주-강릉선 올림픽 철도역사 신축사업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사업의 사례처럼 건축사가 직접 참여설계과정을 주도 할 수 없었던 경우, 공동체와 함께 건축사의 설계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방식을 살펴보았다. ‘건축 퍼실리테이터로서 사업을 진행하면서일사천리로 진행돼야 할 설계 과정이 많은 공동체와의 만남과 의견을 듣다보니 더디고 답답하게 진행된다는 불만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면 귀 기울이지 않았을, 어린이와 주민들의 과거와 지역에 대한 생각과 그들이 직접 이용하는, 그래서 사랑하게 될 철도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건축사들이 듣고 담아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한국철도시설공단이 그동안 건설 후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철도역사를 우리나라 처음으로공동체 참여설계 방법을 통해 진행한 이유일 것이다.

 

. 고인룡  Koh, Inlyong  공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