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피면, 봄 술 한 잔 2019.4

2022. 12. 16. 17:10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When spring flowers bloom, what about a spring drink?

 

봄이다. 햇살은 다사롭고 꽃 향기가 골목을 떠다닌다. 그리고, 봄바람이 분다. 4월에 부는 바람은 살랑살랑이다. 꽃샘바람처럼 매서운 대신 부드럽고 다정하 다. 밖으로 나오라는 봄의 손짓 같다.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바람에 흔들리며 걷고 싶다.

4월이 되면 제일 먼저 김소월의 「바람과 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이 시에서 소월은 속삭인다. 이 봄, 마음이 이토록 흔들리는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저녁 어 스름이 찾아오면 술 생각이 나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건 모두 꽃향기 때문이고 봄바람 때문이라고

 

「바람과 봄」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김소월

 

봄에 술잔을 반겼던 소월을 핑계로 나는 술잔을 채운다. 봄 밤에 마시는 향기로운 술은 달콤하다. 한 잔 술 덕에 여기, 오늘의 봄이 내 생의 첫 봄인 양 설렌다. 지나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득하고 애틋하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더 맞이하게 될까? 아직 오지 않은 봄마저 그립고 아쉽다.

소월의 시처럼 술을 권하는 광고가 있다. 일본 니가타 현 나가오카 시에 있는 일본 술 양조장 요시노가와 주식회사의 사케 광고이다. 요시노가와는 2011년부터 최근까지 도쿄와 니가타를 오가는 신간센 열차 안에 계절에 따라 액자형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광고의 주인공은 니가타에서 나고 자란 뒤 도쿄에 있는 회 사에 취직한 젊은 여성이다. 2011년과 2012년의 시리즈는 주인공이 도쿄에 상경하여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11년

(봄) 취직을 했다. 도쿄의 남자 앞에서는 아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여름) 도쿄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나가타에는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가을) 친척 전원이 모이는 우리 집의 재(齋)를 도쿄 사람에게 설명하는 건 정말 어렵다.

(겨울) 도쿄가 맑은 날, 나가타는 눈이 내렸다.

 

요시노가와_기업PR_신간센 열차 내 광고_2011_카피

 

2011년 봄
2011년 여름
2011년 가을
2011년 겨울

 

2012년

(봄) 처음으로 아버지랑 술을 마셨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아버지가 마시던 술이다.

(여름)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나가오카의 불꽃놀이를 보러 가지 않은, 첫 여름

(가을) 그 사람을 위해서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니가타의 아버지를 위해서 뜨고 있다.

(겨울) 도쿄에 나왔기 때문에 나가타라는 둘도 없는 고향이 생겼다.

 

요시노가와_기업PR_신간센 열차 내 광고_2012_카피

 

2012년 봄
2012년 여름
2012년 가을
2012년 겨울

여자는 도쿄에 와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고향에는 좋아했던 사람이 있다. 광고에 굳이 술잔이 보이지 않아도 술 한 잔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지금 멀리 떠나왔기 때문에 고향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가 늘 마시던 술을 함께 마시며 고향의 술을 배운다. 그렇게 소녀는 자라 숙녀가 되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점점 나이를 먹는다. 도시에서 실연을 당하고, 고향에서 먼저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된 친구를 보며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2013년

(봄) 도쿄에서 실연을 당했다. 술이 세서, 다행이다.

(여름) 고향에 돌아왔더니, 소꿉친구가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을) 고백을 받았다. 이번에는, 천천히 사랑을 해야지.

(겨울) 사케를 나눠 마시니 따뜻해진다. 설국의 부부는 좋구나.

요시노가와_기업PR_신간센 열차 내 광고_2013_카피

 

2013년 봄
2013년 여름
2013년 가을
2013년 겨울

 

2014년 그녀는 청혼을 받고 제일 먼저 고향의 부모님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남자와 고향 역에 내렸을 때 비로소 결혼을 실감한다.

 

2014년

(봄) 일이 바쁘고 맞선이라니 갈 수 없어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여름) 처음으로, 도쿄 사람을 데리고 간다면, 여름이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을) 결혼하자고 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른 것은, 고향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겨울) 좋아하는 사람과 고향 역에 내렸을 때, 내가, 결혼하는구나 생각했다.

요시노가와_기업PR_신간센 열차 내 광고_2014_카피

 

2014년 봄
2014년 여름
2014년 가을
2014년 겨울

 

2015년의 광고에서는 화자가 남편으로 바뀌어 있다. 남편의 눈에는 아내가 도쿄 의 거리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어서 더 예뻐 보인다. 술 취한 아내가 ‘눈 같다. 녹아 버렸다.’라는 표현은 단정한 광고 이미지에 살짝 에로틱한 분위기 를 더해준다.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동화를 읽는 것 같다.

 

2015년

(봄) 어제 아내와 마셨다. 예뻤다. 내가 먼저 취했다.

(여름) 도쿄의 거리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네가, 좋아.

(가을) 싸웠다. 아내가 없어졌다. 내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겨울) 술 취한 그녀는, 눈 같다. 녹아 버렸다.

요시노가와_기업PR_신간센 열차 내 광고_2015_카피

 

 

 

나는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은 유명 여자 연예인이 신나게 춤을 추며 한 잔 하 라고 권하는 소주 광고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요시노가와의 사케 광고를 볼 때 술 생각이 더 난다. 나이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요시노가와의 메인 타 겟은 20대의 젊은 남녀 회사원이다.

나는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은 유명 여자 연예인이 신나게 춤을 추며 한 잔 하 라고 권하는 소주 광고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요시노가와의 사케 광고를 볼 때 술 생각이 더 난다. 나이 때문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요시노가와의 메인 타 겟은 20대의 젊은 남녀 회사원이다.

그리고 적은 양이지만 꾸준히 마실 수 있는 건강이, 어떤 장기 캠페인보다 더 오 래 허락되기를 염치없게도 희망한다.

 

 

 

 

 

 

https://yosinogawa.co.jp/tokyoniigata.php(요시노가와 홈페이지)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