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의 기쁨을 아는 몸 2022.12

2022. 12. 21. 14:04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I am the one who knows the joy of making kimchi

 

"나 김장해야 돼서 헬스장에 며칠 못 와.”

“몇 포기나 하는데 며칠씩이나 못 나와?”

“여섯 포기!”

“아이고 이 언니, 겨우 여섯 포기하면서 김장한다고 그렇게 엄살이야?”

한 여인이 큰 소리로 수선을 떨었다.

“여섯 포기가 얼마나 많이 하는 건데 그래… 작년에는 세 포기 했어. 그거 하는데도 무지하게 힘들었어.”

언니라고 불린 여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하하 세 포기가 김장이야? 그건 그냥 평소에 해먹는 김치지. 난 김장 60킬로해요!

처음의 여인은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깔깔거렸다.

며칠 전 동네 헬스장의 탈의실에서 오고 간 대화였다. 넓은 평상이 한가운데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탈의실은 옛날 목욕탕에 가까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회원들은 그곳에서 벌거벗고도 쉽게 말을 섞었다. 친절한 홍치과 2층에 있는 칼국수집이 맛있다는 얘기도 사우나의 온탕에서 얻어들었다. 목욕탕 안에서 다른 이의 등에 비누칠을 해주는 모습도 흔했다. 등에 보디로션을 바르려는 내게 ‘내가 좀 발라 줄까?’하며 친절을 건네는 낯선 이도 있었다.

김장이라는 소리에 내 귀도 쫑긋 열렸다. 지난 9월 초 친구 서너 명이 친구 형님의 텃밭 두 이랑을 빌려 심은 무와 배추가 김장을 하고도 남을 만큼 자란 때문이다. 배추는 파는 것만큼 크진 않았지만 샛노란 속이 달았고, 무는 아기 엉덩이처럼 뽀얗고 시원했다. 바라만 보아도 이쁘고 흐뭇했다. 그래서 올해는 20년 만에 나도 김장을 해야겠다고 비장한(?) 결심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여Na)    할머니가 담그시던 김치가

             엄마의 김치가 되고

             시간이 흘러 나의 김치가 되고.

             김치는, 딸과 엄마의 합작품.

자막)     Metal Ground

             한겨울 땅 속 같은 메탈그라운드

남Na)    그러므로 당신의 김치는

             한겨울 땅 속 같은 메탈그라운드에 있어야 합니다.

여Na)    김치통까지 메탈로, 지펠 아삭이 처음인 거죠?

             삼성 지펠아삭.

 

삼성전자_지펠아삭 2016 NEW:딸과 엄마의 합작품 편_TVCM_ 2015

 

어릴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김장하던 날이 생각난다. 펌프로 물을 길어 올리던 마당에서 누구는 절인 배추를 씻고, 누구는 마루에 큰 대야와 도마를 펴놓고 무채를 썰었다. 바람이 차가운데도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엄마는 부엌과 마당, 마루를 종종걸음치며 분주했다. 온 집을 가득 채우던 맵싸한 고춧가루 냄새. 아삭한 절인 배추에 돼지고기 수육 한 점과 김치 속 듬뿍 얹어 씹으면 입안에 가득 퍼지던 고소함!

 

아이)     할머니

남)        어머니

여)        엄마

여Na)   결혼한 자식들이 자꾸 집에 찾아오는 건

             김치맛이 때가 되었다는 것.

남 Na)  김치는 시간이 만드는 작품.

            한겨울 땅 속 같은 메탈 그라운드에서 숙성부터 보관까지

여Na)   4계절을 아삭하게.

남Na)   삼성지펠 아삭.

자막)    SAMSUNG

 

 

삼성전자_지펠아삭 2017 NEW:시간이 만드는 작품 편_TVCM_ 2016

김장을 결심한 뒤 채칼을 검색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첨단 가전제품이 수두룩한 대한민국에 무채를 원하는 모양으로 척척 썰어주는 자동 기계는 없었다. 할 수 없이 30년도 더 된 집에 있는 채칼을 쓰기로 했다.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고수들의 김장 비법을 찾아보았다. 살림꾼 친구들을 만나면 김장 레시피를 물었고, 멀리 강진 사는 농부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양념에 배를 갈아넣는 친구도 있었고 홍시를 넣는 유튜버도 있었다. 한 친구는 생태와 굴, 낙지를 첨가하면 김치에 더해 해물까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고 비법을 전했고, 강진의 농부는 무를 믹서에 갈아 넣으면 편하고 깔끔하다고 알려주었다. 장장 열흘의 고민 끝에 제일 먼저 주문한 것은 지름이 63센티미터나 되는 초대형 소쿠리였다. 김장 비닐에 배추를 절인 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뺄 요량이었다. 새우젓도 없고 파와 마늘도 없으면서 고작 소쿠리라니! 내가 생각해도 엉터리 주부 티가 팍팍난다.

 

동네방네 소문내며 물어보고 도움받고 엄살을 떨며 배추 스무 포기 김장을 했다. 김치냉장고를 산 지 9년 만에 김치통을 씻어 김치냉장고의 선반 두 개를 김치가 가득 든 김치통으로 채웠다. 냉장고에 김치가 꽉 차니 신석기 시대에 연탄 300장을 쟁여 놓은 것처럼 든든하고 넉넉하다. 겨울이 오는 것이 두렵지 않다. 
광고에서 김장은 ‘딸과 엄마의 합작품’이라지만 나는 딸도 없고, 김치 통을 들고 찾아올 ‘결혼한 자식’도 없다. 그래도 김장이라는 어마어마한 과업을 해치우고 나니 올해 할 일을 다 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김치가 익으면 당분간 집밥만 먹어야지! 그동안 내게 김치를 나눠준 내 식탁의 후원자들이나 대기업 김치만 사 먹는 지인들에게 선심도 써야지! 텃밭에서부터 시작한 1박 2일의 과도한 김장 노동에 온몸은 천근만근인데도 즐거운 궁리가 밤늦도록 깊었다. 
나도 드디어 김장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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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_지펠아삭 2016 NEW:딸과 엄마의 합작품 편_TVCM_ 2015_tvcf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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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_지펠아삭 2017 NEW:시간이 만드는 작품 편_TVCM_ 2016_tvcf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 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 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 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 >(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