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2. 10:36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Flowers have power
“너는 엄마가 왜 너를 낳았을까? 생각해 본 적 없어?”
올해 여든 일곱이 된 노모가 물었다. 내심 효도 관광이라 생색내며 찾은 강릉, 바다가 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였다.
“아니, 한 번도 없어. 하하 여태 잘 살아서 그런가?” 나는 짐짓 명랑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가 뭐 하러 나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무슨 소리야, 할머니가 엄마를 낳았으니까 우리들도 태어났고 손자, 손녀들도 태어나서 잘 살고 있잖아. 엄마가 없으면 우리 전부 없는 건데 ‘뭐 하러’라니?”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는 엄마가 겨우 백일 무렵에 돌아가셨다. 분유도 없던 시절에 엄마가 살아 남은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때 구에서 가장 노령의 장구 고수였고 노래교실은 물론 영어, 요가, 컴퓨터까지 배우러 복지회관에 출근하던 엄마가, 여든이 넘으면서는 부쩍 “재미 없다” 는 말을 자주 하신다. 먹는 것도 몸을 꾸미는 것도 집을 정리하는 일도 모두 시큰둥이다. 빨리 죽고 싶다는 얘기도 서슴지 않는데 빈말이 아닌 듯 들린다. 애써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나들이를 갔는데도 억지로 따라 다니는 기색이 보인다. 이가 불편해서 잡숫는 양은 내 것의 반에도 못 미치고, 걸음도 느려져 어쩌다 내가 성큼 한 발을 떼면 종종걸음으로 숨차게 따라오신다.
그런 엄마가 허난설헌 생가 마당의 작약 앞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진분홍과 연분홍, 흰색 작약꽃송이들이 탐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고, 튤립나무에는 튤립 닮은 노란 꽃이 피어 있었다. 작약 앞에서 엄마는 모처럼 카메라를 보고 웃으셨다. 엄마는 빨간 꽃양귀비나 보라색 등나무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루만지셨다. 우리 엄마 아마도 ‘꽃침’에 맞아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신 것 같다. ‘꽃침’은 함민복 시인이 쓴 ‘봄 꽃’이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기가 막히게 멋지다. 꽃의 부드러운 힘을 꽃침이라고 썼다. 시인은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삔 발목이 낫는 것처럼, 꽃의 부드러움에 찔리면 절뚝거리는 아픈 마음이 낫는다고 말하고 있다.
꽃의 힘을 내세운 광고도 있다. 꽃 소비 활성화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만든 영상이다. 광고는 연인의 감성적인 행동을 통해, 우리의 주변에 늘 존재하는데 바쁘고 각박한 현실 때문에 잊고 지내는 꽃을 표현하고 있다. 1분 30초 동안 이어지는 영상과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예쁘다.
광고는 일이 바빠 야근이 잦은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준다. 영상 속에서 두 사람은 직접 만나지 않고 자막과 목소리로 대화한다. 바쁘게 오가는 남 자에게 여자는 보낼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흔하지만 아마도 잊고 있는 것, 주고받으면 특별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 남자 의 책상 위에는 여자가 보낸 꽃다발이 놓여있다.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남자는 길가에서 만난 코스모스를 말려 노트에 붙여서 여자에게 선물로 보낸다. 광고 에서는 꽃을 받고 또 줌으로써 평범한 하루가 아주 특별한 날로 변한다.
자막) 특별하지 않은 날
여) 오늘도 야근해?
남) 글쎄, 왜?
여) 보낼 게 있어서.
남) 뭔데?
여) 별 건 아니고.
남) 무슨 날인가?
여) 무슨 날에만 뭘 주나?
남) 괜히 돈 쓰지 말고.
여) 커피값 정돈데 뭘.
남) 뭐길래?
여) 잘 찾아보면 주변에 이미 있을지도?
남) 구하기 쉬운 건가?
여) 음… 마트에만 가도 있고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노랫말에도 있을 거고…
해마다 구경가자고 조르기도 했는 걸?
워낙 바빠, 잊고 사는 것 같아서
남) 그럼 특별한 거네.
여) 특별해지는 거지.
남) 후후 여) 왜 웃어?
남) 왜 웃긴… 평범한 오늘을 특별하게 만드는
꽃에는 힘이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기업PR 2017 카피
2018년의 광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꽃으로 마음을 표현하라는 메시지를 짝사랑에 빠진 순수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타이즈드 광고로 달콤하게 전하고 있다. 광고를 들여다 보자.
늘 가는 카페에서 일하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녀에게 애타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남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 슴 X레이를 찍어서 필름을 햇볕에 비춰본다. 필름에는 마음은 흔적도 안 보이고 갈비뼈만 허옇게 찍혀 있다. 답답해진 남자는 마음을 찍는 사진관을 찾는다는 사연을 인터넷에 올린다. 인터넷에 올라온 대답을 듣고 찾아간 ‘마음 사진관’. 사진관의 주인은 마음을 찍는 사진관은 없지만,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꽃이 있다고 알려준다. 꽃 한 다발을 들고 짝사랑하는 그녀를 찾아가는 남자의 모습으로 영상은 끝이 난다.
Na) 불가능합니다. 마음을 찍을 수는 없어요.
자막) 마음을 찍는 사진관
남자) 마음을 찍는 사진관이 있다면… (한숨)하아…
여O.V) 저도 두 달 전에 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그 답을 찾았습니다. 우연히 들른 오래된 사진관에서…
어…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진관에서 바라본 남산타워가 캔들처럼 빛났어요.
S.E) (도어벨소리)딸랑
남자) 혹시 이곳에서 마음을 찍을 수 있나요?
사진관주인) 네? 남자) 그럴 수만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사진관주인) 신기하네요, 두 달 전인가 어떤 여자분이 똑 같은 질문을 했거든요.
마음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분이 있어요?
남자) 네.
사진관주인) 세상에 그런 사진관은 없어요.
하지만 실망하지 말아요.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신은 세상에 꽃을 만들었으니까.
남자) 당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꽃에는 힘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기업PR 2018 카피
꽃을 참 허망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먹지도 못하고 오래 간직할 수도 없는데다 시든 후에는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되어버리니 실용성이 전혀 없 는 선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더 이상 꽃을 받을 일이 없는 나이(?)가 되고 보니 꽃 욕심이 좀 난다. 오래 가지 않아서 더 귀하고, 간직할 필요 없어서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주변을 둘러 보면 의외로 지천에 꽃이다. 집을 나서 지하철까지 가는 동안에도 넝쿨장미, 라일락, 민들레가 보인다.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애를 쓴 덕분인지 길가 화단에도 베고니아, 팬지, 백일홍, 개양귀비들이 손을 흔든다. 지하철 입구에 꽃 파는 노점이 있어 기웃거린다. 주인 아저씨가 굳은 살 배긴 거친 손으로 장미를 다듬고 있다. 겨우 커피 한 잔 값을 내고 신문지에 둘둘 만 장미 열 송이를 받아 들었다. 이 꽃을 누구에게 줄까?
아무 날도 아니지만 꽃을 받고 기뻐할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금세 마음이 환해지고 착해진다. 꽃의 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mF_BIC5lyY
농림축산식품부_기업PR_2017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SOLiYSQxGpc
농림축산식품부_기업PR_2018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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