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인생이란 뭘까?” 2019.7

2022. 12. 23. 13:06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Ultimately… What is life?"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세 명과 기모노를 입은 여자 한 명이 각각 우산을 쓰고 서 있다. 일본의 신사나 사찰로 보이는 장소의 정원이다. 50대 말에서 60대 초 반으로 보이는 네 사람은 어릴 때부터의 친구로 보인다. 분위기가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그냥 헤어지기가 허전해서 모여 있는 것 같다. 그 중 한 남 자가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이제 지위도, 영예도 필요 없다고, 돈도 조금만 있으면 된다고. 말은 그렇게 하는데 지위도 있어 보이고 돈도 많아 보 이는 인상이다. 평생 지위와 명예, 돈을 추구해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친구가 믿을 수 없다고, 그럼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그의 대답은 ‘사랑’이 다. 귀밑머리 허연 남자가 돈은 조금만 있어도 되고 사랑만 필요하다고 얘기하니 웃음이 나온다. 산토리에서 만드는 캔커피 ‘보스 오토나노류우기’의 TVCM 에 나오는 대화다.

 

남1)       난 이제 지위도 필요 없어.

              영예도 필요 없어.

              돈도 조금만 있으면 돼.

남2)       믿을 수 없군.

남3)       그럼 넌 이제 뭐가 필요한데?

남1)       사랑.

여)         앗하하하하!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_TVCM_2011_카피)

 

보스 오토나노류우기의 광고는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3편을 연속해서 보면 이들의 대화가 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고는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깨닫게 된 통찰을, 네 사람의 목소리로 너무 심각하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들려주고 있다.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_TVCM_2011_스토리보드

 

남3)        질투심

남2)        허영심

남1)        전하지 못한 마음

여)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

남1)        우리 어른들은 남2) 쓸데없는 것을

남3)        끌어안고 살고 있어.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②_TVCM_2011_카피

 

남3)        결국… 인생이란 뭘까?

여)          옛날에 그런 얘기 자주 했었지요.

남1)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남2)        난 알고있어.

여)          응?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남자2를 돌아 본다.)

Na)        설탕도 필요 없다.

              지방도 필요 없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

남2)        (재채기)에이취!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③_TVCM_2011_카피)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③_TVCM_2011_스토리보드

 

설탕과 지방이 없는 캔커피를 질투심이나 허영심, 돈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게 되는 혹은 버려야 하는 중년 이후 노년의 특징과 결합시켜 표현한 것이 재 미있다. 광고는 성인병에 노출된 노년의 몸이 지방과 설탕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노년의 마음은 쓸데없는 욕심이나 겉치레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노 인이 다 된 나이에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솔직한 고백도 공감을 일으킨다. 보스에 붙은 브랜드명 ‘오토나노류우기(大人の流儀)’는 성인의 방식이라는 뜻이다. 일본어 사전을 보니 류우기(流儀)는 ‘그 사람의 독자적인 방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캔커피 이름 하나에도 인생의 철학을 담는 산토리라는 회사 가 놀랍다. 겨우 15초짜리 광고 세 편에 그렇게 심오한 이야기를 그렇게 힘을 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담을 수 있는 카피라이터의 재치가 부럽다.

보스 광고 속에서 죽은 이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남은 친구들에게 이런 상념을 불러일으켰을까? 평생 탐욕스럽게 돈과 지위를 쫓았을까? 질투와 허영으로 인 심을 잃었을까? 아니면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허무하게 죽었을까? 생각은 ‘내가 죽으면 나의 지인들은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까?’하는 데까지 뻗어나간다. 내가 참석할 수 없는 행사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 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의 죽음을 조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전할 메시지라도 미리 적어 둘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재미있게 살다가 미련없이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국밥 한 그릇 배불리 먹고 가라고. 죽 으면 못 하니까, 살아있는 너희들은 서로 마주 앉아서 밥 한 번 더 먹으라고.

찾아보니 본인의 장례식에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선곡한 음악을 틀어주는 내용의 TVCM도 있다. 전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Spotify)는 2017년 죽은 이가 자신의 장례식에 쓸 음악을 미리 선곡해서 플레이리스트(Playlist)에 담아둔다는 내용으로 동영상 광고를 만들었다. 장례식에 서 관을 든 사람들은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록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흘러나오는 음악은 장례식의 엄숙함과는 거리가 먼 미국의 록 밴드 디앤 씨이(DNCE)의 바디무브즈(Body Moves)라는 노래다. 광고 모델로 나선 DNCE의 멤버는 장례식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틀면 엉망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데 의외로 영결식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관을 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망자가 마련해 준 잔치판에 모여 슬프지만 평생 잊지 못할 파티를 즐기는 것처럼 보 인다. 장례식이 꼭 조용하고 슬프란 법이 있나? 장례식에서 이런 재미있는 일도 가능하구나, 신선한 발견이다.

 

남)        알리맨*이 ‘내 장례식에서 이것들을 틀어줘.’라고 이름 지은

            플레이리스트(PLAYLIST)에 우리 노래 몇 개를 올려 놓았대.

            장례식에서 누군가가 우리 노래를 듣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장례식이 좀 엉망이 되지 않을까?

BGM)   DNCE의 Body Moves

자막)    ‘내 장례식에서 이것들을 틀어줘.’

             그녀는 당신이 이 노래를 듣기 원했을 거예요.

             (스포티파이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찾고 팔로우하고

             그리고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도 있어요.

 

(스포티파이_TVCM_2017_카피)

 

스포티파이_TVCM_2017_스토리보드

 

스포티파이 광고의 유튜브 링크 아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죽으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컬러풀한 색상의 옷을 입고 조문 오라고 하겠다는 댓글을 달았 다. 외국인인데 BTS나 2NE1의 노래를 틀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내가 죽은 뒤 문상 온 사람들이 너무 무거운 마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유쾌하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야 한다. 돈은 조금이면 되고 영예나 지 위, 지방과 설탕은 필요 없고, 단 하나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보스 TVCM의 충고를 따르면 가능할 것도 같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나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 은 만들지 말자. 질투나 허영심에 이끌리지 말고, 나만의 방식대로 내 스타일의 삶을 사는 거다. 보스 오토나노류우기나 스포티파이 영상 광고가 전하는 메시 지처럼 남은 인생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나니 다가오는 더위도 나이 먹는 일도 두렵지 않게 느껴진다.

 

 

 

*알리맨 : 스포티파이 서비스에 가입한 아이디로 추정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PumxZKgMjA

(산토리 보스_오토나노류우기 시리즈①~③_TVCM_2011_유튜브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l3ASwNgE7Zw

(스포티파이_ TVCM_2017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업 계에 입문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주)샴페인,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 계열의 벨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 일했다. 독립대행사인 (주)프랜티브에서 ECD로 일하 다 독립하여 다양한 광고물 제작과 글쓰는 일을 하고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