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건물은 내 것만이 아닌 모두가 향유하는 것, 공공성에 기반한 건축사의 책무 커”_김원석 건축사 2019.4

2022. 12. 19. 10:19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One building is not only for me but for everyone's enjoyment. Great responsibility of architects based on public interest."

 

Q 한창 활동시절 어떠셨는지요?

김수근 건축사와의 인연은 69년도부터 입니다. 69년 엑스포 오사카 박람회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했죠. 공간건축이 13명으로 시작되어 종로구 원 서동에 사옥을 71년 완성해 입주했습니다.

옛날엔 손수 도면을 그려 일을 했는데, 요즘은 컴퓨터로 도면을 작성하는 걸 보면 젊은 날의 향수가 나질 않아요. 70년대부터 컴퓨터로 작업을 했는데, 공간이 거 의 처음 도입해 운영했죠. 60∼70년대에는 해외작업에도 눈을 돌렸습니다. 75년 도부터 이란 테헤란에 주거지역 설계를 하고, 외화도 많이 벌었 죠. 그러다보니 정부지원도 받았습니다. 그 당시 해외사 업으로 어려웠던 공간의 살림이 좋아지기 시작했죠. 공간은 88올림픽 유치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73년 올림픽 경기장 마스터플랜을 시작해 88년까지 15년에 걸쳐 대회성공을 위해 서포트를 했습니다. 지금은 당시 자문위원, 설계자, 협업한 분들 이 다 돌아가신 상황입니다. 지금 남아있 는 분이 나를 포함해 공간건축 고문 김 남현씨가 있네요. 올림픽 경기장은 처 음엔 아시안 게임만 유치하는 걸로 돼 있다 올림픽이 유치되며 프로그램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런 큰 프로젝 트를 손수 진행했다는 것에 상당한 자 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하철 2호선 도 운동장 쪽으로 노선이 통과되게 했 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이 잊혀지지 않네요. ‘아리장’도 지은 지 40년이 넘은 작품입니다. 당시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어요.

건축을 한 것에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수많은 동료들과 땀 흘리며 꿈 을 나눴고,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한달 중 보름 정도를 집에 가질 못하고, 사 무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일을 했지만요. 지금이야 다들 주말엔 쉬지만, 그때 만 하더라도 집에 갈 생각을 못 했어요. 일에 파묻혀 살았고, 지금이야 그때처 럼 그럴 순 없는 노릇이죠.

옛날 친구들이 잘 버텨줬고, 한 여름에 에어컨도 없을 때라 체력관리 한다고 축구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공간에서 전국 경기장 마스터플랜을 상당히 많 이 했습니다. 설계비가 많지 않으니 발주처에서 다른 일을 많이 연결해줬어요. 전국 지자체에 체육시설을 지으려면 공간에 가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 다. 옛날 생각하면 할 얘기는 정말 많아요.

 

Q 요즘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건축은 기계가 하는 게 아니라 설계자의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평소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고 기억을 보존하며 중요한 순간을 내면화하면 영감을 얻고 발상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건축을 하 려면 그 나름의 건축철학이 정립돼야 하는 거죠. 건축철학으로 무엇을 나타낼지, 어떻게 표현할지가 중요합니다.

 

건축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건축 하는 사람은 먼 미래, 앞을 내다보며 설계를 해야 합니다. 하나의 건물은 내 것만이 아닌 모두가 향유하는 것이니 공 공성에 기반하며, 이 때문에 건축사의 책무도 매우 크다 할 것입니다. 

 

 

글·.사진 안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