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9. 10:23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Intergenerational connection, the era of disappeared issues - It is time to look at the changing society while putting together differences and small voices"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건축정책기본계획,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공공 건축가. 지금 우리 건축계를 정의하는 중요한 개념들이다. 이 모두 2007년 제정 된 건축기본법에 근거한 내용으로서 당시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 건 설교통부, 문화관광부의 ‘건축문화 선진화전략’ 핵심과제였다. 그러나 ‘건축기본 법’이 있어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김광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였다. 그가 연구책임자로서 건축기본법의 바탕을 만들었으며, 오늘의 건축계를 정의하는 건축기본법의 틀과 개념 그리고 용어의 설정도 거의 그의 구상에서 나 왔다. 대한건축사협회(한명수 명예회장)와 건설기술·건축문화선진화위원회(김 진애 위원장)가 이 법 제정을 위해 큰 힘을 기울였다면, 그는 이론적 기틀을 확립 한 인물이다. 그는 학계에 있었지만 설계대가 제값 받기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 이유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전문가로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최대의 근거는 제대로 된 설계대가에 있다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목표는 그들이 사회에 나가 좋은 대접을 받게 하는 겁니다. 건축계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지금 또 묻는다면 단언컨대 나는 제대로 된 ‘설계대가’라고 말할 겁니다.”
김광현 명예교수는 과거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 에서 ‘친환경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등 추가업무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하고 이를 연구한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는 지금 젊은 건축사 건축교육 저변확대를 위한 ‘공동건축학교’를 설립해 활발히 운영 중이다
월간 「건축사」가 국내 건축계 발전을 위해 힘써오다가 작년 2월 정년퇴임한 김 광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를 3월 18일 그의 대학로 연구실에서 만났 다. 그는 지난날을 회고하며 건축에 얽힌 이야기와 현재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구 상 중인 향후계획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Q 그동안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셨습니다. 건축계 리더들을 키워온 입장에서 소회를 말씀해주십시오.
A 많은 나의 제자들이 과연 어떤 리더가 됐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리더라 고 해도 크고 작은 리더가 있고 또 그들을 리더로 알아주는 것은 결국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서울시립대에서 시작하여 서울대로 옮겨 건축을 가르친 시간이 41 년 8개월하고도 24일이었습니다. 서울시립대에서는 12년 반 있었어요. 그때 만 났던 초기의 제자들은 저와 나이가 크게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아직까 지도 참 극진히 대해 줍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지금은 훌륭한 건축사, 교수가 되어 가끔 만날 때면 그저 약간 아래인 후배 같아요.
저는 제자 복이 많아서 참 많은 학생을 제 제자로 둘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생 수 만 따지면 꼭 200명 됩니다. 이것이 제게 가장 큰 복입니다. 서울대학교로 옮긴 후에는 제자가 참 많았어요.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서울대로 부임했을 때 어쩌면 김광현 교수가 오실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믿고 석사과정에서 기다리 고 있었다던 중앙대 전영훈 교수, 제주대 김형준 교수, 세종대 김동현 교수 세 사 람입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옮기자마자 제게는 석사과정생이 있었고, 돌아가신 이광노 교수님 연구실을 이어받았으므로 남아 있었던 이 교수님의 많은 박사과 정생들이 제게 주어져서 부임 때부터 연구실에는 제자가 많았습니다.
저는 제자 복이 많아서 참 많은 학생을 제 제자로 둘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생 수 만 따지면 꼭 200명 됩니다. 이것이 제게 가장 큰 복입니다. 서울대학교로 옮긴 후에는 제자가 참 많았어요.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서울대로 부임했을 때 어쩌면 김광현 교수가 오실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믿고 석사과정에서 기다리 고 있었다던 중앙대 전영훈 교수, 제주대 김형준 교수, 세종대 김동현 교수 세 사 람입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옮기자마자 제게는 석사과정생이 있었고, 돌아가신 이광노 교수님 연구실을 이어받았으므로 남아 있었던 이 교수님의 많은 박사과 정생들이 제게 주어져서 부임 때부터 연구실에는 제자가 많았습니다.
사실 저는 30∼40대에는 나의 전공에 관한 주제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건축형 태, 건축의 자율성과 같은 문제에 큰 관심이 많아 다소 아카데믹한 분위기를 중 요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그때의 저를 기억하시는 분은 좀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 기를 늘어놓는 교수로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그렇지만 80∼90년대에는 학생이 건 실무 하는 건축사들 모두 참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저도 그 사이에 당 시의 교수 치고는 학교에 있으면서 설계를 많이 했고, 많은 건축사들이 싫어하는 서울시 등의 심의, 심사, 각종 위원회에서 참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에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 시야가 달라졌어요. 제도, 공간, 시설, 공동성, 주변 이라는 주제로 관심이 확장됐어요. 그러면서 학회에 논문 100편 쓰더라도 그것 이 건축설계를 위한 법규 두 세 자 못 고친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공부는 사 회의 제도를 바꾸는 것에 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어요.
어느 사이엔가 건축사란 누구인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학생들에게 자주 말 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이 가게 될 건축사 편에서 나의 학문을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서울대 건축의장연구실 문에는 이런 글을 늘 붙여 두고 있었습니다. 박지원 선생 의 글인데 연구실의 좌우명과 같은 것이었지요. “선비가 독서를 하면 그 은택이 천하에 미치고 그 공덕이 만세에까지 전해진다.” 학문적인 연구는 그 은택이 사 회에 미쳐야 한다는 뜻이에요. 사회에 은택을 주지 못하는 건축학 연구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현대건축의 주요 개념, 주장, 이슈를 이 런 실천적인 관점과 관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과 공부를 했습니다. 서울 대에 들어와 25년 있는 동안 매주 금요일에 밤 10시, 11시까지 하던 연구실 ‘금 요세미나’를 은퇴할 때까지 1,005회를 했습니다. 거의 매주 한 것이지요. 저는 이 기록은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믿어요.
Q 최근 건축사지 600호를 맞아 창간호부터 PDF 파일을 훑어보다가 창간호부 터 설계보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1966년도부터 설계보수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나오고, 설계·감리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심지어 72년도는 “대가 제대로 받고,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을 제대로 인정받 자”고 감리 선언까지 해요
A 설계·감리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것은 한때의 이슈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 보죠.(웃음) 그건 제가 이야기할 게 아니라 건축사협회의 원로 건축사 들께서 말씀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대학 교수였던 저도 참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건축은 빛과 그림자라는 관점도 중요하지만, 건축사가 어떤 사람이고, 우리가 어 떤 일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데에 관심이 많아지게 해야 해요. 학 교에서부터 이런 이슈를 절실하게 가르쳐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묻고 싶어요. 누구를 위해서이고 뭘 위해서지요? 논문 실적이라는 것도 결국 누구를 위한 실적이고 무엇을 위한 실적이어야 하나 요? 논문 자체가 목표이고 연구 주제가 목표일까요? 만일 그것이 가장 큰 목적이 라면 교수는 왜 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치지요?
“설계하는 사람을 architect라 부른다. ‘arch-’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건축 은 미학이요 종합예술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백날 하면 뭐하나요. 건축하는 인간에게 제일 소중한 건 제대로 된 설계 대가를 받아 자기 일을 잘 하고, 건축을 통해 주변에 이로운 일을 하며 사회에 조금이라고 공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 이상으로 무엇이 있겠어요. 그러니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목표는 그들이 사회에 나가 좋은 대접을 받게 하는 겁니다. 건축학 교육 인증도 다 이런 것에 목표를 두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연구라는 것이 건축사와 기술사로 하여금 좋은 작업을 하고 또 제대로 대접을 받게 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지요. 연구 자체가 목적은 아녜요. 따라서 가장 중요한게 설계대가입니다. 건축학이 진리를 찾는 학문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건축실무쪽 은 어떤가요? 현실이 이를 따라주지도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비워라, 침묵해라,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 대중에게 듣기에는 멋지 게 보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주장은 건축의 현실과 동떨어진 허망한 사고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2009년 즈음 건축사자격시험 출제위원장을 두 번 정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채점을 다 완료한 후 회식 자리에서 국토부 건축기획과장에게 뭔가 설계 대가를 고쳐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중국집에서 짬뽕 얼마에 잡수세요?”했더니 “왜 그러세요, 교수님. 6000원인가요?”래요. 그래서 “‘삼선’짬뽕은 얼마예요?”그랬 더니 “7000원 하나요?” 그러면서 또 물었지요. “그러면 ‘삼선특’짬뽕은 얼마예 요?” “그런 게 있어요? 한 만원 줘야겠죠? 그런데 교수님 왜 그런 말을 자꾸 하 세요? 중국집 하세요?”라기에 이렇게 말했지요, “하다못해 짬뽕도 해산물이 더 들어가면 값을 더해 주는데, 친환경 설계, IBS 빌딩 설계비는 왜 따로 안주고 시 키나요?”했더니 갑자기 머쓱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요. 설계비는 그대로이면서 같은 값에 친환경 설계해라, BIM 설계 하라 하면 결국 국가가 설계 비 깎는 게 되지 않는가라고, 일을 더 시키려면 그것에 합당한 비용을 더 지불하 게 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요.
3일 후에 건축기획과장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말씀 들어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 더라고요”라면서 “설계대가 연구를 해야겠어요”라는 거예요. 그래서 친환경설 계, BIM, IBS 빌딩, 에너지 효율등급, 현행 건축설계대가를 포함한 ‘건축설계대 가 산정기준 연구’를 하고 국토부 장관 고시가 나오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연구하던 박인석 명지대 교수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발표 요약지를 내 밀면서 우리 건축사협회는 해방 이후로 한 번도 설계대가에 대해 뭘 어떻게 해달 라고 주장해본 적이 없다고 한탄하더군요. 정부에서 정한 대가를 그대로 받고만 있었다는 거죠. 그때 이런 연구를 하면서, 왜 건축사들은 스스로 대가를 어떻게 해달라고 안 하는지 참 많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과거 대한건축학회장 출마 때 학회장이 돼서 2년 동안 설계대가 개선을 정부를 상대로 설득한다면 뭔가 바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성공을 못했습 니다. 바로 그 시점이 설계 대가를 변동시킬 수 있는 무언가 흐름이 존재하고 있 는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출마한 단 하나의 목적은 그것이었습니 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출마 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를 반대하는 학회에 소속한 분들이 “아니, 저 사람은 왜 건축사협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학회에서 한 다는 거야? 저 사람 건축사 앞잡이 아니야?” 이러기까지 했죠.(웃음) 그런데 어 디 그렇습니까? 학생들을 왜 키우나요. 그들은 5∼10년 지나 건축사, 기술사가 될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들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줘야 하지 않습 니까? 대학은 해외로 유학 가는 박사들만 키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건축계에 서 해야 할 중요한 게 뭐냐고 지금 또 묻는다면 단언컨대 나는 ‘설계대가’라고 말할 겁니다.
과거 대한건축학회장 출마 때 학회장이 돼서 2년 동안 설계대가 개선을 정부를 상대로 설득한다면 뭔가 바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성공을 못했습 니다. 바로 그 시점이 설계 대가를 변동시킬 수 있는 무언가 흐름이 존재하고 있 는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출마한 단 하나의 목적은 그것이었습니 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출마 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를 반대하는 학회에 소속한 분들이 “아니, 저 사람은 왜 건축사협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학회에서 한 다는 거야? 저 사람 건축사 앞잡이 아니야?” 이러기까지 했죠.(웃음) 그런데 어 디 그렇습니까? 학생들을 왜 키우나요. 그들은 5∼10년 지나 건축사, 기술사가 될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들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줘야 하지 않습 니까? 대학은 해외로 유학 가는 박사들만 키우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건축계에 서 해야 할 중요한 게 뭐냐고 지금 또 묻는다면 단언컨대 나는 ‘설계대가’라고 말할 겁니다.
Q 건축사가 어려우니 월급도 낮고, 비전도 보이지 않고, 일에 시달린다고 학생 들이 잘 건축학과에 오지 않죠. 그런데 제가 일을 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요.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소득이 어느 정도는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설계대가가 올라야 합니다. 협회 신문에서도 기사를 준비 중입니다.
A 그 사이에 설계비가 안 올랐으니 그렇다면 10년∼15년 전에는 참 싼 설계비 를 받은 셈이 되는군요. 자, 설계 대가는 건축사만의 것이 아닙니다. 구조나 설비 기술사의 대가도 그것에 다 포함되죠. 최근 한국경제신문 칼럼에 “건축설계는 거 대한 수제품이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본래 제목은 “내 제자들의 건축설 계를 싼 값으로 사지 마라”였죠. 정말 본래 제목처럼 심각합니다.
Q 저는 클라이언트와 설계대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싱크대 얼마짜리 쓰세요? 수입제면 4미터 기준으로 한 3,000∼4,000만원이고, 비싼 건 7,000∼8,000 만원까지 하는데, 난 이 집 전체를 해주지 않나요”라고 하면 클라이언트들이 더 이상 깍지 않더군요.(웃음)
A 맞아요. 설계비는 그럴 정도의 것이에요. 지난번 어떤 신문 칼럼에도 썼듯이 큰 설계사무소든 중형사무소든 웹사이트를 들어가면 내용이 전부 똑같습니다. 메뉴를 보면 ▲피플 ▲프로젝트 ▲어바웃 ▲컨택트 등. 그리고 처음 화면 아주 멋 있고 신선한 말들이 있어요. 그런데 설계비는 어떻게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한 마 디도 없어요. 우리는 설계비 얼마에 이런 이런 일을 한다는 일종의 약속을 전혀 알리지 않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설계대가를 제대로 받겠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리딩 아키텍트들이 꼭 이런 것까지 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얼마를 설계대가로 받겠다는 선언 정도는 해야 리더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게 안 되면 양을 줄여서 하겠다든지, 다른 걸 잘할 수 있다든지 이런 것들을 표현 해주면서 주장을 펴야 대가가 결정되는데 전부 다 똑같은 마음에 자기가 받아야 할 대가에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값이 형성이 안 되고, 66년부터 시작했던 말 들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물론 제 말도 어디까지나 제3자에서 하는 말이고 보면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요.
Q 제가 과거 건축사지를 보면서 60∼70년대 저도 모르던 선배들의 작품들을 보게 됐어요. 그러나 공일곤, 홍철수 선생님을 주변에서 거의 모르더군요. 작품 을 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조사를 해봤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품이 없더군 요. 저는 이렇게 우리 건축 작품의 맥이 끊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학문적으로 한국적인 현대건축을 이야기하지만 사 실 이론적으로 정립이 안 됐을 뿐더러 지금 건축아카이브가 없지 않나요. 지금 이라도 이걸 하지 않으면 20∼30년 뒤 2000년도에 우리가 무얼 했는지 알 수 가 없지 않습니까.
A 우리는 왜 아직도 김중업, 김수근 선생 이야기만 하는지. 사실 이 두 분은 대등 한 인물이 아니에요. 김중업 선생이 한참 위인 분이죠. 그런데 어느 날 ‘김중업, 김수근’ 하더니 어느 사이에 ‘김수근, 김중업’이라 하고, 이제는 김중업 선생 이름 은 아예 빼 버리고 ‘김수근, 김수근’만 말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왜 그러냐고 요? 그건 김수근 선생의 제자가 더 많기 때문이지요.
그럴 정도로 한국건축계 담론은 1960년대 김중업과 김수근 시대에 멈춰 있어요. 그러나 우리 건축을 만드신 분들은 이 두 분만 계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대학 교 2학년 때 건축사지를 통해 나상진 선생님의 작품을 보았는데 참 멋있었습니 다. 그런데 이제는 그 분 성함을 거의 다 모릅니다. 지금 대학생들은 엄덕문 선생 님 성함도 잘 모릅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나 알지만, 한국 건축사는 몰라도 국민 모두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요, 안도 다다오요. 입시 면접 때 제일 많이 듣 는 사람은 안도 다다오예요. 너도나도 안도 다다오에 감명을 받아 건축학과에 지 망했데요. 며칠 전 수원의 옛 서울대 농대 자리에 강의동 건물이 있는데 이걸 설 계한 분이 누구냐는 거예요. 김희춘 교수님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이제는 누가 설 계했는지 아무도 모르더군요. 이분 또한 남겨진 작품이 다 사라져 내 블로그에 한 자 남아서 제게 전화 걸었답니다. 이 분이 이럴 분입니까?
건축계 큰 별, 작은 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있지만, 이런 분들은 다 잊어버리면서 내 작품, 내 작품 하면 뭐합니까? 자기 선배, 조상도 모르는데 계통이 서겠어요? 그러면서도 ‘작가’, ‘작품’은 무지하게 좋아해요. 게다가 자기 작품을 ‘무슨 미학’이라고 말하기도 좋아하지요? 부산의 제자 교수가 알려주더군요. 부산 지역에서는 대학에서 한국건축사를 가르치는 곳이 한 곳도 없데요. 효율적 운영을 한다고 한국건축사 같은 것은 제외해 버렸다네요, 참.
Q 아카이브에 대한 논의가 건축계 전반에 문제제기가 되어 논의돼야 하지 않 을까 생각합니다.
A 더 큰 문제는 건축계 이슈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예요. 말할 거리가 없어지는 시대에 옛날 것을 알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나 봐요. 사정이 이런데 최 근 저는 일본의 마키 후미히코 선생은 나이가 87세에 ‘표류하는 모더니즘’이라는 책을 낸 것에 놀랐습니다. 그러더니 이 분의 생각에 이토 도요 등 많은 분이 자기 의견을 적어 ‘응답 표류하는 모더니즘’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러나 다들 자기 논지를 쭉 써서 풀어놨지 “선생님 참 훌륭하십니다”라고 적은 게 아녜요. 그런데 이 ‘응답 표류하는 모더니즘’ 책 뒤에 마키 선생이 또 다시 ‘응답에 대한 응답’을 또 썼습니다. 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자기 입장이 옳다는 것이지요. 그때 나이 90세입니다. 우리는 어떤 건물이 누가 설계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데, 그들은 건축계의 어른이 말하고, 듣고, 이의를 제기하고 또 말하고 있어요. 이 런 이슈가 ‘표류하는 모더니즘’이라는 책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 이 시대의 이야기 거리는 무엇입니까? 서울시 비엔날 레 등 인위적인 주제를 걸고 그렇게 일회성 전시회는 많이 하면서 왜 모여서 제대 로 된 말은 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우리 시대의 건축 언어입니까?
Q 정체성이 뭔지 이야기할 때 맥이 연결이 안 되니 계속 수입만 하지 않습니 까. 요즘 잡지를 보며 드는 불만 중 하나가 책에 한글을 지우면 그냥 해외잡지 와 똑같다는 겁니다. 일본은 그 사람만의 색깔이 보이지 않나요. 색깔 있는 건 축작가들이 나오려면 주목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A 정년퇴임 기념으로 작년에 동경으로 부부가 여행을 가서 건물 사진 같은 것 찍 지 말고 그냥 놀기만 하다 오자고 했는데, 계획과는 달리 ‘일본의 건축전’이 아닌 ‘건축의 일본전’이라는 전시회를 우연히 봤습니다. 거장들부터 젊은 작가들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오랜 생각 속에서 얻어낸 말들을 인용한 문구들이 작품과 함께 벽에 크게 적혀 있던 것에 눈길이 자주 갔 습니다. 이걸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의하던 생각을 과연 어떤 문구를 인용하며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이슈가 무엇인지 알아야 젊은 작가가 잘하는지, 못 하는지를 알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더욱 큰 문제는 세대 간 연결, 그 맥이 사라지고있다는 직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이 왜 일찍 사라질까요. 정년퇴임을 하면 왜 다들 아무 말씀이 없게 될까요. 책으로 치면 과월호는 별 의미 없고, 신간만 좋다는 뜻인가요. 옛날 선생님들께서는 건축을 하려면 젊은이처럼 뭔가를 금방 배워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나이가 들어야 되는 거라고,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면 장수해야 된다고 하셨죠. 나이 듦으로 얻게 되는 다양한 경험들로 같은 말이라도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녹아 있습니다. 상대도 그 말을 들을 때 평 소 공부하고 학습해야만 그 말뜻이 제대로 들리는 법이죠.
Q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울타리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사실은 필 요합니다. 빨간색은 빨간색끼리, 파란색은 파란색끼리 모이는 건 건축을 위해 서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해요
A 정말 그렇습니다. 맞아요. 그게 지금의 풍토예요. SNS을 통해 자기주장은 많 이 해요. 거의 매일 올리는 사람은 거의 신문 기자 수준이에요. 그러나 그곳에 적 은 것, 읽은 것은 모두 다 지나가 버려요. 그런가 하면 건축하는 사람이 자기주장 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면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 해야 하는데, 반대로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만 일단 소통하고 있는 듯해요. 흩어진 것을 모으려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기 의견과 같이 하는 이들만 모여 줄을 서서 논의하고 일을 서로주고 받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도 나오는 거 아닙니까? 이들이 건축계를 편 가르고 금을 긋고 있다면 이들이 어떻게 건축계의 리더라 할 수 있습니까? 건축이야말로 정말 협업 없이는 안 되 는 단체전 아닌가요? 이 협업이 잘못되어 건축 하는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잘못된 법과 제도로 각종 불법·불공정함에 불편을 당하기도 하지만요.
공공건축가도 일을 하기 위해 줄을 선다든지 또는 줄을 세우는 식으로 오인되거 나 해서는 안 될 겁니다. 공공건축가란 공공의 일을 맡아서 하는 건축가가 아닙 니다. 공공건축가는 시민에게 국민에게 양질의 건축 행정 서비스가 있게 노력 하는 별도의 전문가적인 사명감을 가진 이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잘못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공공건축가들이 속해 있는 자치단체에 만들어진 공 간과 구조물에 대해 이렇다 할 비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잘했다는 사람이 10명이 있다면 이를 비판하는 이들도 한두 명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문제 해 결에만 관심이 있지 그 결과를 직능인으로서 해석하고 가치 판단하는 태도가 점 점 더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혹시 입을 다무는 게 안전하다고, 우리 모두 알게 모 르게 훈련돼 가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이상한 생각마저 듭니다.
Q 사실 맥이 끊어지고 있는 것은 서로를 보기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처받으면 저쪽 세계를 안 보는 식이죠. 서로에게 상처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일 단 사무소 운영이 어렵다보니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눈앞에 있는 것 외 에는 이야기하기를 싫어합니다. 미래나 거시적인 것을 이야기하면 모이지도 않 을뿐더러 말하기도 싫어하고요.
A 지금 건축계의 특징은 어떤 주제를 두고 대담, 좌담, 토론을 누적해 가지 않고, 대안들은 딱히 없는 현실에 누구나 분노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지 금 우리 건축설계계는 아예 대담, 좌담, 토론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여러 사람 이 말할 때 누구 곱하기 누구 하지 않습니까? A라는 사람 곱하기, B라는 사람 곱 하기. 곱하기를 하지 않는 풍토가 지금 우리 건축의 가장 큰 약점인 것 같습니다. 1971년 건축학과 커트라인은 어쩌다가 서울대에서 가장 높았어요. 죄송하지만 의대는 저 밑이었어요. 또 제가 서울대로 옮겼을 때인 93∼96년에는 공대가 입 학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고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지금 나 이가 마흔이 넘는데, 과연 이들에게 지금 무엇을 해줄 수 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도 훌륭한 친구들이 많았지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을 갖게 해주 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서 저는 몇 년 전 ‘공동건축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대학 출신, 분야의 경계 없는 풍 토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요즘 또 다른 사업 하 나 늘었습니다. 대담, 좌담, 토론을 누적시키는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30대, 40대의 총명한 생각이 난무하는. 꼭 만들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많 이 도와주세요.
Q 최근 프리츠커상을 이소자키 아라타가 받았습니다. 일본, 중국에 이어 최근 에는 동남아 건축사들도 거론됩니다. 우리 건축사들은 거론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앞서 이야기하셨던 것처럼 정체성면에서 인정을 못 받는 게 아닐까 생 각합니다.
A 일본은 오래전부터 프리츠커상 후원에 관여를 많이 해왔습니다. 그 중 한 사람 이 이소자키 아라타지요. 일본 건축사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조력하 고 사실 그가 제일 늦게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전에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프리 츠커상 수상 이야기만 나오면 왜 우린 이 상을 받지 못하냐고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리츠커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것의 바탕이 되 는 것으로 많이, 빨리, 깊게 축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가 프리츠커상 을 받은 사람이 10명쯤 되면 우리 건축 전반이 강해지거나 행복해집니까? 그런 데도 수상자가 나오도록 누굴 밀어주자는 이야기가 나돕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요? 그보다는 늘 우리가 해야 되는 일, 중요한 일을 인식하고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어야겠어요. 참 답이 없는 어려운 주문이지요?
Q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생각할 여유도 생기는 건데, 예전은 일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지금은 다른 것들도 충족돼야 하잖아요. 기본적인 설계비를 올려서라도 그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
A 원인 중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건축계가 뭘 해야 하는지 능동적으로 나서 해야 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 래야 달라고 요구해야 들어줄 사람이 생기죠. 민간 설계대가가 공정거래위원회 담합에 걸린다면 왜 걸리는지 연구도 하고 이에 대한 여러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인데, 경제가 좋을 때 설계대가 인상을 이 야기했어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시기적으로 경제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어서 건축사들이 피곤한 상태잖아요. 그러니 건축계가 무언가를 하려 해도 서로 들어 주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해요. 설계대가를 제대로 받자는 이야기가 66년도부터 나온 누구나 알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건데, 답이 없었다는 것은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거나 매우 어려운 문제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겠네 요. 이에 대한 대학 교수들은 예외가 될 수 없어요. 건축은 단체전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런 문제도 건축계가 모두 나서서 단체로 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중 심을 잡아줘야 할 대한건축사협회는 그런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 것을 늘 통감해야 합니다.
Q 매우 안타까운 상황인 것 같아요.
A 이제 곧 건축계 원로급으로 진입하려는 분들이 건축계 협업에 대해 얼마나 고 민을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학제가 5년제로 되고나서 건축설계에 실무를 직접 하는 분들이 참여해 대학의 교수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참 좋은 현 상이지만, 반대로 이들은 자기 작업에는 열심이어도 설계대가 제값받기라는 단 체적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다보니 설계대가의 문제를 늘 말하는 교수들의 수가 현격히 줄어 버렸습니다. 설계를 하지 않거나 생존에서 조 금이라고 자유로운 분들이 측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나 같은 경우는 돈키호테 기질이 있어 간혹 주장하고 있지만, 대학 교수는 이 사 회가 뭔가 잘못 되어 가면 질타도 하고 옆에서 도와주고 해야 하는데, 옆에서 지 켜본 바로는 점점 작품, 논문, 승진, 프로젝트, 심의, 심사에 훨씬 많은 관심을 기 울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학계에서 논의가 줄어들다보니 이런 문제를 꺼내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는 분위기가 대세가 된 것 같아요.
Q 건축이 폭이 넓고 다양한 니즈를 수용해야 하는데, 울타리를 쳐서 정의내리 면 실행하려다 못 담아내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A 저는 71학번이에요. 이때 공부한 사람은 고등학교 때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 서 자랐던 세대예요. 속으로는 불만이 있어서 학생 때 반정부 데모도 했지만, 그 바탕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배운 국민교육헌장이 무의식중에 남아 있는 세 대라고 부정할 수 없어요. 이게 교육의 무서움입니다. 내가 싫다고 해서 없어지 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런 71학번이 그 당시 배운 게 흔들림이 없는 근대건축 이었습니다. 동시에 자본을 가진 사람이 허세부리고 허영을 충족시키는 차이의 건축을 목격한 이들이지요. 그런데 이런 이들이 그 눈으로 지금의 건축을 바라보 는 것 같아요. 70년대 시각으로 80∼90년대 현상을 비판하여 크게 칭찬을 받았 는데, 그 후 스스로를 연마하지 않고 자기가 정체된지도 모르고 이런 주장을 계 속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눈으로는 2010년, 2020년의 건축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요. 오히려 30년 후, 50년 후에 기다리고 있는 건축을 하자고 해야 맞는 겁 니다. 우리 현대건축의 이슈는 무시했던 것들, 별 볼일 없던 것들에 가치를 발견 하는 데 있습니다.
특히 저는 건축이론 공부하면서 30대 때는 뭐가 있어서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들고는 내 강의명도 바뀌고 주장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건축의 이론이라는 건 없다. 다 사후에 정해지는 거다. 건축은 앞서가지 않는다”입니다. 그런데 최근 인 문학이 유명세를 타다 보니 ‘건축인문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대단한 지식인처 럼 여겨주기를 바라는 경우를 보는데, 이것은 결국 건축의 본질, 공학, 물질, 기 술, 부동산 등과의 관계를 멀리 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음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건축에 인문학적 성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만큼 건축은 영 역이 큰 실천 학문입니다. 그러나 건축이 인문학이라고 그쪽에다 몸을 댈 수는 없잖아요? 건축으로 파생된 중요한 실천이라면 박수를 치겠지만, 건축을 이렇게 부드럽게만 만드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또 근대건축의 사고는 ‘분류’가 늘 기본이에요. 그러나 현재 아마존 매장이 분류 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나요? 분류, 구별, 분절 등이 해소가 되어야 하는 것 이 현대건축의 근간입니다. 그런데도 “A급 건축, B급 건축, 너는 무슨 파”라는 분 류·구별하기도 하고, 좋은 건축 나쁜 건축 하면서 아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참 문제입니다. ‘비움의 건축’은 배제하는 것이고 구분하는 것이고 엘리트적 건 축을 달리 말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우다니요? 반대로 많은 가능성을 찾으 려면 가득 차야죠. 쓸데없이 여겨질지라도 그것까지도 가득 차서 건축사가 다루 는 환경의 범위를 넓혀야 할 때입니다. 예전부터 건축은 정신의 산물이고, 건물을 물질의 결과라는 사고를 깊게 믿는 이들이 많은데, 저는 이것이 빨리 사라져야 우리 건축이 건실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물적인 것이라고 하대하는 태도도 있는데, 부동산이 뭐가 나쁜가요?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거 구분 하지 않아요. 부동산 쪽으로 뭔가의 가능성을 캐서 얼마든지 좋은 건물을 만들 수 있다면 그쪽 잘 들여다보아야지요. 설사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은 할 수 있게 긍정은 해 주어야지요. 이렇게 다양한 다름을 인정할 줄 알아 야 합니다. 그래야 넓어지고 깊어지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우리 지금 현대건 축의 이슈로 무엇을 논하고 있나요? 현대건축은 2019년에 지어졌다고 현대건축 이 아니에요. 그것은 현대에 일어나는 이슈를 건축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때 주어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이슈가 있나요. 또 한국성, 지역성, 지역 재생 외에도 또 뭐가 있나요? 가야할 바가 정확하지 않다면 잠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Q 그래야 현재라는 게 보일 것 같아요. 교수님 말씀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A 예를 들어 WWW와 HTML에 그랜드스토리가 있나요. 수많은 데이터만 있지 요. 그런데 이것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어요. 그 많은 데이터베이스는 적당한 OS나 브라우저를 만날 때 비로소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요는 사물을 ‘어떻게 해석해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지요. 같은 데이 터베이스도 어떤 환경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한없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무얼 말합니까? 사전의 선입관, 경직된 사고, 구분, 배제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다름 과 작은 소리를 축적하며 변화하는 사회를 보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젊은 건축사들의 말들을 많이 듣도록 해야 될 겁니다. 대한건축사협회 도 젊은 건축사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토론할 수 있게 자리도 만들고 모여서 의견 을 축적하여 다른 이에게 전하게 해 주려고 하세요. 자꾸 열고 담아야 젊어집니 다. 건축이 본래 그런 것 아닙니까? 대형(大型)사무소는 규모가 큰 사무소이지 만 이제는 ‘대형(大兄)’ 사무소가 되어야 할 겁니다. 큰 형님처럼 건축계를 넓게 걱정해 주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 젊은 건축사 자주 불러서 좋은 생각을 축적해 주는 역할을 하세요. 술 값 얼마 안 합니다.(웃음) 젊은 건축사와 그 후보 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애를 써야 해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A 젊은 후배, 제자, 동료들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하나는 나이로 보아 30∼40대들은 꿈같은 시기이고 자기만 보게 되어 있어요. 여기에 장 단점이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30∼40대는 개인적이지 않아요. 단지 작은 규모 로 일을 해야 되니 그렇게 보일 따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나이든 분들보다 협의도 잘하고 대화도 잘하십니다. 그들도 알려지지 않은 범위에서 동년배끼리 대화가 많고 새로워지려고 머리가 복잡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건축계는 이 젊 은 건축사와 그 후보들에게 배우고 그들의 사고, 일하는 방식 등을 잘 배워야 한 다고 보아요. 30대가 대화도 잘하지만, 어떤 일에 잘 참고 스스로 해석을 잘해요.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진지한 목소리, 자신을 꾸려가는 지혜를 건축계에 모 이게 했으면 좋겠어요.
반대로 젊은 분들은 나이 드신 분들의 이야기를 늘 경청하려고 하세요. 10시는 12시보다 나은 것이 아니고 오후 1시가 오후 5시보다 나으며 오후 4시가 저녁 8시보다 나은 것이 아니에요. 모든 시간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젊 다고 나이 든 건축계 어른을 낮추어 본다든지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나이가 똑같이 값어치가 있습니다. 빛이 1층도 비추고 5층도 비추어 주듯이 말 이지요.
또 하나는 옛날 개그콘서트 코너 중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우스 갯말이 있잖아요. 학교에서도 최상위는 아주 적게, 보통은 많게 성적을 주라고 해요. 그런데 특히 건축설계계는 1등만 알아줘요. 설계공모에서 1등만이 의미가 있 지 2등, 3등은 없는 것과 같다고 보거든요. 그러나 이런 사고가 우리를 순수주 의, 작가주의, 작품주의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최고는 어디서 든 나타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 사회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5,000평, 10,000평 건물설계부터 시작하겠어요? 학교에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작고 초라 한 환경의 집을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일이 훨씬 더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 면 1등, 완벽, 순수, 중심인 것에서 벗어나, 2등, 3등이라 여기던 의견, 환경, 공 간, 여건 등 작지만 주변의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속에 잠재된 가치를 발 견하여 건축의 환경을 크게 넓혀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참여이고 공유이고 협력이며 단체전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사의 직능적 사고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김광현 교수 Kim, Kwanghyun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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