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의 엘리트주의와 엘리트를 생각한다 2019.4

2022. 12. 19. 10:2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Reflection on elitism and the elite of our country's architecture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한국 건축은 어떻게 주도되고, 일반에게 다가서는가? 어느 집단이나 리딩그룹이 있고, 선도적 이슈를 제기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이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시도는 전체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외부의 시선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앞장 선 이들은 때로 책임감으로 나서줘야 할 때도 있고, 대외적 설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지금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건축설계시장은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미명하게 최악으로 가고 있다. 더구 나 정부에서 추진 확대하는 공공건축가라는 사회적 역할이 커지는데, 명예를 앞장세운 공공의 경제적 불평등 계약이 확산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건축사의 업무 대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한국 건축의 리더 그룹은 누구이며, 역할은 무엇인가? 과연 충분한 역할과 노력이 되고 있는가? 작금의 건축계에서 건축의 리더 그룹, 엘리트는 필요한가?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질문을 해본다


우리 시대 건축의 엘리트주의와 건축엘리트에 대한 생각은 ‘엘리트주의’라기 보 다는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과 이를 통 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건축 엘리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현상에 의해 시작되었다.

첫째, 우리 시대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생활건축 설계물량의 축소에 따른 당장의 현상에 메어 있어서 큰 방향의 건축 정책이나 지향점에 대한 공감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둘째, 대부분의 건축정책은 국민인식조사 및 전문가 연구를 실시하고 사 회보장위원회 민간위원,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추진기획단의 운영위원회를 거친 후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및 사회보장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국무회의에서 확정되는데, 대부분 시장과 다른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소위 건축계의 엘리트들은 서로 간의 의견과 관심이 상이해서 정치인이나 관료 등의 비 건축전 문가들에게 건축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통해 ‘엘리트주의’라는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과 우리 건축이 나가 야 할 방향의 제시, 건축정책의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건축엘리트의 필요성 및 건축엘리트들의 역할과 방향, 책무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엘리트주의(elitism)와 엘리트(elite)

 

사회학 사전을 통한 엘리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소수에 의해 다수가 지배를 받 는 것’이다. 세 가지 형태의 상이한 엘리트주의를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의 규범 적 이론과 두 개의 경험적 이론이 있다.

첫 번째 규범적 이론은 사회이론 만큼 오래된 것으로 사회적 사건을 통제하는 것 은 특별한 개인의 집단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고, 엘리트는 그들의 특출한 자질에 의해 선발되며, 그들의 특수한 기능에 상응하거나 그러한 기능에 필수적인 특권 이 부여된다. 엘리트들에게는 필수적인 자질(출생, 지능, 전문지식 등)과 그들의 직무수행이 보장하는 사회적 가치(질서, 진보, 경제적 우월성 등)의 정확한 특질 에 관한 이론으로 엘리트주의는 이러한 의미에서 권력 정당화의 기본으로 이용 된다. 두 번째 엘리트 이론은 경험적이고 다소 냉소적인 주장으로 19세기 후반 민주주의의 확산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전하여 형태적으로 사회학적이다. “엘리 트는 유익한 것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기 보다는 불가능한 것이다(저술가 모크카, 파레토의 주장). 세 번째 엘리트 이론은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경험적 이론으로 엘리트의 존재를 민주주의의 규범과 결합 시키고자 한다. 슘페터(Schumpeter)는 조직적으로 결정된 엘리트가 출현했지 만 분열되어 있고 민주적 정당화와 자기방어의 필요에 의해 경쟁적 관계에 있다 고 주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엘리트 이론은 역사의 변화를 반영하고 어떤 단일한 이론이 광범 한 지지를 얻기 어렵게 하고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이론은 엘리트와 나머지의 단 순한 구분, 즉 ‘대중’에 대해 무시하는 관점이 있고 엘리트의 능력이 내재적인 것 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획득된 것인지에 대한 혼동을 공유하고 있다. 세 번째 이 론은 현존하는 자유-민주적 체제를 위한 특별한 변론이 되기도 한다.

엘리트주의(善良主義 : Elitism)는 사회를 기본적으로 엘리트(善良 : 뛰어난 인 물을 뽑음)와 매스(大衆 : Mass)라는 도식에서 파악한 것으로 사회의 중심이 엘 리트라고 보는 견해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나뉘며 소수 관료나 저명인사 등 사회지배 계급에 의하여 정 책문제가 일방적으로 채택된다는 이론으로 정치적으로 무능한 일반 대중을 지배 하는 엘리트 중심의 계층적·하향적 통치 질서를 중시한다.

 

막강 파워를 지닌 한국식 엘리트주의

 

한국에는 자칭 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집단이 많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엘리 트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모두 자신들이 대단하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식당의 웨이터나 웨이트리스는 대부 분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 그리고 미국에는 대단한 학자도 많지만 그저 공부를 좋아하는 학자들도 많다. 적절히 살 수 있을 정도의 환경만 주어진다면 노벨상 등의 대단한 성취가 없어도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작가지망생을 유지하거나 좋 아하는 학문을 하면서 학계에 그럭저럭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그중 어떤 사 람들은 나중에 천재로 불릴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한국의 엘리트는 서양의 엘리트와 완벽하게 차별화된다. 한국의 엘리트는 소수의 대학 출신이라는 것이 중요하며, 중요한 직장 혹은 대학원 등의 경력 이 필요하다. 사회의 적응에 있어서 부적응한 경력이 없어야 하며 사회 순응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관료들이 고학력을 필수적으로 지녔고 한국 사회가 대기업 형태로 재편되고 소수의 관료적 엘리티즘이 한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라는 초고도 엘리트 사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한국 건축의 엘리트주의와 건축엘리트

 

영화 ‘건축학개론’은 이제훈이라는 배우가 건축학과 학생으로 출연하여 건축분야를 멋진 분야로 연출하였다. 그 영향으로 많은 학생들이 건축사로서의 꿈을 가 지고 건축학과에 들어왔으나 많은 학생들은 잘 버텨내지 못하고 실망 끝에 취업 률과 졸업률이 떨어지게 된다. 특히나 대한민국에서 건축사라는 직업이 값싼 설 계비로 도면을 그려주고, 그 도면을 가지고 관청에 들어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여가며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전문가인 건축사나 건축계는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과연 우리 건축사들은 그 존재감을 잘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며, 사회에서는 그만큼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인가. 낙후된 건축사의 사회적 위상, 불합리한 사회현상, 도시건축 입안과 수행자인 공무원들의 비전문성, 편법과 불 법을 요구하는 건축주들의 무례함 등의 우리 건축 분야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2013년 6월 25일에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당시 AURI 제해성 원장의 진행으 로 [대중과 건축 – 건축의 소명과 사회적 위치]라는 주제발표가 있었으며, 우경 국(예공 아트스페이스), 제갈엽(AMA 대표), 김미상(친환경건축연구센터 교수), 김영철(베를린 공대), 신혜경(단국대 교수) 등의 토론자들과 「한국건축의 정체와 지속가능성」 이라는 토론회가 있었다. 이 토론회를 통해 대중과 건축은 원칙적으 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단순히 정치적 의미나 계량적 측면 에서의 다수를 의미하는 대중보다는 문화적 동질성의 공유자로서, 그리고 엘리 트적이든 대중적이든 건축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추진체는 단순한 문화의 수 혜자로 머무는 것이 아닌 건축과 건축문화의 생산과 소비 주체로 작동하게 하여 사회 중심적 기능을 담당하게 만들 것이라 하였다

서울대학교 김광현 교수께서는 자신의 저서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에서 ‘엘리트 건축을 일갈’하셨다. 김광현 교수는 건축하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용어로 비움, 침묵, 미학을 꼽으시면서 ‘있어 보이는’ 말의 허울을 벗겼다. “비움은 일상 의 삶과는 무관하고 단 한 번의 연출된 건축사진에만 남아 있는 거북한 비움이 다.” 건축이 ‘침묵’하면 세상에서 고립된 뿐이며, 사소한 움직임에도 주목해야 하 는 것이 건축이며, ‘미학’도 본질을 적절히 지우는 말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는 흔히 통용되는 ‘건축은 종합예술’이라는 명제를 거부하면서 건축은 선과 면의 지 적 조합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일상사를 가꾸는 실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 다. 건축주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지어지는 건축물, 즉 한 세대 뒤까지 유 용한 건축이어야 하며, 좋은 공공건축이란 공동체의 밖에 있는 ‘아직 말해지지 않 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하였다. 김인철 건축사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 책은 어느 순간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아 성숙되지 못한 우리 시대 건축에 대한 반성문 이며 연구실을 벗어난 넓은 사유와 언설이 무게를 갖는다”고 평했다.

 

한국의 비뚤어진 건축 엘리트주의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의 비뚤어진 엘리트주의의 한 단면과 한국 교육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한 엘리트라 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줄 알아야 하며, 보다 열악한 조건에서 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 니다.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며, 관용과 겸손의 미학을 엘리트들도 알아야 한다.

세계 최빈국에서 50여 년 만에 경제규모 세계 11위, OECD 9위의 국가로 도약 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룩해 왔고 그 원동력이 건설업 이었다. 건설업은 1997년 I.M.F. 및 2008년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제의 버팀목이었고 앞으로도 대규모 신도시 개발 및 사회간접자본시설, 도시재 생과 유지관리 프로젝트의 확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으 로서의 건설과 문화로서의 건축 사이의 간격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이 러한 간격은 건축을 건설의 종속 구도로 편재시키면서 건축사사무소의 대형화를 유도하였다. 건설과 건축의 종속 구도가 심해지면서 규모경쟁을 벌이는 대형 건 축사사무소는 정책과 경기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으며, 반면 소규모 건축 사사무소는 더 영세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상업적으로 되어가고 있었으 며, 반면 작품성을 추구했던 소형 건축사사무소는 더욱 일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업적 건축과 예술적 건축의 양자구도 사이에서 건축 엘리트주 의 추구와 건축엘리트의 거취가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상업적으로 되어가고 있었으 며, 반면 작품성을 추구했던 소형 건축사사무소는 더욱 일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업적 건축과 예술적 건축의 양자구도 사이에서 건축 엘리트주 의 추구와 건축엘리트의 거취가 불분명했다는 것이다.

근대건축의 태동이 시작된 지 백여 년이 넘었고, 특히 올해는 현대식 건축교육의 모태인 바우하우스가 창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모든 분야의 디자인의 시작이 지금부터 100년 전에 시도되었고, 이 모든 분야의 디자인을 건축으로 종 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건축은 모든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 시대 인간의 흔적을 새기는 것이었다. 그 기념비적 행위로 인하여 인간존재의 아 름다움을 확인하면서 신선한 호흡을 하게 하는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명지대학교 건축대학 김홍식 교수께서는 2005년 문화예술지에 건축분야의 문 화현상 읽기에 「우리 사회 엘리트주의 건축을 경계한다」라는 논제를 투고하면서 엘리트주의 건축의 문제점과 대중주의를 고려해야 하는 건축사의 몫으로 건축스스로는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김홍식 교수는 당시 ‘건축 잡지를 메우고 있는 엘리트 건축’에 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의 문화 환경과 다른 과대 포장된 건물들과 서 민의 고달픈 삶을 담아내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 외관 등을 역사가 없는 후진국 수준의 문화 환경이라 하였고, ‘우리나라에 대중주의는 없는가?’, ‘우리는 달동네 설계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철학이 있는 유니크 한 건축 설계를 하려면?’ 등의 글을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가를 위한 미학으로서 엘리트주의 도 필요하겠지만 이와 대등하게 노동자, 빈민 대중을 위한 미학으로서 대중주의 도 요구된다고 하였다. 

건축계는 유독 해외 유학파가 많은 엘리트 집단이다. 그러나 건축의 원리가 반드시 유학을 다녀와야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적 건축과 우수한 선진국 건축 을 보고 배워야 했던 단계도 있었지만 이제 건축의 본질과 우리의 것을 보려는 노 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건축사는 스스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의 해결 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유행의 건축을 버리 고 우리의 신화를 엮어나갈 살아있는 우리 시대의 버전을 찾아 나가야 할 때다. 자신의 소명을 다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엘리트의 모습이며, 한국의 건축계는 이러한 진정한 엘리트 의식이 절실할 때다.

 

 

 

 

 

 

글. 황태주 Hwang, Taejoo 서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황태주 서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8년부터 청주 소재 서원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후학양성 에 전념해 왔다. 학창시절에는 건축설계에 많은 관심을 두어 학생공모전 참가 및 실무에 집중했으나 건축인의 사회적 위 치에 대한 실상을 경험한 후 이들의 위상 제고를 위한 후학 양성의 길을 선택했다. 교직의 길에 있으면서 건축설계 및 현 상설계에 참여했고 현상설계 심사를 통해 건축교육과 실무 의 연계를 추구하고 있다. 불합리한 건축행정의 개선과 적절 한 건축구현을 위해 건축 관련 학회 및 단체, 지역의 건축위 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artjhwa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