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란 무엇인가 2019.5

2022. 12. 21. 10:1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Meaning of Profession, Architect

편집국장 註

 

무한 경쟁으로 내몰면서 다수의 국민들이 서비스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직업적 특수성과 이익이 없다면 굳이 어려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직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전문직은 직업적 책임만 커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경제적 거래에서 거래의 평등성이 유지되려면 상응하는 가 치 보상이 필수적인데도 말입니다.

유독 건축사는 이런 거래의 평등성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죠. 외세에 의해 강제로 변화를 당하다 보니 수동성과 피해의식이 내재화 되어 있고, 모순된 상태로 성장해서 뿌리가 뒤엉켜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지치기의 정리가 필요하고, 더 잘 자라게 하려면... 그런 이유에서 비교적 젊은 건축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김주원 건축사 겸 교수와 이중희 건축사 겸 영화감독에게 직업에 대한 글을 의뢰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김주원 교수 글들에 녹아 있는 건축사의 책임과 소명의식, 그리고 이중희 건축사의 글에 있는 건축사의 당당함과 전문성입니다. 두 분 의 글에서도 읽혀지듯 건축사의 자질도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건축사 선발의 엄격함과 윤리 및 직업적 소명을 기준할 면접의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 담론이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부디 많은 공감대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필자는 2000년 여름 영국에서 건축실무를 시작, 영국건축사자격을 취득했고 2007년 초 귀국 후 현재는 설계교수, 한국건축사로 활동 중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사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다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건축사의 업역

 

우리나라 건축 매체를 접하다보면 건축사란 명칭의 의미 등을 다루는 글들을 일 년에도 수차례 읽게 된다. 이런 배경엔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건축사란 업역과 의미가 온전히 자리 잡지 않았다는 현실이 있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건 축실무 과목을 가르칠 때엔 우리 사회의 이러한 현실을 먼저 주지시킨다. 우리나 라의 근대화는 서구에 비해 상당히 늦었으며 건축사란 직업 및 관련제도 역시 상 당히 근래 출발했음을 알린다 – 유구한 전통건축의 역사와는 달리. 이 후 아직 정착 중이므로 지금 아쉬운 점들은 많지만 진행 중인 노력으로 한국의 다른 분야 가 그러했듯 금세 성숙할 것이라 말해준다. 학교 안에서 5년 여 동안 들은 세상소 식 만으로도 졸업 시 건축설계를 외면하는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온 현실이기에 부디 단편적 상황보다는 보다 먼 변화의 흐름을 바라보길 권한다.

 

영국건축사시험은 대학에 개설된 파트타임 과정을 통해 통상 1년 정도 진행된 다. 여러 시험, 인터뷰, 제출물 작성으로 구성된 과정의 첫 주제는 ‘건축사’란 전 문직이다. 어쩌면 건축사로서 자신의 사회적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만일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또는 인식이 불완전하다면 해당 전문직의 사회적 의미 역시 불완전해지기 쉽다.

 

오늘날 서구의 ‘건축가’란 직업은 르네상스 시기에 업역이 형성됐다고 한다. 이 전까지 건축물의 조달은 시공자가 설계를 하는 design and build 방식과 유사 했지만 르네상스에 이르러 시공직이 아닌 인문소양을 갖춘 예술가들이 건축주의 요청으로 건물을 디자인하고 이를 시공자가 짓게 되었다. 때문에 이전 시기의 유 명 건축물들은 시공이 주업이었던 길드출신 장인들이 설계, 시공한 것들이 주를 이룬 반면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예술가, 조각가, 공예가, 발명가 출신 건축가들에 의해 설계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는 건축설계가 단순히 시공업으로부터 독립 했다는 의미 이상이 된다. 왜냐하면 시공업은 생산직, 2차 산업인 반면, 시공업 자의 기술어휘를 잘 이해 못하는 일반인 건축주와 건축주의 인문학적 요구조건 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시공업자 간 의사소통을 주업으로 삼는 건축설계는 전형 적인 서비스업, 3차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건축가의 서비스는 단순히 설 계도서의 산출이 아닌 클라이언트의 만족에 목표를 둔다.

 

필자는 ’91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당시 건축학과는 공과대학 소속이었다. 귀국 후 모교 교수로 채용되었을 때 건축학과는 건축대학 소속으로 바뀌어 있었 고 ’07년 건축학교육인증원의 인증을 받은 5년제 과정이 되어 있었다. 교과목 구 성은 4년제 건축학과의 연장선상인 듯 했지만 건축공학과와는 크게 달랐다. 더 불어 학생수행평가항목엔 ‘건축적 사고’라는 전제가 있어 건축의 인문학적 측면 을 이해하도록 요구했고 ‘설계’도 상황에 맞는 구두, 문서, 스케치, 도면, 모형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의사소통능력’의 일환으로 해석1)되었다. 이렇듯 현재 우 리 사회는 건축주의 요구조건을 보다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건축사를 기대 하고 있다. 근래 지정감리제의 확대 이후 시공단계 설계의도구현의 보강책이 모 색되는 상황 역시 이러한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참조되는 영미권 및 서유럽국가들의 건축사들은 시공단계에 공사감리가 아닌 건축주를 위한 시공계약 행정, Construction Contract Administration을 한다. 이는 공익보호를 염두 에 둔 공사감리와 달리 설계도서 즉, 건축주의 요구조건/설계의도 구현에 주안점 을 둔 업무이다. 반면 공익보호를 위한 공사감리는 건축공무원2)이 맡게 된다. 

 

사회적 위상

 

클라이언트 즉, 일반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건축설계업종에 대한 인식은 곧 우리 직업의 사회적 위상이 된다. 사회적으로 한 직종에 대한 위상이 어느 정도 높아 져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능력을 기대할 경우 전문자격 면허제도가 만들어진 다. ‘건축사’는 이렇듯 우리 사회가 기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직업능력을 검증 받은 전문가이다. 때문에 건축사란 명칭과 대관업무와 같은 일정 범위의 업역 이 법적으로 보호받고 면허를 통해 시장경제에서 드물게 허용되는 독과점 권리 를 부여받는다. 반면 ‘건축가’는 단순히 건축설계를 업으로 삼는 자를 의미하며 직업능력 수준이 불명료하기에 사회적 특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만일 건축사 스 스로 사회가 부여한 특권인 면허를 제도적으로 부당하게 활용한다면 법적 보호 가 무의미해짐은 물론 건축설계직에 대한 사회적 위상 추락은 자명하다. 사회가 우리에게 애초 걸었던 기대감만큼 이를 저버린 실망감도 클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속 소비자(건축주)의 권리는 날로 증대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건축사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오로지 ‘건축사’란 직함뿐 업역은 처음부 터 개방되어 있었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그 이상의 사회적 독과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건축허가, 설계 등의 모든 업무를 Architect 아닌 건축주, Architectural Designer/ Consultant들도 할 수 있다. 단지 스 스로를 Architect라 부르지 못할 뿐. 이러한 배경으로, 유명하지만 건축사는 아 닌 영국 건축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Thomas Heatherwick이다. 하지만 Heatherwick 조차 그 능력은 창의적 디자인에 그친다. 그의 디자인이 건축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엔 스튜디오 내 공인건축사들이 있으며 애초 영국건축사시 험제도는 설계능력 아닌 프로젝트 및 사무소 운영능력을 검증3)한다. 즉, 소비 자들이 공인건축사를 선택하고 Heatherwick 조차 내부적으로 건축사에 의존 하는 이유는 설계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건설사업의 불확 실성 및 리스크를 다룰 수 있는 운영능력과 판단력 때문이다. 영국건축사의 사회 적 위상은 유럽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매우 높다. 이는 건축사의 법적 보호망 이 한국보다 두터워서가 아닌, 그들의 직업능력 수준이 매우 높게 유지되며 공 인자격 관련 제도 역시 철저히 관리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건축사협회와 건축 사등록원의 주업무이기도 하다.

 

전문직 단체의 역할

 

전문직 단체는 해당 직종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양면의 역할을 해야 한다 – 내부적으로는 규제, 외부적으로는 홍보

 

2012년 설립된 건축사등록원은 건축사보 실무수련, 건축사실무교육 및 건축사 등록부를 관리한다. 이전에도 대한건축사협회가 등록부를 관리했지만 건축사등 록원이 독립된 이유는 국가로부터 위탁받은 공적기능을 보다 명료히 하기 위함 이다. 건축사등록원 홈페이지 상 ‘등록원소개’ 메뉴엔 ‘윤리선언서’4)가 한 항목 으로 자리한다. 대부분의 건축사들이 상세히는 기억 못하는 윤리선언서가 왜 등 록원소개의 한 부분인지 설립목적이나 인사말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하지만 등 록원이 공기관의 성격으로 독립한 현재, 건축사윤리선언서는 선언문 이상의 의 미를 지닌다.5) 건축사윤리선언서는 건축사 스스로 정한 직업행동강령, Code of Professional Conduct6)이며 건축사등록원은 이에 비추어 등록된 건축 사들의 직업행태를 감시하고 이를 어긴 건축사의 제명, 벌금부과 등을 집행할 수 있는 행정기관인 것이다.

 

영국건축사의 건축법 교본, Architect’s Legal Handbook은 “직업행동강령 목적과 객관적 이행의 완결함은 그 직종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행동강령은 사회, 경제적 요인에 의한 환경 및 태도 변화에 맞추어 변한 다”8)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행동강령은 건축사 스스로 만들지만 본인을 위함이 아닌 사회를 위함이고 강령이 잘 이행될수록 직업의 사회적 위상은 높아진다고 도 한다. 영국 건축사등록원, ARB는 건축사협회, RIBA에 비해 매우 작지만 강 력한 행정기관으로서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건축사의 직업행태를 직업행태위 원회, Professional Conduct Committee(PCC)를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 판정한다. PCC 발생 횟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며 2018년도에는 29회 열 렸다. 각 PCC의 사건개요 및 판결내용은 전체 건축사들에게 공지9)되어 행동강 령을 되새기게 한다.

 

건축사실무교육 역시 건축사들 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을 위한 것이다. 2006년 한 국건축학교육인증원 수립 후 건축실무계로도 이어진 우리 건축제도의 일련의 변 화는 이전과 다른 수준의 사회적 위상을 지향하려는 건축설계직군의 자체적인 개선 의지로 볼 수 있다.

 

이렇듯 건축사등록원이 내부적 규제를 담당해야 한다면 건축사협회는 건축사란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홍보를 담당해야 한다. 때문에 건축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부족을 탓하기 전 우리 건축사협회의 현 기능을 되돌아봐야 한다. 당장 일반 건축주 입장에서 건축설계계약에 대한 안내정보를 인터넷으로 찾아보자. 대부분 잡다한 기사나 계약문서들이 떠오르고 어쩌다 보이는 안내 글은 개인의 경험담 정도이다. 일반건축주를 위한 건축사협회의 공식안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 일 영국에서 검색을 했다면 영국건축사협회의 “건축주를 위한 건축사 계약안 내서, A Client’s Guide to Engaging an Architect”10)를 PDF형태로 쉽게 받아볼 수 있다. 이 안내서엔 건축사 관련법, 공인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인증 기 준, 건축사 계약 기준, 건축사 업무단계, 건축사 업무 및 역할, 대가 산정 기준 및 방식 등이 쉽게 설명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왜 공인건축사와 계약해야하는지, 건 축사란 직명이 어떤 의미인지, 표준계약서는 왜 사용하는지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05년 이전까지 이 안내서엔 주기적인 시장통계에 근거한 건축사 업무대가 그래프가 참조용으로 실려 있어 대다수의 건축사사무소, 건축주들에게 이용되었다. 만일 우리 건축사협회도 시장현실에 근거한 합리적 대가기준을 스스로 일반 건축주들에게 참조용으로 제시한다면 현재와 같이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공공발주 대가기준으로 건축사들이 느끼는 답답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영국건축사협회는 자체 출판사를 통해 건축사 실무와 관련된 각 종 가이드와 서적을 무수히 출판하고 해마다 건축상후보 심사과정 및 시상식을 BBC를 통해 생중계한다. 덕분에 건축설계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회적 가치인 식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소결

 

1965년 설립된 대한건축사협회 내 건축사 등록부 및 실무능력 유지를 관리하는 건축사등록원이 성립된 것은 불과 2012년이다. 영국건축사협회는 1834년, 건 축사등록원은 1931년 설립되어 우리보다 80년 이상 앞섰다. 아직까지 한국 건 축사의 사회적 위상이 충분히 높지 않고 관련 제도가 철저히 이행되지 않는 것은 성장곡선을 감안할 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스스로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리 사회는 항상 이런 자세로 성 장했으며 결과적으로 단시간에 서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현재 국가건 축정책위원회를 비롯, 대한건축사협회, 새건축사협의회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 다 활발히 진행 중인 건축사 관련 제도 개선 노력들이 머지않아 보다 나은 건축 사의 사회적 위상과 제도적 환경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본다.

 

 

 

 

 

 

 

 

글. 김주원 Kim, Juwon 한국건축사 · 영국건축사 ·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김주원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한국건축사 · 영국건축사 김주원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런던 에이에이스쿨 디플로 마 과정을 졸업했고 영국, 한국에서 건축실무 후 현재 홍익대 학교 건축학과 설계전임교수 및 건축사사무소 알에이더블유 대표이다. 한국건축사, 영국건축사를 소지했으며 연구와 건 축설계를 병행 중이다.

 

 

 

juwon.raw@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