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1. 10:1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 is Dead!
편집국장 註
무한 경쟁으로 내몰면서 다수의 국민들이 서비스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직업적 특수성과 이익이 없다면 굳이 어려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전문직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구나 전문직은 직업적 책임만 커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경제적 거래에서 거래의 평등성이 유지되려면 상응하는 가 치 보상이 필수적인데도 말입니다.
유독 건축사는 이런 거래의 평등성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렇다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죠. 외세에 의해 강제로 변화를 당하다 보니 수동성과 피해의식이 내재화 되어 있고, 모순된 상태로 성장해서 뿌리가 뒤엉켜 있는 것 같습니다. 가지치기의 정리가 필요하고, 더 잘 자라게 하려면... 그런 이유에서 비교적 젊은 건축사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김주원 건축사 겸 교수와 이중희 건축사 겸 영화감독에게 직업에 대한 글을 의뢰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김주원 교수 글들에 녹아 있는 건축사의 책임과 소명의식, 그리고 이중희 건축사의 글에 있는 건축사의 당당함과 전문성입니다. 두 분 의 글에서도 읽혀지듯 건축사의 자질도 중요합니다. 미래를 위해서도 건축사 선발의 엄격함과 윤리 및 직업적 소명을 기준할 면접의 필요도 있습니다. 이번 담론이 널리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부디 많은 공감대로 확산되길 바랍니다.
최근 10년 사이 ‘젊은건축가’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 소위 건축 업자들의 시장이라 여겨져 기존 선배 세대 건축가들이 굳이 진입하지 않았던, 일 반주거지역에 지어지는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 근린생활시설 등 분야에 ‘젊은건 축가’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부터다. 그러면 이런 젊은건축가들은 전부 건축사인 가? 그렇지 않다. 건축시장에서 ‘젊은건축사’가 아닌 ‘젊은건축가’라는 말이 통 용되는 이유는 아마도 건축사 자격을 가지지 않은 사람의 수가 많은 것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건축사 중에서도 작품성 있는 건물을 주로 작업하는 분들, 일 정 수준에 오른 분들을 특별히 건축가라 칭해 왔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건 축사 자격증 없이 건축 혹은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 모두를 가리켜 건축가 라 부르는 상황이 되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Interior designer), 디벨로퍼 (Developer),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등 이제는 모두가 스 스로 건축가라 거리낌 없이 부른다. ‘건축사’는 더 이상 힙(Hip)하지 못하고 편협 한 이익집단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으며, 반대로 ‘건축가’라는 단어는 ‘건축사’보 다 감각 있고 실력까지 갖춘 디자이너 이미지로 포장되었다. 많은 이들이 건축사 자격증 없이 건축가라는 명함으로 건축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건축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일반인들은 구별조차 힘든 ‘건축사’와 ‘건축가’ 용어 사용 또한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9년 현재, 건축사는 더 이상 사회에서 선도적으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 는 집단이 아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가장 큰 이유는 건축은 더 이상 시대가 변화하며 요구하는 하이테크(Hightech) 분야 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건축사의 위상은 점점 추락했다. 2차 세계대전 이 후 시기와 2000년대 이후의 사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새로운 플랫폼인 유튜브 (YouTube)의 등장으로 기존 방송국의 권위가 떨어졌듯이, 디지털의 발전으로 건축에 대한 진입장벽 또한 낮아졌다. 3D 프로그램을 통한 설계도면 데이터와 시공 노하우가 쉽게 공유되면서 오랜 시간 전문적 지식을 쌓지 않아도, 훌륭한 스승 밑에서 여러 해 수련 하지 않아도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쉽게 접근 할 수 있 는 분야가 되었다. 예전처럼 건축 전문지식과 어려운 기술로 쌓여있던 장벽은 더 이상 높지 않다. 이렇게 건축사는 안타깝게도 다른 분야 전문직 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그들의 영토를 내주게 되었다.
일반인들조차 이제 여러 경로로 많은 건축 지식을 얻고 누구나 쉽게 건축가가 되 어 버린다. 아파트 인테리어라는 특수한 시장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건축사에게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는 마트에서 물건 고르듯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로 설계비를 물어보고 또 깎는다. 그리고 가성비를 운운하며 단순히 가격을 보고 건축사를 선 택한다. 건축업자와 무면허 건축가, 건축사가 혼재된 이 시장에서 과연 건축사는 경쟁력이 있을까? 그래도 건축은 인문학이 결합된 종합예술이라며, 전문지식인 구조, 설비 분야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축 마스터라며 혼자 자위하고 있는 건축사들은 과연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에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는 걸까? 건축가가 무한 생성되고 있는 이 시대에, 더 이상 이렇게 많은 건축사들이 과연 필요한 걸까? AI가 발달한 미래에도 과연 ‘건축사’는 없어지는 직종이 아닌 존재로 남아 있을까? 건축사 스스로 앞으로 미래사회에 필요한 전문가인지 냉정 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실제 사례를 이야기해 보자. A건축가는 면허를 대여하여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에 서는 막상 제대로 된 실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사무소를 시작했다. 물론 외국 건축사 면허 또한 없다. 처음에는 인테리어 일을 주로 하다 건축 인허가 업무가 필요할 시점에 이른다. 건축주의 요청도 있어 이제는 건축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고 느끼지만 다시 힘든 공부를 하기는 너무 싫다. 머리 아픈 고민이 생겼지만 학 교 선배가 이미 자기가 하던 방식 정말 좋은 팁을 알려준다. 바로 건축사 자격증 을 가진, 현재 주부로 살며 살림하는 학교 여선배의 면허를 빌리는 것이다. 한 달 에 300만원을 입금해주면 그 선배는 만족했다. 문체부에서 주최하는 ‘젊은건축가상’도 받고 싶어 웬만하면 만 45세 이하 선배로 물색했다. 이렇게 쉽게 편법적 으로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가 되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
B건축가는 현재 건축과 조교수이다. 박사학위를 받느라 나이는 어느새 30대 증 후반이 되었지만 막상 실무 경험은 거의 없었다. 가끔 프리랜서로 선후배 일을 도 와주고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며 여러 대학에 교수임용을 지원했다. 그 래도 건축사 자격증의 필요함은 일찍부터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말에 열심히 시험 준비도 하였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공부에만 열중하기 는 힘들다. 그렇게 여러 해 고생하던 중 다행히도 한 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임 용되었다. 몇 년 동안 건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였지만 이제는 무려 교 수님이기 때문에 건축사 자격증은 필요 없다. 건축사보다 더 전문가 대접을 해주 는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이제 태세전환이다. 건축사는 단순히 인허가 업무를 하는 집단으로 폄하하며 건축사협회는 그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적폐세력이 라고 비난한다. 자기를 스스로 고상한 교수이면서 건축가로 생각한다.
C건축가가 있다. A건축가가 알려준 방법 그대로 선배 면허를 빌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어느 순간 면허를 빌린 선배 건축사는 사무실 운영에 참여를 원 하며 간섭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건축사 선배가 부담스럽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다. 작년 건축사 시험에 합격한 후배를 소개받아 새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다. 건축사 후배 입장에서는 업계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아가는 선배 회사의 공동대 표가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C건축가는 처음부터 빨리 건축가로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마침 부모 소유의 오래된 건물이 있어, 기존 건물을 헐고 신축을 하자고 부모님께 제안했다. 본인은 그 건물로 꿈에 그리던 건축가로 데뷔한다. 하지만 잡지에 소개 할 때는 폼 나지 않을 수 있으니, 부모를 졸라 부모 돈으 로 새 건물을 지은 것은 비밀로 한다. 일부 층은 본인 사무실로 사용하며,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 만난 열정적이고 순진한 학생들을 데려와 인턴으로 활용한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노예같이 현상설계공모에 혹사시키며 소모 품으로 써버린다. 건축 스토리를 적절히 왜곡하며 아름답게 포장하였더니, 어느새 근사한 건축가로 알려진다.
D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최근 명함을 건축가로 바꾼 후 단독주택 설계를 수주했다. 구청 앞 건축사사무소에서 300만원만 주면 알아서 서류도 꾸려주고 인허가 업무를 진행해준다. 본인은 큰 그림을 그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이고, 건축사사무소는 본인의 그림을 법적 테두리 안에서 실현 시켜주 는 실무진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대기업 일을 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이야기이다. 국내 유명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조차 앞 다투 어 건축사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의 설계 지시를 받 으며 단순히 실시설계와 인허가 업무를 대행해주고 있다. 이런 대형 건축사사 무소는 자존심도 없다. 그들에게 건축이란 단순히 돈을 벌고 직원들 월급 주기 위한 수단인가? 여기에 더욱 이상한 상황까지 발생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Creative director) 또는 외국 유명 건축가가 기획하고 설계한 건물의 ‘한국건 축문화대상’ 수상은 단지 국내 건축사 자격이 있다는 조건만으로 대형 건축사사무소에게 돌아간다. 이런 일이 매년 비일비재 발생하지만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건축사로서 자존심은 제쳐두더라도, 건축계에서 뻔 히 원설계자가 누구인지 아는 상황인데도 염치없이 상을 받겠다고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청을 하는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건축사의 현실은 이렇게 좋지 않다. 매년 여름이면 휴가도 가지 못하고, 굳이 어려운 건축사 시험을 몇 년씩 고생하며 취득하는 것은 바보 같아 보인다. 결과가 좋아 한 번에 모든 과목을 합격하여 건축사 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합격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건축사 자격이 생기더라도 유사 명칭 건축가로 같은 업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제대로 된 설계비조차 시장에서 자리 잡기 힘든 상황이다. 효용성 있는 실제적 제재가 없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앞으로 건축사 자격시험을 힘들게 준비할까? 사회에서 빠르고 쉽게 건축가 행세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누가 묵묵히 힘든 길로 가려 할까? 전국 웬만한 대학에는 건축학과가 있다. 학교 설계 스튜디오 강의를 나가면 현실은 저임금 시간강사이다. 하지만 겸임교수란 포장된 말로 학생들 앞에서는 건축가인 척하면 되고,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대학에서 수업하는 실력 있는 건축가로 현혹 시킬 수 있는데, 바보같이 무엇 하러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려고 애써야 하나? 이것이 지금 건축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공법으로 실무수련을 착실히 한 후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힘든 길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쉬운 길로 가려는 편법을 쓴다. 편법이 아니라 실제로는 불법이다. 그러나 아무도 처벌하지도 처벌받지도 않는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게임에 모두 참여한다. 간혹 게임의 룰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하면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을 이상한 취급 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예전부터 계속 그래왔었는데 왜 당신만 다르게 생각 하느냐며, 오히려 현재 건축사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란 여론을 조성하고 건 축사는 이익에 눈 먼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버리고 선동한다. 강력한 제재가 없기에 그것이 당연해지는 현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정당당하게 정도를 걸으며 살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 건축계에는 바른 길을 보여주며 이끌 어 주는 어른이 거의 없다. 그들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건축계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젊은 세대 건축사들부터 스 스로 노력하고 엄격해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 젊은 세대부터라도 정정당당하게 건축을 해나간다면 조금씩 환경이 바뀌지 않을까?
건축사는 싼 가격으로 용역을 제공하고 단순히 클라이언트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분명 아니다. 건축사는 국가에서 공인한 건축 전문가이며, 국민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치 인정은 부족하다. 단순히 건축설계가 종이 값, 잉크 값만 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 건물이 지어지기 까지는 건축 사의 아이디어와 전문지식, 공사과정에서 감리를 통한 노력 등 많은 시간과 에너 지가 소비된다. 건축사는 시장에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이것(설 계비) 얼마예요? 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더욱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 다. 건축사 자격증 획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 들이고 꾸준히 공부하며 정진해야 한다. 건축사 위상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 해야만 한다. 일정 수준이 안 되고 실력이 도태되면 과감히 자격증을 국가에 반 납해야 한다. 대한건축사협회는 형식적인 자격 갱신용 실무교육이 아니라, 빠르 게 변화하는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내용으로 건축사교육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70~80년대 발급된 자격증으로 자기의 가치를 낮춰가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건축사는 절대 자신에게 관대해져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으로 제대로 된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떳떳해야 하고 건축사 업무에 대한 도덕적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대한건축사협회는 강력한 건축사 처벌권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 우리는 건축사 한 가족이라는 봐주기식 행동은 그만둬야 한 다. 명의를 대여하는 건축사의 자격은 박탈해야 할 것이며, 양심 없이 불법 건축물 인허가 업무를 하는 건축사는 협회에서 직접 형사고발해야 한다. 이러한 자정 작업 없이는 앞으로 건축사 위상은 끝없이 추락할 것이다. 미래는 지금부터 어떻 게 노력하느냐에 달렸다. 신진건축사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싶어 하는 협회 가 된다면, 당연히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실무 수련중인 후배들에게 존경받 을 수 있는 건축사가 될 것이다. 과연 협회 슬로건처럼 건축사는 우리의 삶을 디 자인 하는가? 아니다 현재 건축사는 죽었다. Architect is Dead!
글. 이중희 Lee, Junghee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이중희 투엠투 건축사사무소
이중희는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2014년 투엠투 건축사사무소(2m2 architects)를 설립하여 준공 후 건축가 와 건축주, 시공자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기본으 로 건축을 하고 있다. 건축뿐 아니라 street culture에 관심 이 커 DJ, 미디어 아티스트, 스트릿브랜드 들과 협업을 통한 전시 및 파티를 기획하며 다른 분야와의 접합을 실험 중이 다. 최근 단편영화 <젊은 건축가의 슬픔>의 감독을 맡아 다 수의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었다.
2middle2@hanmail.net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ASA National Convention 참관기 2019.6 (0) | 2022.12.21 |
---|---|
What is an Architect? 2019.5 (0) | 2022.12.21 |
건축사란 무엇인가 2019.5 (0) | 2022.12.21 |
[건축비평] 논현 1021공명(共鳴)의 건축 2019.5 (0) | 2022.12.21 |
히든 피겨스 2019.5 (0) | 202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