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영등포구청 별관청사 부속건물노련한 건축사의 감성 : 낯설지 않은 새것 2019.6

2022. 12. 22. 10:4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nnex building of Yeongdeungpo-gu Office An experienced architect's sensibility: Familiar yet new

 

사진작가 이한울

일요일 운동 중 뇌진탕 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하루는 꼭 집에서 쉬길 바란다”라는 의사의 권유로 오전 내내 잠들어 있었다. 잠결에 전화 한 통을 받았 고 무엇인가를 내가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 고 건축사협회 편집실의 문자와 메일을 받고서야 내가 잠결에 수락한 내용이 선 배 건축사의 준공작품에 대해서 비평 글을 써야한다는 난감한 현실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되었다. 일주일간은 두통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뇌진탕 때문인 가, 눈앞의 비평 글 때문인가? 건축사협회 편집실에서 보내온 작품에 대한 도면 과 사진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건축 관련 글을 쓴다는 건 싫어할 일은 아 니지만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또한,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한 것이 건 축이라 결과물만 보고 글을 적어야 한다는 건 확실히 두통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또한 설계자인 김시원 건축사는 설명 전화 한 통도 없다. “좋아! 현장을 보고 냉 정하게 적어주겠어! 그걸 바라는 것일지도!”라는 생각을 하고 일주일을 보낸 후 급히 영등포구청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으로 영등포구청을 찍고 출발했다. 당산공원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 우고 자연스레 올라와서 구청처럼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없다. 아무리 주변을 둘 러봐도 사진에서 봤던 새로 준공한 건물이 안 보인다. 몇십 년 전에 준공 된 듯한 콘리리트 루버로 표현된 하얀색 건물(보건소)과 갈색 타일로 마감된 청사(영등 포구청 본관)만 보이며, 사진으로 봤던 새 건물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공원 반 대쪽인가 싶어 다시 그쪽으로 한참을 가도 없다. 목적지를 찾지 못한 방황이 구 청 본관의 답사로 이어졌다.

구청본관과 당산공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느낀 것은 여지껏 가봤던 행정청 중에 가장 경계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잘 가꾸어진 풍성한 당산공원과 과거 선배 건축사들이 설계했을 법한 두 건물을 같이 바라보면서, 여기는 정말 오랜 시간이 쌓여있는 장소(구청:舊廳)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 지가 구청(區廳)이고 공원인지, 산책하는 사람들과 뭔가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 들, 대로변에서 구청을 가로지르는 주민들,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잘못 온 것은 맞는데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오래된 관청이 취해야하는 바람직한 도시적인 역할이나 태도가 있다면 이런 모 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원래의 목적지를 찾기로 했다.

 

영등포구청은 본관과 보건소로 이루어진 본청이 있으며 거기서 두 블록 떨어진 곳 에 영등포구청 별관이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이해가 된다. 부지의 협소함 때문이 란 생각이 들고 별관을 당산공원 위에 건립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 별관으로 향했다.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별관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언 제쯤인가 잡지책에서 본 어린이집이다. 여기 별관도 지어진지 꽤나 오래되어 주변 의 수목(메타세콰이어)이 한창 무성하다. 어린이집을 지나 오늘 내가 날카로운 눈 으로 판단해야하는 건물이 수목 위로 힐끗 보인다. 날씨가 쾌청한 탓인지 그 뒤의 주인공보다 줄지어선 높고 깔끔한 수목에 시야가 자꾸 맞춰진다. 드디어 별관(별 관은 한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아니라 8동의 작은 건물이 ㅁ자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정쪽으로 진입한다. ‘아∼ 여기는 일반적인 구청건물이 아니라 문화복지센터구나.’ 처음 건축사협회로부터 비평 글을 위해 전달받은 사진을 보고 가졌던 외관에 대한 ‘과한 제스처’라는 이미지는 쾌청한 날씨에 미소로 바뀐다.

영등포구청 본관은 행정청, 보건청의 역할이라면 여기 별관은 복지청, 문화청의 역할이다. 프로그램도 그러하고 건물의 형태와 외관에서도 그것이 느껴진다. 밝 은 색으로 부지 모서리에서 곡선 진 구립어린이집, 메퀴세콰이어 가로변에 목재 데크와 담장으로 꾸며진 직장어린이집과 도서관(수목이 너무 울창하여 외장재 와 외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래된 단층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페인트와 벽화(이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로 마감된 체험학습장, 북카페, 곤충박물관, 푸드 마켓 등에서는 기존 내가 가지고 있던 청사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베이 스패널로 마감된 사무공간처럼 보이는 별동의 건물이 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입구에, 흡사 대학로의 샘터 사옥같은 담쟁이로 덮혀 있는 사회 경제적 지원센터를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청사라는 느낌보다는 매우 오랜 시간 주민들의 뜻이 반영되어 변화되고 가꾸어지고 있는 문화복지센터라는 느낌이 강 하다(서울에 이런 구청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 다양한 건물들이 이렇게 자연 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주변 전체를 둘러쌓고 있는 수목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번에 지어진 건물(여러동의 건물)이 절대 가지지 못하는 아름다움, 즉 시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과연 건축사 김시원은 여기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이런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곳에서 증축은 쉽지 않다. 어떻게 해도 비판 적인 경우가 많다. 계획해야하는 부지 또한 매우 협소하다. 누가 설계해도 배치 는 결정되어 있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설계를 시작했을까? 평소에 그는 매우 냉 철하고 논리적인 프로세스를 가진 건축사라 생각했었는데, 선입견이었던가? 그 도 내가 현장에서 느낀 시간이라는 keyword를 강하게 느꼈을까? 사진으로 봤 던 약간은 과한 인상은 아이레벨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서쪽에서 길 게 떨어지는 햇살에도 흰색 외벽과 깊이 있는 창(기존 별관 동은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은 너무 자연스럽다. 오히려 창은 매우 사용자 중심의 표현이다. 가 로변에 담장을 허물어 경계를 넓혀(구청본관과 공원이 경계가 없듯이) 내부 공 간에서 독점하던 큰 수목들을 보행자에게 내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결 과적으로 보행자에게 ‘나 여기 멋있게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수수하게 서있는 형상이다. 작은 건물의 증축이지만 ‘아이덴티티와 상징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 가?’라는 의문에서 김시원 건축사는 본관의 그것을 차용한 듯하다. 본관 보건소 에서 표현된 수평, 수직 콘크리트 루버 디자인을 현재의 느낌(혹은 건축사 개인 의 느낌)으로 세련되게 재해석 했다. ‘문화시설 같지만 여기도 영등포 구청과 한 가족이에요’라는 표현이다. 현상설계로 당선된 것이라 의도를 어떻게 포장했는 지는 모르나 그는 아마도 주민들에게 ‘낯설지 않은 새것’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고 짐작해본다. 노후한 기존 별관까지 감싼 국회대로변의 루버 디자인은 길 건너 모방적이면서 화려한 상업시설과는 대비되게 수목과 어우러져 매우 차분하게 앉 아있다. 많은 시간으로 만들어진 별관이라 증축부분만 너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시에는 항상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합리적, 논리적 프로세스만으로는 도시 를 가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건축사의 ‘느낌’, ‘감성’, ‘직관’이 도시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치기어린 직관이 아닌 개업 18년차의 노련한 건축 사의 ‘감성’은 매우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과정을 생략한 결과물만 보고 있는데 과정과 생각과 노력 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오히려 사진작가의 사진이 건물의 핵심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는 느낌이다. 직원들에게 영등포구청 본관에 차를 주차하고 구청별관을 들러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감동적 작품 아래 에서 스스로도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글. 박현근 Park, Hyungeun 건축사사무소 재귀당 · 건축사

박현근 건축사사무소 재귀당 · 건축사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주)정림건축, (주)디자인캠프 문박디 엠피(dmp)를 거쳐 현재 ‘재귀당’ 대표이다. 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시관, 대치동호텔, 대구실내육상경기장, 광교 역사박 물관 및 노인장애인복지시설, 신라대학교 프로젝트(국제기 숙사, 종합강의동, 박영관), 부산 오페라하우스 국제현상, 세 종시 대통령기록관 기술제안 등을 수행했으며 dmp 건축사 로 재직 중 전원생활을 위해 양평에 단독주택인 재귀당을 설 계했다. 2015년, 집과 같은 이름의 사무소를 개소해 활발하 게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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