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건축의 장르는 존재하는가? 2019.6

2022. 12. 22. 10:5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Do we have a genre of architecture?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프리츠커상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건축계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건축상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요즘은 간간이 이야기들 합니다. 의식주 순서로 사람들의 관심이 이동한다고 하는데, 방송에서도 얼마 전부터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졌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일인당 국민소 득 삼만 달러가 넘어가면 건축이 이슈가 될 것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노벨상처럼 인정받는 건축의 프리츠커상이 주목받으면서 한국 건축계의 디자인에 대한 시선도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선의 방식 이 등수 정하는 입시 관점으로 황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건축은 창작 활동의 결과입니다. 종합예술의 집결판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만큼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의 정체성이고, 정체성은 독자 성을 말합니다. 작게는 마을의 특징을 해석하고 드러내는 건축부터 크게는 국가의 특징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건축이 되는 거죠. 건축 또한 창의적 결 과물이라 개인에서 시작합니다. 프리츠커상이 개인 건축사에게 수여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건축적 정체성, 즉 건축사의 건축적 독창 성은 어떨까요?

왕성한 작품 활동하는 두 명의 건축사에게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 결국 그 두 사람의 정 체성이고, 그 정체성이 인정받으면 한국의 건축적 특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의 건축은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 황금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 90년대부터 시작한 건축 유학의 열풍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국내외에서 실무 를 수련한 30∼40대의 젊은 건축사들이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외연을 폭 넓게 넓히고 있다. 이러한 인적 바탕에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들도 규모와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더불어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 건축가 제도를 통한 기획과 설계, 특히 공모전의 기회가 대폭 늘어나면서 많은 건 축사들이 다양하고 의미있는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해진 활동을 소개하는 매체 또한 다양해지고 여기저기서 비교적 손쉽 게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과거에는 일부 건축 전문지만 건축물과 그 소식을 주로 다루었다면 요즘은 모든 매체에서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서점 을 가더라도 다양한 건축 관련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중교통인 KTX 열차나 비행기 내 매거진에서도 건축이 자주 소개되고 있어 매번 반갑게 보고 있 다. 여기에 더해 시각적 정보를 보여주는 TV와 YouTube, 영화 등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건축물과 그 배경 이야기는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일을 만드는 의뢰인의 입장인 예비 건축주들의 안목도 꾸준하게 높아 지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 구조상 1∼2인 가구가 늘어나고 휴대폰 보급과 함께 SNS 등이 확장되면서 정보가 넘쳐 나고 모든 분야에 걸쳐 각자의 개성 표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최근 포털사이트 의 리빙이나 디자인 코너에 소개되는 주택을 비롯한 크고 작은 건축물을 보면 이 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건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대부분 본인의 공간에 타인 의 공간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으려 하고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러한 분위기에 건축사들도 다양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고 결과적으로 과 거에 비해 양질의 프로젝트도 폭넓게 소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축계 내부는 물 론이고 대중이 바라보는 건축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며, 앞으로 이어질 세계적 수준의 작업들을 예측해보는 것은 결코 개인적 욕심이 아닐 것이다. 

 

 

건축사는 없고 설계는 건설의 하위 카테고리인가?

이와 같은 주변 인식과 상황의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네 건축 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 조 선시대부터 건축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그저 기술자로 취급받는 사회적 분위 기는 여전하고, 건축설계를 독자적인 장르 혹은 문화 영역으로 인정받는 다른 나 라를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아직도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고 하면 어르신들은 당연히 졸업 후 대기업 건설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알고 계신다. 건축기사는 알아도 건축사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건축사사무소는 그저 고생만 하는 하위의 직업군으로 인식이 되어있다. 얼마 전 예비 건축주와 상담을 하는데 그분은 내가 제시한 설계비를 모 대학교 건축과 교수와 비교하면서 “교수도 아닌데 설계비를 왜 이렇게 많이 받느냐?”고 하신다. 심지어 그 교수는 건축사도 없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말씀하신다. 전국 여기저기서 열리는 건축박람회를 가보면 건축사 없이 설계를 그저 건설의 하위 카테고리로 보는 현상은 더 분명해진다. 각 시공사 부스마다 규모검토와 설계비는 당연히 무 료라고 광고하고 자신들과 계약을 하면 어떤 설계라도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건축사 없이 지어지는 주택이 년간 수백 채라고 하니 그 안에서 의사, 변호사, 세무사와 같은 전문직으로 건축사를 인정해 달라고 외치고 설계비를 정상화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지 모른다.

 

이처럼 건축사 혹은 건축설계가 독자적인 장르 혹은 직업군이 아닌 건설의 일부 로 인식되는 현상은 사회적 혹은 대중의 인식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건 축계 내부의 인식이 더 문제다. 이는 과거 턴키를 통해 건축사사무소가 시공사의 파트너로 참여하며 설계사무소의 규모를 키울 때부터 고착화되어 이후 더욱 심 해지고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일례로 일반인은 물론이고 건축계에서도 이제 착공신고는 당연히 건축사사무소에서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웬만한 시공 사가 아니고는 아예 세움터 혹은 착공신고를 할지도 모르고 그건 설계사무소에 서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 어느 순간부터 설계사무소의 업무는 시공사를 보 조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당연해지고 그 양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분명 건축설계가 하는 일과 건설에서의 업무가 다른데도 말이다.

 

장르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서

글의 서두에서 말한 사회적 변화 혹은 다양성을 담고 건축이 사회 문화적으로 독 자적 영역을 인정 받으려면 위와 같은 건설과 건축의 문제 이외에도 우리 스스로 자각하고 개선해야할 부분은 산적해 있다. 대표적인 부분이 아직도 건축계 대부분의 뉴스는 건축을 만드는 우리네 삶에 초점을 두지 않고 일부 뛰어난 건축사(해외 건축사 포함) 개인의 역량과 눈에 보여지는 디자인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철저히 엘리트적인 그들만의 리그에 가깝고 상업주의적인 면모만 보인다. 가까운 일본에서 건축 전시장을 가면 70∼80대 노인층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이 관심 을 가지는데 반해 우리는 기껏해야 건축사사무소 종사자나 건축과 학생들뿐이다. 다음으로 산업 혹은 기술과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통한 건축의 내실있는 발전 이 절실하다. 사실 건축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산업과 기술의 발전은 아직도 90 년대에 머물러 있고 대부분 해외 기술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창문의 경우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설계 단계에서 독일식 창호를 찾기에 한국식 창호는 존재 자체도 알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기술로 건축을 뒷 받침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기술과 자재를 그대로 수입해서 파는 게 남는 장사다. 이는 창문만의 문제가 아닌 건축 전반의 심각한 문제이다. 현대의 건축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을 염두한다면 근본적인 생각부터 변화시 켜야 하고, 우리 스스로 기술의 한계로 인해 기본 사고와 건축 설계의 한계를 가 져서는 안 될 일이다. 이 부분은 대학 등 건축 교육 단계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하 며 우리 건축 틀을 과감히 벗어나려는 보다 다양한 시도와 함께 다른 학문, 산업 과의 다양한 융합과 협업이 필요하다. 건축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실제 완성되는 다양한 건축에서 이것이 느껴질 때 대중은 자연스럽게 건축이라는 장 르에 관심을 가지고 독자적 존재로 인식할 것이다.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인 칸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 았다. 사실 건축에서 4.3그룹이 활동하던 시기만 해도 영화는 건축보다 한참 수준이 낮은 장르라고(어쩌면 우리끼리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영화는 벌써 베니스 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 쾌거이고 건축은 매번 이웃 나라 수상 소식에 배만 아픈게 사실이다. 건축에서 한 사람이 상을 받는다고 해도 영 화나 음악처럼 전체 건축계가 대중에게 어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희망적 변화와 토대 위에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필 요하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기본기를 다지며 언제나 대중에게 가까운 존재로 서 건축을 염두해 두어야 장르 그 이상의 가치와 힘을 가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왜곡된 설계비의 정상화는 영원히 불가능하고 건축사의 미래는 공인중개사 혹은 마술사 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글. 김창균 Kim, Changgyun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김창균 (주)유타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1971년생으로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병대사령부 건축설계실, 에이텍 건축 등에서 손 도면으로 시작하여 건축설계뿐 아니라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며 실무경험을 쌓았고, 2006년 (주)리슈건축사사 무소 공동대표를 거쳐 2009년 UTAA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한국건축사). 현재 (주)유타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서울시 공공 건축가이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젊은 건축가 상’을 2011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작업으로 포천 피노키오 예술체 험공간, 서울시립대학교 정문, 삼청가압장, 수원 상가주택 (The Square), 울산 간절곶 카페0732, 운중동 단독주택(도시채), 세 종 단독주택(하품집) 등이 있다.

prism082@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