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어반테라스 2019.7

2022. 12. 23. 13: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Urban Terrace

 

도시건축의 생태계

 

동물의 세계에서 약육강식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다. 최상위 포식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아래쪽 먹이사슬에 있는 개체들을 먹이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메 커니즘이다. 이는 전체 먹이사슬에 걸쳐 일어나는 순환체계이다. 자연의 법칙에서 상위 포식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할 정도의 적절한 범위 안에서 하위 개체들을 먹잇감으로 하고 있다. 즉, 생존과 개체 보존을 위한 범위를 넘지 않는다. 오로지 해당 개체의 무자비한 증식을 위한 탐욕적 차원에서 하위 개체들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래쪽 사슬로 내려갈수록 하위 개체들은 상위 개체의 먹 잇감으로 희생되어도 무리의 생존을 이어 가기에 충분한 번식력과 끈질긴 생명력 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탐욕이 아닌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상위 계층의 포식과 포 식자에게 내어 주고도 개체의 지속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번식력과 생명력은 건 전한 자연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우리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의 생태계를 살펴보자. 우리 도시를 구성 하는 최상위 포식자는 어떤 유형인가 살펴보면 이는 바로 ‘아파트’라는 개체가 아 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도시의 절대적 강자로 군림함과 동시에 해당 유형 의 번식 능력은 아래쪽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유형(단독주택, 다가구주택, 근린생 활 시설 등)을 먹잇감으로 삼으면서 도시건축 생태계 자체를 아파트라는 단일 개 체의 절대적 우위의 환경으로 바꾸고 있다. 자연 속 유기체이든 도시 속 건축이든 간에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생태계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아 님은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다양한 종이 함께 서로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질서 를 이루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생태계이자 아름다운 도시사회임을 공 감할 것이고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건축 생태계 에 치명적 위험 개체로 나타난 아파트는 획일적인 계획에 의해, 대규모로 빠른 속 도로 건설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도시는 궁극적으로 인 간을 위한 환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하마터면 아 름다운 도시 파리마저도 아파트라는 개체의 습격 속에서 엄청난 상처를 입을 뻔 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파리의 건강한 도시건축 생태계가 ‘아파트’라는 단일 개 체가 도시를 뒤엎는 것을 막아낸 것이다. 우리 도시는 어떠한가? 파리라는 도시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단일 개체가 지배하는 도시건축의 생태계가 우리의 도시 속에 침투하여 빠르게 번식하면서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현재 진행형으로. 그리고 이 러한 개체의 증식과 침투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홀로 버티기

 

한국의 도시 안에서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것은 참으로 다이내믹(?)하다. 얼마 전 까지 어깨를 맞대며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동네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낙후된 동네’로 나뉘기도 하며 때론 동네 전체가 사 라지기도 한다. 아주 짧은 시간에. 하지만 때로는 그러함이 예상되는 환경 속에서 도 악착같이 버티며 건축물을 설계하는 끈질긴 건축사들도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또는 신시가지와 같이 정형화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건축을 하는 것은 이 끈질긴 건축사 측면에서 본다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만들 어진 우리 도시의 구조 안에서 수십 년 축척 되어 온 건조환경들은 필요에 따라 비 워지기도 하고 새로이 채워지기도 하며 성장해 왔다. 새로운 건축의 유형이 나타 나 도시를 지배해 오는 속에서도 작은 도시건축의 생태계는 작동해 오고 있다. 도 시 전체가 아니라 작은 블록들과 좁은 길로 연결된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이를 바라보는 합의와 전체를 구성하는 모아진 개념이 없다면 끈질긴 건축사에게 도시 는 여전히 흥미진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분투할 것이다. 대지를 향해 다가오는 아 파트의 위협을 온몸으로 느끼는 도시의 작은 생태계 속에서 새로이 들어설 건축물 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즉, 맥락에 대한 문제는 다이나믹함을 넘어 가히 카오스적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가 위치한 대지는 대구의 주간선도로 바로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크기의 땅이다. 상업지역답게 수십 층의 주상복합 건물 이 턱밑까지 차올라 있고 대지 북쪽 인근의 대구MBC 사옥도 최상위 포식자의 탐 욕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운 자리를 찾아 떠날 예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변 의 컨텍스트가 읽히기는 고사하고 대지와 마주하고 있는 주변 건물들의 용도와 규모는 제각각이라 어디 하나 기댈 언덕이 없다. 초고층 아파트, 근린생활시설, 한동짜리 빌라, 오래된 주택, 그리고 다가구 주택, 업무빌딩 등…. 얼마나 다양하고 북적대는 도시 맥락인가. 참으로 다이내믹하지 않은가.

 

사진 윤동규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홀로 버티고 있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하위 개체로 서 다양한 변종들을 번식하기 위해 그래서 도시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그라운드 레벨에서 가로에 대응하는 근린생활 시설은 어쩌 면 우리 도시건축 생태계 속 하위 개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굳건하게 이어져 온 최 소한의 DNA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는 이와 별개 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외부공간을 건물 구석구석에 심어 놓았다. 외 부공간인 테라스는 스스로 호흡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근린생활시설 위 2층과 3층의 한 지붕 두 가구를 위한 주거의 기능 속에서 테라스는 꼭 필요한 부분에 자 리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가구의 분리와 이어짐을 교묘하게 만들고 있다. 한 가구는 2층의 2/3를 쓰면서 3개의 테라스를 소유하는 반면 나머지 한 가구는 상대적으로 작은 2층 면적과 1개의 테라스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자라는 테라스는 복층 형 평면에서 이어지는 3층 공간과 함께 옥상의 가장 넓은 테라스를 가지게 된다. 두 가구가 출입하는 홀에서 시작된 테라스는 내부 공간 속에서 이어짐과 분리를 위해 놓이고 최종적으로 옥상의 넓은 테라스로 연결된다. 테라스는 이 건물의 호 흡기관이다. 건물은 온통 백색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 스스로 작은 생 태계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마감 재료 역시 단순하다. 아 연도 강판과 스타코로 구성되어 있다. 석재, 타일, 벽돌, 알루미늄 패널 등 기존의 다양한 재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이 동네에 슬쩍 접근해 보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지만, 하위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단실을 둘러싼 알루미늄 루버는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그래서 이곳의 도 시건축 생태계를 지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추가적인 선택일 수 있다.

 

고려해야 할 맥락이 모호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지를 바라보아야 하고 또 대지 에서 주변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내가 스스로 서고 스스로 버티 는 건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최상위 포식자의 위협 속에서 좀 더 오래 버티는 방법은 오히려 단순하다. 건축디자인 작업이 단지 하나의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전체를 완성하기 위한 부분의 작업이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집단의 광기 속에서 전체 속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은 포기하고 홀로 버티는 것이다. 그리하 여 비록 더디지만, 작은 건축물 하나로 인해 전체가 바뀌어 우리 도시건축 생태계 의 건강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굳건하게 버티는 것이다. 어반테라스(Urban Terrace)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DNA가 되기를 믿는 것은 부질없는 꿈일까?

 

 

 

글. 조극래 Joe, Keukrae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조극래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공부한 후 CAMP건축사 사무소와 (주)POS-AC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미국 미시건 대학교(Univ. of Michigan)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후 Washington D.C의 EYP에서 학교건축과 예술공연장 프로 젝트에 주로 참여하여 일하다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부 임했다. 학교에 근무한 이래로 꾸준하게 교육과 실무를 함께 하 고 있다. 현재 도시재생사업 총괄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현 장에서의 삶과 건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작은 건축의 변 화가 마을의 변화 그리고 주민 생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joe@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