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건축미 개념의 역사적 전개 연구 (2) _ 아네르 테트라고노스와 아르카디아

2022. 11. 9. 15:0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 Study on Historical Development of Western Architectural Beauty Concept (2)
_ aner tetragonos(ανηρ τετραγωνος) and Arkadia

 

3. 『근대미학사』의 건축미

(1)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400년대)의 미학사상과 건축미
15세기 초는 르네상스라고 하는 근대의 시작이다. 또한 르네상스를 세단계로 나누면서 첫 번째 단계는 콰트로첸토(Quattrocento, 1400년대) 혹은 우마네시모(Umanesimo, 인문주의)라고 부르는 <선(先) 고전적 단계>와, 두 번째 시기(1500년경 시작되어 사반세기까지)는 <짧은 고전적 단계>인 고전적 르네상스로서 칭케첸토(Cinquecento)라고 부른다. 이 명칭(이탈리아어)은 르네상스의 후반기까지 보듬는 16세기 전체를 포괄한다. 세 번째 단계는 1527년에서 16세기의 나머지 기간을 말한다고 본다.(HA.Ⅲ, pp.90-91)

14세기의 문화는 여전히 중세적인 스콜라적이었고 고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세의 위대한 시인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가 등장했고, 인문주의의 기대를 대표한 고전적 교양을 지닌 시인인 페트라르카도 있었다. 14세기의 건축은 고딕적이면서 중세적이었다. 이러한 고딕건축은 그림, 직물 등에 재생됐고. 1400년경의 유럽은 고딕 이외의 다른 예술 형식은 없었다. 첸니니(Drea Cennino Cennini, 약 1370-약 1440)는 “<정사각형 인체의 인간(homo quadratus)> -도판 1참조-같은 고대의 개념을 사용하고 고대의 비례(신장=얼굴 길이×8)를 추천했기 때문에 르네상스의 저술가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과 추천은 중세 시대에 알려진 것이고, 첸니니도 이를 고대가 아니라 중세 시대에서 가져왔다.”(HA.Ⅲ, p.72)
1400년에서 한 세기의 ¼이 지나가면서 비 고딕적 미라는 초월성이 배제되고 신비적이고 유비적인 해석의 방법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예술은 중세의 틀과 고딕을 떠나지 않은 채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점진적인 진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14세기에서 15세기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오직 편안함보다는 우아함만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관심을 가졌고, 성당 건축에는 장식이 지나치게 많았다. 과도한 조각과 장식이 성당 용품에도 많아졌다. “성당의 성배는 가장자리가 너무나 정교하고 장식적이어서 입을 대기 어려웠다. 접시는 동물이나 배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다. 실내장식을 애호하다 보니 오늘날에는 자연스럽지만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관습도 생겨났다. 사람이 거주하는 집 벽에 그림을 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HA.Ⅲ, p.77)
르네상스의 첫 단계는 콰트로첸토라는 15세기 초, 르네상스라고 하는 시기이며, 근대의 출발이었다.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은, “1) 중세 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신념과 편애로부터 벗어났고, 무엇보다 초월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생활과 문화가 세속화되기 시작했다. 2) 이탈리아만이 유일하게 새롭고 고상한 문화를 창출했다. 3) 최근의 중세적 전통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이탈리아는 훨씬 오래된 고대의 전통을 새롭게 재생하여 다시금 살아나게 했다. 4) 시각예술이 문화적 진보의 길을 인도했다.”(HA.Ⅲ, p.81) 
르네상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첫째 르네상스는 인간성의 재탄생(renovatio hominis)으로 인간이 보다 높은 단계로 전진한다는 것과, 둘째는 과거의 재탄생, 즉 옛날의 문화, 지식, 예술의 재탄생이자 고대의 재탄생(renovatio antiquitatis)” (ibid., p.86.) 이라고 하였고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아니라, 후세의 역사가들이 만든 용어였다.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인 건축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rlleschi, 1377-1446)는 금세공인이었다. 그리고 원래 화가를 직업으로 갖고 있었던 브라만테(Donato Bramantr, 1444-1514), 글을 주로 썼던 당대의 유명한 건축사 알베르티(Leone Battista Alberti, 1404-1472), 또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도 르네상스 건축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만 직업적 건축사는 물론 아니었다. 알베르티를 비롯한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는 화가, 조각가, 동시에 문필가이자 학자였다.(HA.Ⅲ, p.109)
고대의 요소를 근대의 해법에 적용하는 일은 르네상스 건축사들에게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San Lorenzo) 성당의 정면을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다. 정면에 대한 입면의 설계가 건축사들 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알베르티가 고대 개선문을 디자인할 때는 아치 모티프를 사용했고, 브라만테 같은 경우는 박공을 분리하는 컨셉을 적용했으며, 팔라디오는 파사드를 구축할 때는 두개 기둥 양식을 교차되도록 설계했다. 즉 “건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개념과는 다르게 변화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건축이 공간을 둘러싸는 것이지만 이제는 표면을 꾸미고 벽을 장식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리스에서는 기둥이 공간적인 요소였지만 르네상스의 건축사는 기둥을 벽의 한 요소로 만들었다. 기둥은 벽 속에 파묻힌 채 원래의 의미를 상실했고 구조적 요소에서 하나의 장식으로 변화”(HA.Ⅲ, p.112) 했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는 건축사의 진정하며 멋있는 설계라는 것을, 아름다운 것은 물체가 아니라 물체의 이미지라고 하면서 이 정신적 이미지인 비물질적 이데아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미와 예술에 관한 피치노의 중요한 내용은 플라톤의 『향연』에 붙힌 그의 주석에 담겨있으며 알베르티와 달리 피치노는 미 이론 연구에 몰두하였다. 피치노는 미라는 정의가 ‘외적 완전성’이라는 것과 또한 선과의 구별은 내적 갈망이라는 것과의 차별성을 밝히고 있으며, ‘어디에 미가 있는가?’ 라는 장소를 묻고 있고, 건축사의 이데아와 육신에게 미를 빌려주는 이데아, 본유적 이데아를 가진 자의 욕망을 미에서 밝히고 있다. 타타르키비츠는 계속해서 “6) 집은 질료이지만 건축사의 비물질적 질서로부터 나온다. 또한 7) 미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피치노는‘신의 존재 증명’으로서 미를 보았다. 8) 피치노의 정신주의적 미 개념은 플라톤 미학으로부터 유래되었다.”(HA.Ⅲ, p.204-209) 라고 주장한다. 
피치노와 알베르티 두 사람의 차이는 서로 상반되는 미학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알베르티는 자신의 영감을 고전적 고대의 미학사상으로부터 받았다. 이른 시절부터 예술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 알베르티는 『건축론』을 비롯하여 중요한 논문을 여러 편 썼다. 로마의 니콜라우스 5세(Nicolaus Ⅴ)의 궁정에서 활동했고 레오나르도와 함께 다방면의 재능을 겸비한 전형적인 르네상스적 인물이다. 

(2) 칭케첸토(Cinquecento, 1500년대)의 미학사상과 건축미
‘고전적’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이 시기는 문화적 위대함을 인정받은 시대로서 중반기 르네상스인 1500년경을 가리킨다. “르네상스의 고전 예술에는 칭퀘첸토(Cinquecento)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실제로 16세기에 속한다. 그러나 16세기 초 몇 해가 포함될 뿐이다. 1495-1527년, 혹은 어림잡아 1500-1525년으로 잡을 수도 있다. 물론 미켈란젤로와 티치아노는 그 시기를 넘어서까지 살았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까지, 티치아노는 1576년까지 살았지만, 말년에는 이미 다른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HA.Ⅲ, p.227)
고전적 르네상스는 시각예술의 디세뇨의 예술 개념 덕분이다. 건축·회화·조각이 성취한 수준까지 시와 음악은 이르지 못했다. 고전적 르네상스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1452-1519),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등이다. 그리고 유명한 또 다른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건축사인 브라만테(Donato Bramantr, 1444-1514)와, 화가인 조르조네(Giorgione, 1478-1510) 그리고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77-1576) 등이다. “이 위대한 르네상스의 인물들은 두 세대에 속해 있었다. 브라만테(1444년 출생)와 레오나르도(1452년 출생)는 미켈란젤로(1475년 출생), 조르조네(1478년 출생), 라파엘로(1483년 출생)보다 한 세대 위였다. 두 세대 모두 거의 동시에 최고점에 도달했다. 이것이 1500년경이고 르네상스의 고전기가 시작된 시기였다.”(HA.Ⅲ, p.225) 
16세기의 고전적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다양한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예술의 특징은 웅대함·조화·균형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즉 “과감히 웅장함을 지향했고 조화를 추구했으며 형식과 내용, 관념과 실제 간에 균형을 이루려고 했다. 또한 절제·규율·금욕·즉각적 경험을 객관적 과제와 의식적 구성에 예속시키기, 구조를 생각한 장식의 절제된 사용, 상상력 훈련 및 실제로 적용”(HA.Ⅲ, p.227) 했다. 또한 “우연적 ·지엽적 ·개별적 특징을 배제하고 현실의 본질을 직시함으로써 급박함이나 방만함으로 인한 도취상태의 억제, 아기자기한 매력보다는 장중한 규모, 우아함보다는 활짝 핀 육체, 호화로움보다는 단순함, 다양성보다는 기념비적 성격, 잡다한 매력보다는 통일성을 애호”(HA.Ⅲ, p.228)했다.
1500-1525년의 고전적 르네상스 예술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특징은 서로가 차이가 있었는데, 라파엘로의 경우는 “평이함·다양성·우아함을, 미켈란젤로는 심오함 혹은 두려움에 주목했다. 전자는 신성한 매력으로, 후자는 힘으로 칭송받았다.”(HA.Ⅲ, p.235) 라파엘로는 “법칙과 조화, 균형에 의해 지배되는 고전적 예술이고, 자유분방함으로 충만한 미켈란젤로의 예술은 고전적 예술이 아니었다.”(HA.Ⅲ, p.235-236)
학자, 엔지니어, 발명가, 저술가, 예술 이론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고전기 르네상스를 연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전성기는 15세기이긴 하지만 거의 15세기의 끝을 향하던 시기였다. 그는 태어난 지방은 토스카나였다. “피렌체에서 1482년까지와 1499-1506년 사이에만 살았다. 1482-1499년과 1507-1513년에는 밀라노에 있는 스포르차의 궁정에서 지냈고, 1516년에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가서 말년을 보냈다. 여러 분야에서 필적할 데 없는 다재다능한 지성을 가진 레오나르도는 언제나 예술과 과학을 결합했는데, 초기에는 예술에 관심을 쏟고 후기에는 과학에 더 관심을 쏟았다.”(HA.Ⅲ, p.252)
중세가 고대미학의 비례미를 물려받았고, 다시 15세기 예술이론에서도 르네상스 건축사를 비롯해서 예술가와 작가를 흥분시킨 주제 가운데 하나는 비례미에 관한 것이었다. 15세기의 비례미는 인간을 위한 완전한 형식으로서의 <완전한 비례>와 수량화에 있었다. 즉 인체형식으로서 얼굴의 몇 배가 몸의 길이인가를 물었던 것이다.(HA.Ⅲ, p.125) 일정한 비례를 <진실된 비례>라고 했는데, 이러한 자연적 비례를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또한 기베르티는 미의 기초로서의 비례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즉 “인체의 사지 자체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얼굴의 크기와 비례를 이루고 있다면 아름다운 형태로 볼 수 있다. 비례야 말로 미의 유일한 규준이기 때문이다.”(HA.Ⅲ, p.131) 라는 것이다. 16세기에 오면서 레오나르도는 해부학적 비례를 통하여 인간의 비례를 연구했고 원근법과 기하학을 찬양하기도 했다.
피코, 뱀보,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Baldassare, 1478-1529)는 ‘우아’라는 모티프를 미의 필수조건이라고 했다. 즉 우아와 미의 관계는 소금과 음식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피코는 우아라는 것은 물체에서부터 나오지 않고 영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카스틸리오네는 우아를 “행동이나 제스처 혹은 예술 작품이 억지로 애쓰지 않고 만들어 질 때 나타난다.”(ibid., p.241) 고 했다. ‘진정한 예술은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란 명제는 어떤 태만함을 의미하는 다음 글에서 그의 미 우아함의 정의 규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우아함의 기원을 숙고해 보면 보편적인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가장 위협적이고 위험한 암초인 가장하는 태도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것에는 어떤 태만함을 뜻하는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가 있는데, 여기에는 인위적인 면을 감추고 별다른 노력이나 반성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면을 부각시킨다는 의미가 담겨있다.”(카스틸리오네, 궁정인에 관한 책, p.63, 스프레차투라)(HA.Ⅲ, p.248-9)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우아함이라는 것을 얻는 커다란 원천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아주 잘 만들기 어렵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기에, 그것이 쉽게 만들어지면 특히 감탄하게 된다. 반대로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 매력도 없어지고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개의치 않게 된다. 결론적으로 진정한 예술이란 예술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HA.Ⅲ, p.249)
1400년경에 첸니니와 더불어 함께 등장한 디세뇨의 개념은 르네상스 미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계속 하게 됐는데, 첸니니는 예전에 저술에서 썻던 용어 속에 새로운 용어인 디세뇨(disegno)를 추가했다.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며 새로운 용어였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 이론의 중요한 중심 개념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디세뇨는 라틴어 데시냐티오(designatio)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어 디세뇨에는 의도의 개념이 있었고 또한 소묘(drawing) 또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디세뇨는 <물리적 대상>을 뜻했으나 심리적, 의지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였다.

(3) 대표적인 건축물[빌라 로톤다(Villa Rotonda, 1565-1566)]을 통한  르네상스 건축미 개념 고찰
르네상스를 꽃피웠던 시기(1420-1580년)에는 고전 건축과의 연결점을 지속적으로 탐구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길을 열어 놓은 건축사로서 로마시대의 유적을 끊임없이 답사 탐구하고 고전건축의 모델을 원리로 적용시켰다.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1580)는 이 시대의 건축사로 1508년 파도바에서 출생했고 16세부터 비첸차(Vicenza)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르네상스 건축사로써 순환성과 균형성을 갖고 있는 <원과 사각형>의 건축에 몰두했다. 팔라디오의 중심형 건축-도판35참조-을 통하여 중심 공간미를 갖는 원형과 사각형의 건축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도판 35>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빌라 티에니(고전건축의 요소활용) (출처 : 타타르키비츠, 『미학사』Ⅲ, p.115)

팔라디오는 화가로 출발하지도 않았고 미켈란젤로처럼 조각가로 출발한 것도 아니며, 채석공으로 건축을 시작했다. 이때에 트리시노(Gian Giorgio Trissino, 1478-1550)를 만나지 않았으면 위대한 건축사인 팔라디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트리시노는 ‘크리콜리 빌라’(Cricoli Villa, 1530-1538)을 세우면서, 조용한 전원 속의 그리스식 학교전통 학문의 아카데미-나중에 아카데미아 트리시니아나(Accademia Trissiniana)로 불림-를 실현시켰다. 그는 수학에 매우 뛰어난 팔라디오에게 비트루비우스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 로마 견학을 세 번씩이나 했었다.

<도판 36>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빈첸자에 있는 빌라 로톤다 (출처 : 타타르키비츠, 『미학사』Ⅲ, p.394)

팔라디오의 『건축 4서』에 나타난 <가장 완전한 형식>으로서 ‘원과 사각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사물들이 비례의 모범으로 삼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올바른 형태는 원과 사각형이다. 사원 모양에서 적합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형태에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한 가지 형태를 선택한다. 이 형태가 원이다. 모든 형태들 중에서 이것만이 단순하고 통일되었으며 항상 일정하고 강하며 너그럽다. 따라서 우리는 둥근 사원을 건축한다. 이 형태가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HA.Ⅲ, p.430) 라고 했다. 그가 설계한 빌라 로톤다(Villa Rotonda, 1565-66) -도판36참조-는, “사각형 속에 내접한 원형 평면이라는 더욱 완벽한 상징적 구성으로 발전하고 있다. 원은 피타고라스적 의미로 볼 때 무한성과 신성이라는 통일적 완결성을 상징한다. 또한 원은 초기 기독교도들에게는 숭고미를 상징하였다. 반면에 정사각형은 물리적 우주와 속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피타고라스적 의미로 볼 때 정사각형 안에 원을 내접시키려는 시도는 무한성을 유한한 존재로, 혹은 신성을 물리적 존재로 환원하려는 의지를 의미한다.” 고 했다. 이로써 로톤다는 완벽한 자연의 환경 속에서 빌라문화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 되었다.
빌라 로톤다 파사드 설계에서 팔라디오는 페디먼트(pediment, 고대 그리스식 건축에서 건물 입구 위의 삼각형 부분)를 두면서 고대 신전의 정면을 주택의 빌라에 접목시킨 최초의 건축사가 되었고 이러한 방식의 디자인이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이탈리아 건축사들은 설계상의 길이와 높이, 폭 사이에서 비율을 추구했는데 특히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가 대칭적인 비례 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도판 37> 토스카나 풍경(레오나르도, 1473) (출처 : Ackerman, James S., The villa : form and ideology of country houses, Thames and Hudson, 1990, p.76.)

 

글. 최동호  Choi, Dongho · KIRA  건축사사무소 마당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