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건축사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2019.9

2023. 1. 4.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국가가 건축사를 폭발적인 숫자로 늘리려 한다. 양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름발이 시선이 폭주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급의 확대는 필연적인 시장 교란을 통한 질적 저하와 불법과 탈법의 건축사 시장을 만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냐면 생존의 위기가 태풍처럼 몰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오로지 양의 증가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중심 한 가운데에 있는 이들이 바로 30대 건축사들이다. 그들은 약 6천여 명의 비등록 건축사들과 파도처럼 밀려올 새로운 건축사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축설계 시장의 왜곡은 이미 상당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인한 개인 설계 시장의 급격한 축소 환경에 놓여 있다. 기회의 확대일 수도 있지만, 과잉 경쟁으로 설계공모에서 살아남지 못할 이들도 상당하다. 상당히 많은 경우, 정말 온전히 실력으로 설계공모에 당선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건축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 건축계는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성사회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법정 건축사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도 노력해야 하고, 전국의 각 시·도건축사회와 지역건축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타 건축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젊은 건축사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모아서 공명을 이끌어내야 한다. 세대가 아우러지고, 목소리가 단합될 때 건축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의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마음에 이번 호는 젊은 30대 건축사들에게 이야기 할 마당을 열었다.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보시길...

 


01 Society that does not recognize an architect's authority

 

이번 호의 주제는 ‘건축의 혁신’이라고 하고, 30대 젊은 건축사의 생각을 피력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작년에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287호)’에 기고했던 “왜 소규모 공공건축의 시공사 선정방법은 변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얼마 뒤 국회에서 열린 ‘2018 대국민 건축 토론회’의 참고자료로 쓰였다고 한다. 필자의 작은 발언이 미약하나마 건축계의 변화에 보탬이 된 것 같다. 또다시 이런 발언의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며, 또다시 보탬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한국 건축에 필요한 혁신이란?

‘건축의 혁신’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의 건축설계, 3D 프린팅 건축기술, 홈IoT 등의 신기술을 건축에 적용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 ‘혁신’은 현재 한국 건축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을 건축에 적용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적용한다 한들 건축적으로 좋은 공간이 생기거나 한국 건축의 가치가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국토교통부에서 그렇게 원하는 ‘프리츠커상’ 수상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필자가 짧게나마 경험한 건축사회는 아직 상당히 부족하다. 건축사는 권위를 잃었고, 사회는 좋은 건축을 인정하지 않으며,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많은 것들이 건축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악조건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국토교통부가 아무리 청년을 지원하고 돈을 쓸지라도, 신기술을 건축에 적용할지라도, 한국에서는 ‘프리츠커상’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 한다. 건축계의 관습과 조직, 방법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혁신이라면, 이것이야말로 한국 건축에 필요한 혁신이 아닐까.
밥그릇 싸움, 승리했는가? 

어딜 가나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밥그릇 싸움의 승패가 그 분야의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으니, 각 분야의 협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건축 관련법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을 보면,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설계-감리 분리’ 및 ‘허가권자가 지정하는 감리(소규모 건축물 감리)제도’ 등은 해당 지역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사의 밥그릇 싸움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작년에 처음으로 소규모 감리를 수행해보았으나, 올해는 감리자 명부에 올리지 않았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설계-감리의 분리’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이것과 반드시 병행되고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설계의도구현 업무’라는 것이다. 감리제도를 정비하는 데 급급하여, ‘설계의도구현 업무’에 대한 정립은 다소 늦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일부 일반인과 건축 관계자들이 ‘설계자가 공사에 관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최근 필자가 겪은 몇 가지 일들을 다른 건축사들도 겪었다면,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긴 싸움이 아니다.
 
건축사의 권한을 빼앗기고 있다

이제 필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젊은 건축사로서 이 험난한 건축계에서 살아남을 길은 하나라도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를 쌓는 일이다. 다작을 할 수 없는 여건이라 작은 프로젝트 하나가 소중하고,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경기도 H시에서 발주한 어린이집이 2017년에 당선이 되었고 올해 준공됐다. 규모가 작아서 상주감리 대상은 아니었으나, 발주처에서 상주감리를 두었는데, ‘고급기술자’의 건축사보가 감리단장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부터 당황스러운 상황에 마주하게 됐다.

 


첫 번째 당황스러움은 감리자의 태도에 있었다. 각 공정별로 색상 및 재질, 디테일에 대한 협의와 조언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시로 현장을 오갔다. 그런데 설계용역이 종료됐는데 왜 나타나서 공사를 방해하냐는 말투다. (내 새끼 내가 보러 왔거늘, 불청객 취급을 받는다. 설계자의 지위가 이 정도이다.) 다행히 호의적인 시공사에게 설계자 의견을 따로 전달하여 억지로 진행했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자꾸만 설계가 잘못되었으니 수정해야 한다며, 건물 전면부에 영롱쌓기로 디자인되고 잘 시공된 벽을 철거하라고 시공사에 지시내리고, 이게 안 되니 폴리카보네이트로 영롱쌓기 벽면을 덮으려고도 했다. 노출콘크리트로 설계된 원형기둥을 스톤코트로 바꾸려고 했다.(결국 도장으로 처리됐다.) 이 감리자는 설계와 감리는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며, 설계자가 공사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시공사, 사용자와 감독관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두 번째는 감독관(공무원)의 태도이다. 설계공모를 통한 결과물인데다가, 설계자가 이렇게 적극적인데, 모든 결정 권한을 사용자에게 넘기는 분위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공건축은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지는 것으로 설계공모를 통해 검증된 설계자나, 실력이 검증된 공공건축가들에게 맡겨야 하거늘, 건축과는 무관한 사용자에게 그 결정 권한을 맡긴다니,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내·외부 색상을 정하는데, 며칠 동안 고심해서 색상넘버를 가지고 현장에 간 날이었다. 설계의도와 색상을 브리핑 했는데, 담당 감독관은 “설계자 의견은 그렇고, 원장님이 원하는 색은 무엇이냐며 현장에서 고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설계의도의 80%는 수용되었으나, 20%는 원장님의 취향에 의해 변경됐다. (외부의 주황색 포인트색상도 우리에게는 두 번째 대안이었다.)   

왜 이런 분위기가 생겨나는가?

설계자를 하지 않은 감리자, 그리고 감독관의 의무는 ‘하자가 없고, 튼튼한 건물을 만드는 것’에 있다. 따라서 그들의 가치판단 기준은 하자 가능성, 위험 가능성, 말 나올 가능성 등이 적은 것에 있다. 그래서 외부에 적용되는 금속은 모조리 스테인리스 스틸로 변경하고, 추락이나 파손의 위험이 있으면 아예 그 공간을 없애려고 시도한다. 책임소지를 없애는 것이 제일이지, 건축공간의 질과 분위기가 인간(특히 아이들)에게 미치는 심미적인 안정감 등은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민원’인데, 사용자에게 결정권을 주는 것이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민원’을 차단하는 것이니 얼마나 편한가.
생활 SOC사업을 강조하고 있는 요즘, 모두의 공공건축을 건축사가 아니라 이들에게 맡겨서 되겠는가? 그래서 좋은 건축공간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모든 구성원이 도와줘도 쉽지 않은데, 이런 사회에서 프리츠커상이 웬 말인가.

말도 안 되는 태도와 분위기에 큰 실망을 하고, 강경하게 대응해보았다. 법적인 사항을 살펴보고, 공문을 몇 차례 보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설계의도구현 업무는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처음인지, 담당 감독관은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경기도 H시가 소규모 현장에 법적 대상도 아닌 상주감리를 둔 이유를 고민해보면, 그동안 설계도서는 참고로 하고, 상주감리를 두고 감독관과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재료를 바꾸고 조정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된 원인은 그동안 입찰을 통한 설계로 제대로 된 설계도서를 못 받았거나, 제대로 된 설계자였어도 발주 당시 공사비를 적게 책정하여 설계비를 후려치고, 추후 공사비만 증액하는 등의 관행이나 부조리함 등으로 설계자가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우리가 진행한 프로젝트도 설계비가 9천만원이었는데, 위에 언급한 수법으로 설계비 약 3천만 원 정도를 정산받아야 했으나, 받지를 못해 결국 적자였다. 그에 반하면 상주감리비가 1억 5천만 원이었다. 설계비를 절약해서 공간의 분위기 따위 안중에 없는 감리자에게 주는 꼴인데, 좋은 포트폴리오를 남기고자 하는 설계자에게는 최악이고, 감리 업무 확대를 목표로 삼는 이들에게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법적으로 소규모 건축물은 설계의도구현 업무를 할 필요가 없다

법규를 들여다보면, 아래와 같다.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제22조(설계의도 구현)
① 공공기관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등의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구현되도록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건축물등의 설계자를 건축과정에 참여시켜야한다.
② 건축물등의 설계자는 설계의도가 구현될 수 있도록 건축주·시공자·감리자 등에게 설계의 취지 및 건축물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제안할 수 있다.
③ 제1항에 따라 건축과정에 설계자의 적정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공자 및 감리자는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방해하여서는 아니 되며, 설계자의 참여에 관한 내용 및 책임범위 등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설계의도 구현 업무가 잘 나열되어 있지만, 밑줄 그은 대통령령을 찾아보면,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 시행령 제19조(건축과정에서의 설계자 참여 기준 등) 
① 법 제22조제1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등의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란 제17조제1항 각 호에 따른 건축물등의 공사를 발주하는 경우를 말한다.

제 17조는 설계공모방식의 우선 적용대상을 말하며, 설계비 2억 원 이상(2020년부터는 1억 원 이상)의 설계를 말한다. 이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현재는 약 1500제곱미터 정도의 규모, 2020년부터는 약 700제곱미터의 규모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들만이 설계의도구현 업무 의무 대상이 된다. 생활 SOC와 밀접한 건축물(경로당, 마을활력소, 어린이집, 마을도서관 등)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작으니, 아무리 생활 SOC사업을 강조한들 좋은 결과물이 나오겠는가? 어떻게 규모가 작다고 해서 그 가치가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혁신은 현재진행형

최근 공공건축계의 큰 변화는 공공건축가 제도의 확립과 서울시 교육청의 공간혁신 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공공건축가 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고, 며칠 전 SNS를 통해 국가건축정책위원회에서 경기도교육청을 찾아 학교공간 혁신에 대해 논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인 경쟁과 객관적 평가를 기반으로 변질되지만 않는다면 공공건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 순서는 조달청의 설계공모와 심사방식에 대한 개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존경하는 J선배건축사께서도 서울시를 상대로 공사비 증액에 따른 설계비 증액을 힘든 과정을 거쳐 받아내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의 성향을 생각할 때, 설계비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배 건축사들을 위해 선례를 남기고자 하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서울시 발주 설계는 설계비의 정산이 보다 수월해진 것이다. 
우리가 누려야 할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대우를 못 받고 있는 것이 우리 건축사회의 현실이다. ‘혁신’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을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그동안 ‘잘못해온 것을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건축사 모두가 제대로 된 작품을 통해 건축 전반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 더불어, 남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나부터가 침묵을 깨고 불합리한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고, 욕심내고, 싸워야 한다.

 

 

글. 김상언 Kim, Sangeun 에스엔 건축사사무소<서울특별시건축사회>

 

김상언 에스엔 건축사사무소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해안건축에서 실무경험을 쌓았다. 설계공모를 통해 부암어린이집, 향남어린이집을 설계했고, 최근에 용인시직장어린이집 설계공모에 당선됐다. 용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sn_architec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