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건축의 미래, AI가 대신 할 수 없는 것 2019.9

2023. 1. 4.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국가가 건축사를 폭발적인 숫자로 늘리려 한다. 양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름발이 시선이 폭주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급의 확대는 필연적인 시장 교란을 통한 질적 저하와 불법과 탈법의 건축사 시장을 만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냐면 생존의 위기가 태풍처럼 몰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오로지 양의 증가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중심 한 가운데에 있는 이들이 바로 30대 건축사들이다. 그들은 약 6천여 명의 비등록 건축사들과 파도처럼 밀려올 새로운 건축사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축설계 시장의 왜곡은 이미 상당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인한 개인 설계 시장의 급격한 축소 환경에 놓여 있다. 기회의 확대일 수도 있지만, 과잉 경쟁으로 설계공모에서 살아남지 못할 이들도 상당하다. 상당히 많은 경우, 정말 온전히 실력으로 설계공모에 당선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건축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 건축계는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성사회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법정 건축사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도 노력해야 하고, 전국의 각 시·도건축사회와 지역건축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타 건축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젊은 건축사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모아서 공명을 이끌어내야 한다. 세대가 아우러지고, 목소리가 단합될 때 건축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의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마음에 이번 호는 젊은 30대 건축사들에게 이야기 할 마당을 열었다.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보시길...

 


02 Future of Architecture, the Things that the AI Cannot Alternate

 

건축설계와 알파고

건축설계를 AI가 할 수 있을까? 컴퓨터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건축사의 업무 영역도 일부 AI가 대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용적률과 건폐율을 최대로 만들어내고 수익률 분석까지 해주는 알고리즘이 완벽하진 않지만 시장에 나와 있고, 건축사의 규모검토를 도와(?)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건축사의 역량이 이제는 건축사시험 잘 풀어서 얻는 자격증만 가지고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AI가 건축사시험을 본다면 만점을 받는 건 자명할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사가 건축제도나 법적인 건축사의 업무영역 내에서만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건축사 본인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떻게 AI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먹거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건축을 통한 여러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보면서 ‘미래 건축시장에서 AI가 할 수 없는 영역 중 리모델링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리모델링은 기존의 건축물에서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없앨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고 이 선택은 AI가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몇 차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리모델링 시행착오로 알게 된 것들

처음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고 첫 프로젝트는 내가 사용할 집과 사무실이었다. 비용의 한계로 인해 오래된 주택을 구입한 후 증축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6개월 정도 땅을 찾아다녔다. 목동쪽에 40년 된 노후주택을 사서 증축 리모델링을 했다. 그 당시 연와조인 2층집을 두 개층 증축 한다고 덤벼들었을 때는 이런 일이 발생 할 줄 몰랐었다. 3층 이상으로 증축하는 순간 건물전체의 내진설계를 받아야 했고, 연와조 구조체인 집은 내진성능이 전혀 없었기에 벽돌 껍데기만 남긴 채 철골로 지하 기초부터 옥상까지 전체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또한 현행법의 단열기준을 기존에 있던 부분에서부터 증축 부위까지 건물전체에 적용시켜야 했다. 예상했던 금액보다 약 1억 원의 공사비가 더 들었고, 구청에서 요구한 법규정에도 없는 구조기술사에 의한 업무까지 외주비도 계획 이상으로 지불하게 됐다. 결국 공사가 모두 끝나고 따져보니 신축하는 비용만큼 공사비가 들었다. 물론 신축을 했으면 1층을 주차장으로 내주어 사무실로 사용할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면적상으로는 증축 리모델링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후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매스컴에 알려지면서 여러 방면으로 증축 리모델링 상담이 많이 들어왔지만, 결국 건축주가 부담해야 할 신축비용에 버금가는 공사비의 문제로 포기하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열에 하나 정도 신축으로 방향을 돌려 진행하는 경우가 있었다. 
 2017년 2월부터는 2층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내진설계를 해야 하는 것으로 법규정이 개정되면서 증축 리모델링을 하려는 건축주들의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만들어 버렸다. 정부의 도시 건축정책 기조는 도시재생이라고는 하지만 현행법은 규제 강화 일변도로 치우쳐 증축 리모델링을 실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구조안전에 대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해결 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증축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 용적률이나 건폐율, 주차완화 등을 통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면 어떨까? 건축은 결국 부동산 베이스의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수익성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수익성에 밀려 고유한 거리의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게 지금과는 좀 더 진보한 정책과 규정이 만들어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년 전 어렵사리 증축 리모델링을 한 상가주택은 1층은 생활건축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위층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리모델링, 미래먹거리가 될 수 있나?

이 공간을 꾸준히 찾는 사용자들의 후기 중 “서울 도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특색있고 재미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특이한 공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재료와 오래된 재료의 만남, 오래된 거리와 새로운 프로그램의 만남 등, 건축이라는 그릇 안에서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결국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런 판단은 AI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축법만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한 요소들에 손을 뻗고 협업해야 한다. 건축사로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인공지능과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점에서 직능인으로서의 건축사의 관점보다는 더 다양한 관점으로 건축을 바라봐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건축사의 역량과 능력치는 더 많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 대가는 그만큼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이 시대의 건축사가 풀어야 할 숙제이며 도전일 것이다.
수익형 부동산이나 단독주택 등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건축의 공공성 측면의 좋은 건축물이란 건축물의 집합체인 도시환경을 말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런 특색있는 도시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경험할 수 있는 거리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거리는 시간이 만들어낸 많은 흔적들로 구성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울의 거리는 대부분 필로티 주차장과 마주하고 있다. AI에게 건축설계를 맡긴다면 기능적으로나 수치상으로는 하자가 없는 완벽한 집(?)들로 도시를 채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특색있는 도시의 요소는 연남동이나 경리단길, 익선동처럼 오히려 오래된 건물들이 서로 마주하며 만들어낸 거리이며 기존의 공간에 새로운 프로그램과 재료들이 결합된 곳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되어 죽어가는 공간을 살리고 그 공간을 통해 도시의 풍경을 풍성하게 만들고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AI가 할 수 없는 좋은 건축 중의 하나이고 건축사의 특권이 될 수도 있겠다.

 

 

글. 정인섭 Jung, Inseop 생활건축 건축사사무소<서울특별시건축사회>

 

정인섭 생활건축 건축사사무소

 

충북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원양건축을 거쳐 생활 건축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기획부터 설계, 시공까지 건축 전 과정을 직접 다루면서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파트너들과 함께 작업 하고 있다.

 

 

 

polly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