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모두가 알지만 해결되지 않은... 2019.9

2023. 1. 4. 09:1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국가가 건축사를 폭발적인 숫자로 늘리려 한다. 양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름발이 시선이 폭주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급의 확대는 필연적인 시장 교란을 통한 질적 저하와 불법과 탈법의 건축사 시장을 만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냐면 생존의 위기가 태풍처럼 몰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오로지 양의 증가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중심 한 가운데에 있는 이들이 바로 30대 건축사들이다. 그들은 약 6천여 명의 비등록 건축사들과 파도처럼 밀려올 새로운 건축사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축설계 시장의 왜곡은 이미 상당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인한 개인 설계 시장의 급격한 축소 환경에 놓여 있다. 기회의 확대일 수도 있지만, 과잉 경쟁으로 설계공모에서 살아남지 못할 이들도 상당하다. 상당히 많은 경우, 정말 온전히 실력으로 설계공모에 당선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건축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 건축계는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성사회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법정 건축사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도 노력해야 하고, 전국의 각 시·도건축사회와 지역건축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타 건축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젊은 건축사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모아서 공명을 이끌어내야 한다. 세대가 아우러지고, 목소리가 단합될 때 건축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의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마음에 이번 호는 젊은 30대 건축사들에게 이야기 할 마당을 열었다.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보시길...

 


04 The Problems that Everybody Knows but Has Not Been Solved

 

필자는 건축사자격을 취득하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지 이제 갓 5년 반이 된 상태이다. 선배 건축사님들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하고, 기존의 관행과 선례에 의문점을 가지기도 했다. 건축사님들과 모임자리, 그리고 수개월 전 건축사협회에서 개최되었던 젊은 건축사 간담회 등에서 생각해 본 내용들을 정리해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젊은 건축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현실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음을 느낀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한 가지 이슈가 단독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다른 문제들이 함께 해결되어야 하는 이슈들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분들이 이 문제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가지고 모바일기기로 청취할 수 있는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부터, 최근에는 유튜브 방송에서 이 문제들을 다뤄보자는 생각까지 이어질 정도로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조심스럽고 민감한 부분이어서 많은 선배 건축사님들께서 읽으실 글을 작성하는데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협회가입 의무화와 지역건축사회 가입비, 그리고 자격대여

필자는 사업적인 계산을 떠나 나라에서 건축사 자격을 부여받았으니, 건축사협회에 가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사무소를 개소하는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러운 가입비를 납부하고 가입했지만, 건축사님들과의 교류가 즐겁고 업무적으로도 도움을 받는 장점을 가지게 됐다. 서울에 사무실을 둔 건축사님들께 지역건축사회의 가입비가 수천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작은 충격일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입률이 상당히 높음은 커다란 충격이 되기도 한다.
협회에서는 가입률의 저조함을 개탄하고 있지만 ‘협회가 나한테 해준게 뭔데’라는 생각을 ‘내가 협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바뀌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가입했을 때 생기는 장점이 크게 보여지도록 하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일례로 필자는 젊은 건축사 간담회에서 사무소를 개소할 때 필요한 업무문서 양식, 캐드 레이어 세팅, 기본적인 업무진행에 대한 가이드북 등 모두가 겪는 동일한 과정에 대해 협회가 정리해서 제공하면 어떨까 하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었다.
지역에서 협회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건축사사무소 중 큰 비중은 자격을 대여하여 운영되는 사무실인 경우가 많다. 실제의 대표자가 따로 있는데 대여한 자격의 건축사를 굳이 비용을 들여 가입시킬 필요가 없다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음의 이슈들과도 그러하다.


지자체마다, 허가권자마다 다른 허가절차와 조건

실무를 수련하는 기간과 사무소 개소 이후에 설계업무를 수차례 경험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지역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조례와 규칙, 심의, 그리고 지자체장이 임의로 적용하는 허가절차와 조건의 차이로 인해 새로운 지역의 건축주를 만나게 되면 전문가답게 암기하고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확인해보겠다는 답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또한 허가담당 주무관의 인사이동이 있으면 새로운 기준준수와 서류제출을 요구받는 경우도 있는데, 왜 하나의 큰 기준이 있지 않고 같은 법에 대한 해석이 다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역의 특성상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지역의 기준에 익숙하지 않으면 업무진행이 어렵게 느껴지도록 하려는 의도가 혹시라도 담겨있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볼 때가 있다. 필자도 양쪽의 생각을 모두 하지만, 지역의 건축사를 위해 지역마다 허가절차와 조건에 특수성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인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게 해석하고 진행하는 것이 맞을지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다.


4개 단체 통합과 건축사의 목소리 합치기

이 이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몇 차례 합일점을 찾을 뻔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원하던 결론에 다다르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라며 넘길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문제이다.
국토교통부, 혹은 국가기관에 건축사들의 권익을 위한 사항을 요청할 때 여러 개의 단체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모든 건축 관련 단체가 동의할 때 국가기관 차원에서도 검토하고 추진하겠다는 답을 받는다고 한다. 필자가 구체적인 방법을 알기는 어렵지만, 각 단체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함께 상생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되다 보면 모두가 고대하던 결과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학 전공과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률 그리고 워라벨

건축학과에 5년제 커리큘럼이 자리 잡았다고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건축설계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직원을 채용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열심히 실무수련을 해도 건축사를 취득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건축설계에 비전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10%내외의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률은 의사, 변호사 시험에 비유되며 너무 낮다고 인식되고 있다. 많은 건축사가 배출되어 자유롭게 경쟁하는 것이 좋을지, 기존 건축사들도 업역이 줄어들고 업무가 줄어드는 상황인데 더욱 적은 건축사가 배출되어야 할지는 여전히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단독적으로 조절될 문제는 아니며 업무대가가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는 등의 전제하에 합격률 향상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과 개인의 삶에 균형을 갖자’는 워라벨이라는 단어는 건축사들도 피할 수 없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도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건축은 정답이 있는 과정이 아닌 고민할수록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지는 예술적인 측면을 가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야근은 하지 않되 건축에 대한 애정과 고민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를 부탁한다.


내가 참여한 설계공모는 과연 공정할까

이러한 소설을 머릿속으로 써봤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사에서 심사위원 암행어사 제도를 만들었다. 심사위원 풀에 있는 분들께 연락을 드려 설계공모 작품을 설명하고 싶어 찾아뵙겠다고 할 때 승낙하는 분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설계공모 발주처들에 공유하고 추후 심사위원 선정 시 이분들을 배제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소설을 생각하고 나니, 만약 내가 심사위원이 된다면 절대 사전접촉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건축사들이 참여했던 설계공모 결과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한두 달 동안 애정을 쏟은 작품이 지어지지 못한 주관적인 아쉬움도 있겠지만, 분명히 지침이 지켜지지 않은 듯 한데 수상작에 포함되어 있는 객관적인 경우도 있다.
최근 심사과정을 공개하고 명쾌한 심사평과 만장일치로 당선작을 선정하는 경우가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고 다른 설계공모 심사도 이처럼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여전히 의문이 생기고 아쉬운 경우도 있지만, 점점 공정하고 정의로운 생각을 가진 분들에 의해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즐겁기도 하다.


건축사 업무대가와 제대로 설계하기

위의 모든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업무대가를 받고 있는가. 계약할 때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충분한 정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모든 프로젝트마다 갖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모든 변수가 다 포함된 엑셀파일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꿈을 꾸기도 한다.
사무실을 개소하고 수없이 들었던 “평당 설계비가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에 “용도마다, 규모마다, 도면의 상세한 정도에 따라 용역비를 다르게 산정하여 제시합니다”라는 설명을 드리지만, 몇몇은 “그래서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의사의 진료를 받고 진료비를 깎고 싶은 마음보다, 돈을 더 드려도 되니 병을 잘 고쳐달라는 마음이 크지 않을까. 공인중개사도 기준이 되는 수수료 요율이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 깎는 비용을 흥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건축사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고 있을까. 주택에 설계하는 싱크대 가격보다 저렴한 설계비를 받고 있지 않은가. 우리 젊은 건축사들은 “설계비는 충분히 지불할테니 저희 집 설계에 더 많이 노력을 기울여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건축주들에게 혼신의 힘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글. 박정연 Bahk, Joungyeon Grid-A건축사사무소<경기도건축사회>

 

박정연 Grid-A건축사사무소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졸업 후, (주)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 (주)금성종합건축사사무 소에서 실무를 쌓고, 현재 Grid-A건축사사무소 대표, 아 주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현재 용인시 공공건축 가, 경기도 교육청 학교공간혁신촉진자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스케치와 건축답사기를 공유하고 있는 블로그 ‘집을 그리는 사람의 건축답사기’는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 되기도 했다.

 

laquint@naver.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