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30대 건축사,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2019.9

2023. 1. 4. 09:19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국장 註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국가가 건축사를 폭발적인 숫자로 늘리려 한다. 양의 확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름발이 시선이 폭주하는 것이 우려스럽다. 더구나 이런 공급의 확대는 필연적인 시장 교란을 통한 질적 저하와 불법과 탈법의 건축사 시장을 만들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냐면 생존의 위기가 태풍처럼 몰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이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듯하다. 오로지 양의 증가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중심 한 가운데에 있는 이들이 바로 30대 건축사들이다. 그들은 약 6천여 명의 비등록 건축사들과 파도처럼 밀려올 새로운 건축사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축설계 시장의 왜곡은 이미 상당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인한 개인 설계 시장의 급격한 축소 환경에 놓여 있다. 기회의 확대일 수도 있지만, 과잉 경쟁으로 설계공모에서 살아남지 못할 이들도 상당하다. 상당히 많은 경우, 정말 온전히 실력으로 설계공모에 당선 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건축환경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제 우리 건축계는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기성사회가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법정 건축사단체인 대한건축사협회도 노력해야 하고, 전국의 각 시·도건축사회와 지역건축사회도 노력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타 건축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젊은 건축사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모아서 공명을 이끌어내야 한다. 세대가 아우러지고, 목소리가 단합될 때 건축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의논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마음에 이번 호는 젊은 30대 건축사들에게 이야기 할 마당을 열었다.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보시길...

 


03 Society that does not recognize an architect's authority

 

올해로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 지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직장에 소속되어 열심히 뛰던 그 시간과는 또 다르게 초년 건축사로서의 시간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던 것 같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원하던 건축사 자격을 받고서도 얼마간의 시간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개업을 망설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첫 사무소. 나는 이내 생계부터 걱정해야 했으며, 혹여나 업무에 실수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걱정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3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아직 건축사로서나, 작고 소소한 나름의 사업체를 꾸려가야 하는 사업주로서 여전히 미숙하고,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이미 터 잡은 선배 건축사들의 능숙함과 노련미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직원이 여러 명 또는 수십 명씩 있고, 실적으로 내놓는 수많은 작품을 갖추고 있는 중견 건축사사무소들과 나의 사무소는 과연 경쟁이 될까?”하는 염려도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30대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일, 극히 제한적

처음에는 계획안 의뢰조차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계획안이 남보다 더 좋아도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의 계획안을 가지고 다른 건축사사무소와 설계계약하는 것을 보는 씁쓸함도 느껴야 했다.
30대, 나이가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없는 이 애매한 젊은 건축사에게 대개의 나이 지긋한 건축주들은 아마도 선뜻 일을 맡기기가 못 미더웠을 듯하다.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숙해지는 시련의 시간은 아마도 젊은 초년 건축사에겐 몸에 좋은 쓴 약과도 같을 것이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의 건축설계는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특히 젊은 30대 건축사들은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설계공모의 벽도 높은 편이다. 모든 설계공모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설계공모를 둘러싼 각종 로비와 부정부패 의혹이 있기도 하고, 1인 건축사사무소의 입장에서 민간 설계 및 감리일을 하면서 단기간의 성과물을 내야 하는 설계공모는 일정에 쫓기고 외주비가 부담 되는 등의 여러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신진건축사 배려하고 보듬어주는 정책 늘어나길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아직 건축사협회에 들지 못한 젊은 건축사들도 많다. 지역에 따라 본협회비와 별도로 수천만 원의 지역 입회비를 내는 곳도 있다 하니, 초년 건축사로서는 시작부터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또 어떤 건축사는 어느 지역에서 사무소를 내고 자리를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되어 지역도 선정하지 못한 채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건축사협회라는 조직에 들어오게 되면, 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여러 건축사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유대관계만을 위한다면 비단 협회가 아닌 곳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초년의 신진건축사들이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싶은 협회, 협회를 통해서 건축사의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고 나아가 성숙한 건축사 집단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건축사협회가 신진건축사들을 좀 더 배려하고, 함께 보듬어 주는 정책이 늘어나길 소망해 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근로자의 근로복지환경이 중요시 되어 최저임금제와 근로시간 단축 등, 일반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개인 소상공인과 건축사사무소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업무 특성상 야근과 주말 업무가 많은 건축사사무소는 민간 설계·감리 용역비는 십수 년째 오르지 않는 반면, 직원들의 임금은 늘고 야근과 주말근무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근로복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물론 그동안의 건축사사무소의 그러한 관행이 꼭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직원 1∼2인의 소규모 사무실에서는 정해진 일정을 감당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건축사인 대표가 혼자 야근과 주말 근무, 휴가까지 반납해서 일정을 맞춰야 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늘기도 했다. 이러한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오히려 직원을 쓰지 못하고 힘들어도 나 홀로 1인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가 많아지는 것이 안타까운 지금의 현실이다.
여기에 내년부터 1년에 2번씩 치르게 되는 건축사 자격시험으로 인해 예년보다 훨씬 많은 신진건축사들이 배출될 것이고, 안 그래도 어려운 건축 불경기와 건축 환경에 맞물려 결국은 이렇다 할 아무런 대비 없이 더 많은 1인 건축사사무소가 생겨날 것이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30대 신진건축사들이 내년부터 더 많은 신진건축사들과 경쟁하며, 그들만의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된다.

건축사 책임은 커져가는데 사회적 인식은 제자리 현실 아쉬워

많은 제도의 변화로 건축사의 위치가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대중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TV 매체에서 건축물에 대한 소개는 많이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 건축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늘지 않고, 건축가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무면허인 그들이 건축가(작가)란 타이틀로 작업을 하며 작품이라 소개하고, 일부지만 건축사는 인허가를 대행해 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사는 건축에 관한 마스터플래너로서, 건물만이 아닌 도시를 설계하고, 시대와 문화를 설계하는 종합적인 건축 마에스트로이다. 여러 부실공사와 안전에 대한 사건 사고가 만연한 현실에서, 건축사의 책임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데 건축사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제자리인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변화의 시대에서, 현재 나는 어떤 건축사의 길을 가고 있는가? 
5년,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건축사의 길을 걷고 있을까? 
건축사로서 나는 과연 사회에 역할과 책무를 다하는 건축사인가? 
파란 하늘이 청명한 초가을, 스스로를 돌아보며 건축사 자격증을 처음 받아들던 그때의 열정과 초심을 잊지 말자고 다시금 옷깃을 여미어 본다.

 

 

글. 정아 Jeong, Ah 가인공간 건축사사무소<인천광역시건축사회>

정아 가인공간 건축사사무소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고, 2016년 가인공간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4년째 운영 중 이다. 대한건축사협회 인천광역시건축사회 여성위원회 위원으 로 활동하고 있다.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숙박시설 위주의 설계를 주로 진행해 왔으며, 현재는 단독주택, 상 업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eongah11@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