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주한 스위스 대사관 2019.9

2023. 1. 4. 09:17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New Swiss Embassy in Seoul

사진작가 이인호

 

작년 겨울 스티븐 홀(Steven Holl) 국내 전시회 일정으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외국 건축사가 설계를 맡은 두 건물을 방문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하고 2017년 오픈한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또 다른 건물은 바로 올해 봄 개관한 스위스 로잔의 버크하르트+파트너(Burckhardt+Partner)와 국내 이래건축이 함께 진행한 주한 스위스 대사관 공사 현장이었다. 당시 대사관 현장은 공사가 마무리되고 가구배치가 이루어지는 시점이라 순수하게 공간 자체를 감상하기에 알맞은 시기였다. 건축사의 열정과 노력이 깃든 건물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나에겐 커다란 기쁨이기에, 찾아 나서는 설렘과 그리고 매 순간순간에 느낀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고 소중한 기억이다. 

두 건물은 전혀 다른 주변환경과 도시스케일을 고려해 지어졌지만, ‘비움’의 미학을 통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따라서 두 건물의 보이드(Void)를 비교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이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찾아가는 여정에서 처음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모던한 큐브(Cube)속의 입체적인 메가스케일의 보이드는 ‘저 공간이 담고 있는 분위기, 또 그 공간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대를 누구나 할 수 있게끔 건물 매싱(Massing)에서부터 뚜렷이 표현되어 있다. 이에 반면, 스위스 대사관의 중정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ㄷ’자 매싱은 아쉽게도 높은 담벼락으로 가려진 다소 차가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담 너머로 보이는 지붕의 형태가 주변지형과 멀리 보이는 인왕산의 모습에 순응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담 디테일에서부터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까지의 마감수준에서 건축사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이날 반갑게 스위스 대사관 현장을 소개해준 이래건축 이인호 건축사의 디테일은 그가 미국 스티븐 홀 건축사무소와 협업으로 설계한 성북동 대양갤러리를 통해 이미 접해보았었기에 디테일에 대한 기대감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차가웠던 첫인상은 사라지고 ‘ㄷ’자 매싱과 중정을 둘러싼 목재 전창, 그 위로 보이는 지붕처마, 그리고 소나무로 가꾸어진 정원이 우리나라 전통한옥을 연상시키면서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 스위스 대사관의 중정은 앞서 말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입체적인 보이드와 비교했을 때 다소 평면적이고 강렬함은 부족할 수 있으나, 우리의 옛 건축양식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라는 부분에서 소소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 같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보이드는 건물을 둘러싼 서울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공간이라면, 스위스 대사관의 보이드는 대사관 내의 삶을 담아내는 좀 더 친밀한 공간이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스위스 건축과 한국 전통건축인 한옥이 재해석되어 조화를 이룬, 큰 경험을 만들어주는 작은 건물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건물내부는 나선형의 동선을 따라 배치된 크고 작은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느껴지는 스케일 변화와, 천장에 노출된 목재 대들보가 형성하는 리듬감, 그리고 중정을 향하는 전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는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동선을 다양한 경험과 감동의 여정으로 만들어 준다. 이와 같은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대사관 내 삶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축사의 세심한 배려 또한 엿볼 수 있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친환경 건축에 앞장서는 스위스 정부의 건물이니만큼 친환경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설명에 앞서, 스위스 정부의 미너지 스탠더드(Minergie Standard)에 맞추어 설계된 건물을 처음 접한 기억이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위스 대사관저로 기억한다. 이 건물은 스티븐 홀이 설계한 건물로, 지역건축자재, 자연채광, 그리고 남측 태양열을 디자인요소로 삼아 발전시킨 건물이다. 다른 국가에 위치한 스위스대사관들 또한 그 지역성을 반영함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친환경건축물들임을 확인 할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2015년 준공된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스위스 대사관과 2018년 개관한 케냐 나이로비 스위스 대사관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도 위와 같은 스위스 정부의 친환경 철학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로 가동되는 지속가능한 건축물로 지어졌다. 지열과 태양열을 사용하며 스위스 대사관 경험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중정은 이를 둘러싼 모든 실내 공간에 알맞은 자연채광과 아름다운 전망을 제공한다. 다른 친환경건축물들과 큰 차이점이 없는 기능적인 부분이라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건물을 둘러보고 다시 중정으로 나왔을 때, 바닥에 구불구불하게 음각으로 새겨진 수로가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 출신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Lena Maria Thüring)의 설치미술작품인 ‘워터커넥션(Water Connections)’이었다. 갈래로 나눠진 수로의 끝자락엔 지붕 물받이와 쇠사슬로 이어진 커다란 세 개의 돌이 놓여 있어 단번에 빗물과 관련된 예술작품임을 알 수 있다. 다소 투박할 수 있는 빗물집수시설이 건축과와 설치미술가와의 협업으로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대사관 앞마당에 재미와 감동을 더해준다. 친환경적인 요소가 건축의 일부로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보기 드문 훌륭한 예이다. 이와 같은 협업을 적극적으로 보조하여 실현가능하게 해준 스위스 정부, 그리고 건축을 예술로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과 태도는 건물의 완성도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친환경적인 건축적 요소가 건물의 숨은 기능이 아닌, 누군가에게 시각적으로 혹은 색다른 경험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방향이 결국 친환경건축, 지속가능한 건축이 추구해야 할 설계방향이 아닌가 하는 도전적인 생각도 들게 한다.  

건물을 나서는 아쉬움 때문에 길 맞은편 서울시 교육청으로 발걸음을 옮겨 주한 스위스 대사관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의 수직적 고층주거단지와는 상반된 수평적으로 대지에 순응하는 이 작은 건물 한 채가, 이 지역 건축문화 발전의 긍정적인 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감이 부풀은 순간이었다. 재개발사업과 고층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감성과 불과 몇 년 전까지 보존되어 온 전통가옥지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어 한국을 방문하는 나에겐 매번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러한 아쉬움은 뒤로하고 외국 건축사와 한국 건축사가 협업을 통해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물을 소개하였다는 것은 건축적으로 할 수 있는 외교의 가장 바람직한 예가 아닐까 싶다. 현재와 과거, 동양과 서양, 기능과 예술의 조화가 건축으로 표현되어 전통가옥의 역사가 사라져가는 이 지역에 세워졌다. 다양한 경험과 공간을 담은 건물이 세워졌듯이, 돈의문 마을 일대가 옛 모습을 상기시켜주는 다양한 삶과 건물들을 담은 지역사회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글. 이석 Lee, Suk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 미국 건축사

 

이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 미국 건축사

미국 뉴욕 건축사이며 2019년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워싱턴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건축학과 학사를 마치고, MIT 대학원 건축학 석사를 마쳤다. 조류(Algae)를 이용한 공기정화 시스템으로 LafargeHolcim Awards (3rd Prize, 2014)를 수상했으며, 2017년 워싱턴 주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최근 10년 최우수 졸업생으로 선정되어 GOLD(The Graduate of the Last Decade) Award를 수상했다. 2019년까지 뉴욕 Steven Holl Architects에서 Project Architect로 실무경험을 쌓았으며, 2019년 9월 개관예정인 뉴욕에 위치한 Hunters Point Community Library 감리를 총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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