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많이 사줘야 국내 브랜드가 명품이 됩니다 2019.10

2023. 1. 5. 09:1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al perspective Buying a lot makes domestic brands a luxury

 

최근엔 과거에 비해 외제차를 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가끔 단독주택의 설계비를 건축주의 차량가격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과 진담을 섞어 말하곤 한다. 필자가 배금주의자이거나 차량만 보고 사람을 섣불리 판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의 디자인과 기술력, 안전성에 투자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건축설계에도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뜻이다.

건축사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국내 건축사의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해주며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길 기대하는 심정으로 글을 적는다. 중간에 좋아하는 해외 건축사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언급할 텐데 불필요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명품을 소유하겠다는 것

멋진 가방과 구두를 생산하는 기술자와 브랜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해외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자마자 소유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브랜드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간 쌓아온 명성과 검증된 제품의 품질, 그리고 대접받는 느낌의 고급스러운 매장 등이 이유일 수 있겠다. 국내에도 수많은 건축사가 있지만, 보다 유명한 해외 건축사의 디자인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건축주의 마음은 이러한 명품 소비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물건을 담는다는 가방으로서의 본질은 같지만 디자인과 품질의 차이를 위해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하듯, 같은 규모의 공간을 만들더라도 그 구성과 마감의 차이, 그리고 건축사의 이름에 설계비를 더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 명품을 만드는 장인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무엇이든 최고와 완벽을 추구하여, 드라마 유행어처럼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명품의 조건이 디자인도 훌륭해야 하지만 디자인이 구현되도록 잘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건축사의 설계만큼 시공자의 기술력과 건축을 대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해외 건축사에게 설계를 맡기는 건축주들은 도면에 표현된 건축사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해 낼 수 있는 시공자에게 시공을 맡기는 편인데, 국내 건축사들이 해외 건축사의 작품 못지않은 (혹은 더 뛰어난) 설계를 했지만 시공과정에서 아쉬움이 잔뜩 남는 건물로 전락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예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와 공공건축물 시공 발주방식의 제도적 문제도 있다. 이를 극복하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우의 모든 수고는 건축사가 부담하는 듯하다.

그들은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작년에 신문기사를 접하고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 멋진 건축 작품들을 만들어 필자가 좋아하기도 했던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도산대로에 신축설계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말한 ‘도산대로에 좋은 건축이 없다. 미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한, 추한 상업 빌딩들만 있어서, 일관성도 정체성도 찾을 수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이 좋다고 프리츠커상을 비롯한 여러 건축상들이 인정했다지만, 그리고 그들이 도산대로에 설계한 작품이 훌륭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건물은 대지라는 종이에 건축사와 건축주가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이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필자에게는 옳지 못한 발언과 태도였다고 느껴졌다. 건축은 진지한 비평을 통해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지, 힙합처럼 서로를 디스(disrespect)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고 생각되어 역시 팬이었던 장 누벨(Jean Nouvel)이 2006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설계공모에 제출한 안을 보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각한 고민을 했다. 몇 개의 공연장을 뒤덮는 동양화 같은 새로운 지형을 제시한 결과물이 2001년 일본 도쿄에 한시적으로 운영될 구겐하임 미술관(Temporary Guggenheim Museum)과 2005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콘서트홀 및 컨퍼런스 센터 설계공모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내용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반복해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 구현되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를 다시 제안해보자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렘 콜하스(Rem Koolhaas)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사용하는데 1996년 태국 방콕과 동시에 서울 도곡동에 유사한 형태의 거대한 빌딩들 조합을 제시한다. 1991년 일본 후쿠오카의 넥서스월드(NEXUS world)에서부터 구현하고 싶어 했던 블랙 콘크리트는 2004년 리움(Leeum)에 와서야 제대로 구현되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관의 떠있는 쐐기형태는 공연장이나 강연장의 기본적인 단면과 유사해서 스페인 코르도바 의회를 비롯한 많은 작품에서 등장하던 형태이다. 이렇게 과거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다시 사용되는 것은 무분별한 자기표절이라기 보다는 내공이 쌓이듯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쌓이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있을 수도 있다.

가장 크게 문제를 느꼈던 경우는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HDC사옥 입면디자인인데, 도서출판 청람에서 발행한 ‘해체주의?’라는 책에서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HDC사옥의 입면 디자인은 1987년 베를린 시를 대상으로 도시를 분석하고 선을 추출하는 작업을 통해 발표한 ‘도시 외곽(City Edge)’이라는 결과물을 15년쯤 뒤에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가져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멋진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그게 무슨 문제이냐 라고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입면이 무슨 의미를 가졌는지 생각해보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서울을 표현한 새로운 그림이 아닌 예전에 했던 다른 도시의 그림이었다는 것을 건축주도 알고 있다면 엉뚱한 그림이 걸린 것이고, 모르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질투 대신 우리도 해외로

앞서 언급한 사례들이 필자의 견해를 충분히 오해할 만하지만, 해외 건축사들이 국내에 진출하는 것은 명품소비심리와 같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교육받았다. 우리와 다른 것들을 보고 자랐고 우리가 모르는 재료들을 사용해봤기 때문에 우리와 다른 것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큰데, 그것이 건축주의 눈에는 새롭고 세련되게 보일 수 있다. 또한 제대로 설계하고 제대로 시공되는 환경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도면에 충실히 표현하고 이것이 구현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은 다른 예술분야와 비교할 때 참 평준화된 상태 같다. 피카소와 첫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천배 혹은 만배에 가까운 작품가격 차이를 가지며, 해외의 유명한 거장 지휘자가 와서 이삼십 만원의 입장료를 받으며 공연할 때 지역 오케스트라가 무료로 공연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계적인 건축사와 지역에서 허가도면만 그려주는 건축사의 용역비용은 많아야 몇십 배 정도일 것이라 생각된다. 스타는 질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큰 스타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회 한 켠에서 건축이 작품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좋은 작품을 하는 국내 건축사도 많아질 수 있다.

많은 국내 건축사들은 “우리도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과 존경을 받으면 해외 건축사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해외 건축사들이 받는 비용은 국내 건축사들이 받는 비용보다 훨씬 많은 편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할 정도이다. 국내에서 그만큼 대우받고 일하며 해외 건축사가 설계하는 것만큼 멋진 작품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리도 해외에 나가 활동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방법은 국제설계공모에 참여하여 당선되는 방법이 있고, 미디어를 통해 해외에 꾸준히 소개되어 해외의 건축주로부터 의뢰를 받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해외에 건축을 하고자 하는 국내 건축주에게 의뢰를 받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 또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도와주세요

필자의 사무실로 가끔씩 해외의 학생들로부터 인턴십 문의가 오는데 수차례 거절하다가 한국말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해서 수락한 적이 있다. 그 학생에게 우리 사무실을 어떻게 알고 지원했는지 물어보니 웹상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보드에 핀업하는 개념으로 작동하는 P사이트를 통해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온라인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진행된 것이다. 또한 매일 새로운 건축 작품을 소개해주는 A사이트에 작품이 게재된 경우 인턴십 문의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미디어는 우리에 대한 정보를 쉽게 해외에서도 꺼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낯간지러운 일을 만들기보다 국내의 훌륭한 작품들이 해외 건축 관련 미디어에 많이 소개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는 업무가 진행되는 것이 대한민국 건축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장기적으로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04년 프랑스 파리에는 곰의 가죽이라는 이름의 미술품 펀드가 있었다. (La Peau de l’ours, 곰을 죽이기 전에는 가죽을 팔지 말라는 우화에서 따온 이름이며, 투자 대상인 예술가의 작품만큼 예술가도 대우해주자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 미술품 펀드는 당시 젊은 작가였던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등의 작품을 사들이며 10년간 전시하고 이를 통한 수익으로 새로운 미술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10년 만에 경매를 열어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그 중 일부를 작가에게 분배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생계를 보장하는 동시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의 가치를 올리게 되므로 서로에게 유리한 방식이며, 이 펀드에 의해 피카소가 지금의 피카소가 될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미술 작품과 건축 작품은 다소 차이를 가진다. 건축 작품이 미술 작품만큼 쉽게 사고 팔 수 있지 않으며, 각각의 용도나 건축주에 맞춰 특별하게 만들어지므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경우 가치가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작품성에 근거해 가격이 책정되기보다 부동산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한 건축사의 작품을 인정해주고 지속적으로 설계를 맡기는 경우를 종종 볼 때면 과거의 미술품 펀드를 떠올리게 된다. 

명품을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만 이미 유명한 해외 브랜드만 계속해서 명품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좋은 디자인과 잘 만들어진 제품 브랜드를 찾아 많이 구입해주다 보면 그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해외 건축사의 국내 활동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기보다, 건축사 스스로가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미디어를 통해 세계 속에 노출되도록 하며, 건축주는 이처럼 노력하는 건축사들에게 설계 기회를 부여해주고 인정해주다 보면 국내 건축사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정연 Bahk, Joungyeon Grid-A 건축사사무소<경기도건축사회>

 

박정연 그리드에이(Grid-A) 건축사사무소

글쓴이는 전북대학교 건축공학과,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석사 졸업 후, (주)해안 종합건축사사무소, (주)금성 종 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고, 현재 Grid-A 건축사 사무소 대표, 아주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현재 용 인시 공공건축가, 경기도 교육청 학교공간혁신촉진자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스케치와 건축답사기를 공유하고 있 는 블로그 ‘집을 그리는 사람의 건축답사기’는 네이버 파 워블로그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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