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건축티쿤올람 2019.10

2023. 1. 5.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Tikkun Olam

‘건축의 혁신’이라는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야 할지 막연했다. 이전에 좋은 글을 적으신 건축사님들의 담론을 보니 원만한 주제들은 이미 다 다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주제보다 다소 중복이 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근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혁신’이란 묵은 조직이나 제도, 풍습, 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새롭게 하는 일이란 기존의 관행이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혁신의 아이콘으로 스티브 잡스를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고 아이디어를 중요시 한 그는 우리의 삶을 확실히 많이 바꾸었다.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을 이룬 많은 기업가와 노벨상을 받은 이의 약 22%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유대인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분야에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이루는지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다. 
원고 청탁을 받고 우연히 한 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유대인에 관한 특집 방송을 다루는 것을 보게 됐다. 방송을 보고 나서 “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들의 교육과 환경이 만들어 낸 삶과 일상이 우리와 비교할 때 혁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유대사상 중에서 티쿤올람이 바로 혁신의 밑거름이 되는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어로 티쿤은 “고친다”는 뜻이고 올람은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티쿤올람은 세상을 바꾼다라는 의미로 유대인들이 항상 지금의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이, 조직, 직위와 관계없이 끊임없는 노력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 보다 안전함이나 보편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가치관과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티쿤올람의 정신으로 건축분야의 무엇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규제 혁신-건축법 해석 개혁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대한민국에서 프리츠커상 수상을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 진행한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소위 대표 건축사를 선발하여 해외의 유명 건축사사무소에서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다수가 그 방법론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이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치닫고 있는 지금 왜 일본에서는 프리츠커상을 저렇게 많이 배출하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단 한 사람도 받을 수가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지만 나는 우리의 현실과 제도에서는 당연히 아니 앞으로도 제도 및 규제 개혁 없이는 프리츠커상을 수상 할 수 없다고 본다. 
프리츠커상은 명실상부 건축계의 노벨상이다. 그런 만큼 건축과 관련하여 혁신을 이루는 공헌을 하여야 하고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창조해야 한다. 이토도요(프리츠커상 수상)는 일본 건축법으로 해석할 수 없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실험하고 증명해서 관청을 설득하고 건축허가를 득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건축사가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창조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현실에서는 건축 허가를 득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본 건축법을 바탕으로 만든 우리의 건축법은 단 한 번도 대대적인 정비(물론 수차례 개정은 있었다.)가 없었다. 이러한 건축법으로 새로운 설계개념을 모두 정의 할 수는 없다. 하물며 건축법으로 정의 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들 이 해석을 놓고 건축사는 과연 허가를 득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허가권자와 법의 해석이 서로 다를 경우 흔히들 국토부에 질의 회신을 한다. 하지만 질의 회신의 결과는 명확하지 않고 항상 허가권자와 협의하고 허가권자가 최종판단 할 수 있도록 회신을 해준다. 당연히 허가권자와 의견이 달라서 질의를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아주 오래전에 건축법 해석과 관련하여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국토부에 직접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어렵게 통화가 연결되어 상황을 설명하니 건축법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관련 내용을 문서로는 회신할 수 없다고 했다. 
작년에 모 지역에서 지구단위계획지침을 보고 해석하고 반영해 설계를 했다. 우리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허가를 접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지 않고 전혀 다르게 해석하였다고 하여 허가를 득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는 건축주분과 같이 시청의 담당자를 찾아가 확인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지구단위계획지침 상으로 문제가 없지만 문서상으로 회신할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우리는 건축주에게 국토부 질의를 해보아도 허가권자가 판단하도록 문구가 첨부 되어서 답이 올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자고 했다.
우리의 사회와 제도에서는 개혁을 하기가 어렵다. 허가권자나 담당자에게 너무나 과중한 책임을 묻는다. 그러다 보니 허가권자는 모든 사항을 부정적으로 또는 없는 해석도 과대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의 규제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건축이 탄생 할 수 있겠는가?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정책인 허가제를 폐지하고 신고제로 건축법을 개선하겠다는 정책에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바이다. 공무원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아닌 건축 관련 서비스 업무를 하도록 하게 하고, 건축법을 확인하는 건축센터를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도 이어질 것이라 판단된다. 국토부의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으로 창의적인 설계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건축법 개선도 매우 훌륭한 변화이다. 이러하듯 규제와 관련한 새로운 혁신은 지금까지의 사고와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통제하고 규제하고 잘못된 것에 책임을 묻는데 집중했다고 하면 앞으로는 자유로운 창작과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위주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고제로 건축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새로운 건축개념에 대한 건축법 해석이 불가할 경우나 건축법 해석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을 경우 질의 회신을 할 수 있는 오픈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통신이 발달한 만큼 컴퓨터 프로그램을 오픈 소스로 개발하는 것처럼 국토부나 대한건축사협회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개발 하고 이곳에 건축법 질의를 하면 다양한 건축사들이 해석과 관련한 의견을 올리고 최종적으로 대한건축사협회와 국토부가 조율하여 허가권자에게 명확하게 회신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석된 데이터가 쌓이고 오픈하면 아주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건축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대한민국 어디에서든지 일괄되게 적용될 것이다. 건축주는 지역에 따라 다른 해석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닌 형평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또 다른 많은 변화와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작해 보지 않으면 영원히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시작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건축법을 대대적으로 개혁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혁신이다. 좀 더 명확하고 단순하게 개혁하고 지금 이 시대의 건축과 공간에 맞게 변화를 가져간다면 진정 머지않은 미래에 이 땅에서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건축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글. 정웅식 Jung, Woongsik (주)온 건축사사무소<울산광역시건축사회>

 

정웅식  (주)온 건축사사무소

2007년 <多喜家>를 시작으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온 건축사사무소의 대표 건축사를 맡고 있으며 울산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대학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제5회 양산건축문화대전 장려상, 제8회 농촌건축대전 초대작가 선정, 2015 울산 건축사상 주거부문 대상, 2015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2015 김해 건축대상제 대상, 2015 경상남도 건축대상제 동상, 2016 울산 건축사상 주거부문 대상, 2016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우수상, 2016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우수상 및 장려상, 2016 울산 건축상 일반부문 장려상, 2017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최우수상, 2017년 울산 건축상 일반부분 최우수상, 2017년 울산 건축상 주거부분 우수상, 2017년 독일 Iconic awards Winner, 2018년 울산 건축상 일반부분 최우상등을 수상 했다. 대표작으로 <多喜家>, <Y-House>, <Tower-house>, <H-house>, <프로젝트 ‘용적률 게임’>, <Pentagon>, <旻輝庭>, <Cliff house>, <Dance building>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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