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좋은 건축 2019.10

2023. 1. 5.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좋은 건축

사무실 멤버들과 흔히 말하는 단어가 “좋은 건축”이다. 내가 좋은 건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나 보다. 어느 날 멤버 중 한 친구가 물었다. “소장님이 말하는 좋은 건축은 무엇입니까?” 선뜻 즉답하지 못했다. 나에게 좋은 건축의 의미는 무엇일까 돌이켜 보았다. 학생 때에는 디자인이 좋은 건물이 좋은 건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무를 시작할 때는 공간이나 디테일이 잘된 건물이 좋은 건축이었다. 그런 것들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이 보이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의 노력들이 모여야만 잘 만들어진 건물이 나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오픈하면서는 사무실 멤버, 클라이언트, 시공사 나아가 그 건물을 이용하고 경험하고 이웃하는 모든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무게가 더해졌다. 지금 시점에서 좋은 건축의 의미는 나에게는 너무나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즉답을 못 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답의 복잡함과 모호함 그리고 그걸 공간을 디자인 해야 하는 사람이 다 감당할 몫인가 하는 의문까지 더해져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좋은 건축인들이 좋은 건축의 의미를 쫓아 오늘 하루를 살고 있다. 각자의 좋은 건축의미는 다르겠지만 그 무게만큼은 결코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직업적 가치

나는 직업으로서 건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다른 분이 우리 현장 감리를 보신 적이 있다. 3년여의 시간동안 2번 현장을 방문했다. 감리비에 비례해 본인이 생각하는 현장 방문횟수를 정한 건지 아니면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건축을 대하는 태도의 면에서는 자격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축사라는 자격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 좋은 건축인이 건축을 하는 것이 맞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부족하지만, 끝까지 좋은 건축을 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싶다. 물론 생계를 위해 일하는 직업의 기본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단지 돈을 벌기 위해라는 이유만으로 건축을 대하기에는 내 마음속 어딘가 불편한 기운이 올라온다. 건축의 행위가 누군가에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 그것은 내가 건축에 대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내 스스로 느끼고 지키고 싶은 것들. 그것들이 행해진다면 건축인의 직업적 가치가 빛나지 않을까?

적절한 설계비

좋은 건축을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일을 하는 건축인에게 얼마의 설계비가 적절할까? 주택을 설계할 때에도 10여 차례 미팅과 여러 대안을 검토한다. 대지를 분석하고, 주변 관계를 고려해 메스를 앉히고, 쓰임에 맞게 공간을 디자인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와 설비를 정의하고, 가구를 선정하고, 기초도면과 거기에 각종 확대도, 상세도, 시방서를 더해 일을 마무리한다. 최소한의 일의 범위를 생각하더라도 적지 않은 일을 우리는 하고 있다. 그리고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장이 요구한다는 핑계로 덜 일 해주고 덜 받는 쪽으로 우리의 건축시장은 커져 있다. 좋은 건축이 많아지려면 제대로 일하는 건축인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적절한 설계비를 우리 모두가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설계비를 싸게 부르는 조급함이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또 우리의 후배들에게 좋은 건축을 하면 좋은 기회들이 온다는 희망을 우리의 안일함으로 뺏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변화

총괄건축가 제도와 공공건축가 제도가 이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이다. 공공분야에서 좋은 건축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필요가 이와 같은 확산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많고 행정조직과의 마찰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크다. 아니 우리가 그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새롭게 시행된 설계공모방식은 과거의 은밀한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 설계공모에서 뽑힐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 본다. ‘영주시’나 ‘프로젝트 서울’에서 보여지는 결과물들이 이를 증명한다. 다만 이런 제도가 더욱더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건축인들이 힘을 보태 좋은 건축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좋은 건물을 디자인하고 짓고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좋은 건축을 찾는다면 한국 건축계는 선순환 구조의 시장의 틀을 가지지 않을까?
미래의 건축

나는 여전히 한참 건축을 경험하고 있다. 좋은 건축의 정의 역시 미완성이고 진행형이다. 나라는 인간이 인생을 사는 건 실수투성이에 불완전하다. 하지만 좋은 건축을 하는 태도만큼은 잘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냐고? 건축이 가치가 있냐고? 그 수많은 의문에 대한 대답은 사회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우리가 증명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트레싱지를 펼치고 의견을 나누는 사무실 멤버들을 보며 우리 건축의 미래가 어둡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건축의 미래를 밝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선다. 

 

 

 

 

 

글. 이기철 Lee, Kichul (주)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이기철  (주)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이기철은 동아대학교 건축학과와 유씨 버클리(U.C.Berkeley) 환경디자인 대학원 건축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미국 뉴욕의 프레데릭 슈왈츠 아키텍츠와 (Frederic Schwartz Architects)와 한국의 공간건축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2012년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Architect-K)를 개소 운영 중이다. 엑상프로방스의 장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폴 세잔처럼 건축계의 장인으로 세월 속에 익어가는 건축사로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kichul@architect-k.com